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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176

고구려국본기-11 11. 선비족 후손인 수양제의 침략을 격퇴 영양무원호태열제嬰陽武元好太烈帝(26세 영양제, 단기 2923~2951, 590~ 618) 때에 천하가 잘 다스려져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번성하였다. 수隋나라 왕 양광楊廣*은 본래 선비족의 후손이다. 양광이 남북을 통합하고 그 여세를 몰아 우리 고구려를 깔보고, 조그마한 오랑캐가 거만하게도 상국上國을 업신여긴다 하여 자주 대군을 일으켰다. 그러나 우리는 대비하고 있었으므로 일찍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양광楊廣: 수隋(569~618)의 2세 왕 양제楊帝의 이름, 문제文帝의 아들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즉위하였다. 고구려 원정 실패와 지나친 토목공사 등으로 국력을 소모하여 결국 당唐에게 명망당하였다. [수양제의 피격 사건] 홍무弘武*(영양제의 연호) 25(단.. 2024. 3. 2.
고구려국본기-10 10. 고구려 전성기의 강역 [중국 양자강 남쪽까지 지배] 장수홍제호태열제長壽弘濟好太烈帝(20세 장수제, 단기 2746~2824, 413~ 491)는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치셨다. 인의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영토를 넓히고 개척하시어 웅진강熊津江*(지금의 금강) 이북이 고구려에 귀속 되었다. 그리고 북연北燕*(북연 407-436: 중국 5 호16국 시대 때 16국 중의 하나 후연後燕에서 벼슬하던 고구려 사람 고운高雲이 광개토열제에게 대패한 후 연나라의 왕 모용희慕容熙를 살해하고 북연을 세움), 실위室韋* 등 여러 나라가 다 같이 입조하여 우리의 형제 족속에 편입되었다. 또 신라의 매금寐錦*(신라국 왕을 말함)과 백제의 어하라於瑕羅*와 함께 남평양(지금의 서울)에서 만나, 공물 바치는 일과 국경에 주둔시킬 .. 2024. 3. 2.
고구려국본기-9 9. 회계산의 역사적 의의와 방사 서복의 일본 이주 과정 회계산은 본래 '신시중경神市中經' 소장되어 있던 곳이다. 사공 우禹가 석 달 동안* 재계하고 이 책을 얻어 치수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우禹가 돌을 채취하여 부루태자의 은공을 새겨 산 높은 곳에 세웠다고 한다. 오吳· 월越은 본래 구려九黎*의 옛 읍이고, 산월山越· 좌월左越은 모두 그 후예가 갈라져 옮겨 살던 땅이다. 늘 왜와 더불어 왕래하고 교역하여 이익을 얻는 자가 점점 많아졌다. 진奏나라 때 서불徐市*이 동야東冶의 해상으로부터 곧바로 나패(나하)에 이르고, 종도種島*(다네시마)를 거쳐 뇌호내해懶戶內海(세도나이카이)를 따라 처음으로 기이에 도착하였다. 이세伊勢에는 옛적에 서복의 무덤과 사당이 있었다. 어떤 이는 단주亶洲를 서복이 살았던 곳이라 .. 2024. 3. 2.
고구려국본기-8 8. 일본 큐슈에 다라한국을 건국한 협보 [일본에 세워진 고구려 분국] 이보다 먼저 협보陜父가 남한南韓으로 달아나서 마한산(지금의 평양) 속에 은거하고 있을 때, 따라와서 사는 자가 수백여 가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해 흉년이 들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길에 가득하였다. 이때 협보陜父가 장차 변란이 있을 줄 알고 무리를 꾀어 양식을 싸서 배를 타고 패수를 따라 내려왔다. 해포(대통강 어귀의 진남포鎭南浦를 말한다.)를 거쳐 몰래 항해하여 곧장 구야한국狗邱韓國에 이르니, 곧 가라해加羅海의 북쪽 해안이었다. 몇 달 지내다가 아소산阿蘇山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파라국多婆羅國의 시조이다. 후에 임나와 병합하여 연합정권[聯政]을 세워 다스렸다. 이때 세 나라는 바다에 있고, 일곱 나라는 육지에 .. 2024. 3. 2.
