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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200

삼성기 하-전문 1. 인류의 시조와 동서 문명의 시원 국가 인류의 조상은 나반那般이시다. 나반께서 아만阿曼과 처음 만나신 곳은 아이사비阿耳斯庇이다. 두 분이 꿈에 천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혼례를 올리시니 환족의 모든 족속[九桓族]이 그 후손이다.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 백성들은 풍요로웠고 인구도 많았다. 처음에 환인桓仁께서 천산에 머무시며 도를 깨쳐 장생하시니[得道長生] 몸에는 병이 없으셨다. 하늘(삼신상제님)을 대행하여 널리 교화를 베풀어[代天宣化] 사람들로 하여금 싸움이 없게 하셨다. 모두 힘을 합해 열심히 일하여 스스로 굶주림과 추위를 사라지게 하였다.[환국의 통치자와 열 두 나라 연방]초대 안파견환인에서 2세 혁서환인, 3세 고시리환인, 4세 주우양환인, 5세 석제임환인, 6세 구을리환인을 .. 2024. 6. 5.
삼성기 상-전문 1. 환인천제의 환국 개창우리 환족의 나라 세움이 가장 오래 되었다.하느님[一神]은 사백력斯白力의 하늘(가장 밝은 하늘)에 계시며 홀로 우주의 조화를 부리는 신神이시다. 광명光明으로 온 우주를 비추고, 대권능의 조화[權化]로 만물을 낳으며, 영원토록 사시며[長生久視] 항상 즐거움을 누리신다. 지극한 조화기운[至氣]을 타고 노니시고 스스로 그러함[道]에 오묘하게 부합하며, 형상 없이 나타나고, 함이 없이 만물을 지으시며, 말없이 행하신다.어느 날 동녀동남 800명을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 보내시니, 이에 환인께서 만백성의 우두머리[監群]가 되어 천계天界(천산 동방의 환국)에 거주하시며 돌을 부딪쳐서 불을 피워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시니 이 나라를 환국(광명의 나라)이라 했다. 이 환국을 .. 2024. 6. 4.
안함로安含老-삼성기 상 저자 『삼성기』상을 지은 안함로安含老 (579~640) (삼성기 상 전문보기)안함로는 신라 진평왕 때의 도통한 승려이다. 성은 김씨이고, 이찬伊飡을 지낸 시부時賦의 손자로 안홍安弘 법사, 안함安含 법사, 안함태安含殆 화상 등으로 불린다. 신라의 십성十聖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고려 고종 때의 승려 각훈覺訓이 삼국 시대 이래 유명한 고승들의 전기를 정리한 「해동고승전」은 안함로의 생애를 이렇게 전한다.   안함로는 22세(600, 진평왕 22)때 승려 혜숙惠宿과 함께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되돌아왔다. 이듬해 칙명을 받고 법사가 되어 수나라에서 온 사신과 함께 수나라로 건너 가서 문제文帝(재위 581~604)를 직접 만났다. 그곳 대흥사大興寺에 머물며 불교 경전과 진문眞文(부처나 보살이 설교.. 2024. 6. 4.
성명정-인간 몸 속에 깃든 삼신의 조화 대광명 [도가에서는 정精·기氣·신神을 3가지 보배로 여기며, 정·기·신으로 수행의 원리를 설명한다. 정·기·신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서로 기르고 협동하는데, 정과 기는 서로 길러 준다. 그리고 정기精氣의 상호 작용에 따라서 발휘되는 것이 신神이다. 따라서 정기精氣가 충실한 사람은 신神의 기능도 왕성하지만, 정기가 부족한 사람은 신의 기능도 부실한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수행 생활이란 음식을 적절하게 섭취하여 정精을 잘 기르고 휴식과 운동, 잠을 절도 있게 하여 기氣를 보존하며, 정신[神]을 산란하게 하지 않고 하나로 통일 시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기·신 수행법의 원형이 배달국의 삼일신고를 바탕으로 제시된 한민족의 삼신수행법이다. 성명정(性命精 ), 심기신(心氣身), 감식촉(感息.. 2024. 5. 28.
