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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195

고려사에 기록된 단군(檀君) [고려때 지어진 고려사와 제왕운기에 기록된 단군(檀君)에 관한 기사는 각각 4회씩 총 8회 발견된다. 아래는 고려사 기사 4편과 제왕운기 기사 1편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이 기사들을 살펴보면 전부 고려의 유학자의 시각에서 사마천의 사기를 100%로 인용해 단군조선을 중화사관의 시각으로 왜곡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고려의 유교적 역사관이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참으로 사기詐欺의 정석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사기詐欺란 99%의 진실속에 1%의 거짓을 슬쩍 소극적으로 흘려넣어 상대방의 정신을 기만하는 것인데, 그 1%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내용이라면 완벽한 사기詐欺가 되는 것이다. 동방의 정통 신교문화가 외래 문화에 의해 .. 2024. 12. 9.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단군(檀君) [조선왕조실록에 단군(檀君)이란 용어는 총 104회 발견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단군조선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당요唐堯의 무진년(戊辰年, 환기 4865, 신시개천 1565, 단기 원년, BCE 2333)과 동일한 시기로 기록하고 있어 단군세기의 기록 내용과 일치한다. 참고로 삼국유사는 단군의 건국연대를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이 되던 경인(庚寅)으로 기록하고 있다.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았던 조선 유학자들은 중화주의 사관에 영향을 받아서 단군(檀君)과 기자(箕子)를 함께 언급하고 위만조선도 함께 인정하고 있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 송미자세가에 기록된 '武王乃封箕子於朝鮮(무왕내봉기자어조선)'에 따라 기자조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중국에 대한 사대, 모화주의 의식이 여실히 드.. 2024. 12. 8.
우리는 왜 환국의 역사를 밝혀야 하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환국을 신화나 전설로만 치부한다. "7분의 환인들이 3,301년 동안 환국을 다스렸다"는 기록은 현대적 상식과 과학의 잣대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좀 확장해보면, 고대 동양에 깊이 뿌리내린 신선 장수문화의 전통은 이러한 사료를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역사적 맥락을 제공한다. 고대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꿈꾸며 서복을 한반도로 보냈고, 중국의 팔선(八仙)관한 설화는 아직도 중국 문화에 풍부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도 신선 여동빈은 태을금화종지라는 수행서를 남겨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현대 과학의 발전은 신선문화와 불로장생의 꿈들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생명과학의 발.. 2024. 11. 5.
삼국유사 고조선기, 삼성기 상, 하, 단군세기 전문, 환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 전문 [환국은 7세를 전하니, 그 역년이 3,301년이며, 배달국은 18세를 전해, 역년이 1,565년이다. 그리고 단군조선은 47세를 전하였으며 3왕조로 나뉘어, 역년은 총 2,096년이다. 따라서 환국, 배달, 조선으로 이어진 삼성조 시대의 역년을 합하면 총 6,960년으로 한민족의 고대사는 정확히 40년이 빠진 약 7,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래는 한민족의 고대사를 밝히는 열쇠인 일연의 삼국유사 고조선기를 비롯해서 안함로의 삼성기 상, 원동중(천석)의 삼성기 하와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그리고 일십당 이맥의 환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의 한글 번역본을 모은 것이다. 비록 각 사서를 지은 저자들의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연결해서 분석해보면 각각의 내용들이 상호 연관성을 가지.. 2024. 11. 3.
단군세기 서문-해설 [단군세기 서문은 진정으로 역사와 인간, 국가와 정치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는 만고의 명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서문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면, 역사학의 목적, 국가의 존재 이유, 정치의 본질, 그리고 인간 삶의 근본 목적에 대한 깊은 답변을 얻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역사학의 목적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며, 이는 삼신의 도를 통해 국민들이 신성을 회복하고, 천지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영위하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하는 길에는 선비의 기개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사학을 밝히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사학이 분명하지 않으면 선비의 기개를 진작시킬 수 없고, 선비의 기개가 진작되지 못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정치의 법도가 갈라지기 .. 2024. 9. 12.