고구려국본기-7 광개토열제는 고구려 19세 태왕으로 재위기간은 391~413까지이다. 비록 22년간의 짧은 통치기간이었지만, 광개토열제는 배달·단군조선 시대의 방대했던 영토와 신교 문화를 부흥시켜 회복한다는, 고구려의 국시인 다물多勿 주의를 완성한 위대한 황제이다. 광개토열제는 38세로 비교적 짧은 생을 살았지만, 거란· 평량(감숙성)· 후연· 백제· 신라· 왜(일본) 등 동북아 국가를 조공국으로 복속하여 중국 북부에서 만주· 한반도· 일본 전역에 걸치는 광대한 영토를 신교 문화로 통일한 단군 이래 초유의 대제왕이다. 지난 1976년 12월 평남 강서군 덕흥리에서 발굴된 '덕흥리 고분'은 광개토열제 때 이미 요서를 비롯한 하북성 북부까지 광대한 지역을 장악했다는 확실한 고고학적 물증을 제공하고 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인.. 2024. 3. 2.
고구려국본기-6 6. 역대 성군, 영걸의 역력한 자취 책성栅城(연해주를 말함)에 태조무열제(6세)의 공덕을 새긴 기공비紀功碑가 있고, 동압록의 황성에 광개토경대훈적비廣開土境大勳蹟碑가 있다. 안주 청천강 연안에 을지문덕 석상이 있고, 오소리강 밖에 연개소문송덕비淵蓋蘇文頌德碑가 있다. 평양 平壤모란봉 중턱에 동천제(11세)가 하늘에 기원하던 조천석朝天石있고, 삭주 거문산 서쪽 기슭에 을파소 묘가 있고, 운산雲山의 구봉산九峰山에 연개소문 묘가 있다. 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동천제東川帝를 또한 단군이라 하였다. 해마다 한맹寒盟 때가 되면 평양에서 삼신상제님을 맞이하는 천제를 올렸다. 지금의 기림굴箕林窟은 천제를 올리던 곳이다. 삼신상제님을 크게 맞이하는 대영제전大迎祭典은 처음 동굴[隧穴]에서 행해졌다. 거기에 구.. 2024. 3. 2.
고구려국본기-5 5. 을지문덕의 호쾌한 심법 세계 [도통의 요체] 을지문덕이 이렇게 말하였다. "도로써 천신(삼신상제님)을 섬기고, 덕으로써 백성과 나라를 감싸 보호하라. 나는 천하에 이런 말이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람이 삼신일체의 기운[氣]을 받을 때, 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로 나누어 받나니, 우리 몸 속에 본래 있는 조화의 대광명은 환히 빛나 고요히 있다가 때가 되면 감응感應하고, 이 조화의 대광명이 발현되면 도道를 통한다. 도를 통하는 것은, 삼물三物인 덕[德]과 지혜[慧]와 조화력[力]을 몸으로 직접 체득하여 실천하고, 삼가三家인 마음[心]과 기운[氣]과 몸[身]의 조화를 성취하며, 삼도三途인 느낌[感]과 호흡[息]과 촉감[觸]이 언제나 기쁨으로 충만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도를 통하는 요체는 날마다.. 2024. 3. 2.
