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고구려의 개국 공신 연타발
연타발*은 졸본 사람이다. 남북 갈사曷思*(북갈사는 만주 우수리강 일대이고, 남갈사는 혼춘琿春지방)를 오가면서 이재理財를 잘하여 부자가 되어 엄청난 돈을 모았는데 남 몰래 주몽을 도와 창업의 기틀을 마련하고 도읍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뒤에 무리를 이끌고 구려하九黎河*(지금의 대요하)로 옮겨 물고기와 소금을 사고 팔아 이익을 얻었다. 고주몽 성제가 북옥저*를 칠 때 양곡 5천 석을 바쳤다.
눌견訥見*(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 지금의 만주 장춘 북쪽 주성자朱城子)으로 도읍을 옮길 때 연타발이 먼저 양곡을 자원하여 바치고 떠도는 백성을 불러 모아 어루만져 위로하며 임금의 일을 부지런히 도왔다. 그 공덕으로 좌원坐原*에 봉토를 얻었다. 여든에 죽으니, 때는 평락平樂*(고주몽 성제 때의 연호) 13년(단기 2309, BCE 25) 병신년 봄 3월이었다.
*연타발: 고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한 개국 공신.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연타발의 딸 소서노가 과부로서 고주몽의 왕비가 된 것으로 왜곡하였다. 그러나 삼국사기 원문에는 부여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었는데, 주몽을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둘째 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는 모순된 내용도 나온다. (삼국사기에 왜곡된 내용 원문보기)
*북옥저: 남옥저(요동반도)에서 동북으로 800리에 있었다. 지금의 만주 서간도西間島 일대이다. 종래 학계에서는 한·중 고대 사서에 나오는 수많은 옥저의 위치를 모두 함경도로 비정했으나 아주 잘못된 것이다. 본서 고구려본기에는 평락 11년(BCE 27)에 북옥저를 멸하고 다음 해에 졸본에서 눌견으로 천도를 했다고 했다. 눌견은 지금의 장춘 북쪽에 있으니 북옥저는 장춘 주위의 땅이 분명하다.
*좌원: 위당 정인보는 좌원은 남만주 관전현 성동산과 통화현 홍석납자의 중간에 있는 긴 평원이라 하였다(정인보 조선사
연구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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