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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보65

일제의 연구지도를 그대로 복사한 대한민국 역사학계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조선사를 편찬했는데, 그 전에 한국 즉, 조선과 고려의 역사지리를 전부 한반도 안으로 몰아넣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합니다. 그 준비 작업한 결과물이 1913년에 나온 조선 역사지리입니다. 이 작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자가 일제의 쓰다 소우키치인데, 그가 그린 지도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교과서나 교양서에 그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죠. 강단사학자들은 자신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타파하고 철폐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이 일제가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 반도사관이 아직도 여전히 한국의 역사 교육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죠.]조선 초기부터 명나라에 굴복하고 또 청나라에 굴복해서 스스로가 영토를 축소한 과정 속에서 가짜 위화도를 진짜로 착각하게 만드는 .. 2025. 2. 21.
조선의 국경을 압록강 너머로 그린 청나라 당빌지도 [당빌지도의 평안도하고, 함경도 부분을 확대해 놓은걸 보시면 평안도는 파란색으로 그리고 함경도는 누런색으로 표시를 해놨습니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서 산들이 쭉 표시돼 있죠. 이 산들이 이어져 산맥들로 표현되는 겁니다. 이게 원본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 역사 부도에 나와 있는 당빌지도는 지도의 산들을 전부 덧칠을 해서 산맥 표시를 만들어서 평안도하고, 함경도의 국경선 자체를 안 보이게끔 가려 놓은 것이죠. 그러면 이 당빌의 지도를 저렇게 만들었다는 얘기는 우리 역사학계가 1913년 이후 아직까지도 일제에 의해서 만들어 놓은 반도사관이 설정한 국경을 깨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죠.]청나라가 들어서서 강희제(1654~1722)가 청나라의 강역이 얼마까지 돼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만국전람도를 그립니다. .. 2025. 2. 19.
세종대왕과 단군세기의 특별한 만남 세종장헌대왕 실록 제1권, 즉위년(1418년) 기사“세종장헌대왕의 휘는 도(祹)요, 자는 원정(元正)이니 태종공정대왕의 셋째 아들이요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閔)씨이다. 태조 6년(1397년) 4월 10일(양력 5월 15일) 한양 준수방 잠저에서 탄생하시었다. 태종 8년(1408년) 2월에 충녕군으로 책봉되고 우부대언 심온의 딸과 결혼하니 이가 훗날 소헌왕후 이시다. 태종 17년에 충녕대군으로 진봉되고 이듬해 태종 18년 6월에 문무백관이 세자 제(褆)가 잘못이 많다하여 세자를 폐하여 양녕대군으로 강봉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후, 8월 10일 세자 충녕에게 양위하니, 8월 11일 즉위식을 거행하고 조선 제4대 왕위에 오르게 된다.”금년 5월 15일은 세종 탄신 622주년세종대왕은 할아버지 이성계가 조.. 2025. 2. 15.
[김동욱 칼럼] '한국은 중국 땅'이라는 중국夢 6·25전쟁 기간 국군 사망자는 13만 7899명, 부상자는 45만 742명에 이른다. 민간인 사상자와 실종자는 공식통계만 99만 968명에 달한다. 이런 대규모 한국인 인명피해는 누구에 의해 발생했을까.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이 지리멸렬했던 만큼 3년간 이어진 전쟁의 사상자 대부분은 중공군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중공군은 온정리전투와 현리전투 등 대규모 공세를 펼 때 미군보다 훈련이 부족하고 장비도 빈약한 국군만 집요하게 노렸다. 그런 중공군을 이끈 사령관이 펑더화이였다. 펑더화이는 국공내전 당시 서북인민해방군을 이끌며 같은 부대에서 정치장교로 활동하던 시중쉰(시진핑 현 국가주석의 아버지)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펑더화이와 시중쉰은 문화대혁명 때 함께 숙청돼 고초를 겪는.. 2025. 2. 12.
우리 역사 속의 천문대와 천문도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한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는 단군조선 시대의 천문 제단으로 알려져 있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이다. 고려 공민왕 때 이암이 편찬한 단군세기에는 “1세 단군왕검 51년(BC2283)에 단군께서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을 축조하고 마리산(摩璃山)에 제천단을 쌓게 하였으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세종실록 는 “참성단은 돌로 쌓아서 단의 높이가 10척이며, 위는 모지고 아래는 둥글며, 단 위의 네 면은 각기 6척 6촌이고, 아래의 너비는 각기 15척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석단이라’ 한다. 예로부터 매년 봄, 가을에 대언(代言)을 보내어 하늘의 별들에 제사를 지내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 2025. 2. 11.
