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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176

삼한관경본기4-구환을 통일하선 신인 왕검 4. 구환을 통일하선 신인 왕검: 국조 단군 사와라환웅(13세) 초기에 웅족 여황의 후예를 여黎라 하였는데, 처음으로 단허檀墟에 봉함을 받아 왕검이 되었다. 왕검이 덕을 베풀고 백성을 사랑하므로 영토가 점점 넓어졌다. 여러 지역 왕검이 와서 방물을 바쳤고, 귀화하는 자가 천여 명이었다. 그 뒤 460년이 지나 신인神人 왕검이 출현하여 백성에게 신망을 크게 얻어 비왕裡王(부왕)에 올라 24년간 섭정하였다. 웅씨 왕이 전쟁에서 죽자 왕검이 드디어 그 자리를 계승하여 구환九桓을 통일하였다. 이분이 단군왕검이시다. 이때에 나라 사람들을 불러 이렇게 공약하셨다. "오늘 이후로는 백성의 뜻을 들어 공법을 삼노니, 이를 천부天符(하늘의 법)라 이르노라. 무릇 천부는 만세불변의 기본 경전이요, 지극한 존엄성이 담겨 있.. 2024. 1. 31.
삼한관경본기3-헌원은 웅씨족 소전의 후손 3. 한족 시조 헌원은 웅씨족 소전의 후손 웅씨족에서 갈려 나간 후손 중에 소전少典이 있었다. 안부련 환웅(8세) 말기에 소전이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서 군병을 감독했다. 소전의 아들 신농神農은 온갖 풀을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후에 열산列山으로 이주하여 한낮에 시장을 열어 물건을 교역하게 하였는데, 백성이 이를 매우 편리하게 여겼다. 소전少典에서 갈라진 파로 공손公孫이란 인물이 있었다.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해 헌구軒丘에 귀양가서 살았는데, 헌원幹轅의 족속이 모두 그 후손이다. 3. 漢族 始祖 軒轅은 熊氏族 少典의 後孫 熊氏之所分을 曰少典이니 安夫連桓雄之末에 少典이 以命으로 監兵于姜水하고 其子神農이 嘗百草制藥하고 後에 徙列山하야 日中交易하니 人多便之라 少典之別派를 曰公孫이니 以不善養獸로 流于軒丘하니 軒轅之.. 2024. 1. 30.
삼한관경본기2-초대 왕검이 된 웅족 여왕 2. 비서갑의 초대 왕검이 된 웅족 여왕 후에 웅족 여왕[熊女君]이 천황께 신임을 받아 비서갑의 왕검을 세습하였다. 왕검王儉을 세속 말로 대감大藍이라 한다. 왕검은 영토를 관장하고 지키며, 포악한 것을 물리치고 백성을 보살폈다. 일찍이 천황께서 백성에게 유시論示한 뜻을 받들어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부모를 공경하고, 처자를 잘 보호하여라. 형제를 사랑하고 아끼며, 노인과 어른을 잘 받들어라. 어린아이와 약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뭇 백성은 서로 믿어야 하느니라." 또 의약과 물건 만드는 법, 짐승을 기르고 농사짓는 법, 기후 관측과 예절과 문자의 법을 만드니, 맡아 다스리는 땅이 교화되어 원근 백성이 모두 서로 의심치 않게 되었다. 2. 斐西岬의 初代 王儉이 된 熊女君 後에 熊女君이 爲天王所.. 2024. 1. 29.
