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년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한민족의 국혼을 지켜온 정신, 그리고 과거의 크고 작은 모든 국난을 극복하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을 만든 '한국의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요?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자께서는 그것이 '신교의 낭가사상'이라고 전합니다. "신교는 동방 한민족이 9천 년 역사를 지속할 수 있게 한 역사의 혼이다. 이러한 신교 정신을 직접 실천하고 신교를 바탕으로 새 문명을 열고 나라를 개창한 '역사 개척의 집단'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낭가郞家이다. 고려팔관잡기에 '낭郞은 곧 삼신상제를 수호하는 관직이다'고 하는데, 배달의 삼랑三郞은 이후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을 거쳐 북부여의 천왕랑天主郞에서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 백제의 무절武節· 신라의 화랑花郞으로, 그리고 고려의 재가화상在家和尙· 선랑仙郞· 국선國仙 등으로 계승되었으며, 이것이 조선의 선비정신 그리고 구한말 동학과 독립군의 정신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라고 합니다. 고구려의 국난을 극복한 을지문덕과 연개소문도 이 낭가정신을 이어받은 조의선인이었으며,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김유신도 이 낭가정신인 화랑도를 바탕으로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제 이 신교의 낭가사상은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알고 수련해야 할 인류의 원형정신이며, 한류문화의 궁극적 상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신교의 낭가사상]
신교는 동방 한민족이 9천 년 역사를 지속할 수 있게 한 역사의 혼이다. 이러한 신교 정신을 직접 실천하고 신교를 바탕으로 새 문명을 열고 나라를 개창한 '역사 개척의 집단'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낭가郞家이다.
한민족사는 낭가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국 말기에 환인천제로부터 천부와 인을 받은 환웅을 따라 이주하여 배달을 세운 3천 명의 제세핵랑濟世核郞이 낭가의 시초이다. 이 최초의 핵랑의 정신을 살려 배달은 삼랑三郞 제도를 시행하였다.
'태백일사'의 '신시본기'에 인용된 '고려팔관잡기高麗八觀雜記'에는 삼랑의 뜻을 이렇게 전한다.
삼랑三郞은 배달신倍達臣이다. '백성을 교화하고 형벌과 복敎化威福'을 맡은 자를 '랑郞'이라 하며, ... 지금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이 있는데 이것은 곧 삼랑三郞이 머무는 장소이다. 낭郞은 곧 삼신상제를 수호하는 관직이다.
삼랑은 배달 시대에 삼신상제님을 수호하는 관직이었다. 그래서 상제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백성의 잘잘못을 가려 복을 주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삼랑은 신교 정신으로 무장한 신교의 수호자이자 국가와 백성의 수호자였다.
배달의 삼랑은 고조선 시대에도 그 이름이 계속 전승되었다. 초대 단군이 재위 50년에 큰 홍수를 치른 후, 그 이듬해에 지금의 강화도에 성을 쌓고 그곳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였는데, 그 성을 삼랑성三郞城이라 하였다. 삼신과 나라를 수호한 삼랑의 정신으로 백성을 재난에서 지키겠다는 단군왕검의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13세 흘달단군에 이르러 단군이 고조선 전역에 소도를 많이 설치하여 신교를 진작시키면서 출범시킨 '국자랑國子郞'이 고조선의 정식 낭가이다. 미혼의 자제들 중에서 선발된 이들은 소도 바로 옆에 지은 경당扃堂에서 글공부를 하며 활쏘기, 말 달리기, 검술 등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예절, 가악을 배우고 익혔다. 고조선 삼한의 경당에서 '문무를 겸비한 인재'가 나라의 동량으로 배출된 것이다. 국자랑은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天指花를 꽂고 다녔으므로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불렀다.
후한서, 동이전은 고조선의 낭도에 대해 '그들은 씩씩하고 용맹하며 소년시절에도 집을 짓는 자가 있다(其人壯勇, 少年有築室作力者)'고 하였다.
환국 말기에 비롯되어 배달을 개척한 제세핵랑은 배달 시대의 삼랑과 단군조선의 국자랑을 거쳐 북부여의 천왕랑天主郞 →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 백제의 무절武節· 신라의 화랑花郞 → 고려의 재가화상在家和尙(서긍의 고려도경)· 선랑仙郞· 국선國仙 등으로 계승되었다. 그 후 한민족의 낭가사상은 고려 시대 윤관의 9성 정벌 때는 '항마군降魔軍'으로, 대몽항쟁 때에는 '삼별초三別抄로 이어졌다.
