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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환단고기 해제 등36

고려사에 기록된 단군(檀君) [고려때 지어진 고려사와 제왕운기에 기록된 단군(檀君)에 관한 기사는 각각 4회씩 총 8회 발견된다. 아래는 고려사 기사 4편과 제왕운기 기사 1편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이 기사들을 살펴보면 전부 고려의 유학자의 시각에서 사마천의 사기를 100%로 인용해 단군조선을 중화사관의 시각으로 왜곡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고려의 유교적 역사관이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참으로 사기詐欺의 정석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사기詐欺란 99%의 진실속에 1%의 거짓을 슬쩍 소극적으로 흘려넣어 상대방의 정신을 기만하는 것인데, 그 1%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내용이라면 완벽한 사기詐欺가 되는 것이다. 동방의 정통 신교문화가 외래 문화에 의해 .. 2024. 12. 9.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단군(檀君) [조선왕조실록에 단군(檀君)이란 용어는 총 104회 발견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단군조선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당요唐堯의 무진년(戊辰年, 환기 4865, 신시개천 1565, 단기 원년, BCE 2333)과 동일한 시기로 기록하고 있어 단군세기의 기록 내용과 일치한다. 참고로 삼국유사는 단군의 건국연대를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이 되던 경인(庚寅)으로 기록하고 있다.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았던 조선 유학자들은 중화주의 사관에 영향을 받아서 단군(檀君)과 기자(箕子)를 함께 언급하고 위만조선도 함께 인정하고 있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 송미자세가에 기록된 '武王乃封箕子於朝鮮(무왕내봉기자어조선)'에 따라 기자조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중국에 대한 사대, 모화주의 의식이 여실히 드.. 2024. 12. 8.
우리는 왜 환국의 역사를 밝혀야 하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환국을 신화나 전설로만 치부한다. "7분의 환인들이 3,301년 동안 환국을 다스렸다"는 기록은 현대적 상식과 과학의 잣대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좀 확장해보면, 고대 동양에 깊이 뿌리내린 신선 장수문화의 전통은 이러한 사료를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역사적 맥락을 제공한다. 고대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꿈꾸며 서복을 한반도로 보냈고, 중국의 팔선(八仙)관한 설화는 아직도 중국 문화에 풍부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도 신선 여동빈은 태을금화종지라는 수행서를 남겨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현대 과학의 발전은 신선문화와 불로장생의 꿈들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생명과학의 발.. 2024. 11. 5.
삼국유사 고조선기, 삼성기 상, 하, 단군세기 전문, 환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 전문 [환국은 7세를 전하니, 그 역년이 3,301년이며, 배달국은 18세를 전해, 역년이 1,565년이다. 그리고 단군조선은 47세를 전하였으며 3왕조로 나뉘어, 역년은 총 2,096년이다. 따라서 환국, 배달, 조선으로 이어진 삼성조 시대의 역년을 합하면 총 6,960년으로 한민족의 고대사는 정확히 40년이 빠진 약 7,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래는 한민족의 고대사를 밝히는 열쇠인 일연의 삼국유사 고조선기를 비롯해서 안함로의 삼성기 상, 원동중(천석)의 삼성기 하와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그리고 일십당 이맥의 환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의 한글 번역본을 모은 것이다. 비록 각 사서를 지은 저자들의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연결해서 분석해보면 각각의 내용들이 상호 연관성을 가지.. 2024. 11. 3.