고대 한민족의 수행문화 [환단고기의 삼성기 상에 呪願有功(주원유공), 즉 환웅께서 주문을 읽어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하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듯이 고대 배달의 강역이었던 홍산지역, 내몽골 적봉시 오한기에서 5,300여 년 전으로 추정되는 흙으로 구운 남신상이 발굴되었다. 이 남신상은 수행을 하듯 반가부좌를 틀고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마치 주문을 읽는 듯 입을 벌리고 있다. 주문수행은 지금은 기억을 상실해 일반적으로 생소하게 생각하지만,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활용한 한민족 고유의 전통 수행법이다. 주문은 신성한 음절을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그 주문의 영적 힘이 내 몸에 축적되고, 그 주력으로 내 몸과 영혼 속의 어두운 기운들을 몰아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주문의 힘으로 내 안에서 신성이 열리고,.. 2024. 5. 26.
주문은 ‘신의 노래’이자 ‘우주의 노래’ [천지광명과 신성’ 회복의 길을 열어주는 『환단고기』]  우리가 머지않아 맞이할 통일문화 · 열매문화 시대를 누릴 수 있는 천지광명의 아들 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선천 상극이 낳은 갈등과 상처를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치유의 과정을 통하여 삼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 본연의 신성神性을 회복하여야 한다.  동서양의 수행 문화에는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고 대광명의 영성을 회복하는 ‘치유 문화(Healing culture)’ 가 포함되어 있다. 이제 인류 문화의 중심축은 정보산업 사회를 넘어서 밝은 ‘영성Spiritualty 문화’로 바뀌고 있다.   인도 출신의 미국 의사 디팍 쵸프라Deepak Chopra(1946~ )도 인간의 영성을 높이 평가한다. 그.. 2024. 5. 25.
우리는 본래 천자국天子國 환단고기를 통해 한민족의 고대 원형문화와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면서 한국사에서 느끼는 가장 아쉬운 점은, 우리가 천자문화를 망실했다는 것이다. 고려말 원나라의 침략으로 천자문화가 상실되었고, 이씨 조선에 들어와 중국에 천자국의 지위를 넘겨주면서 민족의 혼은 어둠속에 갇혀 버렸다. 조선이 망한 후 한국사는 일제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했으며, 광복후 근 80여 년이 지난 아직까지 그 상처를 전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복원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천자문화라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이 천자문화를 회복해서 천자국으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한다면, 외래 종교나 외래 사상에 혼을 빼놓지도 않을 것이며, 한민족은 그 위대한 홍익인간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도덕을 갖춘 진정.. 2024. 4. 27.
신교의 낭가사상 9천년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한민족의 국혼을 지켜온 정신, 그리고 과거의 크고 작은 모든 국난을 극복하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을 만든 '한국의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요?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자께서는 그것이 '신교의 낭가사상'이라고 전합니다. "신교는 동방 한민족이 9천 년 역사를 지속할 수 있게 한 역사의 혼이다. 이러한 신교 정신을 직접 실천하고 신교를 바탕으로 새 문명을 열고 나라를 개창한 '역사 개척의 집단'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낭가郞家이다. 고려팔관잡기에 '낭郞은 곧 삼신상제를 수호하는 관직이다'고 하는데, 배달의 삼랑三郞은 이후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을 거쳐 북부여의 천왕랑天主郞에서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 백제의 무절武節· 신라의 화랑花郞으로, 그리고 고려의 재가화상在家和尙· 선랑仙郞.. 2024. 4. 10.
광개토경평안호태황비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광개토열제는 고구려의 19세 태왕으로 22년간의 재위기간 동안 고구려의 국시인 다물多勿주의를 완성한 위대한 황제이다. 광개토열제는 비록 38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배달· 단군조선 시대의 광대했던 한민족의 영토와 신교 문화를 부흥시켜 회복하려고 노력한 황제이며, 거란· 평량(감숙성)· 후연· 백제· 신라· 왜(일본) 등 동북아 국가를 조공국으로 복속하여 중국 북부에서 만주· 한반도· 일본 전역에 걸치는 광대한 영토를 신교 문화로 통일한 단군 이래 초유의 대제왕이었던 것이다. 광개토태왕릉비문은 고구려의 이러한 찬란했던 역사를 담고 있으며, 그 시대 고구려의 강역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1880년 광개토태왕릉비문이 발견된 .. 2024. 4. 4.