고려가 끝나고 유교사회 조선이 들어선 후 낭가의 명맥이 극도로 쇠잔해졌으나, 그 정신만은 한민족의 역사의식 속에 뿌리 깊이 잠재되어 '조선 시대의 선비정신', '갑오 동학혁명', '의병운동' 등으로 끊임없이 표출되었다. 한민족의 낭가 제도는 시대를 달리하며 그 명칭은 바뀌었지만 새 역사 개척의 원동력이자 추진력으로 면면히 계승되어 온 것이다.
고구려 국상 을파소는 나이 어린 준걸들을 뽑아 선인도랑仙人徒郞이라 하고, 무예를 관장하는 자를 조의라 하였다. 을지문덕, 연개소문 같은 고구려의 영걸은 모두 조의선인皂衣仙人으로 뽑힌 인물이었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무예를 연마하고 신교의 진리를 터득하며 심신과 학문을 닦는다. 그러나 일단 국가의 유사시에는 군대조직에 편제되어 직접 전쟁터로 나가 나라의 위기를 구하는 선봉이 되었다. 신라의 화랑에 '세속오계'가 있듯이 조의에도 계율이 있었는데 그것을 '참전계'라 불렀다. 그 참전계의 핵심 덕목은 충,인,의,지,예이다. 고구려·수나라의 전쟁 당시에도 국가총동원령에 의해 '조의 20만'이 직접 전쟁터에 나가 130만이나 되는 수의 대군을 궤멸시켜 인류전쟁사에 기록을 세웠다.
1999년 7월 10일에 방영된 KBS 제1 TV <역사스페셜>은 신라 화랑도를 전투집단으로 여긴 기존상식을 뒤엎고 본래 '제사를 지내는 집단'이었다고 밝혔다. 이것은 '낭郞이 삼신상제를 수호하는 관직'이라고 기록한 '태백일사'의 기록을 여실히 뒷받침한다. 신채호도 화랑의 연원을 상고대 소도 의식에서 찾고 있다. "현재 잔존하고 있는 강화도의 삼랑성三郞城은 단군왕검 때에 축조된 것이라 하는데 이때의 삼랑성의 '랑'이 화랑의 '랑'과 같은 글자이므로 화랑의 연원을 상고시대의 소도의식에서 찾고 있고 또 화랑을 단군 때부터 내려오던 종교의 혼이요 국수國粹의 중심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신채호, 한국사연구초, 149쪽).
박은식은 낭가사상의 계승 맥에 대해 '상고문화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신라와 고려 때 삼랑사三郞寺를 지어 삼랑을 숭배하였으니, 이는 신라의 화랑花郞과 고구려의 선인仙人이 모두 삼랑에서 연원한 바다. 화랑의 별명은 국선國仙이라 하며 선랑仙郞이라 하고 고구려 조의皂衣의 별명은 선인仙人이라 한다. 『삼국유사』에서도 화랑은 신선지사神仙之事라 하였은즉, 신라의 화랑은 곧 고구려의 조의에서 나온 자다. 선인은 곧 우리 국교國敎이며, 우리의 무사도이며, 우리 민족의 넋이며, 정신이며, 우리 국사의 꽃이다" (박성수, 단군문화기행, 137~138쪽).
지금까지 한민족 우주사상의 원형이자 인류의 시원 문화인 신교의 역사를 살펴 보았거니와, 지난 인류사를 한 그루 유실수의 생장 과정에 비유한다면 인류는 뿌리문화 시대와 줄기문화 시대를 살아왔다.
뿌리문화 시대는 온 인류가 신교의 단일 문화권 안에서 삼신상제님을 우러르며 살았던 때이다. 문명사적으로 보면, 9천 년 전 중앙아시아의 천산에서 환국이 탄생하고 그 환국에서 동서남북으로 세계 문명이 분화된 때이다. 동쪽으로는 동북아 문명과 아메리카 인디언 문명이 태동하고, 남쪽과 서쪽으로는 수메르 문명과 이를 계승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유대 문화 등이 나타났으며, 북쪽으로는 초원에서 북방 문명이 생겨났다. 문명권은 이렇게 다양하게 나누어졌지만, 뿌리문화 시대에 전 인류는 신교 또는 신탁神託을 통해 천상의 절대자와 직접 교감하며 살았다.