웅상문화雄常文化-2 [산해경에 “저 숙신肅愼의 나라에 백의민족이 살고 있는데, 큰 나무를 모시고 있어 웅상雄常이라 한다.”라는 글이 실려있다. 이 웅상은 환웅천황의 웅雄 자와 항상 상常 자를 써서 웅상雄常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웅상은 배달을 건국하신 '환웅천황의 성령이 항상 임재해 계신다'는 뜻이다. 환웅은 동서양 모든 제사장과 제왕 문화의 근원이 되는 분이시다. 11세 도해 단군때 ‘고대 배달의 역사 문화 정신을 복원하겠다’지어진 '대시전大始殿'은 원래 '환웅전桓雄殿'인데, 이후 불교가 들어와 불교도들이 석가불을 모시면서 '대웅전大雄殿'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한민족은 거룩한 성산聖山이 있으면 그것을 산상山像, 즉 환웅님이 임재하시는 산이라 하였고, 거대한 나무가 있으면 신단수神檀樹로 삼아 웅상으로 모셨다. .. 2024. 7. 31.
웅상문화雄常文化-1 [동서양 성상聖像문화의 근원은 웅상雄常이다. 웅상문화는 성스러운 ‘국선소도’의 가장 큰 나무를 환웅상으로 모심에서 시작되었다. 삼신오제본기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전한다. "큰 나무를 봉하여 환웅신상으로 삼아 여기에 배례를 올렸다. 이러한 신수神樹를 세속에서 웅상雄常이라 불렀는데, 상常이란 ‘항상 임하여 계신다’는 뜻이다."신시본기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불상이 처음 들어왔을 때 절을 지어 대웅大雄이라 불렀다. 이것은 승려들이 옛 풍속을 따라 그대로 부른 것이요, 본래 승가僧家의 말이 아니다. 또 “승도僧徒와 유생儒生이 모두 낭가郎家에 예속되었다”라고 하였으니 이로써도 불가의 불상은 원래 환웅을 모셨던 대웅전의 웅상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천 문명의 조종]세계가 생겨나고 이 산이 나왔으니 후.. 2024. 7. 31.
조선시대의 천제문화 [이씨조선은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표방하여 중화적 천하관을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천자국의 지위를 버리고 스스로 제후국임을 자처했다. 그 결과 세종 때 원구단이 폐지되고 천자의 의례인 원구의 제천의례를 중단했다. 허나 세조는 본인의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의례의 제도와 절차에 대한 상세한 고증을 거쳐 다시 제천의례를 거행했다. 그러나 이후 공자를 모시는 사림파의 정계진출과 함께 제천의례는 급격히 쇠퇴하여 소멸했고, 국가의례로서 다시 실시된 것은 구한말 조선이 패망하기 직전,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고종 34)이다.소격서는 옥황상제를 비롯한 수많은 신위들을 모시는 도교의 사당이다. 태조 5년 정월에 도교의 형식으로나마 제천 의식을 행할 목적으로 소격서라는 중앙관청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성리학.. 2024. 7. 31.
고려시대의 천제문화 [문헌의 기록상 고려 팔관회는 신라 진흥왕 때 시작된 것으로 고려 말까지 수백 년간 거행된 천신제, 제천행사이다. 즉, 새로운 한해의 시작에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경축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송나라의 서긍徐兢(1091~1153)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왕씨가 나라를 세운 이후에는 산에 의지하여 나라 남쪽에 성을 쌓고 자월子月(음력 11월)을 세수歲首로 삼아 관속官屬을 거느리고 의식에 쓰이는 제물을 준비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에 팔관회는 천령 및 오악과 명산대천, 용신을 섬기는 것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천령은 천신天神일 것이다. 팔관회는 개경에서 매년 11월 15일에 행제行祭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이를 중동팔관회라 불렀다. 그 뒤로 서경에서도 10월에 이틀 동안 팔관회를 개.. 2024. 7. 31.
열국, 사국 시대의 천제문화 [부여는 3월 16일 대영절大迎節에 임금께서 하늘에 제를 올리시고, 연호법烟戶法을 만들어 백성을 살피셨다. 삼한의 옛 풍속에, 10월 상일上日에는 모두가 나라의 큰 축제에 참여하였다. 이때 둥근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 지내고, 땅에 대한 제사는 네모진 언덕에서 지내며, 조상에 대한 제사는 각목角木에서 지냈다. 산상山像과 웅상雄常은 모두 이러한 풍속으로 전해 오는 전통이다. 12월(은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나라의 큰 대회이다.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여러 날 동안 계속하는데 이름하여 영고라 하였다. 이때에 형옥을 깨고 나라 안의 죄수들을 풀어주었다. 삼한의 풍속엔 관경管境을 번영케 하는 일로 백성을 위해 빌어서 재앙을 물리치는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소도에서 올리는 제천 행사는 바로 .. 2024. 7. 31.
