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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환국본기, 신시본기24

신시본기-전문 1. 배달 개창기의 취화법  진역유기震域留記의 신시기神市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웅천황께서 사람의 거처가 이미 완비되고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은 것을 보시고, 고시례高矢禮로 하여금 음식과 양육[掌養]의 일을 전담하게 하셨다. 이분이 주곡主縠 벼슬을 맡았으나, 당시 씨 뿌리고 거두는 법이 갖추어지지 못하였고 또 불씨[火種]가 없어 걱정하였다.어느 날 우연히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높고 큰 나무가 말라 황량하게 줄기를 드러내고 오래된 나무 줄기와 말라버린 가지가 서로 얽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말없이 우두커니 서서 깊이 생각하는데 홀연 거센 바람이 숲 속에 불어닥치니, 땅 위의 크고 작은 구멍이 성내어 부르짖고 오래된 나무줄기가 서로 마찰하여 불꽃을 일으켰다. 불꽃은 번쩍번쩍 빛.. 2024. 6. 10.
환국본기-전문 1.  인류 창세 문명의 아버지, 환인천제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옛날에 환인이 계셨다. 천산에 내려와 거처하시며 천신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셨다. 백성의 목숨을 안정되게 보살피고, 세상의 뭇 일을 겸하여 다스리셨다. 사람들이 비록 들에 거처하나 벌레와 짐승의 해가 없었고, 무리지어 행동해도 원망하거나 반역하는 근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사귐에 친하고 멀리하는 구별이 없고,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고, 남자와 여자의 권리가 평등하고, 노인과 젊은이가 소임을 나누었다.당시에는 비록 법규와 명령이 없었으나 백성들 스스로가 화평하고 즐거워하며 도리에 순종하였고, 병을 제거하고 원한을 풀어 주며, 다친 자를 돕고 약한 자를 구제하니, 원한을 품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당시.. 2024. 6. 10.
19. 삼신을 수호하는 벼슬 삼랑-신시본기 19. 삼신을 수호하는 벼슬 삼랑 강화도 혈구 삼랑성의 뜻 밀기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장사를 지낼 때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 합장하여 지석(고인돌)으로 표시를 하였다. 이것이 후에 변하여 단壇이 되었는데, 지석단支石壇 또는 제석단祭夕壇이라 불렀다." 산꼭대기에 땅을 파서 성단城壇을 만든 것을 천단天壇이라 하고, 산골짜기에 나무를 세워 토단土壇을 쌓은 것을 신단神壇이라 한다. 지금의 승려들은 이를 혼동하여 제석帝釋을 단壇이라 칭하는데, 옛날 우리의 고유한 법이 아니다. 삼신을 수호하여 인명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三侍郎이라 하는데, 본래 삼신을 시종侍從하는 벼슬이다. 삼랑三郎은 본래 배달倍達의 신하이며,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을 세습하였다. 고려말관잡기高麗八觀雜記에도 역시 "삼랑은 배달.. 2024. 1. 27.
18. 동방 한민족의 신교 문화를 전파한 강태공-신시본기 18. 동방 한민족의 신교 문화를 전파한 강태공 중국 주나라에 영향을 끼친 신교 문화 옛날 여상呂尙(강태공) 역시 치우의 후손이다. 그래서 성이 강姜인데, 치우가 강수姜水에 살면서 낳은 아들이 모두 강씨姜氏가 되었다. 강태공이 제나라를 다스릴 때 먼저 도술道術을 수련하고 천제지天齊池에서 천제를 올렸다. 또한 제齊에 봉토를 받으니 팔신八神의 풍속이 제나라에서 더욱 성행하였다. 후에 그 땅에 도술을 좋아하는 자가 많이 나와 신선 황로黃老(황제와 노자)와 뒤섞이고 부연하여 더욱 풍속을 윤색시켜 놓았으니, 이것은 강태공이 그 풍속을 장려했 기 때문이다. 중국 한족 문화에 전수된 신교의 도통 일찍이 강태공이 음부경주陰符經注를 지어 자부紫府 선생의 삼황내문의 뜻을 조술祖述하였으니 연나라, 제나라 선비가 어찌 괴이하.. 2024. 1. 26.