고조선 가림토와 훈민정음 세종대왕이 서기 1443년 섣달 그믐날 소리글자인 훈민정음 창제를 처음 공표했다. 세계 역사상 특정 개인이 글자를 창제한 사례는 세종대왕이 유일무이하다. 그런데 훈민정음에 대해 오래된 질문이 있다. "세종대왕은 어떻게 28글자를 만들수 있었을까?" 세종실록에는 "훈민정음의 글자는 옛날 글자를 모방한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어떤 옛 글자일까? 훈민정음 창제보다 3,624년 앞선 고조선 시대에, 3대 가륵 단군께서 삼랑 을보륵 박사를 시켜 소리글자인 '가림토'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상들이 쓴 역사책인 '단군세기'와 '단기고사'에는 가림토 38글자까지 뚜렷이 전하고 있다.'가림토'에 관한 기록 3세 단군 가륵(嘉勒) 2년"경자2년(BC2181년) 아직 풍속이 하나같지 않아 지방마다 말이 다르고 형상을 나.. 2025. 2. 10.
단군조선은 실존 역사다! 김종우((사)대한사랑 대외협력본부장)“선입자주先入者主”라는 말이 있다. 먼저 접한 경험이나 정보가 내 의식 속에 자리 잡아 주인 노릇을 한다는 말이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을 지낸 괴벨스가 했다는 말도 떠오른다. “거짓말도 백 번 하면 진실이 된다.”는 것이다“조선 후기까지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데 대해서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역사학자 이덕일 교수의 주장이다.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광복 이후 70년이 넘도록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를 주도해 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학교에서 배운 역사를 ‘진실한 역사’로 안다. 식민사학자들이 ‘거짓 역사’를 심어 놓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며칠 전에 국민을 대표하는 여당 국회의원 12명이 교육기.. 2025. 2. 10.
청동기 문명과 고조선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언제부터인가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1922~1938) 학자들은 “한국에는 독자적인 청동기시대가 없었고, 단기간의 금석병용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조선 시대를 국가가 아닌 신화시대로 설정한 조선총독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견해로 보인다.1960~1970년대까지 한국학자들 대부분이 한국의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40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김원룡은 기원전 700~800년, 김정배, 최성락은 기원전 13세기, 사라 넬슨은 기원전 20세기, 윤내현은 기원전 25~26세기라고 주장했고 북한 사회과학원 학자들은 기원전 40세기라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주장이다.1981년 국사 교과서 파동1981년 안호상 전 교육부장관 등이 ‘국사 교과서 내용 시정 요구에 관한.. 2025. 2. 10.
신지(神誌)의 역사 신지와 신지비사(神誌秘詞)이암이 편찬한 ‘단군세기’에 고조선 3대 단군에 관하여 “가륵단군 3년에 명을 내려 신지 고결에게 배달유기를 편수토록 하였다”고 기록됐다. 배달유기는 배달의나라 역사서를 말한다.옛 사서에서는 단군 때에 신지(神誌)란 사람이 있어서 사관이 되었다고 했는데, 신지는 관직명이고 곧 ‘신치’의 한역(漢譯)이다. 신치는 ‘신크치’의 약자이고, 신크치는 ‘신가’의 별칭이며, 신가는 정부를 구성하는 ‘다섯 가(加 또는 家)의 수석대신이다.신치 곧 신가는 언제나 ‘신수두’의 제삿날에 우주창조의 신화와 영웅, 용사들의 이야기와 예언 류의 경계담(警戒談)을 노래하여 그것이 후대에도 계속 따라 하는 관례로 되었다. 후세의 문사들이 그 노래를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그의 관직명인 ‘신치’를 책.. 2025. 2. 8.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진실 조선왕조의 사대사관과 일제의 식민사관조선왕조실록은 탁월한 역사 기록이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중국의 역사기록에 구애받는 ‘사대사관’에 추종하므로 고조선 후기를 ‘기자조선(箕子朝鮮)’으로 왜곡해 기록했다. 이런 역사 기록의 왜곡이 가능했던 것은, 고구려가 중국 세력과의 수차례 전쟁에서 왕궁도서관에 소장한 역사서들을 빼앗기거나 불타는 비운을 겪으면서 상고시대와 고대의 귀중한 역사서를 대부분 잃은 탓이다.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제강점이 시작되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1922~1938)가 조선사를 새로 펴낸 이후, 식민사관 추종 역사학자들은 “한국에는 독자적인 청동기시대가 없었고, 단기간의 금석병용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조선 시대를 국가가 아닌 신화시대로 설정한 조선총독부의 가이드라인에 따.. 2025. 2. 8.