동방 한민족의 신교문화 한민족을 대표하는 고유 사상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분명하게 답할 한국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한민족에게 과연 고유한 철학이나 사상이 존재했던가? 이렇게 자문하는 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은 대부분 서양철학, 음양오행은 중국 사상,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도 전부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들,,, 한국의 고유 종교는 기껏해야 원시 무속 신앙인 샤마니즘 정도, 물론 조선시대 꽤 유명한 성리학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사상도 결국 유교, 즉 중국사상의 아류가 아닌가? 따라서 과연 우리나라에 고유한 사상이 있었던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신라말 최치원 선생은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었으니 그것을 풍류라 했고, 이는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다는 말씀을 남.. 2024. 4. 2.
고구려국본기-24 24. 왜와 고구려의 관계 큐슈 · 대마도는 본래 삼한이 다스린 땅 임나는 본래 대마도의 서북 경계에 위치하여 북쪽은 바다에 막혀 있다. 다스리는 곳을 국미성國尾城이라 했다. 동쪽과 서쪽 각 언덕에 마을이 있어 혹은 조공을 바치고 혹은 배반하였다. 뒤에 대마도 두 섬이 마침내 임나의 통제를 받게 되어 이때부터 임나는 대마도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옛날부터 큐슈仇州와 대마도는 삼한이 나누어 다스린 땅으로, 본래 왜인이 대대로 산 곳이 아니다. 임나가 또 나뉘어 삼가라가 되었는데, 이른바 가라라는 것은 중심이 되는 읍[首邑]을 부르는 이름이다. 이때부터 삼한三汗(삼가라의 왕)이 서로 다투어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화해하지 못하였다. 좌호가라佐護加羅가 신라에 속하고, 인위가라仁位加羅가 고구려에 속하고,.. 2024. 3. 3.
고구려국본기-23 23. 신라의 기원과 박혁거세의 혈통 사로의 첫 임금(박혁거세)은 선도산 성모의 아들이다. 옛적에 부여 황실의 딸 파소가 지아비없이 잉태하여 남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 이에 눈수에서 도망하여 동옥저에 이르렀다가 또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진한의 나을에 이르렀다. 그때에 소벌도리蘇伐라는 자가 이 소식을 듣고 가서 아이를 집에 데려다 길렀다. 나이 13세가 되자 뛰어나게 총명하고 숙성하며 성덕이 있었다. 이에 진한 6부가 함께 받들어 거세간이 되었다. 서라벌에 도읍을 세워 나라 이름을 진한이라 하였고, 사로라고도 하였다. 사로: 신라의 옛 이름. 사로의 시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이다. 부여 황실: 북부여 5세 고두막단군을 말한다. 눈수: 만주 흑룡강성의 눈강. 동옥저: 지금의 함경도와 강원도 일부이다. .. 2024. 3. 3.
고구려국본기-22 22. 백제의 시조와 건국 과정 소서노와 두 아들의 자립고주몽 성제가 재위하실 때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만약 적자 유리가 오면 마땅히 태자로 봉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소서노召西努는 장차 자신의 두 아들(비류와 온조)에게 이롭지 못할 것을 염려하 다가, 경인庚寅(단기 2292, BCE 42)년 3월에 사람들에게서 패대浿帶의 땅이 기름지고 물자가 풍부하다는 말을 듣고, 남쪽으로 달려가 진辰, 번番(옛 진한과 번한) 사이에 있는 바다 가까운 외진 땅에 이르렀다. 소서노의 어하라 피봉과 비류의 계승 그곳에 산 지 10년 만에 밭을 사서 장원을 두고 재산을 모아 수만 금에 이르니 원근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와 따르는 자가 많았다. 남으로 대수帶水에 이르고 동으로 큰 바다에 닿는, 5백 리 되는 땅이 모두 그의 .. 2024. 3. 3.