고구려국본기-4 4. 을파소가 전한 참전계 을파소가 국상國相이 되어 나이 어린 영재를 뽑아 선인도랑仙人徒郞으로 삼았다. 교화를 주관하는 자를 참전叅佺이라 하는데, 무리중에 계율을 잘 지키는 자를 선발하여 삼신을 받드는 일을 맡겼다. 무예를 관장하는 자를 조의皁衣라 하는데,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규율을 잘 지켜, 나라의 일을 위해 몸을 던져 앞장서도록 하였다. 일찍이 을파소가 무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신시神市 시대에 신교의 진리로 세상을 다스려 깨우칠 때는, 백성의 지혜가 열려 나날이 지극한 다스림에 이르렀으니, 그것은 만세에 걸쳐 바꿀 수 없는 표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전이 지켜야 할 계율을 두고, 상제님의 말씀을 받들어 백성을 교화하며, 한맹寒盟을 행함에도 계율을 두어 하늘을 대신해서 공덕을 베푸나니 모.. 2024. 3. 2.
고구려국본기-3 3. 고주몽 성제의 통치 영역과 대도말씀 [道言] [고구려의 천도 과정] (고주몽 성제) 평락平樂 11년 갑오(단기 2307, BCE 27)년 10월, 북옥저를 쳐서 멸하고 이듬해 을미년에 졸본에서 눌견訥見으로 도읍을 옮기셨다. 눌견은 지금의 상춘 주가성자朱家城子이다. (2세) 유리명제琉璃明帝 21년(단기 2335, CE 2), 도읍을 다시 눌견에서 국내성으로 옮겼는데, 이곳을 황성이라고도 한다. 성 안에 환도산丸都山이 있는데, 산 위에 성을 쌓고 유사시에는 거기에 머무르셨다. (3세) 대무신열제大武神烈帝 20년(단기 2370, 37), 열제께서 낙랑국을 기습하여 멸하셨다. 이리하여 동압록 이남이 우리(고구려)에게 속하였으나. 다만 해성 이남의 바다 가까이 있는 여러 성은 아직 항복시키지 못했다. (10.. 2024. 2. 21.
고구려국본기-2 2. 북부여의 국통을 계승한 고주몽(고추모) 해모수의 현손 고리군槀離郡의 왕 고진高辰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고, 옥저후沃沮侯 불리지弗離支는 고진의 손자이다. 모두 도적 위만을 토벌한 공으로 봉토를 받았다. 불리지가 일찍이 서압록을 지나다가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기뻐하며 장가들어 고주몽을 낳았다. 때는 임인(단기 2255, BCE 79)년 5월 5일이요, 한漢나라 왕 불릉弗陵 원봉元鳳 2년이었다. 불리지가 세상을 뜨자, 유화 부인이 아들 주몽을 데리고 웅심산으로 돌아가니 지금의 서란舒蘭이다. 주몽이 장성하여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가섭원을 택해 살면서 관가에서 말 기르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얼마 안가 관가의 미움을 사게 되어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와 함께 도망하여 졸본에 이르렀다. 마침 부여 .. 2024. 2. 20.
고구려국본기-1 1. 고구려 국통의 뿌리 - 북부여 해모수 고구려의 선조는 해모수로부터 나왔는데, 해모수의 고향이 또한 그 땅(고구려地名)이다.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해모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일찍이 웅심산熊心山(검마산)에서 사셨다. 부여의 옛 도읍(백악산 아사달)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무리의 추대를 받아 드디어 나라를 세워 왕이 되셨다. 이분이 부여의 시조이시다. 머리에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 용광검龍光劍을 차고,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다니시니, 따르는 자가 백여 명이었다. 아침이 되면 정사를 돌보고 저물면 등천하셨다. 특별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나라 안이 저절로 잘 다스려지고 산에는 도적이 없고 들에는 벼와 곡식이 가득하였다. 나라에 큰 일이 없고 백성도 태평세월을 누렸다. 해모수단군께서 처음 내려온 .. 2024. 2. 19.
