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메르에서 뻗어 나간 서양 문명과 인도 문명
[수메르 문명의 전파]
동방에서 온 수메르인들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계속 전승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지금의 터커), 시리아, 이집트 등지로 전파되었다. 이집트 문명은 수메르보다 대략 500년 후에 번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집트의 건축, 기술, 문자 둥은 모두 수메르 문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원기둥 모양으로 된 인장, 이집트의 건축술 가운데 받침대를 받치는 것 등은 수메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집트의 문자도 수메르의 설형문자를 변형한 또 다른 설형문자였다.
이집트 문명을 일으킨 후 수메르 문명은 다시 크레타 섬으로 전파되었다. 크레타 섬에서 유럽의 최초 문명인 미노아 문명(BCE 2700~BCE 1420)이 탄생하였고, 이 문명은 다시 그리스 문명으로 계승되었다. 때문에 수메르 문명을 '서양 문명 의 모체’ 또는 '서양 문명의 창시자'라 부른다.
수메르 문명과 그것을 계승한 오리엔트 문명이 이집트와 크레타를 거쳐 그리스까지 전파되는 데는 교역이 큰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자면, 충적토로 이루어진 수메르 지역에는 청동의 원료인 구리와 주석이 나지 않기 때문에 수메르인은 이 두 금속을 모두 무역을 통해 조달하였다. 수메르인들은 일찍이 BCE 4000년경부터 청동을 제조할 수 있었고, 만들어진 청동 제품은 높은 값에 팔려 나갔다. 수메르인들은 일찍부터 은을 화폐로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지금의 미국 달러가 그러하듯 당시 지중해 전역에서 통용되었다.
그리고 크레타인들은 BCE 2000년경 이전부터 무역활동을 통해 이집트를 포함한 지중해 연안을 자주 왕래하였다. 그 과정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접하여 문자, 신화, 건축술, 천문학, 수학 등 많은 문회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문화를 다시 지중해 서부 지역으로 수출하였다. 동방에서 온 수메르 문명이 바닷길을 통해 서진西進하여 서양 세계로 전해진 것이다.
이에 대해 김상일은 '그리스인들이 수메르 문화를 흡수하여 서쪽으로 통풍구를 만들어 주었다'고 표현한다. 그리스는 그들의 황금 시기인 BCE 5세기에 들어올 때 까지 예술, 건축, 철학, 문학 등의 적지 않은 분야에서 수메르 문화의 영향을 나타냈다.'
그리스를 거쳐서 그 후 서양 세계에 전수된 수메르 문명의 흔적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수메르의 왕들은 건물을 관리하고 길을 수리하고 여행자를 위해 여관을 만드는 일상적인 문제에서 정치 분쟁과 국제적인 거래 등 복잡한 문제에 이르기까 지 모든 문제를 문서화하고 관련된 계약 문서를 작성하여 두었다. 이것이 서양의 초기 황실제도에 전승되어 서류 정리하는 법, 회계 장부 쓰는 법 등으로 정착되었 다. 오늘날 영국 황실제도도 수메르 황실제도의 모방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한다.
또한 수메르문명은 동쪽으로 인도까지 전파되었다. 지금의 이란 북쪽 국경 너머의 카프카스 산맥에 살면서 인도-유럽어를 쓰던 한 종족이 BCE 2000년경에 남쪽으로 대규모 이주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수메르의 도시국가에서 멀리 떨어져 북쪽에 살았지만, 당시 가장 부흥했던 수메르 문명과 무관하게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남하한 때는 수메르 왕조 말기이다. 수메르의 혼란한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도록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마침내 인더스 강 유역에 도착한 그들을 당시 인더스 사람들은 '아리안Aryan'이라 불렀다.
아리안은 고귀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왜 그들이 고귀한 사람들이라 불렸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아리안족은 BCE 1500년경에 베다(브라만교와 힌두교의 경전) 이야기를 인도에 구전으로 전하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히브리(유대) 문명도 수메르 문명과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 유대인의 역사가 기록된 구약전서의 「창세기」에 의하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지금으로부터 4천여 년 전 갈데아 우르(이라크남부)에 살던 사람이다. 간단히 말해서 아브라함은 수메르의 거대 도시국가에 살던 전형적인 수메르인이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 '수메르의 우르'는 있었지만 '갈데아의 우르'는 없었다. 갈데아의 우르는 BCE 9세기 초에 갈데아인이 남서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때는 구약전서 「창세기」가 기록되던 시기로 옛날 아브라함이 살던 곳이 당시에는 갈데아인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성서 기록자들이 갈데아 우르라고 표기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르로부터 400km 북쪽에 위치한 하란을 거쳐 가나안(지금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남부 지역) 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때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야 했다. 이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히브리 Hebrews, 즉 '강을 건너온 자'라고 불린다.