삼한관경본기1- 환웅천황의 제천 행사 배달을 계승한 단군왕검, 송화강 아사달에서 건국 1. 환웅천황의 제천 행사 태백산(백두산)이 북쪽으로 달려가 우뚝 솟은 장엄한 모습이 비서갑裵西岬 경계에 까지 이어졌고, 그곳에 물을 등지고, 산을 안고서 다시 꺾어져 감돈 곳이 있는데, 바로 대일왕大日王(환웅 천황)께서 천제를 올리시던 곳이다. 세상에 이런 말이 전해 온다. 환웅천황이 이곳에 순행하여 머무시면서 사냥하여 제사 지내실 때, 풍백은 '천부경天符經'을 거울에 새겨 진상하고, 우사는 북에 맞추어 둥글게 춤을 추고, 운사는 백 명을 칼로 무장시켜 제단 밑에 늘어서서 지켰다.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리러 산에 가실 때 의장이 이처럼 성대하고 엄숙하였다. 이 산의 이름이 불함不成이다. 지금은 완달完達이라 하는데, 그 음이 비슷하다. 1. 桓雄天皇의 祭天.. 2024. 1. 28.
19. 삼신을 수호하는 벼슬 삼랑-신시본기 19. 삼신을 수호하는 벼슬 삼랑 강화도 혈구 삼랑성의 뜻 밀기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장사를 지낼 때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 합장하여 지석(고인돌)으로 표시를 하였다. 이것이 후에 변하여 단壇이 되었는데, 지석단支石壇 또는 제석단祭夕壇이라 불렀다." 산꼭대기에 땅을 파서 성단城壇을 만든 것을 천단天壇이라 하고, 산골짜기에 나무를 세워 토단土壇을 쌓은 것을 신단神壇이라 한다. 지금의 승려들은 이를 혼동하여 제석帝釋을 단壇이라 칭하는데, 옛날 우리의 고유한 법이 아니다. 삼신을 수호하여 인명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三侍郎이라 하는데, 본래 삼신을 시종侍從하는 벼슬이다. 삼랑三郎은 본래 배달倍達의 신하이며,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을 세습하였다. 고려말관잡기高麗八觀雜記에도 역시 "삼랑은 배달.. 2024. 1. 27.
3. 수메르에서 뻗어 나간 서양 문명과 인도 문명 3. 수메르에서 뻗어 나간 서양 문명과 인도 문명 [수메르 문명의 전파] 동방에서 온 수메르인들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계속 전승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지금의 터커), 시리아, 이집트 등지로 전파되었다. 이집트 문명은 수메르보다 대략 500년 후에 번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집트의 건축, 기술, 문자 둥은 모두 수메르 문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원기둥 모양으로 된 인장, 이집트의 건축술 가운데 받침대를 받치는 것 등은 수메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집트의 문자도 수메르의 설형문자를 변형한 또 다른 설형문자였다. 이집트 문명을 일으킨 후 수메르 문명은 다시 크레타 섬으로 전파되었다. 크레타 섬에서 유럽의 최초 문명인 미노아 문명(BCE 2700~BCE 1420)이 탄생하였고, 이 문명.. 2024. 1. 27.
2. 수메르 문명의 주요 특징 2. 수메르 문명의 주요 특징 수메르 문명의 실상은 19세기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설형문자로 쓴 점토판, 돌과 청동으로 만든 여러 가지 조각상, 원통형 인장 등이 발굴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870 년대에 프랑스 탐사대가 라가시 지역의 유적을 발굴하였고 1880 년대부터는 미국 고고학자들이 니푸르에서 수만 점의 점토판을 발굴하였다. 이로써 오랫동안 암흑 속에 묻혀 있던 수메르 문명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세계의 문명사회 29곳을 거론하며 각 문명권의 여러 관계를 연구하였다. 그 결과 다른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문명을 창조한 것은 수메르와 이집트 둘 뿐이라고 말하였다. 비록 이집트 문명의 출원지가 수메르인 것을 알지 못했지만, 수.. 2024. 1. 26.