삼한관경 번한세가10-번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 5. 기비의 도움으로 해모수(북부여 시조)가 대권을 잡아 고조선을 계승함 기후가 세상을 뜨자 병오(단기 2019, BCE 315)년에 아들 기욱箕煜(71 세 왕)이 즉위하였다. 기욱이 세상을 떠나고 신미(단기 2044, BCE 290) 년에 아들 기석箕釋(72세 왕)이 즉위하였다. 이 해에 각 주와 군에 명하여 어질고 현명한 인재를 추천하게 하였는데, 일시에 선발된 자 가 270명이었다. 기묘(단기 2052, BCE 282)년에 번한 왕이 친히 교외에서 밭을 갈았다. 을유(단기 2058, BCE 276)년에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기석이 세상을 떠나고 경술(단기 2083, BCE 251)년에 아들 기윤箕潤(73세 왕)이 즉위하였다. 기윤이 세상을 뜨자 기사(단기 2102, BCE 232)년.. 2024. 2. 18.
삼한관경 번한세가9-70세 번조선 왕 기후 4. 70세 번조선 왕이 된 수유 사람 기후 신사(단기 1994, BCE 340)년에 아들 수한水韓(69세 왕)이 즉위하였다. 임오(단기 1995, BCE 339)년에 연나라가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 쳐들어와 안촌홀安寸忽(번한성인 안덕향, 지금의 탕지보)을 공격하고 험독險瀆까지 쳐들어왔다. 이때 수유 사람 [須臾人] 기후箕詡가 젊은 청년[子弟] 5천 명을 거느리고 와서 전쟁을 도우니 군세가 조금 진작되었다. 이에 진한, 번한의 군사와 함께 협공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또 한 무리의 군사를 나누어 보내 계성薊城(연나라 수도, 지금의 하북성 북경) 남쪽에서 싸우려 하니, 연나라가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고 공자公子를 인질로 보냈다. [번조선의 왕통 단절과 연나라의 강성] 무술(단기 2011, BCE 3.. 2024. 2. 17.
삼한관경 번한세가8-노자는 풍이족 혈통 3. 노자는 풍이족 혈통 아갑이 세상을 뜨고 계유(단기 1746, BCE 588)년에 고태(56세 왕)가 즉위하였다. 고태가 세상을 떠나자 정해(단기 1760, BCE 574)년에 아들 소태이蘇台爾(57세 왕)가 즉위하였다. 소태이가 세상을 떠나고 을사(단기 1778, BCE 556)년에 아들 마건馬乾(58세 왕)이 즉위하였다. 마건이 세상을 떠나자 병진(단기 1789, BCE 545)년에 천한天韓(59세왕)이 계승하였다. 천한이 세상을 떠나고 병인(단기 1799, BCE535)년에 아들 노물老勿(60세 왕)이 즉위하였다. 노물이 세상을 떠나자 신사 (단기 1814, BCE520)년에 아들 도을道乙(61세 왕)이 즉위하였다. [노자는 순수한 동이족 혈통-남방 문화권에 전수된 한 사상] 계미(단기 1816.. 2024. 2. 16.
환단고기 유사역사학 위서 바이러스 비판 홍산문화의 실체를 밝히고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이 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강단사학계는 책은 조작된 책, 가짜 책, 위조된 책 등이라고 주장하며 무조건 위서(僞書)라고 치부해 버리는 실정입니다. 대한민국 사학과 교수님과 국책연구기관 역사 전문학자들이 를 유사역사학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비판하고 위서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유로 드는 것이 에 나오는 '자유自由', ' 세계世界', '헌법憲法', '평등平等', '만방萬邦' 등이 근세에 출현한 술어들이기 때문에 위서라 주장합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독일의 랑케로부터 시작된 유물론적 실증주의를 표방하는데, 실증주의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유적과 유물, 그리고 또한 문헌 사료를 비교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 2024. 2. 15.