웅상문화雄常文化-2 [산해경에 “저 숙신肅愼의 나라에 백의민족이 살고 있는데, 큰 나무를 모시고 있어 웅상雄常이라 한다.”라는 글이 실려있다. 이 웅상은 환웅천황의 웅雄 자와 항상 상常 자를 써서 웅상雄常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웅상은 배달을 건국하신 '환웅천황의 성령이 항상 임재해 계신다'는 뜻이다. 환웅은 동서양 모든 제사장과 제왕 문화의 근원이 되는 분이시다. 11세 도해 단군때 ‘고대 배달의 역사 문화 정신을 복원하겠다’지어진 '대시전大始殿'은 원래 '환웅전桓雄殿'인데, 이후 불교가 들어와 불교도들이 석가불을 모시면서 '대웅전大雄殿'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한민족은 거룩한 성산聖山이 있으면 그것을 산상山像, 즉 환웅님이 임재하시는 산이라 하였고, 거대한 나무가 있으면 신단수神檀樹로 삼아 웅상으로 모셨다. .. 2024. 7. 31.
웅상문화雄常文化-1 [동서양 성상聖像문화의 근원은 웅상雄常이다. 웅상문화는 성스러운 ‘국선소도’의 가장 큰 나무를 환웅상으로 모심에서 시작되었다. 삼신오제본기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전한다. "큰 나무를 봉하여 환웅신상으로 삼아 여기에 배례를 올렸다. 이러한 신수神樹를 세속에서 웅상雄常이라 불렀는데, 상常이란 ‘항상 임하여 계신다’는 뜻이다."신시본기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불상이 처음 들어왔을 때 절을 지어 대웅大雄이라 불렀다. 이것은 승려들이 옛 풍속을 따라 그대로 부른 것이요, 본래 승가僧家의 말이 아니다. 또 “승도僧徒와 유생儒生이 모두 낭가郎家에 예속되었다”라고 하였으니 이로써도 불가의 불상은 원래 환웅을 모셨던 대웅전의 웅상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천 문명의 조종]세계가 생겨나고 이 산이 나왔으니 후.. 2024. 7. 31.
조선시대의 천제문화 [이씨조선은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표방하여 중화적 천하관을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천자국의 지위를 버리고 스스로 제후국임을 자처했다. 그 결과 세종 때 원구단이 폐지되고 천자의 의례인 원구의 제천의례를 중단했다. 허나 세조는 본인의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의례의 제도와 절차에 대한 상세한 고증을 거쳐 다시 제천의례를 거행했다. 그러나 이후 공자를 모시는 사림파의 정계진출과 함께 제천의례는 급격히 쇠퇴하여 소멸했고, 국가의례로서 다시 실시된 것은 구한말 조선이 패망하기 직전,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고종 34)이다.소격서는 옥황상제를 비롯한 수많은 신위들을 모시는 도교의 사당이다. 태조 5년 정월에 도교의 형식으로나마 제천 의식을 행할 목적으로 소격서라는 중앙관청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성리학.. 2024. 7. 31.
고려시대의 천제문화 [문헌의 기록상 고려 팔관회는 신라 진흥왕 때 시작된 것으로 고려 말까지 수백 년간 거행된 천신제, 제천행사이다. 즉, 새로운 한해의 시작에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경축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송나라의 서긍徐兢(1091~1153)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왕씨가 나라를 세운 이후에는 산에 의지하여 나라 남쪽에 성을 쌓고 자월子月(음력 11월)을 세수歲首로 삼아 관속官屬을 거느리고 의식에 쓰이는 제물을 준비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에 팔관회는 천령 및 오악과 명산대천, 용신을 섬기는 것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천령은 천신天神일 것이다. 팔관회는 개경에서 매년 11월 15일에 행제行祭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이를 중동팔관회라 불렀다. 그 뒤로 서경에서도 10월에 이틀 동안 팔관회를 개.. 2024. 7. 31.
