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려 국통의 뿌리 - 북부여 해모수
고구려의 선조는 해모수로부터 나왔는데, 해모수의 고향이 또한 그 땅(고구려地名)이다.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해모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일찍이 웅심산熊心山(검마산)에서 사셨다. 부여의 옛 도읍(백악산 아사달)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무리의 추대를 받아 드디어 나라를 세워 왕이 되셨다. 이분이 부여의 시조이시다. 머리에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 용광검龍光劍을 차고,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다니시니, 따르는 자가 백여 명이었다. 아침이 되면 정사를 돌보고 저물면 등천하셨다. 특별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나라 안이 저절로 잘 다스려지고 산에는 도적이 없고 들에는 벼와 곡식이 가득하였다. 나라에 큰 일이 없고 백성도 태평세월을 누렸다. 해모수단군께서 처음 내려온 것은 임술(신시기천 3659, 단기 2095, 고열가단군 57, BCE 239)년 4월 8일로 진秦나라 왕 영정嬴政 8년이다.
1. 高句麗 國統의 뿌리- 北夫餘 解慕漱
高句麗之先이 出自解慕漱하시니 解慕漱之母鄉이 亦其地也라.
朝代記에 曰 "解慕漱는 從天而降하사 嘗居于熊心山이라가 起兵於夫餘古都하시고 爲衆所推하야 遂立國稱王하시니 是謂夫餘始祖也시니라. 着烏羽冠하시고 佩龍光劍하시고 乘五龍車하시니 從者百餘人이오 朝則聽事하시고 暮則登天하시니 無所令而管境自化하고 山無盜賊하고 禾穀滿野하니 山國無事而民亦無事라. 檀君解慕之初降이 在於壬戌四月初八日하니 乃秦王政八年也라."
*해모수단군은 대부여를 이어 백악산에서 북부여를 건국한 임금이다. 기존 문헌에는 한결같이 해모수단군이 하백의 딸 유화와 혼인하여 고주몽을 낳았다고 기술되어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기록이다. 해모수 단군이 붕어한 해는 BCE 195년이고 주몽 성제의 출생은 BCE 79년이므로 무려 116년이라는 차이가 있다. 북부여기에서는 주몽이 불리지의 아들이고, 불리지는 해모수단군의 아들인 고진의 손자라고 상세하게 전한다. 주몽은 해모수단군의 현손이다.
*조대기: 고려에 귀화한 발해인이 비장하던 사서 가운데 하나. 조선 시대 숙종때 북애가 저술한 규원사화의 저본인 진역유기의 저본이다. 조선 세조가 8도 관찰사에게 거두어들이도록 명한 20여 종의 비기 가운데 조대기가 들어 있어 조선 시대까지도 계속 전해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웅심산: 지금의 길림성 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