18. 동방 한민족의 신교 문화를 전파한 강태공-신시본기 18. 동방 한민족의 신교 문화를 전파한 강태공 중국 주나라에 영향을 끼친 신교 문화 옛날 여상呂尙(강태공) 역시 치우의 후손이다. 그래서 성이 강姜인데, 치우가 강수姜水에 살면서 낳은 아들이 모두 강씨姜氏가 되었다. 강태공이 제나라를 다스릴 때 먼저 도술道術을 수련하고 천제지天齊池에서 천제를 올렸다. 또한 제齊에 봉토를 받으니 팔신八神의 풍속이 제나라에서 더욱 성행하였다. 후에 그 땅에 도술을 좋아하는 자가 많이 나와 신선 황로黃老(황제와 노자)와 뒤섞이고 부연하여 더욱 풍속을 윤색시켜 놓았으니, 이것은 강태공이 그 풍속을 장려했 기 때문이다. 중국 한족 문화에 전수된 신교의 도통 일찍이 강태공이 음부경주陰符經注를 지어 자부紫府 선생의 삼황내문의 뜻을 조술祖述하였으니 연나라, 제나라 선비가 어찌 괴이하.. 2024. 1. 26.
17. 중국 한족에게 전파된 삼신상제님 신앙-신시본기 17. 중국 한족에게 전파된 삼신상제님 신앙 옛적에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한漢나라 왕 유철劉徹[武帝]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겸양하시어 (봉선을 하기 위해) 출발하지 않으시니 이는 삼신三神의 환심을 끊으시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위소韋昭의 주에 "삼신三神은 상제上帝님이시다"라고 하였으니, 삼신설三神說이 일찍이 중국에 전파된 것이 분명하다. 동방 문명의 신교와 제나라의 팔신제 진역유기震域留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제齊나라 풍속에 팔신제八神祭가 있으니, 팔신은 천주天主·지주地主· 병주兵主· 양주陽主· 음주陰主· 월주月主· 일주日主· 사시주四時主이다. 하늘은 음陰을 좋아하므로 반드시 높은 산 아래와 작은 산 위에서 제사 지내는데, 곧 태백산 기슭에서 천제를 지내던 유법이다. 땅은 양陽을 귀하게 여기므로.. 2024. 1. 25.
1. 수메르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1. 동방에서 넘어 간 수메르 문명 [갑자기 나타난 수메르 문명] 근동의 고대 언어와 역사를 연구하는 제카리아 시친 Zecharia Sitchin은 동서 신화의 12신이 유래한 근원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꽃피었던 수메르 문명이라 주장한다. 수메르 신들 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신은 남성 여섯, 여성 여섯으로 정확히 12명이다. 그렇다면 수메르 문명은 과연 어떠한 문명인가? 수메르 문명은 세계 4대 문명 중의 하나로 꼽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피었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초승달 모양의 땅에 그보다 먼저 존재하였던 문명이다. 쉽게 말해서 수메르 문명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뻗어 나왔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그리스 로마 문명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결국 수메르 문명 덕분에 오늘의 서양 문.. 2024. 1. 25.
16. 삼신산과 동북방의 광명 정신 16. 삼신산과 동북방의 광명 정신 우리 환족은 모두 신시 배달 환웅께서 거느린 무리 3천 명의 후손이다. 후세에 비록 여러 부족으로 나뉘었으나 실로 환단일원桓檀一源의 후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신시 환웅께서 처음 강세하신 공덕을 반드시 후세에 전하고 입으로 외고, 잊지 말아야 하니 선왕선민先王先民이 옛날 삼신께 제사 지내던 이 성지를 가리켜 삼신산三神山이라 한 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다. 신시 환웅께서 강림하심으로써 신령한 다스림과 거룩한 교화의 은택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욱 깊어 갔다. 나라를 세워 세상을 다스리는 큰 근본이 다른 나라와 판이하게 달라 우리의 신이한 기풍과 거룩한 풍속이 멀리 온 천하에 전파되었다. 이에 천하만방의 백성 중에 신령한 다스림과 거룩한 교화를 흠모하는 자는 반드시 삼신三神.. 2024. 1. 24.