히브리인은 BCE 1700~ BCE 1300년 사이의 설형문자 기록(당시는 고 바빌로니아 시대)에 하비루Habiru란 종족 이름으로 끊임없이 나타난다. 이들은 BCE1500년대 초기가 될 때까지 유목생활을 하며 메소포타미아 땅의 힘센 부족들 사이에서 용병으로 팔려다니곤 했다. 아브라함 종족이 가나안으로 이주한 지 5백 년의 세월이 지난 BCE 1500년대에 비로소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고 거기에 정착하였다.
아브라함 종족, 즉 히브리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계속 수메르의 영향 속에서 살았다. 그들이 접촉한 가나안족이 수메르 문화와 똑같이 설형문자를 쓰고, 수메르의 교과과정을 그대로 따르는 등 수메르 문화에 깊이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히브라인은 BCE 6세기 바빌론 포로 시절에 수메르 문화에 더욱 밀착되었다. 바빌론의 포로로 살던 당시, 수메르를 계승한 바빌론의 문자와 학문은 히브리인의 마음과 사상 속에 깊이 침투해 들어갔다. 나중에 히브리인이 바빌론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수메르의 예배 의식, 교육, 법조문 등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구약전서』에는 고대 중동의 종족이 많이 나오지만 수메르인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인, 가나안인, 히타이트(햇)인, 아시리아(앗수르)인, 바빌로니아인 등 숱한 종족이 거명되지만 수메르인이라 불린 종족은 구약전서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수메르인이 바로 히브리인 자신들의 조상임을 은연 중에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다름 없다.
수메르 문명은 인도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 있는 이슬람 문화(페르시아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이란의 아라타Aratta란 도시는 수메르와 똑 같은 정치적 조직과 종교적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란의 고대 종족인 엘람은 수메르의 마지막 왕조인 우르 제3왕조를 무너뜨린 침입자이지만, 엘람의 법률, 문학, 종교 등은 모두 수메르의 것이었다. 그리고 엘람족의 신 이름은 수메르 신들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수메르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그리스 문명, 유대 문명, 이슬람 문명의 근원이 되었고, 인도의 인더스 문명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한마디로 수메르 문명은 오늘날 서양문명의 요람인 것이다.
수메르가 서양 문명에 끼친 영향은 오늘날 세계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양에서 수메르인이 최초로 사용한 바퀴와 수레이다. 수메르인은 한 번에 많은 흙이나 물건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네 바퀴 달린 수레를 발명하였는데, 덕분에 로마 군인은 마차를 타고 유럽을 평정할 수 있었다. 서양의 천문학도 수메르에서 유래하였다. 수메르인들은 춘분과 추분을 따지고 달의 운행 법칙을 발견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황소자리, 사자자리 등 별자리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수메르인이 최초로 시작하였고, 점성술도 이미 이때 성행하였다. 서양의 건축과 음악도 그 원형이 전부 수메르에셔 나왔다. 서양 문명의 요소들 중에서 수메 르에 뿌리를두지 않은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BCE 5000년경에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난 수메르 문명을 서양에서는 인류 최고 문명으로 칭송한다. 그렇다면 수메르 문명의 근원인 동방 환국 문명이야말로 진정한 인류 최고의 문명이 아니겠는가.
[수메르와기독교]
수메르는 서양 문명 중에서도 특히 유대교와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그들의 경전에서 말하는 '하느님이 흙으로 인간을 빚어 생명을 불어 넣음으로써 인간이 탄생했다’는 이야기의 근원은 수메르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섬기도록 만들어졌으며 하느님의 창조적 힘은 그의 말씀 안에 있다’는 내용도 수메르에 근원을 두고 있다. ‘마지막 날에 하느님의 심판이 악한 자에게 임하고, 고난과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창세기」에서 말하는 에덴동산,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카인과 아벨의 싸움, 바벨탑 등의 이야기는 수메르의 문학 작품에서 기원한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시로 채워진 「시편」은 수메르의 예배 의식 때 썼던 의례문이고, 유대인이 유월절 명절 때 낭송한 「아가서」는 수메르 마지막 왕조가 멸망할 때 옮던 바로 그것이다. 「잠언」에 실린 속담과 금언은 수메르의 교훈, 속담, 전설을 편집한 것이다. 기독교의 신약전서에 기록된 예수의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행적도 거의 수메르에서 나온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처녀 영태’, 아기 예수에게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의 나타남,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난한 일, 3일 만의 부활 같은 것이 모두 수메르의 영향이다.
경전의 내용뿐 아니라 그들의 예배 의식도 수메르 문명에서 전해진 것이 많다. 유대교의 예배 의식은 오늘날까지도 바빌론인에게 빌려 온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유대인들이 속죄일 전야의 예배 때 읊는 기도문인 콜니드레는 수메르의 신년新年 예식문과 같다. 바빌론 포로 시절 히브리인들은 악마를 내쫓는 법을 배워 왔는데, 이것은 신약전서에 악마를 내쫓는 행위로 나타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대교와 기독교는 바로 수메르의 종교와 사상을 모체로 하고 있는 것이다.
보충자료: 알파벳과 여신
유튜브, 인문이랑: 에게 문명 ─ 미노아, 미케네, 트로이 [통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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