한민족의 특별한 유산 - 홍익인간 홍익인간은 16글자로 이루어진 글 일신강충/ 성통광명/ 재세이화/ 홍익인간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한분이신 하늘님이 우리 마음에 내려오시니성품이 감화되어 밝은 덕과 힘을 얻고세상에 살면서 바른 가르침을 베푸시니인간세상을 널리 유익하게 하였더라.고려 공민왕 치세에 수문하시중 벼슬을 지낸 ‘이암’ 선생이 ‘단군세기’를 1363년 10월에 편찬했다. 이 16글자의 ‘홍익인간’은 단군세기 중에 11세 도해단군이 ‘대시전(大始殿)’을 완공한 후 목욕재계하고 백성들에게 가르친 내용이다.이 가르침에서 “홍익인간의 실천에너지는 하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라고 우리 조상들은 설명하고 있다. 배달의나라 이념환웅임금께서 신시에 배달의 나라를 개천하신 것은 BC3897년으로 단군조선의 개국보다 1565년 앞.. 2025. 2. 8.
한민족 역사의 중심 종족 한민족의 첫 번째 중심세력원동중이 지은 ‘삼성기전 하편’에 환웅의 배달의나라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환국 말기에 안파견이 밑으로 삼위와 태백을 내려다보시며 ‘모두 가히 홍익인간 할 곳이로다.’ 하시며 누구를 시킬 것인가 물으시니 모두 대답하기를 ‘서자 환웅이 있어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찍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써 세상을 바꿀 뜻이 있었사오니 그를 태백산에 보내시어 다스리게 함이 좋겠습니다.’ 하니 마침내 천부인 3가지를 내려주시고, ‘그대는 무리 3천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잘 다스려서 만세의 자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 라고 하셨다.” “환웅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라 하고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풍.. 2025. 2. 8.
신지비사가 밝히는 단군조선의 통치체계 [서효사는 신지가 쓴 한민족 최초의 역사서로서 ‘맹세할 서誓, 본받을 효效, 말씀 사詞’ 자로 문자적으로는 ‘하늘에 맹세하고 본받는 글’이라는 뜻이며, 단군조선의 사관이던 ‘신지神誌에 의해 기록된 비밀스러운 글’이라는 뜻으로, 일명 신지비사神誌祕詞라고도 불리는 글입니다. 이 글은 제천문 형식으로 적혀진 글이지만, 내용을 읽어 보면 매우 압축적으로 구성되었지만 환국부터 단군조선시대까지의 핵심을 정리한 글이란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풍수지리서이며, 또한 삼권분립 체계의 원형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내용중에 興邦保太平흥방보태평하야 朝降七十國조항칠십국이라는, 즉 단군왕검시기에 일흔나라가 단군조에 조공하며 복종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럼, 단군조선은 어떻게 국가를 경영했기에 그렇게 번성하였을까요?].. 2025. 2. 6.
고조선 강역과 통치형태 [단군조선의 통치 체제나 국가 형태를 명확히 이해를 해야, 단군조선 멸망 이후 왜 우리 민족이 열국시대로 접어들어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다. 이승휴의 제왕운기를 보면, 고조선이 70여 개의 거수국을 거느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단군조선이 수십 개의 제후국들을 거느렸고, 이 각각의 제후국들은 상당 부분 스스로 지방 자치를 이루어가면서 중앙의 대단군을 중심으로 하나로 융합되는 그러한 통치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따라서 단군조선이 망한 후 여러 제후국들은 제각각 독립을 하였고 서로 경쟁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단군 조선을 계승한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뿌리는 다 하나의 단군으로 이어진다는 한 뿌리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사회자) 이번에 쓰.. 2025. 2. 5.