17. 중국 한족에게 전파된 삼신상제님 신앙-신시본기 17. 중국 한족에게 전파된 삼신상제님 신앙 옛적에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한漢나라 왕 유철劉徹[武帝]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겸양하시어 (봉선을 하기 위해) 출발하지 않으시니 이는 삼신三神의 환심을 끊으시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위소韋昭의 주에 "삼신三神은 상제上帝님이시다"라고 하였으니, 삼신설三神說이 일찍이 중국에 전파된 것이 분명하다. 동방 문명의 신교와 제나라의 팔신제 진역유기震域留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제齊나라 풍속에 팔신제八神祭가 있으니, 팔신은 천주天主·지주地主· 병주兵主· 양주陽主· 음주陰主· 월주月主· 일주日主· 사시주四時主이다. 하늘은 음陰을 좋아하므로 반드시 높은 산 아래와 작은 산 위에서 제사 지내는데, 곧 태백산 기슭에서 천제를 지내던 유법이다. 땅은 양陽을 귀하게 여기므로.. 2024. 1. 25.
16. 삼신산과 동북방의 광명 정신 16. 삼신산과 동북방의 광명 정신 우리 환족은 모두 신시 배달 환웅께서 거느린 무리 3천 명의 후손이다. 후세에 비록 여러 부족으로 나뉘었으나 실로 환단일원桓檀一源의 후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신시 환웅께서 처음 강세하신 공덕을 반드시 후세에 전하고 입으로 외고, 잊지 말아야 하니 선왕선민先王先民이 옛날 삼신께 제사 지내던 이 성지를 가리켜 삼신산三神山이라 한 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다. 신시 환웅께서 강림하심으로써 신령한 다스림과 거룩한 교화의 은택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욱 깊어 갔다. 나라를 세워 세상을 다스리는 큰 근본이 다른 나라와 판이하게 달라 우리의 신이한 기풍과 거룩한 풍속이 멀리 온 천하에 전파되었다. 이에 천하만방의 백성 중에 신령한 다스림과 거룩한 교화를 흠모하는 자는 반드시 삼신三神.. 2024. 1. 24.
15. 한민족 역사 속의 백두산의 의미 15. 한민족 역사 속의 백두산의 의미 삼한비기三韓秘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백두산白頭山이라는 거대한 산악이 광활한 대지 가운데 장중하게 자리잡아 가로로 천 리를 뻗고, 높이는 2백 리를 우뚝 솟았다. 웅장한 고산준령이 꿈틀거리며 널리 덮어 배달 천국의 진산鎮山이 되었다. 신인神人이 오르내린 곳이 실로 여기에서 비롯하거늘, 어찌 구구하게 묘향산妙香山이 단지 낭림산맥이 서쪽으로 뻗은 맥에 매여 있다는 사실 하나로 환웅천황께서 강림하신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속에서 묘향산妙香山을 태백산太白山이라 한다면, 그 소견은 동압록강 이남의 한 모퉁이 땅에 국한시키는 것이 된다. 또한 산의 조종은 곤륜산崑崙山이라 하여, (우리가) 소중화小中華를 기꺼이 감수하고 중국에 조공을 바친 것이 수백 년이 지.. 2024. 1. 23.
13-14.환인·환웅·단군·왕검의 의미-신시본기 13. 환인·환웅·단군왕검의 의미 대변경의 주注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인桓仁은 천신天神이라고도 하니 천天은 큼[大], 하나[一]라는 뜻이다. 환웅桓雄은 천왕天王이라고도 하니 왕王은 곧 황皇이며, 제帝이다. 단군檀君은 천군天君이라고도 하니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시다. 왕검王儉은 감군監群이라고도 하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이시다. [환, 단, 한의 의미] 그러므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광명을 환桓이라 하고, 땅의 광명을 단檀이라 한다. 이른바 환桓은 곧 구황九皇을 말하는 것이다. 한韓은 또 크다[大]는 뜻이다. 삼한三韓은 풍백· 우사· 운사를 말하기도 한다. 가加는 가家라는 뜻이다. 오가五加는 곧 곡식을 주관하는 우가牛加, 어명을 주관하는 마가馬加, 형벌을 주관하는 구가狗加, 질병을 주관하는 저가猪加,.. 2024. 1. 22.