홍익인간의 도道로 다스린 배달 [홍익인간의 도道로 다스린 배달] 환단고기 태백일사 소도경전 본훈편에 보면, 다음과 같이 홍익인간의 유래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대저 홍익인간 이념은 환인천제께서 환웅에게 전수하신 가르침이다. 일신께서 참 마음을 내려 주셔서[일신강충一神降衷] 사람의 성품은 신의 대광명에 통해 있으니[성통광명性通光明], 삼신상제님의 진리(신교)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재세이화在世理化] 천지광명(환단)의 꿈과 대이상을 실현하는 홍익인간이 되라[홍익인간弘益人間]는 가르침은 신시 배달이 단군조선에 전수한 심법이다." 마지막 7세 지위리 환인천제로부터 국통 계승의 증표로 천부와 인을 전수 받은 거발환환웅은 또한 국가 통치이념도 이어받았습니다. 그 이념이 바로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인데요. 한민족.. 2024. 1. 23.
15. 한민족 역사 속의 백두산의 의미 15. 한민족 역사 속의 백두산의 의미 삼한비기三韓秘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백두산白頭山이라는 거대한 산악이 광활한 대지 가운데 장중하게 자리잡아 가로로 천 리를 뻗고, 높이는 2백 리를 우뚝 솟았다. 웅장한 고산준령이 꿈틀거리며 널리 덮어 배달 천국의 진산鎮山이 되었다. 신인神人이 오르내린 곳이 실로 여기에서 비롯하거늘, 어찌 구구하게 묘향산妙香山이 단지 낭림산맥이 서쪽으로 뻗은 맥에 매여 있다는 사실 하나로 환웅천황께서 강림하신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속에서 묘향산妙香山을 태백산太白山이라 한다면, 그 소견은 동압록강 이남의 한 모퉁이 땅에 국한시키는 것이 된다. 또한 산의 조종은 곤륜산崑崙山이라 하여, (우리가) 소중화小中華를 기꺼이 감수하고 중국에 조공을 바친 것이 수백 년이 지.. 2024. 1. 23.
13-14.환인·환웅·단군·왕검의 의미-신시본기 13. 환인·환웅·단군왕검의 의미 대변경의 주注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인桓仁은 천신天神이라고도 하니 천天은 큼[大], 하나[一]라는 뜻이다. 환웅桓雄은 천왕天王이라고도 하니 왕王은 곧 황皇이며, 제帝이다. 단군檀君은 천군天君이라고도 하니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이시다. 왕검王儉은 감군監群이라고도 하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이시다. [환, 단, 한의 의미] 그러므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광명을 환桓이라 하고, 땅의 광명을 단檀이라 한다. 이른바 환桓은 곧 구황九皇을 말하는 것이다. 한韓은 또 크다[大]는 뜻이다. 삼한三韓은 풍백· 우사· 운사를 말하기도 한다. 가加는 가家라는 뜻이다. 오가五加는 곧 곡식을 주관하는 우가牛加, 어명을 주관하는 마가馬加, 형벌을 주관하는 구가狗加, 질병을 주관하는 저가猪加,.. 2024. 1. 22.
12. 배달과 단군조선의 통치 정신-신시본기 12. 배달과 단군조선의 통치 정신 [신교의 3도 정신과 성·명·정과 진·선·미의 실현 문제] 대변경大辯經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신시씨神市氏(배달 초대 환웅)는 전佺의 도로써 계율을 닦아修戒 사람들에 제천祭天을 가르치셨다. 이른바 전佺이란 사람의 본래 온전한 바탕을 따라 능히 본성에 통해[通性] 참됨眞을 이루는 것이다. 청구씨靑邱氏(14세 치우천황)는 선仙의 도로써 법을 세워設法 사람들에게 천하를 나누어 다스리는 법[管境]를 가르치셨다. 선仙이란 사람이 본래 저마다 타고난 바를 따라서 자신의 영원한 생명력을 깨달아[知命] 널리 선善을 베푸는 것이다. 조선씨朝鮮氏(단군왕검)는 종倧의 도로써 왕을 세워建王 사람들에게 책화[責禍]를 가르치셨다. 종倧이란 사람이 스스로 으뜸 되는 바에 따라 정기를 잘 .. 2024. 1. 21.