고구려국본기-21 21. 고구려의 개국 공신 연타발연타발*은 졸본 사람이다. 남북 갈사曷思*(북갈사는 만주 우수리강 일대이고, 남갈사는 혼춘琿春지방)를 오가면서 이재理財를 잘하여 부자가 되어 엄청난 돈을 모았는데 남 몰래 주몽을 도와 창업의 기틀을 마련하고 도읍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뒤에 무리를 이끌고 구려하九黎河*(지금의 대요하)로 옮겨 물고기와 소금을 사고 팔아 이익을 얻었다. 고주몽 성제가 북옥저*를 칠 때 양곡 5천 석을 바쳤다.눌견訥見*(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 지금의 만주 장춘 북쪽 주성자朱城子)으로 도읍을 옮길 때 연타발이 먼저 양곡을 자원하여 바치고 떠도는 백성을 불러 모아 어루만져 위로하며 임금의 일을 부지런히 도왔다. 그 공덕으로 좌원坐原*에 봉토를 얻었다. 여든에 죽으니, 때는 평락平樂*(고.. 2024. 3. 3.
고구려국본기-요서 10성 20. 요서 지방에 10성을 쌓음 「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태조 융무 3년(6세 태조 무열제, 단기 2388, 55), 요서에 10성을 쌓아 한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셨다. 그 10성은 이러하다. 첫째는 안시성安市城이니, 개평부에서 동북쪽으로 70리 떨어진 곳에 있고, 둘째는 석성石城이니, 건안성에서 서쪽으로 5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셋째는 건안성建安城이니, 안시성에서 남쪽으로 70리 떨어진 곳에 있고, 넷째는 건흥성建興城이니, 난하의 서쪽에 있고, 다섯째는 요동성遙東城이니, 창려의 서남쪽 경계에 있고, 여섯째는 풍성豊城이니, 안시성에서 서북쪽으로 10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일곱째는 한성韓城이니, 풍성에서 남쪽으로 20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여덟째는 옥전보玉田堡이니, 옛날의 요동국으로 .. 2024. 3. 3.
고구려국본기-19 19. 요동과 요서의 고구려 영토 고려진은 북경 안정문安定門 밖 60리쯤에 있다. 안시성은 개평부開平府 동북쪽 70리에 있는데, 지금의 탕지보湯池堡이다. 고려성은 하간현河間縣 서북쪽 12리에 있다. 모두 태조 무열제(6세, 단기 2386, 53~단기 2479, 146)께서 쌓으신 것이다. 안시성의 위치: 하북성 개평부開平府 동북 70리에 있다. 조선시대 실학사상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도 "이른바 옛 안시성은 개평현開平縣 동북 70리에 있다[古安市城, 在蓋平縣東北七十里]"라고 하였다. 이 개평현을 지금의 요동반도에 있는 개평으로 아는 것은 잘못이다. 개평현은 바로 요서에 있는 개평부이다. 지금 하북성 개평부 동북쪽으로 70리쯤 가면 천령天嶺 또는 천산天山이라 불리는 언저리에 탕지보湯池堡가 있.. 2024. 3. 3.
고구려국본기-18 18. 중국 본토까지 뻗었던 백제, 신라의 영토 이보다 먼저 고구려는 백제와 밖에서 서로 경쟁하며 공존하였다. 요서 땅에 백제의 영지가 있었는데, 곧 요서遙西*, 진평晋平*이고, 강남에는 월주越州(지금의 절강성 소옹현)가 있었으니, 여기에 소속된 현은 첫째 산음山陰(진나라 때 설치한 현으로 지금 절강성 소홍현), 둘째 산월山越, 셋째 좌월左越이다. (21세 문자제) 명치 11년(단기 2834, 501) 11월에 이르러, 월주를 쳐서 취하고 군현의 이름을 바꾸어 송강松江(지금의 상해)· 회계會稽(지금의 절강성 소홍현)· 오성吳城· 좌월· 산월· 천주泉州(지금의 복건성 복주福州 서남쪽, 진서晉書 지리지에 진안군晉安郡에 속한 현 가운데 신라현이 명확히 기재되어 본문의 내용을 입증함)라 하였다. 명치 12년(단.. 2024. 3. 3.