위화도의 위치 [위화도威化島하면 섬 도島자를 쓰니까 섬이 아니냐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이 도島라는 말은 우리 한반도韓半島라는 말처럼 3면이 물로 둘러쌓인 곳이나 강가에 있는 곳도 도島라고 불립니다. 인하대 허우범 교수는 여러 사료들을 토대로 해서 위화도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위화도가 아니라 압록강 너머 지금의 중국 단동시 관전현 서점자에 위치한 위화도라는 걸 새롭게 밝혀낸 것입니다. 강단 사학계에서 사실 이것을 굉장히 예민하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위화도를 새롭게 찾았다라는 것은 그동안의 기록들 즉, 일제강점기 때 식민사학자들이 만들었던 고려나 조선의 조선 초의 국경선들이 잘못돼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대한사랑 전문강사 11분강의 조선 국경과 진짜 위화도는 어디인가.. 2025. 2. 4.
조한전쟁과 한사군의 실체 [사마천 사기의 조선열전에는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정복하고 그 영토에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는 사마천이 살았던 당대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며, 한사군에 관한 최초의 문헌적 언급이다. 그러나 사기열전에 나온 사군四郡에 관한 서술은 지나치게 간략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거의 전무하다. 기록에 따르면, 좌장군이 우거의 아들 장강과 노인의 아들 최를 시켜 끝까지 저항하던 성이를 살해한 후,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고, 네 개의 군을 설치했다[以故遂定朝鮮, 爲四郡]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작 사군四郡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더군다나  진번과 임둔이란 지명은 이미 위만정권이 멸망하기 이전부터 등장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패수의 위치를 고려했을 때, 한사군 한반도설은 역사적 .. 2025. 2. 3.
통일신라의 북방강역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정교하게 얽혀 있어, 단 하나의 사실을 조작하는 것조차 어렵다. 더욱이, 성공적인 역사 왜곡을 위해서는 단편적인 조작이 아니라 전체 서사를 일관되게 재구성해야 하며, 이는 단순한 기만술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특정 국가의 역사를 조작하려면 그 시대 다른 나라의 사서까지 왜곡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역사적 진실은 다양한 사료 속에서 교차 검증되며, 조작이 시도될수록 모순과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일제가 한국사를 조작하기 위해 얼마나 막대한 자원과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결국 제자리를 찾게 마련이며, 왜곡된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민낯을 드러내고 결국엔 무너질 수밖.. 2025. 2. 2.
고려, 조선의 북방강역 [이덕일 소장은 아래 유튜브 강의에서 고려와 조선의 실제국경선은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 6~7백리에 위치한 철령(요하 서쪽)과 공험진(두만강 북쪽 700리)을 잇는 선이라고 사료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우리가 조선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려의 역사적 강역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강단사학에서 가르치는 고려의 국경선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너무나 왜곡 축소된 모습이다. 이렇게 왜곡된 내용을 광복 80년이 지난 아직까지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 담고 있는 실정이 참으로 안타깝다. 분열된 대한민국의 정신을 통일하고 쇄신하는 일은 우선 식민사학의 잔재를 청산하고 올바른 역사를 밝히는 것부터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위 지도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관리하는 우리역사넷 사이트 참조].. 2025. 2. 1.
홍산문화 10분 정리 [홍산문화는 한국사의 중요한 기원으로,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이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였기에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환단고기는 홍산문화와 한민족의 연결성을 학문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소중한 우리의 역사 사료입니다. 홍산문화와 한민족의 연결성을 입증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탐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역사 광복 운동의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환단고기와 홍산문화 연구를 통해 우리의 뿌리를 재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얻어야 할 때입니다.]1. 홍산문화(요하문명)1) 홍산문화의 발견과 의의일반적으로 세계 4대 문명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문명으로 알려져 있으.. 2025. 1. 29.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와 우연의 손길 [역사를 공부하는 다양한 목적중 하나는 과거의 사건들을 통해 현재에 대한 명확한 통찰력과 미래를 정확히 내다보는 안목을 얻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역사적 지식의 축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이 순환 변화하는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며, 둘째로 역사학이 간과하는 우연적 요소, 즉 역사에 개입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인 신神의 작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변화의 이치와 신도의 작용을 깨달아야만, 역사 속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최근 대한민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의 극단적 이념 대립으로 혼돈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그럼, 이러한 극단적 대립의 근본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그 원인을 짧.. 2025. 1. 12.
