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요동과 요서의 고구려 영토
고려진은 북경 안정문安定門 밖 60리쯤에 있다. 안시성은 개평부開平府 동북쪽 70리에 있는데, 지금의 탕지보湯池堡이다. 고려성은 하간현河間縣 서북쪽 12리에 있다. 모두 태조 무열제(6세, 단기 2386, 53~단기 2479, 146)께서 쌓으신 것이다.
안시성의 위치: 하북성 개평부開平府 동북 70리에 있다. 조선시대 실학사상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도 "이른바 옛 안시성은 개평현開平縣 동북 70리에 있다[古安市城, 在蓋平縣東北七十里]"라고 하였다. 이 개평현을 지금의 요동반도에 있는 개평으로 아는 것은 잘못이다. 개평현은 바로 요서에 있는 개평부이다. 지금 하북성 개평부 동북쪽으로 70리쯤 가면 천령天嶺 또는 천산天山이라 불리는 언저리에 탕지보湯池堡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고구려의 안시성이다. 탕지보는 일명 안촌홀安寸忽, 변한성弁韓城이라 하는데, 변한성은 단군조선 시대 삼한三韓의 하나인 번한番韓의 수도로 곧 '신지비사神誌秘詞'에 나오는 오덕지五德地이다. 안시성의 남쪽으로는 당산唐山 준봉이 있고, 서쪽으로는 어양漁陽, 북평北平, 보정保定 등지가 넘겨다보이고, 동북쪽으로는 산해관山海關 평원이 환히 바라다보이고, 북녘으로는 만리장성이 희미하게 보인다(이유립총서, 천天, 535~536쪽).
고려성: 추정국이 회복한 하간현 고려성은 답사 결과 실제로 존재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고려성에 대한 기록은『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를 밝히는 중요한 요소이다. 1991년에 현지를 답사한 중국 교포가 『태백일사』의 기록대로 하간현에서 성터를 발견했는데 현지 주민들은 그것이 고려성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전했다고 했다.
[이방인이 노래한 고려성의 옛 추억]
당나라 사람 번한樊漢이 「고려성 회고시*」 한 수를 지어 세상에 전하니 이러하다. (*단재 신채호도 이 회고시를 조선상고사에서 인용하였다.)
외진 땅에 성 문은 열리고
구름 숲 속 성 위에 담장은 길게 이어졌네.
물은 맑아 저녁 노을 반짝이고
어둠 깃든 모래땅엔 별빛이 비치네.
북소리 둥둥 울리니 구름도 따라 일고
새로 핀 고운 꽃은 흙을 털고 단장했네.
슬그머니 하루아침에 저자거리로 바뀌어
피리 · 나팔 소리 다시 들을 길 없어라.
누런 흙먼지 속 무성한 가시나무,
옛길 옆에는 쑥대만 우거져 있네.
무상한 세월의 티끌 아름답던 비취 묻어 버렸고
거친 언덕엔 소와 양이 오르는구나.
화려하던 옛 시절 이미 사라졌는데
깊어가는 가을 소리에 기러기만 날아가누나.
내가 비록 글재주는 없으나 그 운韻을 따라 한 수 읊는다.
요서遙西에 옛 성터 아직 남아 있으니
생각컨대 명성 높은 나라의 운수 틀림없이 길었으리.
연나라 험한 산에 전쟁도 많았지만
요하의 도도한 물결은 하늘빛 같네.
바람 불어 나무는 빈 골짜기에서 춤추고
학은 자태를 꾸미며 높은 나무에서 우는구나.
변방 지키던 방패와 깃발 하루저녁에 바뀌어
값을 외치는 장사꾼 방울소리 처량하게 들리네.
연燕(하북·산서)과 양凉(감숙)은 본래 우리 땅이니
관병이 오래도록 지키며 말 먹이던 곳이지.
영웅은 다시 오지 않고 그때 일은 아득하니
양떼 내몰 듯 도둑떼 몰아낼 날 다시 없을런가.
이제와 옛일 한없이 슬퍼하는 이 내 마음
만리 길 떠나는 핵랑核郞의 노자路資로나 쓰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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