열국, 사국 시대의 천제문화 [부여는 3월 16일 대영절大迎節에 임금께서 하늘에 제를 올리시고, 연호법烟戶法을 만들어 백성을 살피셨다. 삼한의 옛 풍속에, 10월 상일上日에는 모두가 나라의 큰 축제에 참여하였다. 이때 둥근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 지내고, 땅에 대한 제사는 네모진 언덕에서 지내며, 조상에 대한 제사는 각목角木에서 지냈다. 산상山像과 웅상雄常은 모두 이러한 풍속으로 전해 오는 전통이다. 12월(은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나라의 큰 대회이다.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여러 날 동안 계속하는데 이름하여 영고라 하였다. 이때에 형옥을 깨고 나라 안의 죄수들을 풀어주었다. 삼한의 풍속엔 관경管境을 번영케 하는 일로 백성을 위해 빌어서 재앙을 물리치는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소도에서 올리는 제천 행사는 바로 .. 2024. 7. 31.
삼성조 시대의 천제문화 [동방 한민족의 제천문화는 9천년 한민족의 국통맥을 따라 지속되었다. 환단고기는 환국, 배달, 조선의 제천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날에 환인이 천산天山에 내려와 거처하시며, 천신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셨다. 환인께서 환웅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 부권父權을 세우라' 하셨고, 신시 개천 이래로 매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나라에 큰 축제를 열어 모두 삼신상제님의 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화합하였다. 태호복희씨는 삼신산에 가시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천하天河에서 괘도卦圖를 얻으셨다. 단군왕검께서는 10월 상달에 나라에 큰 제전을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온 백성이 진실로 밝은 모습으로 즐거워하였다.][삼성조 시대의 천제 (환국, 배달, 조선)]『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 2024. 7. 29.
천제문화天祭文化 [9천 년 신교문화의 중심 주제는 천제문화다. 천제 문화를 바탕으로 환국의 광명문화와 홍익인간의 도를 최초로 동방에 전수하신 분은 환웅천황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임금과 백성이 한마음이 되어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천제문화는 동방 한민족 고유의 하나님 신앙의 정수인 것이다. 단군세기의 6세 달문단군조에 보면, ‘제자祭者는 오교지원五敎之源이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하늘에 천제를 올리는 것이 다섯 가지 가르침, 즉 모든 인간 교육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천제天祭문화는 9천 년 한민족의 국통맥과 함께 일관되게 전해온 생활문화의 중심 주제였으며, 이 천제문화가 정성스럽게 시행되었을 때 국가는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천제문화를 상실하면서 민족의 주체의식이 쇠퇴했고, 국운도 기울기 시작했던 것.. 2024. 7. 28.
신교란 무엇인가? (2) [인류의 모든 주요 동서 문명은 모두 신교로 시작됐다. 중국 은나라의 갑골문과 점치는 행위, 그리스의 오라클과 신탁, 이 모두 신교이다. 독일의 신학자 칼바이트(H. Kalweit)는 “태고시대에 도가 높은 화이트 샤만들은 영이 아니라 이 육체를 가지고 직접 천상우주를 오르내렸다.”라고 말했다. 또한 《주역》의 20번째 괘 ‘풍지관(風地觀)’ 단사에 ‘옛 성인들은 신교로써 모든 걸 이루었다’고 신교를 정의한다. 신교는 신의 가르침으로 사물을 보고, 깨닫고, 제도를 만들며, 역사를 판단하는 것이다.  한민족의 문화정신은 신교의 우주관과 삼신문화를 근거로 하늘과 땅, 인간이 하나의 근원인 광명에서 분화된 존재들임을 깨닫고, 하늘, 땅, 인간의 광명문화를 계승해 온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늘을 아버지로, 땅.. 2024. 7. 27.
신교란 무엇인가? (1) [신교神敎는 뭇 종교의 조상이며 모태가 되는 진리이다. 신교는 환국시대 이래로 우리 조상들이 국교로 받들어 온 한민족의 생활문화이다. 신교라는 말은 원래 『규원사화』의 ‘이신설교以神設敎’에서 유래했는데, 『단군세기』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한다. 단군세기 가륵단군 조에 삼랑 을보륵은 단군에게 "환웅천황께서 펼치신 신시 개천의 도는 신교로써 가르침을 베풀고, 나를 알아 자립을 구하며, 나를 비워 만물을 잘 생존케 하여..."라고 전하는데, 이 때 ‘이신시교以神施敎’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신교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우리 한민족이 고대로부터 천지의 무수한 신명들을 그 위격에 관계없이 모두 극진히 대접해 온 다신 공경문화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전역에 남아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문화, 솟대, 무巫.. 2024. 7. 26.
