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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삼한관경본기

삼한관경 번한세가9-70세 번조선 왕 기후

by 광명인 2024. 2. 17.

안촌홀은 번한성인 안덕향, 지금의 탕지보, 지금의 하북성 북경 근처에 위치
좌측 환단고기가 전하는 연나라 역사지도, 우측 현재 중국이 전세계에 알리는 연나라 역사지도

4. 70세 번조선 왕이 된 수유 사람 기후

신사(단기 1994, BCE 340)년에 아들 수한水韓(69세 왕)이 즉위하였다. 임오(단기 1995, BCE 339)년연나라가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 쳐들어와 안촌홀安寸忽(번한성인 안덕향, 지금의 탕지보)을 공격하고 험독險瀆까지 쳐들어왔다. 이때 수유 사람 [須臾人] 기후箕詡가 젊은 청년[子弟] 5천 명을 거느리고 와서 전쟁을 도우니 군세가 조금 진작되었다. 이에 진한, 번한의 군사와 함께 협공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또 한 무리의 군사를 나누어 보내 계성薊城(연나라 수도, 지금의 하북성 북경) 남쪽에서 싸우려 하니, 연나라가 두려워하여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고 공자公子를 인질로 보냈다

[번조선의 왕통 단절과 연나라의 강성]

무술(단기 2011, BCE 323)년수한이 세상을 떠나니 후사가 없었다. 그리하여 기후가 명을 받들어 군령을 대행하였다.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 하례하였다. 이 해에 연이 왕이라 칭하고 장차 침범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기후箕詡도 명을 받들어 왕호를 써서 (70세) 번조선 왕이 되고, 비로소 번한성番汗城에 머물면서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4. 七十世 書朝蘇 王이 된 須臾 사람 箕詡

辛巳에 子水韓이 立하니라 壬午에 燕이倍道入寇하야 攻安寸忽하고 又入險瀆이어늘 須臾人箕詡가 以子弟五千人으로 來助戰事하니 於是에 軍勢稍振이라 乃與眞番二韓之兵으로 夾擊大破之하고 又分遣偏師하야 將戰於薊城之南이어늘 燕이 懼하야 遣使乃謝하고 以公子로 爲質하니라.

番朝鮮의 王統 斷絕과 燕의 强盛
戊戌에 水韓이 薨하니 無嗣라 於是에 箕詡가 以命으로 代行軍令하니 燕이 遣使賀之하니라. 是歲에 燕이 稱王하고 將來侵이라가 未果하고 箕詡도 亦承命正號하야 爲番朝鮮王하고 始居番汗城하야 以備不虞하니라.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안촌홀安寸忽: 번조선의 수도인 안덕향(번한성). 지금 의 하북성 개평 동북 70리에 있는 탕지보이고, 고구려 때의 안시성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4에는 "안시성은 옛 안촌홀이다"고 하였다.

*계성薊城은 연나라 수도, 지금의 하북성 북경

*번한성: 번조선의 수도. 지금의 하북성 개평 동북쪽 70리에 위치. 위 삼국지환선비 동이전의 주석에는 “(BCE 300년경)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 서쪽 땅 2천여 리를 빼앗은 뒤에 만번한으로 국경을 삼았다"하였는데, 번한성은 바로 「위략」에 기록된 고조선과 연나라의 국경인 만번한 번한 지역이다.구려 때 유명한 안시성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고조선에 인질로 잡혀 있었던 진개秦開
번조선과 연나라의 전쟁 결과, 번조선이 승리함에 따라 연나라의 공자와 장수 진개를 인질로 붙잡아 두었다. 그러나 진개는 도망쳐 귀국한 후에 다시 쳐들어와서 번조선의 서쪽 변방 모퉁이 땅을 탈취 하였다(BCE 300년경). 사마천이 중국 정사의 머리인 『사기』에서 이러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흉노전」에 실음으로써 고조선의 국호뿐만 아니라 강성했던 국력을 모두 은폐시켜 버린 것은 중대한 역사적 음모이다.

번조선왕 기후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의 주석으로 인용한 위략에 "옛적 기자의 후손인 조선후朝鮮候는, 주周나라가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연燕나라가 왕을 자칭하면서 동쪽으로 침략하려 하자, 그 또한 왕을 자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공격하여 주나라 왕실을 받들려고 하였다[昔箕子之後朝鮮侯,見周衰, 燕自尊為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은, 중화의 대국주의 사관이 고조선을 주나라에 종속된 제후국으로 날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번조선의 말기 왕들(70세 기후~75세 기준)을 기자의 직계 후손으로 조작하고 동시에 그들이 마치 고조선 전체의 단군 천왕인 양 왜곡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태백일사의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下는, 번조선의 제후국으로서 지금의 하북성 난하 유역에 있던 수유국인 기후가 70세 번조선 왕으로 즉위할 당시의 대내외적인 정치 상황을 기록함으로써 중화 사가들이 멋대로 왜곡하고 날조한 사실을 처음으로 명확히 밝혀 준다.


참조자료: 현 동북공정에 의한 중국의 역사서와 국내 강단사학의 역사서를 바탕으로 제작된 역사 유투버 역사왜곡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