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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삼한관경본기

삼한관경 번한세가3-초대 번한 왕 치두남

by 광명인 2024. 2. 11.

낭야대에서 동쪽을 바라보는 진시황, 진왕이 서복에게 불사약을 구해오라고 명을 내리는 모습

3. 초대 번한 왕은 치우천황의 후손 치두남

이때 단군왕검께서 치우천황의 후손 중에서 지모와 용력이 뛰어난 자를 택하여 번한 왕으로 임명하고 험독險瀆에 수도를 세우시니, 지금은 왕검성이라 칭한다.

[요수 일대에 쌓은 12성]

치두남蚩頭男치우천황의 후손이다. 용맹과 지혜로 세상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단군께서 불러 만나 보시고 기특하게 여겨 곧 번한 왕으로 임명하고 아울러 우순의 정치를 감독하게 하셨다. 경자(단기 33, BCE 2301)년에, 요수遼水 주위에 12성을 쌓으니 험독險瀆, 영지令支, 탕지湯池, 용도桶道, 거용渠鄘, 한성汗城, 개평蓋平, 대방帶方, 백제百濟, 장령長嶺, 갈산碣山, 여성黎城이 그것이다. 치두남이 세상을 뜨자 아들 낭야琅邪(2세 왕)가 즉위하였다. 이 해 경인(단기 83, BCE 2251)년 3월에 가한성可汗城을 개축하여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가한성은 일명 낭야성琅城인데, 번한 왕 낭야가 쌓았으므로 낭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태산과 회수. 사수 지역 삼신 신앙의 유래]

갑술(단기 67, BCE 2267)년에, 부루태자가 명을 받고 특사로 도산塗山에 갈 때 도중에 낭야琅邪에 들러 반 달 동안 머무르며 백성의 사정을 묻고 들었다. 이때 우순사악四岳을 거느리고 치수에 대한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번한 왕이 태자의 명으로 경내境内에 경당扃堂을 크게 일으키고, 아울러 태산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이로부터 삼신을 받드는 옛 풍속회수淮水와 사수泗水 지역 일대에 서 크게 행하여졌다.

3. 初代 番韓 王은 蚩尤天皇의 後孫 蚩頭男

於是에 檀君王儉이 擇蚩尤後孫中에 有智謀勇力者하사 爲番韓하사 立府險瀆하시니 今亦稱王儉城也라.

遼水 一帶에 쌓은 十二城
蚩頭男은 蚩尤天王之後也라 以勇智로 著聞於世러니 檀君이 乃召見而奇之하사 卽拜爲番韓하시고 兼帶監虞之政하시니라 庚子에 築遼中十二城하니 險瀆.令支·湯池·桶道.渠鄘·汗城·蓋平·帶方·百濟·長嶺·碣山·黎城이 是也라. 頭男이 薨하니 子琅邪가 立하니라 是歲庚寅三月에 改築可汗城하야 以備不虞하니라 可汗城은 一名琅邪城이니 以番韓琅邪의 所築故로 得名也라.

泰山과 淮水·泗水 地域 三神 信仰의 由來
甲戌에 太子扶婁가 以命으로 往使塗山할새 路次琅邪하야 留居半月하야 聽聞民情하니 虞舜이 亦率四岳하야 報治水諸事하니라 番韓이 以太子命으로 令境内하야 大興扃堂하고 祭三神于泰山하니 自是로 三神古俗이 大行于淮泗之間也라.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험독險瀆: 번한의 수도로, 지금의 하북성 개평 동북쪽 70리에 있는 탕지보를 말한다.

*낭야성琅耶城: 지금의 산동성 제성현 동남에 있다. 원명은 가한성, 번한의 2세 낭야왕이 개축하였다. 일명 남야성이라 하였는데, 일찍이 오늘의 산동·안휘·강소·절강성 일대에 진출하여 살던 동이 조선족을 나누어 다스린 단군조선 분조의 수도였다 (최동, 조선상고사 참조).

* 낭야대琅耶臺: 산동성 교남시膠南市위치, 단군조선에서 중국 왕조를 감독하던 감우소藍盧所가 있던 곳으로 동방의 신교神敎 문화가 남아 있다. 진왕秦王 정政이 중국을 통일한 후 이곳에 머물러 불사약을 구했다. 진왕이 동방을 향해 손짓을 하며 신선의 도를 구하는 동상의 모습에서 동방 신교 종주문화의 위용을 느낄 수있다.


요遼: 지금의 하북성 난하를 말한다.

사악四岳: 요순 시대의 관직 이름. 큰 산 네 곳을 나누어 관장한 제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