단군세기-전문 [[[국조단군왕검 재위 93년]]]『고기古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왕검王儉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시요, 어머니는 웅씨왕熊氏王의 따님이다. 신묘(환기 4828, 신시개천 1528, BCE 2370)년 5월 2일 인시에 박달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태어나시니, 신인神人의 덕이 있어 원근 사람들이 모두 경외敬畏하여 따랐다. 14세 되던 갑진(신시개천 1541, BCE 2357)년에 웅씨왕이 그 신성함을 듣고 비왕裨王으로 천거하여 ‘대읍국大邑國*’의 국사를 맡아 다스리게 하였다. 무진년 당요唐堯때에 단국檀國에서 돌아와 아사달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터에 이르시니 온 나라 백성이 천제의 아들로 추대하였다. 구환족九桓族을 합쳐서 하나로 통일하시고 신성한 덕화가 멀리까지 미치니 이분이 단군왕검이시다. 성조께서 비왕으.. 2024. 6. 17.
삼한관경본기-전문 배달을 계승한 단군왕검, 송화강 아사달에서 건국1. 환웅천황의 제천 행사 태백산(백두산)이 북쪽으로 달려가 우뚝 솟은 장엄한 모습이 비서갑裵西岬 경계에 까지 이어졌고, 그곳에 물을 등지고, 산을 안고서 다시 꺾어져 감돈 곳이 있는데, 바로 대일왕大日王(환웅 천황)께서 천제를 올리시던 곳이다. 세상에 이런 말이 전해 온다. 환웅천황이 이곳에 순행하여 머무시면서 사냥하여 제사 지내실 때, 풍백은 '천부경天符經'을 거울에 새겨 진상하고, 우사는 북에 맞추어 둥글게 춤을 추고, 운사는 백 명을 칼로 무장시켜 제단 밑에 늘어서서 지켰다.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리러 산에 가실 때 의장이 이처럼 성대하고 엄숙하였다. 이 산의 이름이 불함不成이다. 지금은 완달完達이라 하는데, 그 음이 비슷하다. 2. 비서갑의 초대 왕.. 2024. 6. 16.
신시본기-전문 1. 배달 개창기의 취화법  진역유기震域留記의 신시기神市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웅천황께서 사람의 거처가 이미 완비되고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은 것을 보시고, 고시례高矢禮로 하여금 음식과 양육[掌養]의 일을 전담하게 하셨다. 이분이 주곡主縠 벼슬을 맡았으나, 당시 씨 뿌리고 거두는 법이 갖추어지지 못하였고 또 불씨[火種]가 없어 걱정하였다.어느 날 우연히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높고 큰 나무가 말라 황량하게 줄기를 드러내고 오래된 나무 줄기와 말라버린 가지가 서로 얽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오랫동안 말없이 우두커니 서서 깊이 생각하는데 홀연 거센 바람이 숲 속에 불어닥치니, 땅 위의 크고 작은 구멍이 성내어 부르짖고 오래된 나무줄기가 서로 마찰하여 불꽃을 일으켰다. 불꽃은 번쩍번쩍 빛.. 2024. 6. 10.
환국본기-전문 1.  인류 창세 문명의 아버지, 환인천제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옛날에 환인이 계셨다. 천산에 내려와 거처하시며 천신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셨다. 백성의 목숨을 안정되게 보살피고, 세상의 뭇 일을 겸하여 다스리셨다. 사람들이 비록 들에 거처하나 벌레와 짐승의 해가 없었고, 무리지어 행동해도 원망하거나 반역하는 근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사귐에 친하고 멀리하는 구별이 없고,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고, 남자와 여자의 권리가 평등하고, 노인과 젊은이가 소임을 나누었다.당시에는 비록 법규와 명령이 없었으나 백성들 스스로가 화평하고 즐거워하며 도리에 순종하였고, 병을 제거하고 원한을 풀어 주며, 다친 자를 돕고 약한 자를 구제하니, 원한을 품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당시.. 2024. 6. 10.