서양의 신탁도 신교의 일종이다. 신탁이란 신의 메시지를 받아내려 개인 삶의 방향을 정하고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는 문화이다. 그리스 문화도 신탁문화이고, 고대 지중해 연안의 신비주의적 종교인 오르피즘Orphism이나 초기 기독교의 신비주의적 가르침인 영지주의Gnosticism도 신탁의 일종이다. 소뼈나 거북이 등껍질을 구워서 그 갈라짐을 보고 신의 의지를 판단한 상나라의 갑골문화도 신탁이다. 『주역周易』 또한 그 대의는 신의 의지를 알아내는 데에 있다고 볼 때, 뿌리문화 시대의 동서양 문화는 모두 신교의 범주에 속한다.
그 후 BCE 500년을 전후하여 지구촌의 각 지역 문화권에서 위대한 성자와 철인이 출현하여 인류 문명이 획기적으로 도약하였다. 줄기문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인류의 원형 종교인 신교의 뿌리문화 시대가 끝나고 유교, 도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줄기문화 시대로 이어져 다양한 종교가 생겨났다.
공자, 노자, 예수, 석가 등이 종교 문화를 일구는 동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인들이 대거 나타나 철학의 세계를 개척하였다. 또한 17세기 이후에는 과학이 발달하여 종교, 철학과 더불어 줄기문화 시대에 문명의 3대 축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제 인류는 성숙기의 열매문화 시대를 앞두고 있다. 달리 말해서 지금 우리는 모든 인류 문화와 역사가 그 시원처로 돌아가 하나로 수렴되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시대를 살고 있다. 때문에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으로 분화된 인류의 종교 문화도 장차 하나로 통일된다. 그 통일과 수렴의 중심에 동서 문화의 모체인 신교가 있다. 인류의 뿌리문화인 신교가 유불선 줄기문화로 분열되었다가 이제 하나의 열매문화로 완성됨으로써 인류사에 새 시대, 새 문명을 열게 된다.
온 인류가 신교를 신앙하던 상고시대는 인류의 뿌리문화 시대이다. 이때 신교는 삼신의 원리에 따라 전도(조화신의 도), 선도(교화신의 도), 종도(치화신의 도)로 펼쳐졌다. 줄기문화시대가 되어, 전도를 대신하여 불교가, 선도를 대신하여 선교가, 종도를 대신하여 유교가 출현하였다. 이제 열매문화 시대를 맞아, 유불선이 통합된 하나의 열매 진리가 맺어진다.
'천부경'은 환국 시대 때부터 구전되어 온 신교문화 최초의 제1 경전으로 인간에게 하늘의 이치와 법칙을 드러내고, 하늘의 뜻과 이상, 인간의 생명과 깨달음 등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다.
한국사 상고 신교문화의 3대 경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천부경'은 환국 때부터 구전되다가, 배달의 초대 환웅천황 때 신지 혁덕이 녹도문으로 처음 기록하였다. 고조선 시대에 이르러 신지가 전서로 천부경을 돌에 새겨 태백산에 세웠다(전고비篆古碑라 부름). 그 이후의 전승 과정은 현재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불변의 진리이다. 그러나 모든 변화는 불변하는 변화 원리, 즉 생장염장으로만 변화되어 가는 엄정한 변화의 질서가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동양우주론은 그 법칙을 매우 단순화 하여 음양 동정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동양우주론의 뿌리인 천부경은 하늘과 땅, 사람을 포함한 만유의 변화의 이치와 목적을 81자로 압축적으로 설명하는데, 우주 변화의 과정이란 단순화하면 결국 일자一者에서 시작해서 십수十數로 커져 나갔다가 다시 일자一者로 수렴되는 분열과 통일의 반복적인 과정인 것이다. 뿌리에서 시작한 생명 기운은 가지로 분열 성장했다가 열매를 맺고, 종국엔 반드시 다시 뿌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 변화에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이며, 문명의 발전과 진화의 과정도 결코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지금은 우주의 여름철 말기, 분열의 극기이다. 이 때는 극즉반의 원리를 따라 원시로 반본을 하는 때이다. 따라서 지금은 모든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선 뿌리를 찾아 뿌리로 돌아가야만 하는 때이다. 즉, 전 인류가 생존을 위해 인류문명의 원형정신을 회복해야 하는 때이다. 환단고기는 그 인류의 원형정신이 모든 종교의 뿌리인 신교임을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9천년 한민족의 혼을 수호해온 '한국의 정신'은 이 '신교의 낭가정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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