12. 배달과 단군조선의 통치 정신-신시본기 12. 배달과 단군조선의 통치 정신 [신교의 3도 정신과 성·명·정과 진·선·미의 실현 문제] 대변경大辯經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신시씨神市氏(배달 초대 환웅)는 전佺의 도로써 계율을 닦아修戒 사람들에 제천祭天을 가르치셨다. 이른바 전佺이란 사람의 본래 온전한 바탕을 따라 능히 본성에 통해[通性] 참됨眞을 이루는 것이다. 청구씨靑邱氏(14세 치우천황)는 선仙의 도로써 법을 세워設法 사람들에게 천하를 나누어 다스리는 법[管境]를 가르치셨다. 선仙이란 사람이 본래 저마다 타고난 바를 따라서 자신의 영원한 생명력을 깨달아[知命] 널리 선善을 베푸는 것이다. 조선씨朝鮮氏(단군왕검)는 종倧의 도로써 왕을 세워建王 사람들에게 책화[責禍]를 가르치셨다. 종倧이란 사람이 스스로 으뜸 되는 바에 따라 정기를 잘 .. 2024. 1. 21.
8. 5세 태우의 환웅의 막내 아들, 태호복희-신시본기 8. 5세 태우의환웅의 막내아들, 태호복희 환웅천황으로부터 5세를 전하여 태우의太虞儀환웅이 계셨다.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반드시 생각을 고요히 가라앉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여 정기를 잘 기르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장생의 법방이다. [삼신의 성령을 받고 우주 삼계를 통한 태호복희] 태우의환웅의 아들은 열둘이었는데 맏이는 다의발多儀發환웅이시요. 막내는 태호太皞이시니 복희伏羲라고도 불렀다. 태호복희씨가 어느 날 삼신께서 성령을 내려 주시는 꿈을 꾸고 천지만물의 근본 이치를 환히 꿰뚫어 보시게 되었다. 이에 삼신산三神山에 가시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천하天河에서 괘도掛圖를 얻으셨다. 그 획은 세 개는 끊어지고[三絶] 세 개는 이어지는[三連] 음양 원리로 이루어졌다. 그 위치를 바꾸어 추리.. 2024. 1. 20.
11. 치우천황릉의 위치와 천황에 대한 서방 한족의 전설적 추앙 11. 치우천황릉의 위치와 천황에 대한 서방 한족의 전설적 추앙 치우기의 전설과 유래 지금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따르면 치우천황의 능은 산동성 동평군東平郡 수장현壽張縣 궐향성闕鄉城에 있으며, 높이는 7장丈 이라 한다. 진한秦漢 시대에 주민들이 항상 10월에 제사를 지냈는데, 반드시 붉은 기운이 진홍색 비단처럼 펼치므로 이를 치우기蚩尤旗라 불렀다. 아마도 그분의 영웅적인 기백은 보통 사람과 아주 달라 수천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으리라. 헌원軒轅은 이 뒤로 쇠미해졌고, 유망楡罔도 따라서 영구히 몰락하였다. 치우천황蚩尤天王의 웅렬하심은 대대로 온 천하를 진동시켰다. 특히 유주幽州, 청주靑州지방에서 그 명성과 위엄이 지속되니, 헌원 이래 대대로 스스로 불안하여 그 치세가 끝날 때까지 베개 베고 편안히 잠을 .. 2024. 1. 20.
10. 헌원을 토벌하여 신하로 삼다: 중화문명의 발상지 탁록-신시본기 10. 헌원을 토벌하여 신하로 삼다 [중화문명의 발상지 탁록] 이때 공손公孫 헌원軒轅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토착민의 우두머리였다. '치우천황께서 공상空桑에 입성하여 새로운 정치를 크게 펴신다'는 소식을 듣고도 감히 스스로 천자가 되려는 뜻을 품고 병마를 크게 일으켜 치우천황과 승부를 겨루려 하였다. 천황께서 항복한 장수 소호少昊를 먼저 보내 탁록涿鹿을 포위하여 멸하려 하실 때, 헌원이 오히려 항복하지 않고 감히 수 많은 전쟁에 나섰다. 천황께서 9군九軍에 명하여 네 길로 나누어 진군하게 하시고, 몸소 보병과 기병 3천을 거느리고 곧장 탁록의 유웅有熊 들판에서 여러 번 헌원과 맞붙어 싸울 때, 군사를 풀어 사방에서 조이면서 참살하시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게 .. 2024. 1. 19.
