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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삼한관경본기

삼한관경-마한세가-7

by 광명인 2024. 2. 7.

협야후는 곧 배반명이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일본 왕가의 뿌리인 일본 진무왕이다

3. 협야후가 왜인의 반란을 평정함

무자(단기 1581, BCE 753)년에, 주周나라 임금 의구宜臼가 사신을 보내어 새해 축하 인사를 올렸다. 사우가 세상을 뜨자 갑진(단기 1657. BCE 677)년에 아들 궁홀弓忽(28세 왕)이 즉위하였다. 갑인(단기 1667, BCE 667)년에 협야후陝野侯에게 명하여 전선 500 척을 거느리고 가서 해도海島를 쳐서 왜인의 반란을 평정하게 하셨다.

궁홀이 세상을 뜨고, 아들 동기東䄫(29세 왕)가 즉위하였다. 동기가 세상을 뜨자 다물단군(38세) 계유(단기 1746, BCE 588)년에 아들 다도多都(30세 왕)가 즉위하였다. 다도가 세상을 뜨니 임진(단기 1825, BCE 509)년에 아들 사라斯羅(31세 왕)가 즉위하였다. 사라가 세상을 뜨고 아들 가섭라迦葉羅(32세 왕)가 즉위하였다. 가섭라가 세상을 뜨자 갑인(단기 1907, BCE 427)년에 아들 가리加利(33세 왕)가 즉위하였다.

을묘(단기 1908, BCE 426)년에 융안隆安 사냥꾼 수만명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관병이 이들과 싸울 때마다 이기지 못하였다. 드디어 반란군이 도성을 공격하여 상황이 매우 위급해지자, 가리가 출전하였다가 날아오는 화살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3. 野侯倭가 倭人의 叛亂을 平定함

戊子에 周主宜臼가 遣使賀正하니라 斯虞가 薨하니 甲辰에 子弓忽이 立하니라
甲寅에 命陝野侯하사 率戰船五百艘하야 往討海島하야 定倭人之叛하시니라
弓忽이 薨하니 子東䄫가 立하니라 東䄫가 薨하니 檀君多勿癸酉에 子多都가 立하니라
多都가 薨하니 壬辰에 子斯羅가 立하니라 斯羅가 薨하니 子迦葉羅가 立하니라
迦葉羅가 薨하니 甲寅에 子加利가 立하니라 乙卯에 隆安獵戶數萬이 叛하야 官兵이 每戰不利라
賊이 遂迫都城甚急일새 加利가 亦出戰이라가 中流矢而薨하니라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의구宜臼: 주周나라 13세 평왕平王(BCE 771~ BCE 720)의 이름이다.
 
*협야후陝野侯: 협야후는 곧 배반명裵幋命이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사누노미코토로서 일본 왕가의 뿌리인 진무神武 왕이다. BCE 667년은 일본서기에 진무 왕이 등장하는 해이다. 3세 가륵단군 재위 10년(BCE 2173)에 두지주의 예읍이 반란을 일으키자 임금께서 여수기를 보내 추장 소시모리의 목을 베게 하셨는데, 이 소시모리의 후손 협야노라는 인물이 있다고 하였다.
 
*해도海島: 곧 삼도三島로 오늘날의 일본 열도이다.

[일본 왕가의 뿌리, 한국]

일본은 태고시대부터 일본열도에 살던 선주민이 일궈 놓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천황가 역시 125대 동안 만세일계의 황통을 이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대 일본사는 한민족의 이민 개척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철저한 역사 왜곡에 불과하다. 이것은 몇 가지 사실로 입증된다. 우선 일본으로 건너간 신교의 삼신 신앙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사기古事記에는 일본의 신화가 조화삼신으로 시작되었음을 기록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삼신은 동방 한민족이 받든 신교의 주재신이다. 또한 일본서기 '신대기'를 보면, 조화삼신에 이어 신세 7대가 보인다. 환국의 7세 환인천제와 마찬가지로 일본 건국신화에 나오는 신도 7세로 되어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당연히 7세 환인시대에 뿌리를 두고 기록한 것으로 일본의 건국신화가 한민족 역사를 모방한 사실을 뚜렷이 드러낸다.

고천원에서 일본 땅으로 내려온 신은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후손 니니기 노미코토이다. 니니기는 고천원에서 큐슈의 히무카 다카치호의 구시후루다케에 내려왔다. '일본 민족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기마민족'임을 주장한 에가미나미오 가락국의 수로왕이 내려온 구지봉과 연결하여 '구시후루'는 '구지의 마을'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니니기노미코토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거울 · 칼 · 구슬이라는 세 가지 신의 보물[三種의 神器]를 갖고 왔다. '삼종의 신기'는 환웅천황이 지상에 내려올 때 천부인 3개를 가지고 왔다는 내용과 유사하다. 또 니니기노미코토는 자신이 내려온 곳을 "여기는 카라구니韓國를 향하고 있고,,, 아침 해가 바로 쬐는 나라, 저녁 해가 비치는 나라이니라. 그러므로 여기는 매우 좋은 땅"이라고 표현했다. 다카치호는 천신의 고향을 향해 있으며, 그곳은 곧 한국임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고천원, 곧 하늘나라인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 왕가 혈통의 뿌리도 한국이다. 단군세기를 보면, 35세 사벌단군은 재위 50년(BCE 723)에 장군 언파불합彦波弗哈을 보내어 일본 큐슈九州 남부의 구마소를 평정하였고, 36세 매륵단군은 38년(BCE 667)에 협야후陝野侯 배반명裵幋命을 보내 삼도三島(일본열도)를 평정케 하였다. 이 배반명이 바로 일본 왕가의 뿌리인 초대 진무神武(狹野尊)왕이다. 진무 왕은 큐슈에서 동쪽으로 정벌[東征]을 계속하여 야마토로 들어가 일본 고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일본 왕가의 뿌리가 백제계라는 것은 이제 우리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고대 한일관계사는 단순히 문화교류의 차원이 아니다.

「대진국본기」에 의하면 의려국 왕자 의라가 일본으로 건너가 15세 오진應神 왕이 되었고, 삼신의 부명[三神符命]에 응한다 하여 응신應神이라 하였다고 한다. 2001년 12월에는 일본의 아키히토 왕(125세)이 "나의 조상인 칸무桓武 왕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 왕의 자손"이라 고백하여 자신도 백제계의 피를 이어받았음을 시인한 바 있다.

한민족의 도래 물결은 끊임없이 이어져 일본 고대 국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일본 최초의 통일 왕조인 야마토大和 왜倭 정권이 기나이幾內 지방에 들어서면서 4, 5세기에 백제 등에서 많은 기술자, 학자가 건너갔다. 일본서기에 오진應神왕 때부터 도래인에 관한 기록이 다수 보이는데, "아직기와 왕인 등이 일본열도로 와서 문물을 전하고 가르쳐 주었다. 그 결과 8세기 중반 야마토 지역은 백제인이 80~90%를 차지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6세기 중반부터 7세기 초에 고도의 문화 기술 집단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고대 일본 문화의정수라 일컫는 지역의 아스카飛鳥 문화를 건설하는 주역이 되었다. 이처럼 한민족은 일본 왕가의 뿌리인 동시에 일본 민족문화 전반에 걸쳐 뿌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