현정권에서 친일파의 득세와 역사청산 [최근 윤석열 정부가 대규모 친일 성향 인사들을 내각의 핵심 수장으로 임명한 것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벌어진 계엄사태와 탄핵 정국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병리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 상황의 근본 원인은 광복 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역사 청산에서 찾을 수 있다. 정의와 진실이 외면될 때 사회에는 기회주의와 부조리가 만연하게 된다. 역사를 제대로 바로잡지 못한 탓에 특정 세력들은 과거의 문제적 논리를 여전히 계승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 불평등과 불신을 심어왔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역사가 청산되지 못한 뿌리 깊은 병리적 증상이다. 그러나 한민족은 과거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독립을 이루어냈다. 우리 국민의 의식 속에는 여전히 정의와 진실.. 2024. 12. 18.
역사연구회 ‘대한사랑’, ‘대한역사교과서’ 발간 본격화 한국역사연구 단체인 ‘대한사랑’은 창립 11주년 행사를 겸해 ‘역사광복인의 밤’ 을 개최했다.(2024년,12월,15일) 본 행사는 연세대 백양누리프라자 그랜드볼룸(B 126)에서 조성두 흥사단 회장과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 윤창열 대한사랑 이사장 등 각계 인사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을 알렸다. 사단법인 ‘대한사랑’은 이 자리에서 2025년도 중점사업으로 대한역사교과서 발간을 조속히 간행할 것과 역사교과서에서 반드시 담을 내용을 천명했다. 첫째 대한민국의 국가 계보 즉 국통 맥을 제대로 밝힌다. 둘째 고유 전통사상의 맥을 짚는다. 셋째 고대에서 근대까지 국경사(國境史)를 제대로 적시한다는 점이다. 이어 주체적으로 사서를 해석할 것, 그 주요 사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규원.. 2024. 12. 16.
사마천 사기의 주요 역사왜곡 3가지 [사마천의 사기는 기전체紀傳體라는 역사 서술 체제로 기록되었습니다. 기전체 사서는 황제들의 사적인 〈본기本紀〉, 각종 통계자료 및 연표인 〈표表〉, 여러 전문 분야에 대해 정리 서술한 〈서書〉, 제후들의 사적인 세가世家>, 신하들의 사적인 열전列傳>으로 구성된 사서인데, 기전체는 황제들의 사적인 〈본기〉가 중심인 사서입니다.황제의 사적이 중심 기둥이 되어 우산을 펼치면 그 우산 아래 세가・열전・지・표 등이 종적, 횡적 연결관계를 갖고 움직이는 체제인데, 그 정점에는 항상 〈본기〉가 있습니다. 사마천이 기전체 사서를 고안한 이유는 중국사의 시조부터 시작하는 계통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마천이 한漢나라뿐만 아니라 상고사까지 쓴 이유는 바로 중국사의 계통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기》는 중국 최.. 2024. 12. 16.
[펌]나라를 망가뜨린 노론 조작정치의 그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둘러싼 갈등 방식에는 공작과 조작이 끼어 있다. 사람을 모아 당을 수립하려는 계책은 서인이 남인보다 술수가 한 수 위였다. 서인 무리들은 영광과 명성을 공경해서 이를 위해 스스로 이용되는 것을 즐겁게 여겼다. 1623년 인조반정 이래 몇십년을 제외하고 집권당은 서인이었다. 숙종 때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된 뒤 ‘순혈 서인’인 노론은 망국 때까지 집권 여당이었다. 그런 노론의 수장이었던 송시열은 북벌(北伐)이라는 대의를 추구하는 당대 지도자의 오른팔로 활동하다가 간신들에 의해 모함을 받고 억울하게 죽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송시열의 실체는 앞과 뒤가 다른 위선은 물론 그 위선을 덮으려는 은폐까지 시도한 인물이었다. 그 노론의 피를 이은 자들이 구한말 조선을 일본에 넘긴.. 2024. 12. 11.
[책]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현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붕당정치와 특히 노론과 노론의 태두 송시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암 송시열은 주자학의 대가로 '송자'로 불린, 조선 유학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학문적 이론과 조직을 바탕으로 정권을 잡은 노론이 추구했던 국가는 유학자들이 왕권을 견제하며 그들의 이상으로 각각의 지방을 통치하려는 세상, 즉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닌 노론의 이상을 위한 그들만의 국가'였다. 조선후기 민중들의 삶은 그들의 부패한 세도정치로 피폐해져갔고, 결국 외우내환으로 조선은 망국의 상황에 접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론 가문의 후예, 이완용은 노론을 대표하여 결국 조선을 일본에 넘겨주게 된다. 그들에겐 국가도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 2024. 12. 10.