9. 14세 치우천황의 서쪽 영토 대정벌-신시본기 9. 14세 치우천황의 서쪽 영토 대정벌 유망楡罔에 이르러 정치의 속박이 가혹해지자 여러 읍락이 사이가 나빠져 백성이 많이 흩어지고, 세상살이가 심히 어렵게 되었다. 우리 치우천황께서 배달 신시의 웅렬한 기상을 계승하여 백성과 함께 이를 새롭게 펼치실 때, 하늘의 뜻을 밝혀 생명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開天知生] 땅을 개간하여 뭇 생명을 다스리게 하시고[開土理生] 사람의 마음을 열어 생명을 존중하게 하시니[開人崇生], 백성이 만물의 원리를 스스로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그분의 덕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지혜가 적합하지 않음이 없으며, 역량이 온전히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었다. 이에 백성과 더불어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시고, 호랑이처럼 늠름하게 황하 북쪽[河朔]에 웅거하여 안으로 군사를 용맹하게 조련.. 2024. 1. 18.
7. 인류 전쟁의 시초 7. 인류 전쟁의 시초 신시 환웅께서 처음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 산에는 길이 없고 못에는 배와 다리가 없었으며, 금수는 무리를 이루고 초목이 무성하였다. 사람이 금수와 어울려 함께 살았고, 만물과 무리지어 같이 살았다. 짐승 떼에 굴레를 씌워 놀고 까마귀와 까치의 둥지에 기어 올라가서 살펴보았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때로 짐승의 피와 고기를 이용하였다. 옷을 짓고 농사지어 먹으며 편한 대로 자유롭게 사니 이때를 '지극한 덕이 베풀어지는 세상[至德之世]'이라 일렀다. 백성이 살면서도 할 일을 모르고, 다니면서도 갈 곳을 모르며, 행동은 느리고 만족하며, 보는 것은 소박하고 무심하였다. 오직 배불리 먹고 기뻐하며, 배를 두드리고 놀았다. 해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지면 쉬니, 하늘의 은택이 넘쳐.. 2024. 1. 16.
6. 신교의 제사 문화와 책력의 기원: 칠회제신력-신시본기 6. 신교의 제사 문화와 책력의 기원: 칠회제신력 신시 시대에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이 있었다. 첫째 날에 천신天神(삼신 상제님)께, 둘째 날에 월신月神께, 셋째 날에 수신水神, 넷째 날에 화신火神께, 다섯째 날에 목신木神께, 여섯째 날에 금신金神께, 일곱 째 날에 토신土神께 제사지냈다. 책력을 짓는 방법이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예전에는 계해癸亥를 쓰다가, (5세) 구을단군께서 처음으로 갑자甲子를 쓰시고 10월을 상달[上月]로 삼으시니 이것이 한 해의 처음[歲首]이 되었다. 6계六癸는 신시(배달) 환웅[神市氏]께서 신지神誌에게 명하여 지은 것으로 그때부터 계癸로써 첫머리를 삼았다. 계癸는 계啓의 뜻이며, 해亥는 핵核(씨, 종자)의 뜻이니 '해가 뜨는 뿌리[日出之根]'라는 말이다. [10천간과 12지지.. 2024. 1. 15.
5. 초대 거발환 환웅의 동방 문명 개척-신시본기 5. 초대 거발환 환웅의 동방 문명 개척 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사람은 많고 물자는 적어 살아갈 방법이 없음을 걱정하였더니, 서자부庶子部의 대인 환웅이 민정을 두루 살펴 듣고 천계에서 내려와 지상에 광명 세상을 열고자 하셨다. 이때 안파견 환인(7세 지위리 환인)께서 금악산金岳山과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白山을 두루 살펴보시고, "태백산은 가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곳이다"라고 하셨다. 이에 환웅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 인간과 만물이 제자리를 잡았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를 거느리고 몸소 하계에 내려가 새 시대를 열어 가르침을 베풀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 부권父權을 세우라. 노인은 부축하고 어린이는 이끌어 평화롭게 하나 되게 하여 사도를 세우고 세상을.. 2024. 1. 10.
