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단군왕검 재위 93년]]]
『고기古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왕검王儉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시요, 어머니는 웅씨왕熊氏王의 따님이다. 신묘(환기 4828, 신시개천 1528, BCE 2370)년 5월 2일 인시에 박달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태어나시니, 신인神人의 덕이 있어 원근 사람들이 모두 경외敬畏하여 따랐다. 14세 되던 갑진(신시개천 1541, BCE 2357)년에 웅씨왕이 그 신성함을 듣고 비왕裨王으로 천거하여 ‘대읍국大邑國*’의 국사를 맡아 다스리게 하였다. 무진년 당요唐堯때에 단국檀國에서 돌아와 아사달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터에 이르시니 온 나라 백성이 천제의 아들로 추대하였다. 구환족九桓族을 합쳐서 하나로 통일하시고 신성한 덕화가 멀리까지 미치니 이분이 단군왕검이시다. 성조께서 비왕으로 24년, 제왕으로 93년 동안 재위하셨고 그 수壽는 130세였다.
단군왕검의 재위 원년은 무진(환기 4865, 신시개천 1565, 단기 원년, BCE 2333)년이다. 신시 시대가 처음 시작될 무렵에는 사방에서 백성이 모여 들어 산골짜기 곳곳에 퍼져 살았는데, 풀로 옷을 지어입고 맨발로 다녔다.
배달 신시 개천開天 1565(단기 원년, BCE 2333)년 10월[上月] 3일에 신인 왕검께서 오가五加의 우두머리로서 무리 8백 명을 거느리고 단목 터에 와서 백성과 더불어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지내셨다 [봉제우삼신奉祭于三神].
왕검께서 지극히 신성한 덕성과 성스러움을 겸한 인자함으로 능히 선대 환인, 환웅 성조의 가르침을 받들고 하늘의 뜻을 계승[繼天]하시니 그 공덕이 높고 커서 찬란하게 빛났다.
이에 구환의 백성이 모두 기뻐하고 진실로 복종하여 천제의 화신으로 여기고 임금으로 추대하니, 이분이 바로 단군왕검이시다. 왕검께서는 신시 배달의 법도를 되살리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시고 그 이름을 조선朝離이라 하셨다.
[단군왕검의 8대 강령]
단군왕검께서 조칙을 내려 말씀하시니 이러하다.
제1조: 하늘의 법도는 오직 하나요, 그 문은 둘이 아니니라. 너희들이 오직 순수한 정성으로 다져진 일심을 가져야 하느님(상제님)을 뵐 수 있느니라[朝天]
제2조: 하늘의 법도는 항상 하나이며, 사람 마음은 똑 같으니라.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생각하라. 사람들의 마음과 잘 융화하면, 이는 하늘의 법도에 일치하는 것이니 이로써 만방을 다스릴 수 있게 되리라.
제3조: 너를 낳으신 분은 부모요, 부모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으니, 오직 너희 부모를 잘 공경하여야 능히 하느님(상제님)을 경배할 수 있느니라. 이러한 정신이 온 나라에 번져 나가면 충효가 되나니, 너희가 이러한 도를 몸으로 잘 익히면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먼저 벗어나 살 수 있으리라.
제4조: 짐승도 짝이 있고 헌신도 짝이 있는 법이니라. 너희 남녀는 잘 조화하여 원망하지 말고 질투하지 말며, 음행하지 말지어다.
제5조: 너희는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라. 그 아픔에 차이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여 헐뜯지 말며, 서로 돕고 해치지 말아야 집안과 나라가 번영하리라.
제6조: 너희는 소와 말을 보아라. 오히려 먹이를 나누어 먹나니, 너희는 서로 양보하여 빼앗지 말며, 함께 일하고 도적질하지 않아야 나라와 집안이 번영하리라.