8. 5세 태우의 환웅의 막내 아들, 태호복희-신시본기 8. 5세 태우의환웅의 막내아들, 태호복희 환웅천황으로부터 5세를 전하여 태우의太虞儀환웅이 계셨다.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반드시 생각을 고요히 가라앉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여 정기를 잘 기르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장생의 법방이다. [삼신의 성령을 받고 우주 삼계를 통한 태호복희] 태우의환웅의 아들은 열둘이었는데 맏이는 다의발多儀發환웅이시요. 막내는 태호太皞이시니 복희伏羲라고도 불렀다. 태호복희씨가 어느 날 삼신께서 성령을 내려 주시는 꿈을 꾸고 천지만물의 근본 이치를 환히 꿰뚫어 보시게 되었다. 이에 삼신산三神山에 가시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천하天河에서 괘도掛圖를 얻으셨다. 그 획은 세 개는 끊어지고[三絶] 세 개는 이어지는[三連] 음양 원리로 이루어졌다. 그 위치를 바꾸어 추리.. 2024. 1. 20.
11. 치우천황릉의 위치와 천황에 대한 서방 한족의 전설적 추앙 11. 치우천황릉의 위치와 천황에 대한 서방 한족의 전설적 추앙 치우기의 전설과 유래 지금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따르면 치우천황의 능은 산동성 동평군東平郡 수장현壽張縣 궐향성闕鄉城에 있으며, 높이는 7장丈 이라 한다. 진한秦漢 시대에 주민들이 항상 10월에 제사를 지냈는데, 반드시 붉은 기운이 진홍색 비단처럼 펼치므로 이를 치우기蚩尤旗라 불렀다. 아마도 그분의 영웅적인 기백은 보통 사람과 아주 달라 수천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으리라. 헌원軒轅은 이 뒤로 쇠미해졌고, 유망楡罔도 따라서 영구히 몰락하였다. 치우천황蚩尤天王의 웅렬하심은 대대로 온 천하를 진동시켰다. 특히 유주幽州, 청주靑州지방에서 그 명성과 위엄이 지속되니, 헌원 이래 대대로 스스로 불안하여 그 치세가 끝날 때까지 베개 베고 편안히 잠을 .. 2024. 1. 20.
가섭원 부여기-2 2세 금와 재위 41년 [고구려와의 대외관계와 유화 부인의 죽음] 금와왕의 재위 원년은 갑술(환기 7151, 신시개천 3851, 단기 2287, BCE 47)년이다. 왕이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재위 24년 정유(단기 2310, BCE 24)년에 유화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고구려에서는 위병衛兵 수만 명으로 호위하게 하여 영구靈柩를 졸본으로 모셔 와서 장사를 지냈다. 주몽 성제께서 황태후의 예로써 모후母后의 영구를 모셔와 능陵을 조성하고 그 곁에 묘사廟祝를 지으라 명하셨다. 재위 41 년 갑인(환기 7191, 신시개천 3891, 단기 2327, BCE 7)년에 금와왕이 훙서하였다. 태자 대소帶素가 즉위하였다. [3세 대소 재위 28년] 대소왕의 재위 원년은 을묘(환기 7192, 신시개천 3.. 2024. 1. 19.