4. 이주족인 웅족의 정착과 환족으로의 귀화-신시본기 4. 이주족인 웅족의 정착과 환족으로의 귀화 삼성밀기三聖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국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強族]이 있어 이를 근심하던 차에 환웅께서 나라를 다스림에 삼신三神의 도로서 가르침을 베푸시고[乃以三神設敎] 백성을 모아 맹세하게 하시니, 이때부터 은밀히 그 강족을 제거하려는 뜻을 두셨다. [환족과 웅족의 연합] 당시 부족 호칭이 통일되지 않고 풍속은 점점 갈라졌다. 원주민은 호족虎族이고, 새로 이주해 온 백성은 웅족熊族이었다. 호족은 성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오직 약탈을 일삼았고, 웅족은 성품이 고집스럽고 우둔하여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두 부족이 비록 한 고을에 살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소원해져서 서로 물건을 빌리거나 빌려 주지 않았고 혼인도 하지 않았으며, 매사.. 2024. 1. 9.
3. 배달족의 문명화 과정과 동이 명칭의 유래-신시본기 3. 배달족의 문명화 과정과 동이 명칭의 유래 [초대 풍백, 우사, 운사의 사명과 공력] 환웅천황께서 풍백風伯 석제라釋提羅를 시켜 비록 새, 짐승, 벌레, 물고기의 해는 없애게 하셨으나, 그래도 사람들은 아직 동굴과 움집 속에서 거처하였다. 땅의 습기와 바깥바람의 기운이 사람에게 침범하여 질병을 일으키고, 또 금수와 벌레와 물고기 무리가 한 번 쫓겨난 뒤로 점차 인간을 피해 숨어버려 잡아먹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사雨師 왕금王錦을 시켜 사람이 살 집을 짓고, 소와 말, 개, 돼지, 독수리, 호랑이 같은 짐승을 잡아 길러서 이용하게 하셨다. 운사雲師 육약비陸若飛를 시켜 '남녀가 혼인하는 법'을 정하게 하시고, 치우治尤로 하여금 대대로 '병마와 도적을 잡는 직책'을 관장하게 하셨다. [치우천황의 위.. 2024. 1. 9.
2. 태고 문자의 창시-신시본기 2. 태고 문자의 창시 환웅천황께서 또 다시 신지혁덕神誌赫德에게 명하여 문자를 만들게[書契] 하셨다. 신지씨神誌氏는 대대로 주명主命 직책을 관장하여 왕명을 출납하고 천황을 보좌하는 일을 전담하였으나, 다만 말에만 의지할 뿐 문자로 기록하여 보존하는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무리를 떠나 홀로 사냥할 때, 별안간 놀라서 달아나는 암 사슴 한 마리를 보고 활을 당겨 맞추려다가 그만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곧 사방을 수색하며 여기저기 산야를 다니다가 평평하게 모래가 펼쳐져 있는 곳에 이르러 발자국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간 곳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에 고개를 숙이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고 말하기를, "기록하여 보존하는 방법은 오직 이와 같을 뿐이로다. 이와 같을 뿐이로다"라고 하였다. 이 날 사냥.. 2024. 1. 7.
1. 배달 개창기의 취화법-신시본기 1. 배달 개창기의 취화법 진역유기震域留記의 신시기神市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웅천황께서 사람의 거처가 이미 완비되고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은 것을 보시고, 고시례高矢禮로 하여금 음식과 양육[掌養]의 일을 전담하게 하셨다. 이분이 주곡主縠 벼슬을 맡았으나, 당시 씨 뿌리고 거두는 법이 갖추어지지 못하였고 또 불씨[火種]가 없어 걱정하였다. 어느 날 우연히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높고 큰 나무가 말라 황량하게 줄기를 드러내고 오래된 나무 줄기와 말라버린 가지가 서로 얽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말없이 우두커니 서서 깊이 생각하는데 홀연 거센 바람이 숲 속에 불어닥치니, 땅 위의 크고 작은 구멍이 성내어 부르짖고 오래된 나무줄기가 서로 마찰하여 불꽃을 일으켰다. 불꽃은 번쩍번쩍 빛.. 2024. 1. 6.