제7조: 너희는 저 호랑이를 보아라. 강포하고 신령하지 못하여 재앙을 일으키느니라. 너희는 사납고 성급히 행하여 성품을 해하지 말고 남을 해치지 말며, 하늘의 법을 항상 잘 준수하여 능히 만물을 사랑하여라. 너희는 위태로운 사람을 붙잡아 주고 약한 사람을 능멸하지 말 것이며,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비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지어다. 너희가 이러한 원칙을 어기면 영원히 신의 도움을 얻지 못하여 몸과 집안이 함께 망하리라.
제8조: 너희가 만일 서로 충돌하여 논밭에 불을 내면 곡식이 다 타서 없어져 신과 사람이 노하게 되리라. 너희가 아무리 두텁게 싸고 덮는다 해도 그 향기는 반드시 새어 나오게 되느 니라. 너희는 타고난 본성을 잘 간직하여 사특한 생각을 품지 말고, 악을 숨기지 말며,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지 말지어다.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여야 너희들의 복록이 무궁하리라.
너희 오가와 백성들아! 나의 말을 잘 받들지어다.
이때에 단군왕검께서 어명을 내려 팽우彭虞에게 토지를 개간하게 하시고,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하시며, 신지臣智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셨다. 기성奇省에게 의약을 베풀게 하시고, 나을那乙에게 호적을 관장하게 하시며, 희羲에게 괘서卦筮를 주관하게 하시고, 우尤에게 병마兵馬를 담당하게 하셨다.
비서갑裵西岬에 사는 하백의 따님[河伯女]을 맞이하여 황후로 삼고 누에치기를 맡게 하시니, 백성을 사랑하시는 어질고 후덕한 정치가 사방에 미치어 천하가 태평하였다.
재위 50년 정사(단기 50, BCE 2284)년에 홍수가 범람하여 백성이 편안히 살 수 없게 되었다. 왕검께서 풍백風伯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높은 산과 큰 하천을 잘 정리하여 백성이 편안히 거처하게 하셨다. 우수주牛首州에 이 내용을 기록한 비碑가 남아 있다.
재위 51년 무오(단기 51, 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雲師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摩瑞山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塹城檀이 곧 그것이다.
재위 67년 갑술(단기 67, BCE 2267)년에 왕검께서 태자 부루扶婁를 보내어 우순虞舜(순임금)이 보낸 사공司空(우禹를 말함)과 도산途山에서 만나게 하셨다. 태자께서 ‘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五行治水之法]’을 전하시고, 나라의 경계를 살펴 정하시니 유주, 영주 두 주가 우리 영토에 귀속되고, 회수와 태산 지역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分朝를 두어 다스리실 때 우순을 시켜 그 일을 감독하게 하셨다.
재위 93년 경자(단기 93, BCE 2241)년에 왕검께서 버드나무로 지은 궁궐에 머무실 때 흙 계단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풀이 우거졌으나 베지 않으셨고, 박달나무[壇木]가 무성한 그늘 밑에서 곰과 호랑이와 더불어 노니시고 소와 양이 풀을 뜯는 평화로운 정경을 바라보셨다. 도랑을 파고 밭길을 내며, 농사짓기와 누에치기를 권장하시고 고기잡이와 사냥을 익히게 하셨다. 백성에게 남아도는 물자가 있으면 나라 살림에 보태어 쓰게 하셨다.
상달 10월에 나라에 큰 제전을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上月察天], 온 백성이 진실로 밝은 모습으로 즐거워하였다. 이로부터 단군왕검의 덕화德化가 온 누리를 덮어 멀리 탐랑까지 미쳤고, 성덕聖德의 가르침은 점차로 위세를 얻어 널리 퍼져 나갔다. 이에 앞서 왕검께서 천하의 땅을 일정한 지역으로 경계를 정해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리셨다. 삼한에는 모두 5가五家 64족六十四族이 있었다.
이 해(환기 4957, 신시개천 1657, 단기 93, BCE 2241)3월 15일에 단군왕검께서 봉정逢亭에서 붕어하시니 교외 십리 되는 곳에 장사지냈다. 모든 백성이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였고 단기檀旂를 받들어 아침저녁으로 모여 앉아 경배하며 항상 단군왕검의 덕을 가슴에 품고 잊지 않았다. 태자 부루께서 즉위하셨다.