일십당 이맥李陌-태백일사 저자 태백일사를 지은 이맥李陌(1455~1528) ) (삼신오제본기 전문보기) (소도경전 전문보기)조선 초기의 문신인 이맥은 행촌 이암의 현손玄孫으로 자는 정부井夫, 호는 일십당一十堂이다. 1474년(성종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학문에만 힘쓰다가 1498년(연산군 4) 44세 때 비로소 식년시에 급제하였다. 성균관 전적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는데, 장숙용張淑容(장녹수)이 연산군의 총애를 믿고 분에 넘치게 재물을 탐하고 사치를 일삼자 여러 차례 탄핵 상소를 올리다가 50세(1504)에 충청도 괴산에 유배되었다.이때의 귀양살이에 대해 이맥은 '근신해야 할 처지였기에 아주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고 하였다. 이맥은 그 먼 곳으로 집안에서 간직하던 책 상자를 가지고 갔다. 그 상자에 담긴, .. 2024. 6. 10.
소도경전본훈-전문 1. 삼신상제 제천행사를 참관한 선인 발귀리의 송가신시 시대에 선인 발귀리發貴理가 있었다. 대호大皞(태호太皞, 태호복희太昊伏羲)와 동문수학하였는데, 도를 통한 후에 방저方渚와 풍산風山사이를 유람하며 자못 명성을 얻었다. 아사달에 와서 제천 행사를 보고 예식이 끝난 후에 찬송하는 글을 지었다. 그 글은 이러하다. 만물의 큰 시원[大一 ]이 되는 지극한 생명이여! 이를 양기良氣라 부르나니 무無와 유有가 혼연일체로 존재하고 텅 범[虛]과 꽉 참[粗]이 오묘하구나. 삼(三神)은 일(一神)로 본체[體]를 삼고 일(一神)은 삼(三神)으로 작용[用]을 삼으니 무와 유, 텅 빔과 꽉 참(정신과 물질)이 오묘하게 하나로 순환하고 삼신의 본체와 작용은 둘이 아니로다. 우주의 큰 빔 속에 밝음[光]이 있으니, 이것이 신神의.. 2024. 6. 9.
삼신오제본기-전문 1. 우주의 주제자 삼신상제님의 조화권능표훈천사表訓天詞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대시大始에 상하와 동서남북 사방에는 일찍이 암흑이 보이지 않았고, 언제나 오직 한 광명뿐이었다. 천상 세계에 ‘문득’ 삼신三神이 계셨으니 곧 한 분 상제님[三神卽一上帝]이시다. 주체는 일신(한 분 상제님)이시니, 각기 따로 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용으로 보면 삼신이시다. 삼신三神은 조화로 만물을 빚어 내고,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능력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지만, 그 형체를 나타내지 않으신다. 가장 높고 높은 하늘에 앉아계시니, 그곳은 천만억토이다. 삼신은 항상 광명을 크게 방출하고, 신묘한 기운을 크게 발하며, 상서로운 기운을 크게 내리신다. 기를 불어넣어 만유를 감싸고, 열을 내뿜어 만물의 종자를 자라게 하며, 신명神明들.. 2024. 6. 9.
북부여기, 가섭원 부여기-전문 [고조선의 국통 계승자, 해모수단군 즉위] 해모수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술(환기 6959, 신시개천 3659, 단기 2095, BCE 239)년이다. 임금께서는 본래 타고난 기품이 영웅의 기상으로 씩씩하시고, 신령한 자태는 사람을 압도하여 바라보면 마치 천왕랑天王郞 같았다. 23세에 천명을 좇아 내려오시니, 이때는 47세 고열가단군 재위 57년(단기 2095)으로 임술년 4월 8일이었다. 임금께서 웅심산熊心山에서 기병하여 난빈蘭濱에 제실策室을 지으셨다. 머리에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 용광검龍光劍을 찼으며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다니시니, 따르는 사람이 5백여 명이었다. 아침이 되면 정사를 돌보시고, 날이 저물면 하늘의 뜻에 따르셨다. 이 해에 이르러 즉위하셨다.재위 2년 계해(단기 2096, BCE 238.. 2024. 6. 8.