삼성조 시대의 천제문화 [동방 한민족의 제천문화는 9천년 한민족의 국통맥을 따라 지속되었다. 환단고기는 환국, 배달, 조선의 제천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날에 환인이 천산天山에 내려와 거처하시며, 천신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셨다. 환인께서 환웅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 부권父權을 세우라' 하셨고, 신시 개천 이래로 매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나라에 큰 축제를 열어 모두 삼신상제님의 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화합하였다. 태호복희씨는 삼신산에 가시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천하天河에서 괘도卦圖를 얻으셨다. 단군왕검께서는 10월 상달에 나라에 큰 제전을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온 백성이 진실로 밝은 모습으로 즐거워하였다.][삼성조 시대의 천제 (환국, 배달, 조선)]『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 2024. 7. 29.
천제문화天祭文化 [9천 년 신교문화의 중심 주제는 천제문화다. 천제 문화를 바탕으로 환국의 광명문화와 홍익인간의 도를 최초로 동방에 전수하신 분은 환웅천황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임금과 백성이 한마음이 되어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천제문화는 동방 한민족 고유의 하나님 신앙의 정수인 것이다. 단군세기의 6세 달문단군조에 보면, ‘제자祭者는 오교지원五敎之源이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하늘에 천제를 올리는 것이 다섯 가지 가르침, 즉 모든 인간 교육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천제天祭문화는 9천 년 한민족의 국통맥과 함께 일관되게 전해온 생활문화의 중심 주제였으며, 이 천제문화가 정성스럽게 시행되었을 때 국가는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천제문화를 상실하면서 민족의 주체의식이 쇠퇴했고, 국운도 기울기 시작했던 것.. 2024. 7. 28.
신교란 무엇인가? (2) [인류의 모든 주요 동서 문명은 모두 신교로 시작됐다. 중국 은나라의 갑골문과 점치는 행위, 그리스의 오라클과 신탁, 이 모두 신교이다. 독일의 신학자 칼바이트(H. Kalweit)는 “태고시대에 도가 높은 화이트 샤만들은 영이 아니라 이 육체를 가지고 직접 천상우주를 오르내렸다.”라고 말했다. 또한 《주역》의 20번째 괘 ‘풍지관(風地觀)’ 단사에 ‘옛 성인들은 신교로써 모든 걸 이루었다’고 신교를 정의한다. 신교는 신의 가르침으로 사물을 보고, 깨닫고, 제도를 만들며, 역사를 판단하는 것이다.  한민족의 문화정신은 신교의 우주관과 삼신문화를 근거로 하늘과 땅, 인간이 하나의 근원인 광명에서 분화된 존재들임을 깨닫고, 하늘, 땅, 인간의 광명문화를 계승해 온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늘을 아버지로, 땅.. 2024. 7. 27.
신교란 무엇인가? (1) [신교神敎는 뭇 종교의 조상이며 모태가 되는 진리이다. 신교는 환국시대 이래로 우리 조상들이 국교로 받들어 온 한민족의 생활문화이다. 신교라는 말은 원래 『규원사화』의 ‘이신설교以神設敎’에서 유래했는데, 『단군세기』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한다. 단군세기 가륵단군 조에 삼랑 을보륵은 단군에게 "환웅천황께서 펼치신 신시 개천의 도는 신교로써 가르침을 베풀고, 나를 알아 자립을 구하며, 나를 비워 만물을 잘 생존케 하여..."라고 전하는데, 이 때 ‘이신시교以神施敎’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신교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우리 한민족이 고대로부터 천지의 무수한 신명들을 그 위격에 관계없이 모두 극진히 대접해 온 다신 공경문화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전역에 남아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문화, 솟대, 무巫.. 2024. 7. 26.