가섭원 부여기-1 가섭원 부여기 시조 해부루 재위 39년 [동부여 수도 가섭원은 차릉] 시조 해부루왕의 재위 원년은 을미(환기 7112, 신시개천 3812, 단기 2248, BCE 86) 년이다. 왕이 북부여의 제재를 받아 가섭원迎葉原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가섭원을 차릉岔陵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토지가 기름져서 오곡이 자라기에 적합하였는데, 특히 보리가 많이 났다. 또 호랑이, 표범, 곰, 이리가 많아 사냥하기에 좋았다. 재위 3년 정유(단기 2250, BCE 84)년에 국상 아란불阿蘭弗에게 명하여 구흘을 베풀고 원근의 유민을 불러 위로하며, 굶주리거나 추위에 떨지 않게 하였다. 또 밭을 나누어 주어 농사를 짓게 하니, 몇 해 지나지 않아 나라가 부유해지고 백성이 번성하였다. 때를 맞추어 비가 내려 차릉을 축축이 적시.. 2024. 1. 19.
10. 헌원을 토벌하여 신하로 삼다: 중화문명의 발상지 탁록-신시본기 10. 헌원을 토벌하여 신하로 삼다 [중화문명의 발상지 탁록] 이때 공손公孫 헌원軒轅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토착민의 우두머리였다. '치우천황께서 공상空桑에 입성하여 새로운 정치를 크게 펴신다'는 소식을 듣고도 감히 스스로 천자가 되려는 뜻을 품고 병마를 크게 일으켜 치우천황과 승부를 겨루려 하였다. 천황께서 항복한 장수 소호少昊를 먼저 보내 탁록涿鹿을 포위하여 멸하려 하실 때, 헌원이 오히려 항복하지 않고 감히 수 많은 전쟁에 나섰다. 천황께서 9군九軍에 명하여 네 길로 나누어 진군하게 하시고, 몸소 보병과 기병 3천을 거느리고 곧장 탁록의 유웅有熊 들판에서 여러 번 헌원과 맞붙어 싸울 때, 군사를 풀어 사방에서 조이면서 참살하시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게 .. 2024. 1. 19.
9. 14세 치우천황의 서쪽 영토 대정벌-신시본기 9. 14세 치우천황의 서쪽 영토 대정벌 유망楡罔에 이르러 정치의 속박이 가혹해지자 여러 읍락이 사이가 나빠져 백성이 많이 흩어지고, 세상살이가 심히 어렵게 되었다. 우리 치우천황께서 배달 신시의 웅렬한 기상을 계승하여 백성과 함께 이를 새롭게 펼치실 때, 하늘의 뜻을 밝혀 생명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開天知生] 땅을 개간하여 뭇 생명을 다스리게 하시고[開土理生] 사람의 마음을 열어 생명을 존중하게 하시니[開人崇生], 백성이 만물의 원리를 스스로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그분의 덕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지혜가 적합하지 않음이 없으며, 역량이 온전히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었다. 이에 백성과 더불어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시고, 호랑이처럼 늠름하게 황하 북쪽[河朔]에 웅거하여 안으로 군사를 용맹하게 조련.. 2024. 1. 18.
7. 인류 전쟁의 시초 7. 인류 전쟁의 시초 신시 환웅께서 처음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 산에는 길이 없고 못에는 배와 다리가 없었으며, 금수는 무리를 이루고 초목이 무성하였다. 사람이 금수와 어울려 함께 살았고, 만물과 무리지어 같이 살았다. 짐승 떼에 굴레를 씌워 놀고 까마귀와 까치의 둥지에 기어 올라가서 살펴보았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때로 짐승의 피와 고기를 이용하였다. 옷을 짓고 농사지어 먹으며 편한 대로 자유롭게 사니 이때를 '지극한 덕이 베풀어지는 세상[至德之世]'이라 일렀다. 백성이 살면서도 할 일을 모르고, 다니면서도 갈 곳을 모르며, 행동은 느리고 만족하며, 보는 것은 소박하고 무심하였다. 오직 배불리 먹고 기뻐하며, 배를 두드리고 놀았다. 해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지면 쉬니, 하늘의 은택이 넘쳐.. 2024. 1. 16.
