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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삼한관경본기

삼한관경-마한세가-6

by 광명인 2024. 2. 6.

마한 또는 막조선의 수도 왕검성이 위치했던 평양 대동강

2. 나라의 제도를 삼한에서 삼조선으로 개편

5월에 제도를 고쳐 삼한삼조선이라 하셨는데, 조선은 관경管境(영토 관할)을 말한다. 진조선은 천왕(22세 단군)께서 친히 다스리고, 통치 영역은 옛날 진한의 땅 그대로이다. 정치는 천왕을 경유하여 삼한이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 명령을 받았다. 여원흥을 마한 왕(20세)으로 삼아 막조선莫朝鮮을 다스리게 하고, 서우여를 번한 왕으로 삼아 번조선番朝鮮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를 총칭하여 단군 관경檀君管境이라 하니 이것이 곧 진국辰國이다. 역사에서 일컫는 단군조선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대동강의 왕검성을 막조선의 여원흥이 주재함]

원홍이 임금의 명을 받고 대동강을 굳게 지키니, 이곳을 왕검성이라고도 불렀다. 천왕께서 매년 중춘仲春에 반드시 마한을 순행하여 머물며 백성을 위해 부지런히 정사에 힘쓰셨다. 이에 지나치게 많이 올리고, 많이 거둬들이는 폐단이 마침내 없어지게 되었다. 이보다 먼저 조칙을 내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짐 한 사람을 봉양하기 위해 거두는 일로 백성을 번거롭게 한다면, 이는 바른 정사가 아니니라. 바른 정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다면 임금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그러고는 엄명을 내려 이를 그만두게 하셨다. 무자(단기 1101, BCE 1233)년에, 마한 왕이 명을 받들어 천자의 수도[京師]에 들어가 영고탑으로 천도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니 이를 따르셨다. 원흥이 세상을 떠나고 기축(단기 1102, BCE 1232)년에 아들 아실阿實(21세 왕)이 즉위하였다. 아실이 세상을 뜨자 아우 아도阿闍(22세 왕)가 즉위하였다. 

[기자의 은둔 생활]

기묘(단기 1212 BCE 1122)년은나라가 멸망하였다. 3년이 지난 신사(단기 1214, BCE 1120)년에, 자서여子胥餘(기자)가 태항산太行山 서북 땅에 피하여 사는데, 막조선莫朝鮮 왕이 전해 듣고 모든 주군州郡을 순행하여 살피고 군대를 사열하고 돌아왔다. 아도가 세상을 뜨자 경술(단기 1243. BCE 1091)년에 아들 아화지阿火只(23세 왕)가 즉위하였다. 아화지가 세상을 뜨고 병술(단기 1279, BCE 1055)년에 아우 아사지阿斯智(24세 왕)가 즉위하였다. 아사지가 세상을 뜨니 마휴단군(29세) 정해(단기 1400, BCE 934)년에 형의 아들 아리손阿里遜(25세 왕)이 즉위하였다. 아리손이 세상을 뜨자 아들 소이所伊(26세 왕)가 즉위하였다. 소이가 세상을 뜨고 정해(단기 1580 BCE 754)년에 아들 사우斯虞(27세 왕)가 왕위에 올랐다.

2. 國制를 三韓에서 三朝鮮으로 改編
五月에 改制三韓하사 爲三朝鮮하시니 朝鮮은 謂管境也라
真朝鮮은 天王이自爲하시니 而地則仍舊辰韓也며 政由天王하야 三韓이 皆一統就令也라.
命黎元興하사 爲馬韓하사 治莫朝鮮하시고 徐于餘로 爲番韓하사
治番朝鮮하시니 總之하야 名曰檀君管境이니 是則辰國이오 史稱檀君朝鮮이 是也라.

大洞江의 王儉城을 莫朝鮮의 黎元興이 主宰함
元興이 旣受大命하야 鎮守大同江하니 亦稱王儉城이라.
天王이 亦以每年仲春에 必巡駐馬韓하사 勤民以政하시니 於是에 籍供厚斂之弊가 遂絶하니라.
先是에 有詔曰 惟朕一人之養으로 煩民以斂이면 是乃無政也니
無政이면 而君이 何用哉아하시고 嚴命罷之하시니라.
戊子에 馬韓이 承命入京師하야 諫以寧古塔遷都로 爲不可라 한대 從之하시니라
元興이 薨하니 己丑 子阿實이 立하니라. 阿實이 薨하니 弟阿闍가 立하니라

箕子의 隱遁 生活
己卯에 殷이 滅하니
後三年辛巳에 子胥餘가 避居太行山西北地이어늘 莫朝鮮이 聞之하고 巡審諸州郡하야 閱兵而還하니라
阿闍가 薨하니 庚戌에 子阿火只가 立하니라 阿火只가 薨하니 丙戌에 弟阿斯智가 立하니라
阿斯智가 薨하니 檀君摩休丁亥에 兄之子阿里遜이 立하니라
阿里遜이 薨하니 子所伊가 立하니라 所伊가 薨하니 丁亥에 子斯虞가 立하니라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진국辰國: 고조선은 부여, 고죽, 고구려, 예, 맥, 추, 진번, 낙랑, 임둔, 현도, 숙신, 청구, 량이, 양주, 발, 유, 옥저, 불류, 해두, 개마, 구다, 한 등의 거수국을 거느린 거수국제 국가였다. 고조선 사회 구조로 보면 맨 밑에 사회 조직의 기층을 이루는 이 있고, 그 위에 거수국의 정치적 중심지로서, 거수가 거주하는 국읍이 있었다. 국읍 위에는 고조선의 최고 통치자인 단군이 거주하는 도읍인 아사달과 평양성이 있었다. 만주 전역과 한반도를 영토로 하는 고조선은 부여, 고죽을 비롯하여 수많은 거수국을 거느렸다. 윤내현에 따르면 진국은 고조선의 거수국 가운데 단군이 직할하는 나라로, 지금의 요하 유역에서 청천강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였다. 이곳은 단군 일족인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조선이라고도 불렸다 (윤내현, 고조선연구. 525쪽).

태항산太行山: 산서성 동쪽의 하북성 경계를 따라 남북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는 산맥

막조선莫朝鮮 왕의 순행: 은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자신이 다스리 는 강역을 순행하고 군대를 사열함으로써 나라의 안위를 점검한 것이다. 주나라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안전을 재점검하여 만전을 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