일십당 이맥李陌-태백일사 저자 태백일사를 지은 이맥李陌(1455~1528) ) (삼신오제본기 전문보기) (소도경전 전문보기)조선 초기의 문신인 이맥은 행촌 이암의 현손玄孫으로 자는 정부井夫, 호는 일십당一十堂이다. 1474년(성종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학문에만 힘쓰다가 1498년(연산군 4) 44세 때 비로소 식년시에 급제하였다. 성균관 전적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는데, 장숙용張淑容(장녹수)이 연산군의 총애를 믿고 분에 넘치게 재물을 탐하고 사치를 일삼자 여러 차례 탄핵 상소를 올리다가 50세(1504)에 충청도 괴산에 유배되었다.이때의 귀양살이에 대해 이맥은 '근신해야 할 처지였기에 아주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고 하였다. 이맥은 그 먼 곳으로 집안에서 간직하던 책 상자를 가지고 갔다. 그 상자에 담긴, .. 2024. 6. 10.
복애 범장范樟-북부여기 저자 『북부여기』를 지은 범장范樟 (?~?) (북부여기 전문 보기)고려말에 금성錦城(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난 범장은 여말 충신으로 잘 알려진 정몽주의 제자였다고 한다. 호는 복애伏崖이고, 복애거사로도 불리었다.범장의 호인 복애伏崖가 '휴애休崖'의 오기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증손 범석희范錫熙가 필사한 범장의 저서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는 복애를 범장의 호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간행한 『조선인명사서朝鮮人名辭書』 (1937)에도 "자는 여명보汝明甫, 호는 복애伏崖"라 기록되어 있다. (범석희는 고려말에 참지參知를 지냈다. 그러므로 범석희는, 조선시대 초까지 산 증조부 범장과 상당 기간을 함께 산 것이다. 생전에 함께 생활한 증손자가 증조부의 호를 잘못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2024. 6. 8.
행촌 이암李嵒-단군세기 저자 단군세기를 지은 이암李嵒 (1297~1364) (단군세기 서문 보기)「고려사」 「열전」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인물인 행촌 이암은 원나라의 간섭을 받기 시작한 고려의 25세 충렬왕 때(1297) 경상도 고성에서 고성 이씨 이우李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행촌이란 호는 자신이 유배되었던 강화도의 마을 이름을 따서 지었다.이암은 뛰어난 학자와 관리를 배출한 고성 이씨 집안의 9세 손이다. 증조부 이진李瑨은 고종 때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 학사를 역임하였고, 조부 이존비李尊庇 역시 과거에 급제하여 문한文輪학사, 진현관進賢館, 대제학大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부친 이우李瑀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으나 문음제를 통해 경상도 김해와 강원도 회양 부사를 지냈다.「태백일사」 「고려국본기」에 의하면, 이존비는 환국과 배달의 역.. 2024. 6. 6.
원동중元童仲-삼성기 하 저자 『삼성기』하를 지은 원동중元童仲 (삼성기 하 전문보기) 원동중은 세조가 팔도 관찰사에게 수거 하도록 유시한 도서 목록(세조실록)에 안함로와 더불어 『삼성기』의 저자로 기록되어 있다. 원씨는 3개 파가 있는데 어디에도 동중이라는 자字나 호로 나오는 인물은 없었다. 대신 원씨 가문에 “원동중이 원천석이다”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원천석(1330- ?)은 여말선초의 학자이자 문인이다. 고려 말에 진사가 되었으나 혼란한 정계를 개탄하며 은둔생활을 하였고, ‘유교 · 불교 · 도교는 원래 한 이치이지만, 각기 맡은 바 업業이 있다’는 삼교일리론三敎一理論을 주장했다고 한다. 『삼성기』상과 『삼성기』하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마치 두 사람이 서로 약속을 하고 쓴 것처럼 되어 았다. 안함로의 『삼성기』가 먼저 발간되고.. 2024. 6. 5.
