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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보/역사 칼럼7

고조선 가림토와 훈민정음 세종대왕이 서기 1443년 섣달 그믐날 소리글자인 훈민정음 창제를 처음 공표했다. 세계 역사상 특정 개인이 글자를 창제한 사례는 세종대왕이 유일무이하다. 그런데 훈민정음에 대해 오래된 질문이 있다. "세종대왕은 어떻게 28글자를 만들수 있었을까?" 세종실록에는 "훈민정음의 글자는 옛날 글자를 모방한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어떤 옛 글자일까? 훈민정음 창제보다 3,624년 앞선 고조선 시대에, 3대 가륵 단군께서 삼랑 을보륵 박사를 시켜 소리글자인 '가림토'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상들이 쓴 역사책인 '단군세기'와 '단기고사'에는 가림토 38글자까지 뚜렷이 전하고 있다.'가림토'에 관한 기록 3세 단군 가륵(嘉勒) 2년"경자2년(BC2181년) 아직 풍속이 하나같지 않아 지방마다 말이 다르고 형상을 나.. 2025. 2. 10.
단군조선은 실존 역사다! 김종우((사)대한사랑 대외협력본부장)“선입자주先入者主”라는 말이 있다. 먼저 접한 경험이나 정보가 내 의식 속에 자리 잡아 주인 노릇을 한다는 말이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을 지낸 괴벨스가 했다는 말도 떠오른다. “거짓말도 백 번 하면 진실이 된다.”는 것이다“조선 후기까지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데 대해서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역사학자 이덕일 교수의 주장이다.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광복 이후 70년이 넘도록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를 주도해 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학교에서 배운 역사를 ‘진실한 역사’로 안다. 식민사학자들이 ‘거짓 역사’를 심어 놓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며칠 전에 국민을 대표하는 여당 국회의원 12명이 교육기.. 2025. 2. 10.
청동기 문명과 고조선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언제부터인가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1922~1938) 학자들은 “한국에는 독자적인 청동기시대가 없었고, 단기간의 금석병용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조선 시대를 국가가 아닌 신화시대로 설정한 조선총독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견해로 보인다.1960~1970년대까지 한국학자들 대부분이 한국의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40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김원룡은 기원전 700~800년, 김정배, 최성락은 기원전 13세기, 사라 넬슨은 기원전 20세기, 윤내현은 기원전 25~26세기라고 주장했고 북한 사회과학원 학자들은 기원전 40세기라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주장이다.1981년 국사 교과서 파동1981년 안호상 전 교육부장관 등이 ‘국사 교과서 내용 시정 요구에 관한.. 2025. 2. 10.
신지(神誌)의 역사 신지와 신지비사(神誌秘詞)이암이 편찬한 ‘단군세기’에 고조선 3대 단군에 관하여 “가륵단군 3년에 명을 내려 신지 고결에게 배달유기를 편수토록 하였다”고 기록됐다. 배달유기는 배달의나라 역사서를 말한다.옛 사서에서는 단군 때에 신지(神誌)란 사람이 있어서 사관이 되었다고 했는데, 신지는 관직명이고 곧 ‘신치’의 한역(漢譯)이다. 신치는 ‘신크치’의 약자이고, 신크치는 ‘신가’의 별칭이며, 신가는 정부를 구성하는 ‘다섯 가(加 또는 家)의 수석대신이다.신치 곧 신가는 언제나 ‘신수두’의 제삿날에 우주창조의 신화와 영웅, 용사들의 이야기와 예언 류의 경계담(警戒談)을 노래하여 그것이 후대에도 계속 따라 하는 관례로 되었다. 후세의 문사들이 그 노래를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그의 관직명인 ‘신치’를 책.. 2025. 2. 8.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진실 조선왕조의 사대사관과 일제의 식민사관조선왕조실록은 탁월한 역사 기록이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중국의 역사기록에 구애받는 ‘사대사관’에 추종하므로 고조선 후기를 ‘기자조선(箕子朝鮮)’으로 왜곡해 기록했다. 이런 역사 기록의 왜곡이 가능했던 것은, 고구려가 중국 세력과의 수차례 전쟁에서 왕궁도서관에 소장한 역사서들을 빼앗기거나 불타는 비운을 겪으면서 상고시대와 고대의 귀중한 역사서를 대부분 잃은 탓이다.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제강점이 시작되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1922~1938)가 조선사를 새로 펴낸 이후, 식민사관 추종 역사학자들은 “한국에는 독자적인 청동기시대가 없었고, 단기간의 금석병용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조선 시대를 국가가 아닌 신화시대로 설정한 조선총독부의 가이드라인에 따.. 2025. 2. 8.
한민족의 특별한 유산 - 홍익인간 홍익인간은 16글자로 이루어진 글 일신강충/ 성통광명/ 재세이화/ 홍익인간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한분이신 하늘님이 우리 마음에 내려오시니성품이 감화되어 밝은 덕과 힘을 얻고세상에 살면서 바른 가르침을 베푸시니인간세상을 널리 유익하게 하였더라.고려 공민왕 치세에 수문하시중 벼슬을 지낸 ‘이암’ 선생이 ‘단군세기’를 1363년 10월에 편찬했다. 이 16글자의 ‘홍익인간’은 단군세기 중에 11세 도해단군이 ‘대시전(大始殿)’을 완공한 후 목욕재계하고 백성들에게 가르친 내용이다.이 가르침에서 “홍익인간의 실천에너지는 하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라고 우리 조상들은 설명하고 있다. 배달의나라 이념환웅임금께서 신시에 배달의 나라를 개천하신 것은 BC3897년으로 단군조선의 개국보다 1565년 앞.. 2025. 2. 8.
한민족 역사의 중심 종족 한민족의 첫 번째 중심세력원동중이 지은 ‘삼성기전 하편’에 환웅의 배달의나라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환국 말기에 안파견이 밑으로 삼위와 태백을 내려다보시며 ‘모두 가히 홍익인간 할 곳이로다.’ 하시며 누구를 시킬 것인가 물으시니 모두 대답하기를 ‘서자 환웅이 있어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찍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써 세상을 바꿀 뜻이 있었사오니 그를 태백산에 보내시어 다스리게 함이 좋겠습니다.’ 하니 마침내 천부인 3가지를 내려주시고, ‘그대는 무리 3천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잘 다스려서 만세의 자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 라고 하셨다.” “환웅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라 하고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풍.. 2025.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