삼한관경 번한세가7-왕문의 이두법 2. 삼한 전역에서 시행된 왕문의 이두법 [이두법의 창시자 왕문] 누사婁沙가 세상을 떠나자 을미(단기 1468, BCE 866)년에 아들 이벌伊伐 (44세 왕)이 즉위하였다. 병신(단기 1469, BCE 865)년에 한수漢水(지금의 대릉하)사람 왕문王文이 이두법吏讀法을 만들어 올리니 천왕(31세 등올단군)께서 기뻐하시고 삼한에 명하여 시행하게 하셨다. [주나라 격퇴와 흉노의 조공] 기미(단기 1492, BCE 842)년에 상장上將 고력합高力合을 보내어 회군淮軍과 합세하여 주周나라를 격퇴하였다. 이벌이 세상을 뜨니 신유(단기 1494, BCE 840)년에 아들 아륵阿勒(45세 왕)이 즉위하였다. 병인(단기 1499, BCE 835)년에 주나라의 이공二公(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사절을 보내어 방물을 바쳤다... 2024. 2. 15.
삼한관경 번한세가6-서우여가 번한 왕에 임명됨 번한세가 하 1. 색불루단군이 국가 제도를 개편하고 혁명가 서우여를 번한 왕에 임명함 색불루단군(22세)께서 일찍이 삼한을 아우르고 나라의 제도[國制]를 크게 고치실 때,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사신을 보내 와서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하였다. 이에 앞서 서우여徐于餘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드셨다. 서우여가 몰래 좌원坐原으로 돌아가 사냥꾼 수천 명과 함께 군대를 일으키려고 모의하였다. 갑천령이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즉각 가서 쳤으나, 패하여 진중에서 죽었다. 색불루단군께서 친히 3군을 거느리고 가서 치려 하실 때, 먼저 사람을 보내 항복할 것을 권하고, 비왕裨王으로 봉할 것을 약속하셨다. 다시 설득하시자 말씀을 따랐다. 이때 서우여를 (30세) 번한 왕으로 임명하셨다. (1) 고조선의 8조 금법 색불루단군 4년.. 2024. 2. 14.
삼한관경 번한세가 5-번한 15세 왕 소전 걸을 정벌함 5. 번한 15세 왕 소전, 성탕을 도와 하나라 폭군 걸을 정벌함 계전이 세상을 떠나고 정사(단기 470, BCE 1864)년에 아들 백전伯佺(13세 왕)이 왕위에 올랐다. 백전이 세상을 떠나자, 을미(단기 508, BCE 1826)년에 둘째 아우 중전仲佺(14세 왕)이 계승하였다. 중전이 세상을 떠나니 신묘(단기 564, BCE 1770)년에 아들 소전少佺(15세 왕)이 계승하였다. 갑오(단기 567, BCE 1767)년에 장수 치운출蚩雲出을 보내 탕湯을 도와 걸桀을 정벌하였다. 을미(단기 568, BCE 1766)년에 묵태墨胎를 보내 (은나라 시조) 탕임금의 즉위를 축하하였다. 소전이 세상을 떠나고 갑술(단기 607, BCE 1727)년에 아들 사엄沙奄(16세 왕)이 즉위하였다. 사엄이 세상을 떠나자.. 2024. 2. 13.
삼한관경 번한세가4-오행치수의 묘법 전수 4. 오행치수의 묘법 전수 태자가 도산에 도착하여 주장[主理]의 자격으로 회의를 주관하실 때 번한 왕을 통해 우虞 사공司空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북극수의 정기를 타고난 아들이니라. 너희 임금(순임금)이 나에게 수토水土를 다스려 백성을 구해 주기를 청원하니, 삼신상제님 께서 내가 가서 도와 주는 것을 기뻐하시므로 왔노라.” 천자국의 문자[王土篆文(고조선 신지 전자)]로 된 천부天符와 왕인王印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차면 험한 곳을 다녀도 위험하지 않고, 흉한 것을 만나도 피해가 없으리라. 또 신침神針 하나가 있으니 능히 물이 깊고 얕음을 측정할 수 있으며 그 쓰임이 무궁하니라. 또 황구종皇矩倧이란 보물은 모든 험한 물을 진압하여 오래도록 잔잔하게 할 것이니라. 이 세 가지 보물[三寶].. 2024. 2. 12.