6. 신교의 제사 문화와 책력의 기원: 칠회제신력-신시본기 6. 신교의 제사 문화와 책력의 기원: 칠회제신력 신시 시대에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이 있었다. 첫째 날에 천신天神(삼신 상제님)께, 둘째 날에 월신月神께, 셋째 날에 수신水神, 넷째 날에 화신火神께, 다섯째 날에 목신木神께, 여섯째 날에 금신金神께, 일곱 째 날에 토신土神께 제사지냈다. 책력을 짓는 방법이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예전에는 계해癸亥를 쓰다가, (5세) 구을단군께서 처음으로 갑자甲子를 쓰시고 10월을 상달[上月]로 삼으시니 이것이 한 해의 처음[歲首]이 되었다. 6계六癸는 신시(배달) 환웅[神市氏]께서 신지神誌에게 명하여 지은 것으로 그때부터 계癸로써 첫머리를 삼았다. 계癸는 계啓의 뜻이며, 해亥는 핵核(씨, 종자)의 뜻이니 '해가 뜨는 뿌리[日出之根]'라는 말이다. [10천간과 12지지.. 2024. 1. 15.
5. 신시역대기-삼성기 하 5. 신시역대기 배달倍達은 환웅桓雄께서 천하를 안정시키고 정하신 나라의 이름이다. 수도는 신시神市요, 후에 청구국靑邱國으로 옮겼다. 18세를 전하니, 역년은 1,565년이다. 1세는 환웅천황桓雄天皇이시니 일명 거발환居發桓이라. 재위 94년이요 천수 120세이시다. (신시개천 원년, BCE 3897~신시개천 94, BCE 3804) 2세는 거불리居佛理환웅이시니 재위 86년이요 천수 102세이시다. (신시개천 94, BCE 3804~신시개천 180, BCE 3718) 3세는 우야고右耶古환웅이시니 재위 99년이요 천수 135세이시다. (신시개천 180, BC3718-신시개천 279, BCE 3619) 4세는 모사라慕士羅환웅이시니 재위 107년이요 천수 129세이시다. (신시개천 279, BCE 3619 ~신시.. 2024. 1. 14.
4. 배달의 전성기-삼성기 하 4. 배달의 전성기 [청동기 문화를 꽃피운 14세 치우천황] 그 후 10세 갈고환웅 때는 염제신농의 나라와 국경을 정하였다. 다시 몇 세를 내려와 14세 자오지환웅慈烏支桓雄이 계셨는데, 이분은 신이한 용맹이 매우 뛰어났다.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들어 쓰고[銅頭鐵額]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며, 구치九治를 제작하여 광석을 캐내고 철을 주조하여 무기를 만드시니 천하가 크게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이분을 치우천황이라 불렀는데, 속언에 치우는 뇌우가 크게 일어 산하가 뒤바뀐다'는 뜻이다. [치우천황의 신하였던 한족의 시조 헌원] 치우천황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날로 쇠약해지는 것을 지켜보시고 드디어 웅대한 포부를 품고 여러번 서쪽에서 천자의 군사[天兵]를 일으키셨다. 삭도索度에서 군사를 진격시켜 회수와 태산 사이.. 2024. 1. 13.
3. 배달의 건국-삼성기 하 3. 배달의 건국 [신교의 수행 계율, 100일 기도와 21일 수행] 이때 웅족과 호족[一熊一虎]이 이웃하여 함께 살았다. 일찍이 이 족속들은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기도 드리는 신단수에 가서 "삼신의 계율을 따르는 백성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하고 빌었다. 환웅께서 이 소식을 듣고 "가히 가르칠 만하도다" 하시고, 신령한 주문과 도술로써 환골換骨케 하여 정신을 개조시키셨다. 이때 먼저 삼신께서 전해 주신 정해법靜解法으로 그렇게 하셨는데,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줄기를 영험하게 여겨 이를 주시며 경계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것을 먹을지어다.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기도하라. 그리하면 참된 인간이 되리라." 이에 웅족과 호족 두 족속이 함께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삼칠일(21일)을 지내더니.. 2024. 1. 12.
