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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삼한관경본기

삼한관경-번한세가-1

by 광명인 2024. 2. 9.

번한세가 상
1. 요순은 단군조선의 제후
[요임금이 양위한 배경]

치우천황께서 서쪽으로 탁예涿芮를 정벌하고, 남쪽으로 회대淮岱(회수와 태산)를 평정하여 산을 헤치고 길을 내시니, 그 영토가 만 리 였다. 단군왕검 때는 당요唐堯(당나라 요임금)와 같은 때인데, 의 덕이 갈수록 쇠하여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천왕(단군왕검)께서 우순虞舜(우나라 순임금)에게 명령하여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 군사를 보내 주둔시키셨다. 우순과 함께 당요를 정벌할 것을 언약하시니, 요堯임금이 힘에 굴복하고 순舜에게 의탁하여 목숨을 보존하고자 나라를 넘겨 주었다[國讓]. 이때 순舜 부자와 형제가 다시 돌아가 한집안을 이루니, 대저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함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番韓世家 上
1. 堯.舜은 檀君朝鮮의 諸候
堯임금이 讓位한 背景

蚩尤天王이 西征涿芮하시고 南平淮岱하사 披山通道하시니 地廣萬里라 至檀君王儉하야 與唐堯로 並世하니 堯德이 益衰하야 來與爭地不休라. 天王이 乃命虞舜하사 分土而治하시고 遣兵而屯하사 約以共伐唐堯하시니 堯乃力屈하야 依舜而保命하야 以國讓하니라. 於是에 舜之父子兄弟가 復歸同家하니 盖爲國之道는 孝悌爲先이라.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탁예涿芮: 하북성 탁록과 산서성 예성현芮城縣을 말한다. 예芮는 섬서성 대려현 조읍성朝邑城 남쪽으로도 볼 수 있다. 이곳은 주 문왕 때 건립한 예국芮國이 있던 곳이다. 

*국양國讓: 요와 순의 소위 선양禪讓은 알려진 것과 다르다. 

가장 이상적인 정권교체의 모델로 알려진 당나라 요임금에서 우나라 순임금으로 선양(禪讓)한 소위 '요순선양설'의 실체는 거짓역사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는 없었고, 어질고 착한 임금이 나라를 다스려 태평성대의 대명사가 된 요순시대는 중국 유학자들이 '이제삼왕' 중 특히 당나라 요임금과 우나라 순임금을 신성화하고 미화한 것입니다.
 
 '이제삼왕'의 첫 번째 당(唐)나라 요임금은 고조선 초대 신인 단군왕검과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중국은 오랫동안 중화의 역사는 높이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주변국 오랑캐의 역사는 깎아내리면서 간략하게 기록하는 역시 기록 원칙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의 역사서가 모두 당나라 요임금에서 우나라 순임금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고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약 1,700여 년 전 중국 하남성 인근에서 발견된 역사서인 <죽서기년>에는 "순임금이 요임금을 가두고 아들 단주(요임금의 아들)도 못 만나게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춘추전국시대의 순자와 한비자 역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라고 한 소위 '요순선양설'을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순자는 <정론正論>편에서 "요순선양은 허언이라, 이는 소견이 천박한 자가 전한 것으로, 견문이 좁고 적은 자의 설(說)이다."라고 했고, <한비자 - 설의說疑>에서는 "순이 요를 협박하고, 우가 순을 협박하고, 탕이 걸을 협박하고, 무왕이 주를 정벌한 이 4인의 왕자(王者)는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한 것이다."라고 비판하며 거짓 역사의 실체를 밝혔습니다.
 
7세기 중국 당나라의 역사학자 유지기가 저술한 <사통史通>에서는 <급총쇄어汲冢瑣語>를 인용해 "순이 요를 평양으로 내쫓았다."라고 했습니다. 태평성대의 대명사가 된 요순시대는 미화를 넘어 조작된 역사이며, 근대 중국의 일부 학자들도 '요순선양설'의 실체는 춘추전국시대 묵가가 역사를 왜곡해 만든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출처: '요순선양설'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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