삼한관경 번한세가3-초대 번한 왕 치두남 3. 초대 번한 왕은 치우천황의 후손 치두남 이때 단군왕검께서 치우천황의 후손 중에서 지모와 용력이 뛰어난 자를 택하여 번한 왕으로 임명하고 험독險瀆에 수도를 세우시니, 지금은 왕검성이라 칭한다. [요수 일대에 쌓은 12성] 치두남蚩頭男은 치우천황의 후손이다. 용맹과 지혜로 세상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단군께서 불러 만나 보시고 기특하게 여겨 곧 번한 왕으로 임명하고 아울러 우순의 정치를 감독하게 하셨다. 경자(단기 33, BCE 2301)년에, 요수遼水 주위에 12성을 쌓으니 험독險瀆, 영지令支, 탕지湯池, 용도桶道, 거용渠鄘, 한성汗城, 개평蓋平, 대방帶方, 백제百濟, 장령長嶺, 갈산碣山, 여성黎城이 그것이다. 치두남이 세상을 뜨자 아들 낭야琅邪(2세 왕)가 즉위하였다. 이 해 경인(단기 83, BCE.. 2024. 2. 11.
삼한관경-번한세가-2 2. 9년 홍수를 다스리기 위한 도산 회의 9년 동안 홍수가 일어나 그 재앙이 만민에게 미치므로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보내어 우나라 순임금[虞舜]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塗山 회의를 소집하셨다. 순임금이 사공司空 우禹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 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천자 단군왕검을 알현한 제후 순] 이때 감우소監虞所를 낭야성琅耶城에 설치하여 구려九黎 분정에서 논의된 일을 결정하였다. 서경에 이른바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멀리 산천을 바라보며 제사 지내고, 동방 천자를 알현하였다[東巡望秩 肆覲東后]"라는 구절은 바로 이 내용을 말한 것이다. 진국辰國(단군조선)은 천제(상제님)의 아들[天帝子=天子]이 다스리므로 5년에 한 번 낭야를 순행하였으나, 순舜은 (조선의) 제후이므로 진한.. 2024. 2. 10.
삼한관경-번한세가-1 번한세가 상 1. 요순은 단군조선의 제후 [요임금이 양위한 배경] 치우천황께서 서쪽으로 탁예涿芮를 정벌하고, 남쪽으로 회대淮岱(회수와 태산)를 평정하여 산을 헤치고 길을 내시니, 그 영토가 만 리 였다. 단군왕검 때는 당요唐堯(당나라 요임금)와 같은 때인데, 요堯의 덕이 갈수록 쇠하여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천왕(단군왕검)께서 우순虞舜(우나라 순임금)에게 명령하여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군사를 보내 주둔시키셨다. 우순과 함께 당요를 정벌할 것을 언약하시니, 요堯임금이 힘에 굴복하고 순舜에게 의탁하여 목숨을 보존하고자 나라를 넘겨 주었다[國讓]. 이때 순舜 부자와 형제가 다시 돌아가 한집안을 이루니, 대저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함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 2024. 2. 9.
삼한관경-마한세가-8 4. 고조선의 몰락- 우화충의 대역모와 기후의 반란 병진(단기 1909, BCE 425)년에 상장上將 구물丘勿(후에 44세 단군으로 즉위)이 마침내 사냥꾼 두목 우화충宇和冲을 죽이고 도읍을 장당경으로 옮겼다. 먼저 가리의 손자 전내典奈로 하여금 막조선을 계승(막조선 34세 왕)하게 하였는데, 이때부터 국정이 더욱 쇠잔해졌다. 전내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진을례進乙禮(35세 왕)가 즉위하였다. 진을례가 세상을 뜨자, 을묘(BCE 366년에 아들 맹남孟男(36세 왕)이 즉위하였다. 무술(단기 2011, BCE 323)년에 수유須臾 사람 기후箕詡가 군사를 이끌고 번한에 들어가 웅거하고 스스로 번조선 왕이라 하였다. 연燕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아군과 함께 이를 정벌하자고 하였으나 막조선이 응하지 않았다. 계해(단.. 2024. 2. 8.