안함로安含老-삼성기 상 저자 『삼성기』상을 지은 안함로安含老 (579~640) (삼성기 상 전문보기)안함로는 신라 진평왕 때의 도통한 승려이다. 성은 김씨이고, 이찬伊飡을 지낸 시부時賦의 손자로 안홍安弘 법사, 안함安含 법사, 안함태安含殆 화상 등으로 불린다. 신라의 십성十聖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고려 고종 때의 승려 각훈覺訓이 삼국 시대 이래 유명한 고승들의 전기를 정리한 「해동고승전」은 안함로의 생애를 이렇게 전한다.   안함로는 22세(600, 진평왕 22)때 승려 혜숙惠宿과 함께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되돌아왔다. 이듬해 칙명을 받고 법사가 되어 수나라에서 온 사신과 함께 수나라로 건너 가서 문제文帝(재위 581~604)를 직접 만났다. 그곳 대흥사大興寺에 머물며 불교 경전과 진문眞文(부처나 보살이 설교.. 2024. 6. 4.
성명정-인간 몸 속에 깃든 삼신의 조화 대광명 [도가에서는 정精·기氣·신神을 3가지 보배로 여기며, 정·기·신으로 수행의 원리를 설명한다. 정·기·신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서로 기르고 협동하는데, 정과 기는 서로 길러 준다. 그리고 정기精氣의 상호 작용에 따라서 발휘되는 것이 신神이다. 따라서 정기精氣가 충실한 사람은 신神의 기능도 왕성하지만, 정기가 부족한 사람은 신의 기능도 부실한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수행 생활이란 음식을 적절하게 섭취하여 정精을 잘 기르고 휴식과 운동, 잠을 절도 있게 하여 기氣를 보존하며, 정신[神]을 산란하게 하지 않고 하나로 통일 시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기·신 수행법의 원형이 배달국의 삼일신고를 바탕으로 제시된 한민족의 삼신수행법이다. 성명정(性命精 ), 심기신(心氣身), 감식촉(感息.. 2024. 5. 28.
고대 한민족의 수행문화 [환단고기의 삼성기 상에 呪願有功(주원유공), 즉 환웅께서 주문을 읽어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하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듯이 고대 배달의 강역이었던 홍산지역, 내몽골 적봉시 오한기에서 5,300여 년 전으로 추정되는 흙으로 구운 남신상이 발굴되었다. 이 남신상은 수행을 하듯 반가부좌를 틀고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마치 주문을 읽는 듯 입을 벌리고 있다. 주문수행은 지금은 기억을 상실해 일반적으로 생소하게 생각하지만,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활용한 한민족 고유의 전통 수행법이다. 주문은 신성한 음절을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그 주문의 영적 힘이 내 몸에 축적되고, 그 주력으로 내 몸과 영혼 속의 어두운 기운들을 몰아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주문의 힘으로 내 안에서 신성이 열리고,.. 2024. 5. 26.
주문은 ‘신의 노래’이자 ‘우주의 노래’ [천지광명과 신성’ 회복의 길을 열어주는 『환단고기』]  우리가 머지않아 맞이할 통일문화 · 열매문화 시대를 누릴 수 있는 천지광명의 아들 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선천 상극이 낳은 갈등과 상처를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치유의 과정을 통하여 삼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 본연의 신성神性을 회복하여야 한다.  동서양의 수행 문화에는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고 대광명의 영성을 회복하는 ‘치유 문화(Healing culture)’ 가 포함되어 있다. 이제 인류 문화의 중심축은 정보산업 사회를 넘어서 밝은 ‘영성Spiritualty 문화’로 바뀌고 있다.   인도 출신의 미국 의사 디팍 쵸프라Deepak Chopra(1946~ )도 인간의 영성을 높이 평가한다. 그.. 2024. 5. 25.