[[[2세 단군 부루 재위 58년]]]
부루 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축(환기 4958, 신시개천 1658, 단기 94, BCE 2240)년이다. 임금께서 어질고 복이 많아서 재물을 많이 쌓아 큰 부를 누리셨다. 백성과 더불어 산업을 다스리시니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매년 봄가을에 나라 안을 순행하여 살피고, 예를 갖추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모든 제후의 선악을 살피고 상벌을 신중히 하셨다. 도랑을 파고, 농업과 양잠을 권장하며, 학교를 지어 학문을 일으키시니 문화가 크게 진보하고 그 명성이 나날이 퍼져 나갔다.
초기에 우순虞舜이 유주와 영주를 남국藍國* 근처에 설치하므로, 임금께서 군사를 보내 이들을 정벌하여 그곳 왕을 모두 쫓아내고 동무東武와 도라道羅등을 봉하여 그 공을 표창하셨다.
신시개천神市開天 이래로 매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나라에 큰 축제를 열어 모두 삼신상제님의 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화합하였다. 「어아於阿」를 음악으로 삼고 감사함을 근본으로 하여 하늘의 신명과 인간을 조화시키니 사방에서 모두 이를 본받았다. 이것이 참전계參佺械가 되었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아 어아
우리 대조신의 크나큰 은덕이사여!
배달의 아들딸 모두
백백천천 영세토록 잊지 못하오리다.
어아 어아
착한마음 큰 활되고 악한 마음 과녁되어!
백백천천 우리 모두 큰 활 줄같이 하나되고
착한마음 곧은 화살처럼 한마음 되리라
어아어아
백백천천 우리 모두 큰 활처럼 하나되어
수많은 과녁을 꿰뚫어 버리리라
끓어오르는 물같은 착한 마음 속에서
한덩이 눈같은 게 악한 마음 이라네
어아어아
백백천천 우리모두 큰 활처럼 하나되어
굳세게 한마음되니 배달나라 영광이로세
백백천천 오랜세월 크나 큰 은덕이시여!
우리 대조선이로세.
우리 대조선이로세.
재위 2년 임인(단기 95, BCE 2239)년에 임금께서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을 불러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에 대해 물으셨다. 이에 앞서 소련과 대련은 거상居喪을 잘 하였으니 처음 3일 동안 태만하지 않았고, 3개월 동안 게으르지 않았고, 한 해가 다 지나도록 슬퍼하였으며, 3년간 근심으로 지냈다.
이로부터 세상의 풍속이 부모상을 당하면 소련과 대련을 본받아 다섯 달 동안 정상停喪을 하였는데 오래도록 상을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천하의 대성인이 아니었다면 어찌 덕화德化가 널리 퍼짐이 이토록 역말驛馬로 전하는 것처럼 빠를 수 있었겠는가? 소련과 대련은 효자로 알려지고, 공자 또한 이들을 칭송하였다. 무릇 효란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근본이니 온 세상에 이를 널리 펴서 표준으로 삼았다.
재위 3년 계묘(단기 96 , BCE 2238)년 9월에 조칙을 내려 백성들에게 머리카락을 땋아서 머리를 덮게 하고[편발개수 編髮蓋首] 푸른 옷[靑衣]을 입게 하셨다. 도량형度量衛을 모두 관官의 표준에 맞게 통일하고, 삼베와 모시의 시장 가격을 어디서나 똑같게 하셨다. 백성이 서로 속이지 않게 되므로, 원근 사람들이 모두 이를 편하게 여겼다.
재위 10년 경술(단기 103, BCE 2231)년 4월에 토지의 경계를 우물 정井자로 그어 구분하여 전결田結을 정해 주어 백성이 스스로 사리사욕을 채우지 못하게 하셨다. 재위 12년 임자(단기 105, BCE 2229)년에 신지神지 귀기貴己가 칠회력七回曆과 구정도邱井圖를 만들어 바쳤다.