4. 환桓의 뜻과 광명신앙-환국본기 4. 환桓의 뜻과 광명신앙 환국주桓國注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桓은 온전한 하나됨[全一]이며 광명이다. 온전한 하나 됨이란 삼신의 지혜와 권능이고, 광명은 삼신이 지닌 참된 덕성이니, 곧 우주 만물보다 앞선다. 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 풍속에 광명을 숭상하여 태양을 신으로 삼고, 하늘을 조상으로 삼았다. 만방의 백성이 이를 믿어 서로 의심하지 않았으며, 아침저녁으로 경배함을 일정한 의식으로 삼았다. 태양은 광명이 모인 곳으로 삼신께서 머무시는 곳이다. 그 광명을 얻어 세상 일을 하면 함이 없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하여, 사람들은 아침이 되면 모두 함께 동산東山에 올라 갓 떠오르는 해를 향해 절하고, 저녁에는 모두 함께 서천西川으로 달려가 갓 떠오르는 달을 향해 절하였다. 이에 앞서 환인.. 2024. 1. 1.
3. 환국의 통치자 7세 환인-환국본기 3. 환국의 통치자 7세 환인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는데, 백성이 많고 살림은 넉넉하였다. 처음에 환인께서 천산에 머물며 득도하여 장생하시고, 몸을 잘 다스려 병이 없으셨다. 하늘을 대행하여 교화를 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싸움이 없게 하시니, 모두 부지런히 힘써 생산하여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일이 저절로 없어졌다. (초대 안파견환인에서) 혁서환인, 고시리환인, 주우양환인, 석제임환인, 구을리환인을 이어 지위리환인 혹은 단인에 이르렀다. 7세를 전하니, 역년이 3,301년이요, 혹은 63,182년이다. 환국에 오훈五訓이 있고 배달에 오사五事가 있었다. 이른바 오훈이란, 첫째, 매사에 정성과 믿음으로 행하여 거짓이 없게 하고, 둘째, 공경하고 근면하여 게으름이 없게 하고, 셋.. 2024. 1. 1.
2. 12환국과 그 위치-환국본기 2. 12환국과 그 위치 삼성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파내류산 아래에 '환인씨의 나라'가 있었다. 천해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 부르는데, 그 땅의 넓이가 남북으로 5만 리요 동서로 2만여 리이다. 이 땅을 모두 합하여 말하면 환국桓國이요. 나누어 말하면,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일명 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일명 직구다국), 사납아국, 선비이국(일명 시위국 또는 통고사국), 수밀이국이니 합하면 열 두 나라이다. 천해는 오늘날 말하는 북해이다. 삼성밀기의 주注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개마국은 일명 웅심국으로 북개마대령의 북쪽에 있으며, 구다국과 2백 리 떨어져 있다. 구다국의 옛 명칭은 독로국으로 북개마대령의 서쪽에 있다. 월지국은 구다국 북쪽 .. 2024. 1. 1.
1. 인류 창세 문명의 아버지, 환인천제-환국본기 1. 인류 창세 문명의 아버지, 환인천제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환인이 계셨다. 천산에 내려와 거처하시며 천신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셨다. 백성의 목숨을 안정되게 보살피고, 세상의 뭇 일을 겸하여 다스리셨다. 사람들이 비록 들에 거처하나 벌레와 짐승의 해가 없었고, 무리지어 행동해도 원망하거나 반역하는 근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사귐에 친하고 멀리하는 구별이 없고,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고, 남자와 여자의 권리가 평등하고, 노인과 젊은이가 소임을 나누었다. 당시에는 비록 법규와 명령이 없었으나 백성들 스스로가 화평하고 즐거워하며 도리에 순종하였고, 병을 제거하고 원한을 풀어 주며, 다친 자를 돕고 약한 자를 구제하니, 원한을 품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당.. 2024.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