우리는 본래 천자국天子國 환단고기를 통해 한민족의 고대 원형문화와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면서 한국사에서 느끼는 가장 아쉬운 점은, 우리가 천자문화를 망실했다는 것이다. 고려말 원나라의 침략으로 천자문화가 상실되었고, 이씨 조선에 들어와 중국에 천자국의 지위를 넘겨주면서 민족의 혼은 어둠속에 갇혀 버렸다. 조선이 망한 후 한국사는 일제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했으며, 광복후 근 80여 년이 지난 아직까지 그 상처를 전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복원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천자문화라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이 천자문화를 회복해서 천자국으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한다면, 외래 종교나 외래 사상에 혼을 빼놓지도 않을 것이며, 한민족은 그 위대한 홍익인간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도덕을 갖춘 진정.. 2024. 4. 27.
신교의 낭가사상 9천년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한민족의 국혼을 지켜온 정신, 그리고 과거의 크고 작은 모든 국난을 극복하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을 만든 '한국의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요?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자께서는 그것이 '신교의 낭가사상'이라고 전합니다. "신교는 동방 한민족이 9천 년 역사를 지속할 수 있게 한 역사의 혼이다. 이러한 신교 정신을 직접 실천하고 신교를 바탕으로 새 문명을 열고 나라를 개창한 '역사 개척의 집단'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낭가郞家이다. 고려팔관잡기에 '낭郞은 곧 삼신상제를 수호하는 관직이다'고 하는데, 배달의 삼랑三郞은 이후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을 거쳐 북부여의 천왕랑天主郞에서 고구려의 조의선인皂衣仙人· 백제의 무절武節· 신라의 화랑花郞으로, 그리고 고려의 재가화상在家和尙· 선랑仙郞.. 2024. 4. 10.
광개토경평안호태황비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광개토열제는 고구려의 19세 태왕으로 22년간의 재위기간 동안 고구려의 국시인 다물多勿주의를 완성한 위대한 황제이다. 광개토열제는 비록 38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배달· 단군조선 시대의 광대했던 한민족의 영토와 신교 문화를 부흥시켜 회복하려고 노력한 황제이며, 거란· 평량(감숙성)· 후연· 백제· 신라· 왜(일본) 등 동북아 국가를 조공국으로 복속하여 중국 북부에서 만주· 한반도· 일본 전역에 걸치는 광대한 영토를 신교 문화로 통일한 단군 이래 초유의 대제왕이었던 것이다. 광개토태왕릉비문은 고구려의 이러한 찬란했던 역사를 담고 있으며, 그 시대 고구려의 강역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1880년 광개토태왕릉비문이 발견된 .. 2024. 4. 4.
동방 한민족의 신교문화 한민족을 대표하는 고유 사상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분명하게 답할 한국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한민족에게 과연 고유한 철학이나 사상이 존재했던가? 이렇게 자문하는 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은 대부분 서양철학, 음양오행은 중국 사상,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도 전부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들,,, 한국의 고유 종교는 기껏해야 원시 무속 신앙인 샤마니즘 정도, 물론 조선시대 꽤 유명한 성리학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사상도 결국 유교, 즉 중국사상의 아류가 아닌가? 따라서 과연 우리나라에 고유한 사상이 있었던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신라말 최치원 선생은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었으니 그것을 풍류라 했고, 이는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다는 말씀을 남.. 2024. 4. 2.
환단고기 유사역사학 위서 바이러스 비판 홍산문화의 실체를 밝히고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이 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강단사학계는 책은 조작된 책, 가짜 책, 위조된 책 등이라고 주장하며 무조건 위서(僞書)라고 치부해 버리는 실정입니다. 대한민국 사학과 교수님과 국책연구기관 역사 전문학자들이 를 유사역사학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비판하고 위서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유로 드는 것이 에 나오는 '자유自由', ' 세계世界', '헌법憲法', '평등平等', '만방萬邦' 등이 근세에 출현한 술어들이기 때문에 위서라 주장합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독일의 랑케로부터 시작된 유물론적 실증주의를 표방하는데, 실증주의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유적과 유물, 그리고 또한 문헌 사료를 비교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 2024. 2. 15.