재위 58년 무술(환기 5015, 신시개천 1715, 단기 151 , BCE 2183)년에 부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이 날 하늘에 일식日蝕이 있었고, 산짐승이 떼를 지어 산 위에서 울부짖고, 만백성이 목 놓아 통곡하였다.
후에 백성들이 제시를 지낼 때, 집안에 자리를 정하여 제단을 설치하고 항아리에 독식을 담아 제단 위에 올려놓았는데, 이것을 부루단지夫婁壇地라 부르고, 업신業神으로 삼았다. 또한 전계佺戒라고도 칭하였는데, 전계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계율을 받아 업주가리業主嘉利가 된다’는 것으로, ‘사람과 그가 이루고자 하는 업業이 함께 온전해진다’는 뜻이다. 태자 가륵께서 즉위하셨다.
[[[3세 단군가륵 재위 45년]]]
가륵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해(환기 5016, 신시개천 1716, 단기 152 , BCE 2182)년이다. 5월에 임금께서 삼랑 을보륵을 불러 ‘신神과 왕王과 종倧과 전佺의 도’를 하문하셨다.
보륵이 엄지손가락을 깍지 끼고 오른손을 왼손 위에 포개어 삼육대례를 행하고 진언하니 이러하였다. “신神은 만물을 낳고 각기 타고난 성품을 온전하게 하시니, 신의 오묘한 조화를 백성이 모두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왕王은 덕과 의로써 세상을 다스려 각자 타고난 목숨을 안전하게 해주시니, 왕이 베푸는 것을 백성이 복종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종倧은 나라에서 선발한 스승이요 전佺은 백성이 천거한 스승이니, 모두 이레(7일)를 한 회로 하여 삼신께 나아가 맹세합니다. 세 고을에서 뽑은 사람은 전佺이 되고 구환에서 뽑은 사람은 종倧이 됩니다.
그 도를 말하자면 아비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아비다워야 하고, 임금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임금다워야 하고, 스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승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 신하, 제자가 된 사람 역시 아들답고 신하답고 제자다워야 합니다.
환웅천황께서 펼치신 신시 개천의 도는 이신시교(以神施敎) 즉 삼신의 도로써 가르침을 베풀고, 지아구독 (知我求獨) 나를 알아 자립을 구하며, 공아존물 (空我存物) 나를 비워 만물을 잘 생존케 하여, 능히 인간을 복되게 할 따름입니다.
천상의 상제님(天神)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릴 때는 도를 널리 펴서 백성을 이롭게 하여 한 사람도 자신의 타고난 성품을 잃지 않게 하며, 만왕을 대신하여 인간을 다스릴 때는 ‘거병해원 (去病解怨) 병을 없애고 원한을 풀어 주어’ 비록 미물이라도 함부로 생명을 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옵니다.
백성으로 하여금 그릇된 마음을 고쳐 참되게 하고 삼칠일(21일)을 기약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는 계율’을 굳게 지키게 해야 하옵니다. 이로부터 조정에는 종훈倧訓이 서고 민간에는 전계佺戒가 바로 서게 되며 우주 정기가 삼한의 온 천하에 순수하게 모이고, 삼광오정三光五精의 기운이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응결하게 되어 “현묘한 도를 깨쳐 광명 사상으로 세상을 함께 건지게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거발환의 정신’입니다.” 임금께서 구환족에게 이 가르침을 베푸시니 구환의 백성이 모두 순종하고 삼신의 한마음으로 돌아가 교화되었다.
재위 2년 경자(단기 153 , BCE 2181)년, 이때 풍속이 일치하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비록 상형 표의 문자인 진서眞書가 있어도 열 가구 정도 모인 마을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많고, 땅이 백 리가 되는 나라에서는 서로 문자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가륵단군께서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시어 ‘정음 38자’를 짓게 하시니,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이다, 글자는 아래와 같다. 재위 3년 신축(단기 154, BCE 2180)년에 신지 고설에게 명하시어 '배달유기'를 편찬하게 하셨다.