고구려국본기-안시성 전투, 고당전쟁 환단고기에 기록된 고당전쟁은 지금의 강단사학이 주장하는 역사상식으로는 도무지 믿기 힘든 사실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당전쟁, 특히 안시성 전투의 상황과 이후 이세민의 후회와 기타 정황들을 곰곰히 살펴보면, 김부식이 중국의 사서들을 인용해 안시성 전투의 승리를 축소시키고 연개소문을 폄하한 사실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왜곡된 사료만으로 그 당시의 정황들을 객관적으로 유추를 해보면, 오히려 환단고기의 기록이 역사적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병법의 달인인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전략적으로 유린해 안시성에서 충분히 고통을 주었으며, 전쟁에 패해 달아나는 당태종 이세민을 끝까지 추격해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공포심을 주어, 끝끝내 당나라 수도 장안까지 입성해서 당태종으로부터 항복을 받아 내었.. 2024. 3. 3.
고구려국본기-16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원인은 무엇일까? 모든 패망의 역사는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일어난다. "나라 바깥의 변화가 외환(外患)로 다가올때 그러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서로 분열되는 내우(內憂)가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문제이며, 내우외환의 문제를 좀 더 깊이 살펴보면 거기엔 더 근원적인 원인, 즉 이전부터 내부를 조금씩 썩게 해온 시스템의 한계와 더불어 시스템을 무너뜨리려 열망하는 매우 강한 원한(怨恨)의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고구려가 멸망한 것은 668년 9월26일. 이보다 4년 전인 664년에 대막리지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세상을 떠났다. 연개소문은 당나라 사람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고 고구려 사람들에겐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가 죽.. 2024. 3. 3.
고구려국본기-15 삼국사기는 연개소문을 묘사하기를 "그는 생김새가 씩씩하고 뛰어났으며 의기가 호방했다. 부친 동부(혹은 서부)대인 대대로가 죽자 개소문이 마땅히 지위를 이어받아야 했으나, 나라 사람들이 그의 성품이 잔인하고 포악해 미워했기 때문에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라고 기록한다. 그러나 환단고기에 의하면 "연개소문은 몸가짐이 웅장하였고, 의기가 장하고 호탕했으며,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서 품어 주는 아량이 있었고, 또한 천하를 잘 계획하여 다스리는 재주가 있어서 모든 사람이 다 감복하여 따랐다. 그러나 법을 운용할 때는 엄격하고 명백히 하여 귀천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다스렸다."고 묘사한다. 이 글로 유추해보면 연개소문은 도량이 넓고, 매우 공명정대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신채호 선생은 연개소문을 영웅으로 극찬하며.. 2024. 3. 2.
고구려국본기-14 [삼국사기에 기록된 연개소문에 관한 기사는 연개소문이 중국으로부터 도교를 수입하도록 왕에게 주청했고, 자신의 뜻에 반하는 고구려의 1백 여명의 대신들을 무참히 도륙하고, 또한 왕을 시해해 그 시신을 토막내어 버린 매우 잔인하고 포악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의 태백일사는 영류왕이 친당 정책을 펴, 점점 고구려의 주체성을 상실했고, 당나라의 도교를 수입해서 노자의 도덕경을 강론하게 했으며, 수십만의 백성들을 장성축조에 동원하여 국력을 소진시키니, 연개소문이 이를 왕에게 중지하도록 주청했다고 기록한다. 그러다 연개소문을 주멸하려던 왕과 뜻이 맞았던 소수의 여러 대신들이 연개소문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왕의 계획이 틀어지자 영류왕은 평복으로 도망가다 백성들에게 조칙을 내렸으나 아무도 따르는 이가 .. 2024. 3. 2.
고구려국본기-13 13. 고구려·백제의 통치 영역과 수 문제의 대침략 옛 역사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영양무원호태열제(26세) 홍무 9년(단기 2931, 598)에 열제께서 서부 대인 연태조淵太祚*를 보내어 등주登州*를 토벌하고 총관摠菅 위충韋冲*을 사로잡아 죽이셨다. [*연태조淵太祚: 연개소문의 아버지, 중국 낙양 북망에서 출토된 천남생의 묘지명에 따르면, 남생의 할아버지를 태조라 하였고 그 벼슬이 막리지라 하였다. 삼국사기에서는 연태조를 동부 혹은 서부 대인 대대로라 하였다. *등주登州: 지금의 산동성 봉래蓬萊, *위충韋冲: 수나라의 등주총관] 이에 앞서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제齊, 노魯, 오吳, 월越의 땅을 평정하고, 관서官署를 설치하여 호적과 호구수를 정리하고, 왕의 작위[王爵]를 나누어 봉하고 험한 요새에 군.. 2024. 3. 2.
