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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환국본기, 신시본기

8. 5세 태우의 환웅의 막내 아들, 태호복희-신시본기

by 광명인 2024. 1. 20.

하남성 회향현에 위치한 천하제일묘에 모셔진 태호복희씨

8. 5세 태우의환웅의 막내아들, 태호복희

환웅천황으로부터 5세를 전하여 태우의太虞儀환웅이 계셨다.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반드시 생각을 고요히 가라앉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여 정기를 잘 기르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장생의 법방이다.

[삼신의 성령을 받고 우주 삼계를 통한 태호복희]
태우의환웅의 아들은 열둘이었는데 맏이는 다의발多儀發환웅이시요. 막내는 태호太皞이시니 복희伏羲라고도 불렀다. 태호복희씨가 어느 날 삼신께서 성령을 내려 주시는 꿈을 꾸고 천지만물의 근본 이치를 환히 꿰뚫어 보시게 되었다. 이에 삼신산三神山에 가시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천하天河에서 괘도掛圖를 얻으셨다. 그 획은 세 개는 끊어지고[三絶] 세 개는 이어지는[三連] 음양 원리로 이루어졌다. 그 위치를 바꾸어 추리함은 오묘하게 삼극三極과 부합하여 변화가 무궁하였다. 

밀기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신시神市에서 출생하여 우사雨師 직책을 대물림하셨다. 후에 청구, 낙랑을 지나 진陳 땅에 이주하여 수인燧人, 유소有巢와 함께 서쪽 땅[西土]에서 나라를 세우셨다. 그 후예가 풍산風山에 나뉘어 살면서 역시 풍風으로 성을 삼았다. 후에 패佩· 관觀·임任 · 기己 · 포庖 · 리理 · 사姒 · 팽彭의 여덟 씨족으로 나뉘어졌다. 지금의 산서 제수濟水에 희족羲族의 옛 거주지가 아직 남아 있는데 임任 · 숙宿 · 수구須句 · 수유須臾 등의 나라가 모두 에워싸고 있다.

대변경大辯經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출생하여 우사雨師 관직을 맡으셨다. 신룡神龍의 변화를 관찰하여 괘도掛圖를 만들고, 신시 시대의 계해癸亥를 고쳐 갑자甲子로 첫머리를 삼으셨다. 여와女媧(복희의 여동생)는 복희의 제도를 계승하고, 주양朱襄은 옛 문자를 기본으로 하여 처음으로 육서六書를 세상에 전하였다. 복희씨의 능은 지금의 산동성山東 어대현魚臺縣 부산鳧山 남쪽에 있다.

[동양의학과 농사의 시조인 신농씨의 혈통]
신농神農열산列山에서 창업을 하셨는데, 열산은 열수列水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少典의 아들이시고, 소전은 소호少皞와 함께 모두 고시씨高失氏의 방계 자손이시다. 당시 백성이 정착하여 각기 생업에 종사하여 점차 인구가 증가하였다. 곡식과 삼을 많이 생산하고, 각종 의약과 치료법[藥石]도 점점 갖추어지자, 한낮에 저자(시장)를 열어 교역을 하고 돌아갔다.

8. 五世 太虞儀桓雄의 막내아들, 太昊伏羲


自桓雄天皇으로 五傳而有太虞儀桓雄하시니 敎人에 必使黙念清心하사 調息保精하시니 是乃長生久視之術라.

有子十二人하니 長曰多儀發桓雄이시오 季曰太皞시니 復號伏羲시라 
日에 夢三神이 降靈于身하사 萬理洞徹하시고 
仍往三神山하사 祭天이라가 得掛圖天河하시니 
其劃이 三絶三連이오
換位推理에 妙合三極하야 變化無窮하니라.

密記에 曰 伏羲는 出自神市하사 世襲雨師之職하시고 後에 經青邱樂浪하사 逐徙于陳하시니 並與燧人有巢로
立號於西土也시라 後裔가 分居于風山하야 亦姓風이러니 後에 遂分爲佩,觀,任,己,庖,理,姒,彭 八氏也오.
今山西濟水에 羲族舊居가 尙在하니 任,宿,須句,須臾等國이 皆環焉이니라.

大辯經에 曰 伏羲는 出於神市而作雨師하사 神龍之變而造掛圖하시고 改神市癸亥而爲首甲子하시며 
女媧는 承伏羲制度하고 朱襄은 仍舊文字而始傳六書하니라. 伏羲陵은 今在山東魚臺縣鳧山之南하니라.

神農이 起於列山하시니 列山은 列水所出也라. 神農은 少典之子이시오 少典은 與少皞로 皆高氏之傍支也시니라 
蓋當世之民이 定着爲業하야 漸至成阜하고 穀麻藥石之術이 亦已稍備하니 日中爲市하야 交易以退也라.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삼신산三神山: 신교 도맥의 주산으로 곧 백두산을 말한다.

천하天河: 중국사에서는 대개 황하를 천하라 불렀다. 지금까지도 황하에서 하도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천하는 송화강으로 보는 것이 옳다

위치를 바꾸어 추리함: 팔괘八卦의 상을 바꾸어 추리함을 말한다.

삼극三極: 천지인 삼재와 무극, 태극, 황극의 도 자리를 말한다.

제수濟水: 산서성에서 발원하여 황하를 땅속으로 가로질러 산동성 아阿에서 다시 솟아나 흐른다. 임任은 산동성 제령시濟寧市이고 숙宿 · 수구須句 · 수유須臾(산동성 비현의 북쪽)등은 모두 산동성에 있으니 '산서제수'는 '산동제수'의 오기인 듯하다.

수유須臾: 수유는 전유顓臾의 오기인 듯하다. 좌전 희공 21년조에는 전유는 풍씨 성이라고 하였다. 논어 주소 계시편에는 "전유는 복희의 후예이며, 풍성의 나라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전유'는 인명(씨족명)이자 국명으로 쓰였다. 상고시대에는 씨족명과 국명을 같이 사용하였다. 

주양朱襄: 복희국 13세 임금, 태호 복희씨는 '역철학과 태극기의 시조이며, 또한 한자 만드는 방법인 육서六書의 원칙을 발명하여 '문자의 비조'가 되었다. 그의 후손 주양이 육서를 서토에 전했다.

지금의 산동성 미산현 양성향 유장촌에 복희묘가 있는데, 무덤 위에 묘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부산鳧山은 오리가 나는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부산의 지맥이 뻗어 와서 복희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주민들은 이 산을 봉황산이라 부른다. 복희씨가 이곳에서 팔괘八卦를 그렸다 하여 팔괘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열산列山: 지금의 호북성 수주시 여산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