재위 6년 갑진(단기 157, BCE 2177)년, 임금께서 열량 욕살 삭정을 약수지방에 유배시켜 종신토록 감옥에 가두셨다. 후에 용서하여 그 땅에 봉하시니,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
재위 8년 병오(단기 159, BCE 2175)년에 강거가 반란을 일으키니 임금께서 지백특에서 토벌하셨다. 여름 4월에 불함산에 올라 민가에서 밥 짓는 연기가 적은 것을 보시고 조세를 줄이고 차등을 두게 하라고 명하셨다.
재위 10년 무신(단기 161, BCE 2173)년에 두지주의 예읍이 반란을 일으키니 임금께서 여수기에게 명하여 그곳 추장 소시모리의 목을 베게 하셨다. 이로부터 그 땅을 소시모리라 불렀는데, 지금은 음이 변해서 소머리 나라[牛首國]가 되었다. 그 후손에 협야노라는 인물이 있는데, 바다를 건너가 삼도를 점거하고 스스로 천황이라 참칭하였다.
재위 45년 계미(환기 5060, 신시개천 1760, 단기 196, BCE 2138)년 9월에 가륵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오사구께서 즉위하셨다.
[[[4세 단군 오사구 재위 38년]]]
오사구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신(환기 5061, 신시개천 1761, 단기 197, BCE 2137)년이다. 임금께서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으로 봉하셨다. 혹자는 지금의 몽고족의 그 후손이라 말한다.
겨울 10월에 북쪽을 순수巡狩하고 돌아오시는 길에 태백산에 이르러 삼신께 천제를 지내고 영험한 약초를 얻으셨다. 이것이 곧 인삼이며, 선약이라고도 불렀다. 이때부터 ‘신선 불사의 설’이 인삼을 먹어 보정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게 되었다. 간혹 삼을 캐어 먹은 사람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이한 영험이 있어 자못 특이한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재위 5년 무자(단기 201, BCE 2133)년에 둥근 구멍이 뚫린 돈[원공패전 圓孔貝錢]을 주조하였다. 이해 가을 8월에 하나라 사람이 와서 특산물을 바치고 신서神書를 구해갔다. 10월에 조야기(朝野記)를 돌에 기록하여 백성에게 공포하였다.
재위 7년 경인(단기 203, BCE 2131)년에 살수 강가에 조선소를 설치하였다.
재위 19년 임인(단기 215, BCE 2119)년에 하나라 5세 왕 상相이 실덕하므로 임금께서 식달(息達)에게 명하여 람(藍)·진(眞)·변(弁) 3부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정벌하게 하시니, 천하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복종했다.
재위 38년 신유(환기 5098, 신시개천 1798, 단기 234, BCE 2100)년 6월에 오사구단군께서 붕어하셨다. 계가 출신 구을丘乙이 즉위하셨다.
[[[5세 단군 구을 재위 16년]]]
구을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술(환기 5099, 신시개천 1799, 단기 235, BCE 2099)년이다. 임금께서 태백산에 단을 쌓으라 명하시고, 사자使者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재위 2년 계해(단기 236, BCE 2098)년, 5월에 황충이 크게 번져 밭과 들에 가득 찼다. 임금께서 친히 밭과 들을 돌아보며 황충을 잡아 입에 넣어 삼키시고 삼신께 이를 멸해 주시기를 비니 과연 며칠 만에 황충이 전멸하였다.
재위 4년 을축(단기 238, BCE 2096)년에 갑자를 으뜸으로[시용갑자 始用甲子] 사용하여 책력을 만드셨다.
재위 8년 기사(단기 242, BCE 2092)년, 신독(身毒) 사람이 표류하여 동해가에 도착했다.