3. 수메르에서 뻗어 나간 서양 문명과 인도 문명 3. 수메르에서 뻗어 나간 서양 문명과 인도 문명 [수메르 문명의 전파] 동방에서 온 수메르인들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계속 전승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지금의 터커), 시리아, 이집트 등지로 전파되었다. 이집트 문명은 수메르보다 대략 500년 후에 번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집트의 건축, 기술, 문자 둥은 모두 수메르 문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원기둥 모양으로 된 인장, 이집트의 건축술 가운데 받침대를 받치는 것 등은 수메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집트의 문자도 수메르의 설형문자를 변형한 또 다른 설형문자였다. 이집트 문명을 일으킨 후 수메르 문명은 다시 크레타 섬으로 전파되었다. 크레타 섬에서 유럽의 최초 문명인 미노아 문명(BCE 2700~BCE 1420)이 탄생하였고, 이 문명.. 2024. 1. 27.
2. 수메르 문명의 주요 특징 2. 수메르 문명의 주요 특징 수메르 문명의 실상은 19세기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설형문자로 쓴 점토판, 돌과 청동으로 만든 여러 가지 조각상, 원통형 인장 등이 발굴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870 년대에 프랑스 탐사대가 라가시 지역의 유적을 발굴하였고 1880 년대부터는 미국 고고학자들이 니푸르에서 수만 점의 점토판을 발굴하였다. 이로써 오랫동안 암흑 속에 묻혀 있던 수메르 문명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세계의 문명사회 29곳을 거론하며 각 문명권의 여러 관계를 연구하였다. 그 결과 다른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문명을 창조한 것은 수메르와 이집트 둘 뿐이라고 말하였다. 비록 이집트 문명의 출원지가 수메르인 것을 알지 못했지만, 수.. 2024. 1. 26.
1. 수메르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1. 동방에서 넘어 간 수메르 문명 [갑자기 나타난 수메르 문명] 근동의 고대 언어와 역사를 연구하는 제카리아 시친 Zecharia Sitchin은 동서 신화의 12신이 유래한 근원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꽃피었던 수메르 문명이라 주장한다. 수메르 신들 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신은 남성 여섯, 여성 여섯으로 정확히 12명이다. 그렇다면 수메르 문명은 과연 어떠한 문명인가? 수메르 문명은 세계 4대 문명 중의 하나로 꼽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피었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초승달 모양의 땅에 그보다 먼저 존재하였던 문명이다. 쉽게 말해서 수메르 문명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뻗어 나왔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그리스 로마 문명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결국 수메르 문명 덕분에 오늘의 서양 문.. 2024. 1. 25.
홍익인간의 도道로 다스린 배달 [홍익인간의 도道로 다스린 배달] 환단고기 태백일사 소도경전 본훈편에 보면, 다음과 같이 홍익인간의 유래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대저 홍익인간 이념은 환인천제께서 환웅에게 전수하신 가르침이다. 일신께서 참 마음을 내려 주셔서[일신강충一神降衷] 사람의 성품은 신의 대광명에 통해 있으니[성통광명性通光明], 삼신상제님의 진리(신교)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재세이화在世理化] 천지광명(환단)의 꿈과 대이상을 실현하는 홍익인간이 되라[홍익인간弘益人間]는 가르침은 신시 배달이 단군조선에 전수한 심법이다." 마지막 7세 지위리 환인천제로부터 국통 계승의 증표로 천부와 인을 전수 받은 거발환환웅은 또한 국가 통치이념도 이어받았습니다. 그 이념이 바로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인데요. 한민족.. 2024.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