복애 범장范樟-북부여기 저자 『북부여기』를 지은 범장范樟 (?~?) (북부여기 전문 보기)고려말에 금성錦城(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난 범장은 여말 충신으로 잘 알려진 정몽주의 제자였다고 한다. 호는 복애伏崖이고, 복애거사로도 불리었다.범장의 호인 복애伏崖가 '휴애休崖'의 오기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증손 범석희范錫熙가 필사한 범장의 저서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는 복애를 범장의 호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간행한 『조선인명사서朝鮮人名辭書』 (1937)에도 "자는 여명보汝明甫, 호는 복애伏崖"라 기록되어 있다. (범석희는 고려말에 참지參知를 지냈다. 그러므로 범석희는, 조선시대 초까지 산 증조부 범장과 상당 기간을 함께 산 것이다. 생전에 함께 생활한 증손자가 증조부의 호를 잘못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2024. 6. 8.
행촌 이암李嵒-단군세기 저자 단군세기를 지은 이암李嵒 (1297~1364) (단군세기 서문 보기)「고려사」 「열전」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인물인 행촌 이암은 원나라의 간섭을 받기 시작한 고려의 25세 충렬왕 때(1297) 경상도 고성에서 고성 이씨 이우李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행촌이란 호는 자신이 유배되었던 강화도의 마을 이름을 따서 지었다.이암은 뛰어난 학자와 관리를 배출한 고성 이씨 집안의 9세 손이다. 증조부 이진李瑨은 고종 때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 학사를 역임하였고, 조부 이존비李尊庇 역시 과거에 급제하여 문한文輪학사, 진현관進賢館, 대제학大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부친 이우李瑀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으나 문음제를 통해 경상도 김해와 강원도 회양 부사를 지냈다.「태백일사」 「고려국본기」에 의하면, 이존비는 환국과 배달의 역.. 2024. 6. 6.
원동중元童仲-삼성기 하 저자 『삼성기』하를 지은 원동중元童仲 (삼성기 하 전문보기) 원동중은 세조가 팔도 관찰사에게 수거 하도록 유시한 도서 목록(세조실록)에 안함로와 더불어 『삼성기』의 저자로 기록되어 있다. 원씨는 3개 파가 있는데 어디에도 동중이라는 자字나 호로 나오는 인물은 없었다. 대신 원씨 가문에 “원동중이 원천석이다”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원천석(1330- ?)은 여말선초의 학자이자 문인이다. 고려 말에 진사가 되었으나 혼란한 정계를 개탄하며 은둔생활을 하였고, ‘유교 · 불교 · 도교는 원래 한 이치이지만, 각기 맡은 바 업業이 있다’는 삼교일리론三敎一理論을 주장했다고 한다. 『삼성기』상과 『삼성기』하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마치 두 사람이 서로 약속을 하고 쓴 것처럼 되어 았다. 안함로의 『삼성기』가 먼저 발간되고.. 2024. 6. 5.
삼성기 하-전문 1. 인류의 시조와 동서 문명의 시원 국가 인류의 조상은 나반那般이시다. 나반께서 아만阿曼과 처음 만나신 곳은 아이사비阿耳斯庇이다. 두 분이 꿈에 천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혼례를 올리시니 환족의 모든 족속[九桓族]이 그 후손이다.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 백성들은 풍요로웠고 인구도 많았다. 처음에 환인桓仁께서 천산에 머무시며 도를 깨쳐 장생하시니[得道長生] 몸에는 병이 없으셨다. 하늘(삼신상제님)을 대행하여 널리 교화를 베풀어[代天宣化] 사람들로 하여금 싸움이 없게 하셨다. 모두 힘을 합해 열심히 일하여 스스로 굶주림과 추위를 사라지게 하였다.[환국의 통치자와 열 두 나라 연방]초대 안파견환인에서 2세 혁서환인, 3세 고시리환인, 4세 주우양환인, 5세 석제임환인, 6세 구을리환인을 .. 2024. 6. 5.