삼한관경-마한세가-7 3. 협야후가 왜인의 반란을 평정함 무자(단기 1581, BCE 753)년에, 주周나라 임금 의구宜臼가 사신을 보내어 새해 축하 인사를 올렸다. 사우가 세상을 뜨자 갑진(단기 1657. BCE 677)년에 아들 궁홀弓忽(28세 왕)이 즉위하였다. 갑인(단기 1667, BCE 667)년에 협야후陝野侯에게 명하여 전선 500 척을 거느리고 가서 해도海島를 쳐서 왜인의 반란을 평정하게 하셨다. 궁홀이 세상을 뜨고, 아들 동기東䄫(29세 왕)가 즉위하였다. 동기가 세상을 뜨자 다물단군(38세) 계유(단기 1746, BCE 588)년에 아들 다도多都(30세 왕)가 즉위하였다. 다도가 세상을 뜨니 임진(단기 1825, BCE 509)년에 아들 사라斯羅(31세 왕)가 즉위하였다. 사라가 세상을 뜨고 아들 가섭라迦葉羅.. 2024. 2. 7.
삼한관경-마한세가-6 2. 나라의 제도를 삼한에서 삼조선으로 개편 5월에 제도를 고쳐 삼한을 삼조선이라 하셨는데, 조선은 관경管境(영토 관할)을 말한다. 진조선은 천왕(22세 단군)께서 친히 다스리고, 통치 영역은 옛날 진한의 땅 그대로이다. 정치는 천왕을 경유하여 삼한이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 명령을 받았다. 여원흥을 마한 왕(20세)으로 삼아 막조선莫朝鮮을 다스리게 하고, 서우여를 번한 왕으로 삼아 번조선番朝鮮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를 총칭하여 단군 관경檀君管境이라 하니 이것이 곧 진국辰國이다. 역사에서 일컫는 단군조선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대동강의 왕검성을 막조선의 여원흥이 주재함] 원홍이 임금의 명을 받고 대동강을 굳게 지키니, 이곳을 왕검성이라고도 불렀다. 천왕께서 매년 중춘仲春에 반드시 마한을 순행하여 머물며 백.. 2024. 2. 6.
삼한관경-마한세가-5 마한세가 하 삼한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환 우현왕 색불루의 대권 장악 색불루단군께서 조부(우현왕 고등)의 공덕을 계승하여 병권을 장악하니, 진한이 스스로 무너지고 마한·번한 역시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패멸하였다. 이에 전제前帝(21세 소태단군)께서 사람을 보내어 옥책玉册과 국보國寶를 전하고 선양하셨다. 새로 등극한 임금(색불루)께서 도읍터를 백악산으로 정하시자 모든 욕살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여원흥黎元興과 갑천령蓋天齡 등이 조칙을 받들어 설득하니 마침내 모든 욕살이 복종했다. 1. 22세 색불루 단군, 백악산 아사달로 천도 재위 원년 병신년(단기 1049, BCE 1285) 정월에, 색불루단군께서 마침내 녹산鹿山에서 즉위하시니 이곳이 백악산 아사달이다. 3월에 조칙을 내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근자에 아사.. 2024. 2. 5.
