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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삼한관경본기

삼한관경 번한세가10-번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

by 광명인 2024. 2. 18.


5. 기비의 도움으로 해모수(북부여 시조)가 대권을 잡아 고조선을 계승함


기후가 세상을 뜨자 병오(단기 2019, BCE 315)년에 아들 기욱箕煜(71 세 왕)이 즉위하였다.
기욱이 세상을 떠나고 신미(단기 2044, BCE 290) 년에 아들 기석箕釋(72세 왕)이 즉위하였다.
이 해에 각 주와 군에 명하여 어질고 현명한 인재를 추천하게 하였는데, 일시에 선발된 자 가 270명이었다.

기묘(단기 2052, BCE 282)년에 번한 왕이 친히 교외에서 밭을 갈았다. 
을유(단기 2058, BCE 276)년에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기석이 세상을 떠나고 경술(단기 2083, BCE 251)년에 아들 기윤箕潤(73세 왕)이 즉위하였다.
기윤이 세상을 뜨자 기사(단기 2102, BCE 232)년에 아들 기비箕丕(74세 왕)가 즉위하였다.


[번조선의 마지막 75세 왕, 기준]

일찍이 기비가 종실宗室 사람 해모수와 함께 몰래 옥새를 바꿔 치려는 (새 나라를 열자는) 약속을 하고, 힘을 다해 천왕이 되는 것을 도와 주었다. 해모수로 하여금 능히 대권을 잡을 수 있게 한 사람은 오직 기비箕丕 그 사람이었다. 기비가 세상을 떠나고 경진(단기 2113, BCE 221)년에 아들 기준箕準(75세 왕)이 즉위하였다. 정미(단기 2140, BCE 194)년에 떠돌이 도적[流賊] 위만衛滿에게 속아 패하여 마침내 배를 타고 바다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5. 箕丕의 도움으로 解慕漱(北夫餘 始祖)가 大權을 잡아 古朝鮮을 繼承함

箕詡가 薨하니 丙午에 子箕煜이 立하니라
薨하니 辛未에 子箕釋이 立하니라
是歲에 命州郡하야 舉賢良하니 一時被選者가 二百七十人이라
己卯에 番韓이 親耕于郊하고 乙酉에 燕이 遣使納貢하니라.
箕釋이 薨하니 庚戌에 子箕潤이 立하니라
薨하니 己巳에 子箕丕가 立하니라

番朝鮮의 마지막 七十五世 王, 箕準
初에 箕丕가 與宗室解慕漱로 密有易璽之約하고 勤贊佐命하니 使解慕漱로 能渥大權者는 惟箕丕其人也라. 箕丕가 薨하니 庚辰에 子箕準이 立하니라. 丁未에 爲流賊衛滿所誘敗하야 遂入海而不還하니라.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해모수: 해모수는 한민족 고대사의 잃어버린 고리, 북부여의 시조이다. 단군조선의 47세 고열가 단군께서 제위를 버리고 아사달에 은거하자(BCE 238) 2,096년 동안 장구하게 지속된 단군조선의 삼한관경 체제는 마침내 그 막을 내리고, 과도기로서 오가의 공화정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종실인 해모수가 웅심산에서 일어나(BCE 239) 마침내 6년간의 공화정을 철폐하고(BCE 232) 단군조선의 대통을 이어 나라 이름을 북부여 하였다. 북부여라는 국호는 단군조선의 44세 구물단군께서 도읍을 장당경으로 옮기면서 국호를 조선에서 대부여로 바꾼데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시조 해모수단군이 나라 이름을 북부여로 정한 것은 대부여 곧 고조선의 정신과 법통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역사의식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북부여의 정통을 이어받은 고구려도 해모수의 둘째 아들 고구려 고진의 증손인 고주몽이 "나는 북부여 천제의 아들이다"(광개토대왕비문)라고 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북부여 계승 의식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고조선- 북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한민족사의 국통은 정신적인 정통맥일 뿐만 아니라, 동일한 선령의 혈맥을 타고 발전해 온 것이다.

*위만의 번조선 찬탈과 위만정권의 성격: 위만은 한漢나라의 제후국인 연燕나라 왕 노관 부하였다.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하자, 위만은 번조선의 75세 마지막 왕 기준에게 망명하였다(BCE 195). 준이 위만을 박사로 임명하고 100리 땅을 주어 서쪽의 변방을 수비하게 하였다. 그러나 위만은 몰래 일당을 규합하여 전투 태세를 갖춘 다음, 준왕에게 한나라 군사가 열 길[十路]로 나누어 쳐들어온다고 거짓으로 고하였다. 그리고 왕검성(지금의 하북성 창려)을 방비한다는 핑계로 대군을 이끌고 물밀듯이 왕검성으로 들이닥치니, 준왕은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하였다(BCE 194). 위만은 이러한 간교한 술책으로 북부여의 제후국인 번조선을 멸망시키고 마침내 난하 · 요하 사이 지역에 소위 '위만조선'(BCE 194~ BCE 108)을 건설하였다. 종래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고조선·위만조선·한사군이 동일한 지역(한반도 북부)에서 차례로 교체된 것으로 가르쳐 왔으나, 위만조선은 한낱 '변방 침략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위만조선을 한국사의 주류에서 하루 속히 완전 추방하고 이제는 사대 식민주의 사학에 의해 굴절되고 왜곡 말살된 한국사의 정통맥과 민족사 본래의 뿌리를 복원·재정립하여 대한사관(한민족 정통 주체 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새로이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