윤명철의 다시 보는 한국역사와 문화 [역사학은 '사실이 무엇(what)인가?'를 규명하는 학문이지만, 나아가 '왜(why)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가?' 하는 이유와 배경을 찾는 것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how) 할 것인가?' 즉 해법을 찾고, 가능하면 방향까지 제언하는 것이다. 현재 인류는 '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로 포장됐지만 인간종(homo) 자체의 존속이 위협받은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는 중이다. 역사학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규명하고,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아는 일은 필수적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남과 관계를 맺을 수가 있고, 목적한 일을 성공할 수가 있다.역사상의 우리 국가들은 '조선'을 모(母)국가로 삼은 하나의 혈연공동체일 뿐 만 아니라 역사공동체였음을 알.. 2024. 12. 10.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25권 완간 [독립기념관과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2015년 부터 10여 년간 진행된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총 25권)을 완간하고, 완간기념회를 개최한다고 3일 밝혔다. 그리고 웹을 통해 인물들을 직접 검색할 수 있는 검색 서비스도 제공한다. 아래 그림은 웹서비스 특별판에 등재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표본이다.]독립기념관과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2015년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10년간 진행됐던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총 25권)을 완간하고 5일 서울 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편찬위원회 겸 완간기념회를 개최한다고 3일 밝혔다. 독립기념관은 2018년까지 정부로부터 서훈받은 독립유공자 1만 5,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사업을 시작한 이래 2024년 총 2.. 2024. 12. 9.
대한민국 계엄령의 역사, 76년간 총 17차례 선포 [사회적 시스템이 부패하고 정체되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면, 비록 희생을 치루고서라도 강제적으로 시스템을 새롭게 할 혁신과 혁명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우선 시스템을 혁신할 자의 자질과 의도가 중요하다. 단군세기 서문은 이에 대해, "자신의 이념이나 가르침을 세우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아를 확립해야하고, 형체를 바꾸려는 자는 반드시 무형의 정신을 뜯어고쳐야 하나니,,,"라고 했다. 진정한 혁명은 무형의 정신 혁명으로 부터 시작되며, 오직 자신을 바로 세운 자만이 세상을 혁명할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낼 뚜렸한 명분도 없고, 치밀하지도 못하고, 혁명을 위해 목숨을 걸 용기도 없으며, 수신도 되지 못한 자는 결코 혁명에서 성공할 수 없다. 또한 폭력을 동반한 혁명은 비록.. 2024. 12. 6.
한국상고사 입문 [요동에 하나의 별천지가 있으니, 중국과 완전히 구분되어 삼면이 큰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녘은 대륙에 연한 중방中方 1천 리, 이것이 조선이다. 아름답고 예의를 아는 나라이다. 환국에서 환웅이 온 인류를 크게 이롭게 할 만하므로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아래로 내려보냈다. 그의 아들이 조선이란 나라를 세운 단군이다. 시라, 고례, 남북 옥저, 동북 부여, 예와 맥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식민사학의 태두 이병도 박사는 최태영박사와 공저한 한국상고사입문에서 단군을 국조로서 사당을 세우고 최고의 조상으로 제사를 받들어 왔는데, 그것이 끊어진 것은 일제의 강점 때부터였다. 신화나 전설에 지나지 아니한다면 이처럼 역대 왕조에서 조의朝議에 의하여 건묘, 봉제사를 하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실존 인간.. 2024. 12. 2.
지나支那족이 왜곡한 부여· 고구려의 역사 [삼국사기는 고구려 영양왕때 역사서 신집 5권이 있었고, 그 전에 유기라는 역사서가 있었다고 전한다. 유기留記와 관련해서 단군세기는 "3세 가륵단군이 신지 고설高契에게 명하여 『배달유기倍達留記』를 편찬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구려의 모든 역사서들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668년 가을 고구려가 망하면서, 고구려 평양성과 함께 대부분이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후백제 견훤이 완산을 점령하면서 모아놓은 삼국에 남은 고대의 역사책들도 후백제의 몰락과 함께 모두 전란으로 불타버리게 된다. 이로인해 동방의 참역사는 대부분 망실되었고, 중국 역사가들의 춘추필법과 조선의 사대주의 유학자들에 의해 동방의 역사는 점점 왜곡되고 축소되어왔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일제에 의해 한민족의 전통 역사문화 서적 20만권이.. 2024.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