삼한관경 마한세가4-마한 수도의 위치와 역대 왕의 치적 4. 고조선 마한 수도의 위치와 역대 왕의 치적 마한의 초대 왕(부단군) : 웅백다 단군왕검께서 천하를 평정하고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릴 때, 웅백다熊伯多를 마한 왕(부 단군)으로 임명하셨다. 도읍을 달지국達支國에 정하였는데, 백아강白牙岡이라고도 불렀다. 마한산에 올라 천제를 지내실 때 천왕(단군왕검)께서 조칙을 내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거울을 보면 잘나고 못난 모습이 저절로 드러나고, 백성이 임금을 보면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운 것이 정사에 나타나 나니, 거울을 볼 때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임금을 볼 때는 반드시 먼저 정사를 보아야 하느니라." 마한 왕(웅백다)이 차자箚子를 올려 이렇게 아뢰었다. "거룩하신 말씀입니다. 성군은 뭇 사람의 의견을 잘 좋으므로 도가 높아지고, 어.. 2024. 2. 4.
삼한관경 마한세가3-도道의 근원은 삼신상제님 선인 유위자가 전한 천지 대도의 말씀 [도道의 근원은 삼신상제님] 이때 유위자가 묘향산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그의 학문은 자부선생에게서 나온 것이다. 지나는 길에 웅씨 임금을 알현하니, 임금이 “나를 위해 도道를 설명해 주겠소?"라고 청하였다. 이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도의 큰 근원은 삼신에서 나옵니다[道之大原 出乎三神]. 도에는 이미 대립도 없고 이름도 없으니, 대립이 있으면 도가 아니요, 이름이 있어도 도가 아닙니다. 도에는 고정불변의 도가 없으니[道無常道] 천지의 때를 따르는 것이 도가 귀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도에는 일정한 이름이 없으니[稱無常稱] 백성을 평안하게 함이 도의 이름이 담고 있는 바입니다. 밖이 없는 극대 세계와 안이 없는 극미 세계에 이르기까지 도가 품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하늘.. 2024. 2. 3.
삼한관경 마한세가2-치우천황의 헌원 토벌 2. 치우천황의 헌원 토벌 - 탁록 대전쟁 이어서 치우천황이 계셨는데 구치九治를 만들어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드셨다. 또 비석박격기를 만드시니 천하에서 감히 대항하는 자가 없었다. 이때 헌구軒丘(황제헌원, 중화 한족의 시조)가 불복하므로 치우천황께서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탁록에서 대전쟁을 벌이셨다. 탁록은 지금의 산서성 대동부大同府이다. 전투를 시작하려 할 때 「탁록격문涿鹿檄文」을 짓고, 종당대인宗黨大人 81명을 소집하여 먼저 치우천황의 형상을 그려 반포하고, 아울러 신하들에게 경계의 글을 내려 알리셨다. 치우천황께서 말씀하셨다. "너, 헌구는 짐의 말을 똑똑히 들으렷다! 태양(하늘)의 아들은 오직 짐 한 사람이니라. 짐이 천자로서 이 세상을 만세토록 공의公義롭게 하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을.. 2024. 2. 2.
삼한관경 마한세가1-칠회제신력 [마한세가 상] 웅족과 호족이 서로 다투던 때는 환웅천황께서 아직 나라를 다스리기 이전이다. 묘환苗桓은 환국 시절 구황九皇족의 하나로 그 땅은 옛적에 이미 우리 환족이 유목과 농경을 하던 곳이다. 배달 신시가 개천되자 처음으로 토土의 중정中正의 덕으로 다스렸다[以土爲治]. 1(태극[水])이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先天 生長)운동이 쌓여 그 궁극에 결실하는 음 기운(10 무극)이 성립하고, 이 10(무극)이 크게 열려서 만물이 다시 양(1태극)으로 통일된다(후천 결실 수렴 운동). 이러한 1과 10의 순환 운동 속(중도의 덕을 지닌 5토土)에서 천지의 참 마음[衷]이 생겨난다. 1. 황제헌원이 신시 배달에 와서 도를 닦다 [환역을 풀어 내는 윷놀이와 염표문] 봉황새가 백아강白牙岡에 모여 깃들고, 선인이 법수.. 2024.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