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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환국본기, 신시본기

4. 이주족인 웅족의 정착과 환족으로의 귀화-신시본기

by 광명인 2024. 1. 9.

홍산문화의 총묘단과 여신상과 옥웅룡
고구려 각저총 씨름도에 나오는 신단수와 새, 곰, 호랑이

4. 이주족인 웅족의 정착과 환족으로의 귀화

삼성밀기三聖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국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強族]이 있어 이를 근심하던 차에 환웅께서 나라를 다스림에 삼신三神의 도로서 가르침을 베푸시고[乃以三神設敎] 백성을 모아 맹세하게 하시니, 이때부터 은밀히 그 강족을 제거하려는 뜻을 두셨다.


[환족과 웅족의 연합]

당시 부족 호칭이 통일되지 않고 풍속은 점점 갈라졌다. 원주민은 호족虎族이고, 새로 이주해 온 백성은 웅족熊族이었다. 호족은 성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오직 약탈을 일삼았고, 웅족은 성품이 고집스럽고 우둔하여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두 부족이 비록 한 고을에 살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소원해져서 서로 물건을 빌리거나 빌려 주지 않았고 혼인도 하지 않았으며, 매사에 서로 승복하지 않아, 한 길을 같이 간 적이 없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자 웅족 여왕[熊女君]환웅천황께서 신령한 덕이 있으시다는 소문을 듣고 무리를 거느리고 찾아와, 천황을 뵙고 "원컨대 살 터전을 내려 주시어 저희도 한결같이 삼신의 계율을 지키는 신시의 백성이 되게 해 주옵소서"라고 간청하였다. 환웅천황께서 이를 허락하시고 살 곳을 정해주시어 자식을 낳고 살게 하셨다. 그러나 호족은 끝내 성질을 고치지 못하므로 사해四海 밖으로 추방 하시니, 환족의 흥성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4. 移住族인 熊族의 定着과 桓族으로의 歸化


三聖密記에 曰 桓國之末에 有難治之強族하야 患之러니 
桓雄이 爲邦에 乃以三神設敎하시고 以聚眾作誓하사 密有剪除之志하시니라.

時에 族號不一하야 俗尙漸岐하니 原住者는 爲虎오 新住者는 爲熊이라. 
然이나 虎性은 嗜貪殘忍하야 專事掠奪하고 熊性은 愚愎自恃하야 不肯和調하니 
雖居同穴이나 久益陳遠하야 未嘗假貸하며 不通婚嫁하며 事每多不服하야 咸未有一其途也러라.
至是하야 熊女君이 聞桓雄有神德하고 乃率衆往見曰 願賜一穴廛하사 一爲神戒之氓하노이다 하거늘 
雄이 乃許之하시고 使之奠接하사 生子有産하시고 
虎는 終不能悛하야 放之四海하시니 桓族之興이 始此하니라.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웅족: 김성호는 한반도에 분포한 웅계 지명 60여 개 들었는데, 그와 같이 많은 지명이 보이는 것은 우리 민족이 검(곰)을 토템으로 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김성호,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 또 일본 큐슈는 본래 곰이 서식하지 않는 아열대 지방 인데도 그곳에 웅熊자 명칭이 많은 것은 이 지역이 배달국 환웅 시대의 웅녀족 또는 검족과 관계가 있음을 뚜렷이 방증하는 것이다. 큐슈 지방에 보이는 구마모토· 구마시로· 구마노· 구마타· 구마가와· 구마· 구마노쇼· 구마아가타· 구마가야· 구마마치· 구마 노타이' 등은 모두 '곰, 검'과 비슷한 음인 '구마'로 일관되어 있다(송호수, 한민족의 뿌리사상 34쪽).

[곰을 숭상한 홍산인]

반지하식 구조로 지은 우하량의 여신묘 터에서 여신상과 함께, 홍산인의 토템 신앙을 보여주는 곰 소조상이 여신묘의 주실에서 새 소조상은 북실에서 출토되었다. 여신묘 주실에서 출토된 진흙 소조상은 면밀한 검토 끝에 곰으로 밝혀졌다. 납작하고 둥근형의 입, 두 개의 타원형 콧구멍, 발가락 4개 등으로 볼 때 곰 소조가 틀림없다고 중국 학계는 결론지었다. 그리고 북실에서 새 발 형상의 소조상 2개가 나왔다. 새 발의 크기로 보아 북실에는 거대한 새 형상의 조각상이 서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이형구. 이기환,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206쪽).

우하량뿐 아니라 광범위한 인근 지역에서 '옥으로 만든 곰.용 혼합 형태의 형상물[玉熊龍]'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곰 토템이 아주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홍산문화 유적지 전체에서 발굴된 옥기 가운데 웅룡熊龍이 상당히 많은데, 이것은 주로 죽은 자의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 가슴팍에는 가장 등급이 높은 옥기가 놓인다는 점에서 곰을 얼마나 신성시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적석총 무덤에서 새 모양의 옥기가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홍산인이 새 토템 신앙도 하였음을 보여 준다.

여신을 모시고 곰과 새를 신성시한 홍산인을 환단 시대의 배달 동이족과 연관지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건을 '환단고기'에서 전하고 있다. 바로 배달이 세워진 직후, 호족과 웅족이 환웅천황을 찾아와 환족으로 교화되기를 청한 사건이다. 호족은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남권 중심의 사나운 부족이고, 웅족은 곰을 토템으로 하는 여권 중심의 우매한 부족이었다. 삼신의 도를 깨쳐 광명 인간이 되기 위해 두 부족은 일체의 활동을 금하고 수행 공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호족은 공부를 중도에 그만 두었고, 웅족은 굶주림과 추위 속에 무사히 수행을 마치고 환족이 되었다. 이처럼 요서 지역의 유물과 『환단고기』가 밝히는 내용을 종합해서 볼 때, 홍산 문화는 환단(환국과 배달)의 문화로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