2. 환국 말, 환웅의 동방 개척-삼성기 하 2. 환국 말, 환웅의 동방 개척 [3천명 환족 무리의 백두산 문명 개척] 환국 말기에 안파견께서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白山을 내려다 보시며 이렇게 물으셨다. “두 곳 모두 인간을 널리 이롭게[弘益人間] 할 수 있는 곳이다. 과연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은가?" 오가五加의 우두머리가 모두 대답하였다. "서자庶子에 환웅桓雄이란 인물이 있는데 용기와 어짊과 지혜를 겸비하고, 일찍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으로 세상을 개혁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그를 동방의 태백산太白山(백두산)으로 보내 다스리게 하십시오." 이에 환인께서 환웅에게 천부天符와 인印 세 종류를 주시며 명하셨다. “이제 인간과 만물이 이미 제자리를 잡아 다 만들어졌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가서, 새 시대를 열어 .. 2024. 1. 11.
1. 인류의 시조와 환국의 통치자들-삼성기 하 1. 인류의 시조와 동서 문명의 시원 국가 인류의 조상은 나반那般이시다. 나반께서 아만阿曼과 처음 만나신 곳은 아이사비阿耳斯庇이다. 두 분이 꿈에 천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혼례를 올리시니 환족의 모든 족속[九桓族]이 그 후손이다.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 백성들은 풍요로웠고 인구도 많았다. 처음에 환인桓仁께서 천산에 머무시며 도를 깨쳐 장생하시니[得道長生] 몸에는 병이 없으셨다. 하늘(삼신상제님)을 대행하여 널리 교화를 베풀어[代天宣化] 사람들로 하여금 싸움이 없게 하셨다. 모두 힘을 합해 열심히 일하여 스스로 굶주림과 추위를 사라지게 하였다. [환국의 통치자와 열 두 나라 연방] 초대 안파견환인에서 2세 혁서환인, 3세 고시리환인, 4세 주우양환인, 5세 석제임환인, 6세 구을리환.. 2024. 1. 11.
5. 초대 거발환 환웅의 동방 문명 개척-신시본기 5. 초대 거발환 환웅의 동방 문명 개척 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사람은 많고 물자는 적어 살아갈 방법이 없음을 걱정하였더니, 서자부庶子部의 대인 환웅이 민정을 두루 살펴 듣고 천계에서 내려와 지상에 광명 세상을 열고자 하셨다. 이때 안파견 환인(7세 지위리 환인)께서 금악산金岳山과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白山을 두루 살펴보시고, "태백산은 가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곳이다"라고 하셨다. 이에 환웅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 인간과 만물이 제자리를 잡았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를 거느리고 몸소 하계에 내려가 새 시대를 열어 가르침을 베풀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 부권父權을 세우라. 노인은 부축하고 어린이는 이끌어 평화롭게 하나 되게 하여 사도를 세우고 세상을.. 2024. 1. 10.
4. 이주족인 웅족의 정착과 환족으로의 귀화-신시본기 4. 이주족인 웅족의 정착과 환족으로의 귀화 삼성밀기三聖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국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強族]이 있어 이를 근심하던 차에 환웅께서 나라를 다스림에 삼신三神의 도로서 가르침을 베푸시고[乃以三神設敎] 백성을 모아 맹세하게 하시니, 이때부터 은밀히 그 강족을 제거하려는 뜻을 두셨다. [환족과 웅족의 연합] 당시 부족 호칭이 통일되지 않고 풍속은 점점 갈라졌다. 원주민은 호족虎族이고, 새로 이주해 온 백성은 웅족熊族이었다. 호족은 성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오직 약탈을 일삼았고, 웅족은 성품이 고집스럽고 우둔하여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두 부족이 비록 한 고을에 살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소원해져서 서로 물건을 빌리거나 빌려 주지 않았고 혼인도 하지 않았으며, 매사.. 2024.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