고구려국본기-12 12. 신교를 대각한 을지문덕 장군의 큰 공적 을지문덕은 고구려 석다산 사람이다. 일찍이 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가 삼신의 성신이 몸에 내리는 꿈을 꾸고 신교 진리를 크게 깨달았다. 해마다 3월 16일(대영절大迎節)이 되면, 말을 달려 강화도 마리산에 가서 제물을 바쳐 경배하고 돌아왔다. 10월 3일에는 백두산에 올라가 천제를 올렸다. 이런 제천 의식은 배달 신시의 옛 풍속이다. [수양제의 대침공을 살수대첩으로 물리침] 홍무 23(단기 2945, 612)년에 수나라 군사 130여 만 명이 바다와 육지로 쳐들어왔다. 을지문덕이 출병하여 기묘한 계략으로 그들을 공격하고 추격하여 살수薩水에 이르러 마침내 크게 격파하였다. 수나라 군대는 바다와 육지에서 함께 궤멸되어 살아서 요동성(지금의 하북성 창려)으로 돌아간.. 2024. 3. 2.
고구려국본기-11 11. 선비족 후손인 수양제의 침략을 격퇴 영양무원호태열제嬰陽武元好太烈帝(26세 영양제, 단기 2923~2951, 590~ 618) 때에 천하가 잘 다스려져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번성하였다. 수隋나라 왕 양광楊廣*은 본래 선비족의 후손이다. 양광이 남북을 통합하고 그 여세를 몰아 우리 고구려를 깔보고, 조그마한 오랑캐가 거만하게도 상국上國을 업신여긴다 하여 자주 대군을 일으켰다. 그러나 우리는 대비하고 있었으므로 일찍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양광楊廣: 수隋(569~618)의 2세 왕 양제楊帝의 이름, 문제文帝의 아들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즉위하였다. 고구려 원정 실패와 지나친 토목공사 등으로 국력을 소모하여 결국 당唐에게 명망당하였다. [수양제의 피격 사건] 홍무弘武*(영양제의 연호) 25(단.. 2024. 3. 2.
고구려국본기-10 10. 고구려 전성기의 강역 [중국 양자강 남쪽까지 지배] 장수홍제호태열제長壽弘濟好太烈帝(20세 장수제, 단기 2746~2824, 413~ 491)는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치셨다. 인의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영토를 넓히고 개척하시어 웅진강熊津江*(지금의 금강) 이북이 고구려에 귀속 되었다. 그리고 북연北燕*(북연 407-436: 중국 5 호16국 시대 때 16국 중의 하나 후연後燕에서 벼슬하던 고구려 사람 고운高雲이 광개토열제에게 대패한 후 연나라의 왕 모용희慕容熙를 살해하고 북연을 세움), 실위室韋* 등 여러 나라가 다 같이 입조하여 우리의 형제 족속에 편입되었다. 또 신라의 매금寐錦*(신라국 왕을 말함)과 백제의 어하라於瑕羅*와 함께 남평양(지금의 서울)에서 만나, 공물 바치는 일과 국경에 주둔시킬 .. 2024. 3. 2.
고구려국본기-9 9. 회계산의 역사적 의의와 방사 서복의 일본 이주 과정 회계산은 본래 '신시중경神市中經' 소장되어 있던 곳이다. 사공 우禹가 석 달 동안* 재계하고 이 책을 얻어 치수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우禹가 돌을 채취하여 부루태자의 은공을 새겨 산 높은 곳에 세웠다고 한다. 오吳· 월越은 본래 구려九黎*의 옛 읍이고, 산월山越· 좌월左越은 모두 그 후예가 갈라져 옮겨 살던 땅이다. 늘 왜와 더불어 왕래하고 교역하여 이익을 얻는 자가 점점 많아졌다. 진奏나라 때 서불徐市*이 동야東冶의 해상으로부터 곧바로 나패(나하)에 이르고, 종도種島*(다네시마)를 거쳐 뇌호내해懶戶內海(세도나이카이)를 따라 처음으로 기이에 도착하였다. 이세伊勢에는 옛적에 서복의 무덤과 사당이 있었다. 어떤 이는 단주亶洲를 서복이 살았던 곳이라 .. 2024. 3. 2.