삼성기 상-전문 1. 환인천제의 환국 개창우리 환족의나라 세움이 가장 오래 되었다.하느님[一神]은 사백력斯白力의 하늘(가장 밝은 하늘)에 계시며 홀로 우주의 조화를 부리는 신神이시다. 광명光明으로 온 우주를 비추고, 대권능의 조화[權化]로 만물을 낳으며, 영원토록 사시며[長生久視] 항상 즐거움을 누리신다. 지극한 조화기운[至氣]을 타고 노니시고 스스로 그러함[道]에 오묘하게 부합하며, 형상 없이 나타나고, 함이 없이 만물을 지으시며, 말없이 행하신다.어느 날 동녀동남 800명을 흑수와 백산의 땅에 내려 보내시니, 이에 환인께서 만백성의 우두머리[監群]가 되어 천계天界(천산 동방의 환국)에 거주하시며 돌을 부딪쳐서 불을 피워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시니 이 나라를 환국(광명의 나라)이라 했다. 이 환국을 다스.. 2024. 6. 4.
안함로安含老-삼성기 상 저자 『삼성기』상을 지은 안함로安含老 (579~640) (삼성기 상 전문보기)안함로는 신라 진평왕 때의 도통한 승려이다. 성은 김씨이고, 이찬伊飡을 지낸 시부時賦의 손자로 안홍安弘 법사, 안함安含 법사, 안함태安含殆 화상 등으로 불린다. 신라의 십성十聖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고려 고종 때의 승려 각훈覺訓이 삼국 시대 이래 유명한 고승들의 전기를 정리한 「해동고승전」은 안함로의 생애를 이렇게 전한다.   안함로는 22세(600, 진평왕 22)때 승려 혜숙惠宿과 함께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되돌아왔다. 이듬해 칙명을 받고 법사가 되어 수나라에서 온 사신과 함께 수나라로 건너 가서 문제文帝(재위 581~604)를 직접 만났다. 그곳 대흥사大興寺에 머물며 불교 경전과 진문眞文(부처나 보살이 설교.. 2024. 6. 4.
성명정-인간 몸 속에 깃든 삼신의 조화 대광명 [도가에서는 정精·기氣·신神을 3가지 보배로 여기며, 정·기·신으로 수행의 원리를 설명한다. 정·기·신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서로 기르고 협동하는데, 정과 기는 서로 길러 준다. 그리고 정기精氣의 상호 작용에 따라서 발휘되는 것이 신神이다. 따라서 정기精氣가 충실한 사람은 신神의 기능도 왕성하지만, 정기가 부족한 사람은 신의 기능도 부실한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수행 생활이란 음식을 적절하게 섭취하여 정精을 잘 기르고 휴식과 운동, 잠을 절도 있게 하여 기氣를 보존하며, 정신[神]을 산란하게 하지 않고 하나로 통일 시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기·신 수행법의 원형이 배달국의 삼일신고를 바탕으로 제시된 한민족의 삼신수행법이다. 성명정(性命精 ), 심기신(心氣身), 감식촉(感息.. 2024. 5. 28.
고대 한민족의 수행문화 [환단고기의 삼성기 상에 呪願有功(주원유공), 즉 환웅께서 주문을 읽어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하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듯이 고대 배달의 강역이었던 홍산지역, 내몽골 적봉시 오한기에서 5,300여 년 전으로 추정되는 흙으로 구운 남신상이 발굴되었다. 이 남신상은 수행을 하듯 반가부좌를 틀고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마치 주문을 읽는 듯 입을 벌리고 있다. 주문수행은 지금은 기억을 상실해 일반적으로 생소하게 생각하지만,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활용한 한민족 고유의 전통 수행법이다. 주문은 신성한 음절을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그 주문의 영적 힘이 내 몸에 축적되고, 그 주력으로 내 몸과 영혼 속의 어두운 기운들을 몰아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주문의 힘으로 내 안에서 신성이 열리고,.. 2024.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