고구려국본기-8 8. 일본 큐슈에 다라한국을 건국한 협보 [일본에 세워진 고구려 분국] 이보다 먼저 협보陜父가 남한南韓으로 달아나서 마한산(지금의 평양) 속에 은거하고 있을 때, 따라와서 사는 자가 수백여 가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해 흉년이 들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길에 가득하였다. 이때 협보陜父가 장차 변란이 있을 줄 알고 무리를 꾀어 양식을 싸서 배를 타고 패수를 따라 내려왔다. 해포(대통강 어귀의 진남포鎭南浦를 말한다.)를 거쳐 몰래 항해하여 곧장 구야한국狗邱韓國에 이르니, 곧 가라해加羅海의 북쪽 해안이었다. 몇 달 지내다가 아소산阿蘇山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파라국多婆羅國의 시조이다. 후에 임나와 병합하여 연합정권[聯政]을 세워 다스렸다. 이때 세 나라는 바다에 있고, 일곱 나라는 육지에 .. 2024. 3. 2.
고구려국본기-7 광개토열제는 고구려 19세 태왕으로 재위기간은 391~413까지이다. 비록 22년간의 짧은 통치기간이었지만, 광개토열제는 배달·단군조선 시대의 방대했던 영토와 신교 문화를 부흥시켜 회복한다는, 고구려의 국시인 다물多勿 주의를 완성한 위대한 황제이다. 광개토열제는 38세로 비교적 짧은 생을 살았지만, 거란· 평량(감숙성)· 후연· 백제· 신라· 왜(일본) 등 동북아 국가를 조공국으로 복속하여 중국 북부에서 만주· 한반도· 일본 전역에 걸치는 광대한 영토를 신교 문화로 통일한 단군 이래 초유의 대제왕이다. 지난 1976년 12월 평남 강서군 덕흥리에서 발굴된 '덕흥리 고분'은 광개토열제 때 이미 요서를 비롯한 하북성 북부까지 광대한 지역을 장악했다는 확실한 고고학적 물증을 제공하고 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인.. 2024. 3. 2.
고구려국본기-6 6. 역대 성군, 영걸의 역력한 자취 책성栅城(연해주를 말함)에 태조무열제(6세)의 공덕을 새긴 기공비紀功碑가 있고, 동압록의 황성에 광개토경대훈적비廣開土境大勳蹟碑가 있다. 안주 청천강 연안에 을지문덕 석상이 있고, 오소리강 밖에 연개소문송덕비淵蓋蘇文頌德碑가 있다. 평양 平壤모란봉 중턱에 동천제(11세)가 하늘에 기원하던 조천석朝天石있고, 삭주 거문산 서쪽 기슭에 을파소 묘가 있고, 운산雲山의 구봉산九峰山에 연개소문 묘가 있다. 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동천제東川帝를 또한 단군이라 하였다. 해마다 한맹寒盟 때가 되면 평양에서 삼신상제님을 맞이하는 천제를 올렸다. 지금의 기림굴箕林窟은 천제를 올리던 곳이다. 삼신상제님을 크게 맞이하는 대영제전大迎祭典은 처음 동굴[隧穴]에서 행해졌다. 거기에 구.. 2024. 3. 2.
고구려국본기-5 5. 을지문덕의 호쾌한 심법 세계 [도통의 요체] 을지문덕이 이렇게 말하였다. "도로써 천신(삼신상제님)을 섬기고, 덕으로써 백성과 나라를 감싸 보호하라. 나는 천하에 이런 말이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람이 삼신일체의 기운[氣]을 받을 때, 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로 나누어 받나니, 우리 몸 속에 본래 있는 조화의 대광명은 환히 빛나 고요히 있다가 때가 되면 감응感應하고, 이 조화의 대광명이 발현되면 도道를 통한다. 도를 통하는 것은, 삼물三物인 덕[德]과 지혜[慧]와 조화력[力]을 몸으로 직접 체득하여 실천하고, 삼가三家인 마음[心]과 기운[氣]과 몸[身]의 조화를 성취하며, 삼도三途인 느낌[感]과 호흡[息]과 촉감[觸]이 언제나 기쁨으로 충만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도를 통하는 요체는 날마다.. 2024.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