재위 16년 정축(단기 250, BCE 2084)년, 임금께서 친히 장당경에 순행하여 삼신단三神壇을 봉축하시고 환화桓花를 많이 심으셨다. 이 해(환기 5114, 신시개천 1814, 단기 250, BCE 2084) 7월에 임금께서 남쪽으로 순수하실 때 풍류강을 거쳐 송양에 당도하여 병을 얻어 갑자기 붕어하시므로 대박산에 장사를 지냈다. 우가 출신 달문이 무리의 추대를 받아 대통을 이으셨다.
[[[6세 단군달문 재위 36년]]]
달문단군의 재위 원년은 무인(환기 5115, 신시개천 1815, 단기 251, BCE 2083)년이다.
재위 35년 임자(단기 285, BCE 2049)년에 여러 왕을 상춘에 모아 구월산에서 삼신(여기서는 국조삼신을 가르킴)께 제사지내실 때, 신지 발리로 하여금 서효사(誓效詞)를 짓게 하시니 그 가사는 이러하다.
[서효사誓效詞, 신지비사神誌秘詞]
아침햇빛 먼저 받는 이땅에
삼신께서 밝게 세상에 임하셨고
환인천제 먼저 법을 내셔서
덕을 심음에 크고도 깊사옵니다.
모든신이 의논하여 환웅을 보내셔서
환인천제 조칙받들어 처음으로 나라여셨사옵니다
치우천황 청구에서 일어나
만고에 무용을 떨치셔서
회수태산 모두 천황께 귀순하니
천하의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사옵니다
단군왕검 하늘의 명을 받으시니
기쁨의 소리 구환에 울려 퍼졌사옵니다
물고기 물만난듯 백성들이 소생하고
풀잎에 부는 바람처럼 덕화가 새로워졌사옵니다
원한맺힌 자 원한 먼저 풀어주고
병든 자 먼저 낫게 하셨사옵니다
일심으로 인과 효를 행하시니
사해에 광명이 넘치옵니다
진한이 나라 안을 진정시키니
정치의 도는 모두 새로워졌사옵니다
모한은 왼쪽을 지키고
번한은 남쪽을 제압하옵니다
깎아지른 바위가 사방 벽으로 둘러쌌는데
거룩하신 임금께서 새서울에 행차하셨사옵니다
삼한형세 저울대 저울 저울판같으니
저울판은 백아강이요 저울대는 소밀랑이요
저울추는 안덕향이라
머리와 꼬리가 서로 균형이루니
그덕에 힘입어 삼신정기 보호하옵니다
나라를 흥성케하여 태평세월 보전하니
일흔나라 조공하며 복종하였사옵니다
길이 삼한관경제 보전해야
왕업이 흥하고 번성할 것이옵니다
나라의 흥망을 말하지 말지니
천신(삼신상제)님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겠사옵니다
이에 모든 왕과 약속하시니 이러했다. "무릇 나와 함께 약속한 사람은 환국 오훈(桓國五訓)과 신시 오사(神市五事)를 영구히 준수할 법도로 삼아야 하리라. 제천 의례는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인본주의),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먹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라. 농사는 만사의 근본이요, 제사는 오교의 근원이라. 마땅히 백성과 함께 일하고 생산하되, 먼저 겨레를 중히 여기도록 가르쳐라. 포로와 죄수를 용서하며, 아울러 사형을 없애도록 하라. 책화責禍제도를 두어 지경을 보존하고, 화백을 공의로 삼아라[화백위공和白爲公]. 오로지 한결같이 함께 화합하는 마음을 베풀어 겸양의 덕을 길러야 어진 정치를 행하는 기틀이 열리리라."
이때 맹세하고 폐백을 바친 자는 대국이 둘, 소국이 스물, 읍락이 3,624곳이었다.
재위 36년 계축(환기 5150, 신시개천 1850, 단기 286, BCE 2048)년에 달문단군께서 붕어하셨다. 계가 출신 한율이 즉위하셨다.
[[[7세 단군 한율 재위 54년]]]
한율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인(환기 5151, 신시개천 1851, 단기 287, BCE 2047)년이다.
재위 54년 정미(환기 5204, 신시개천 1904, 단기 340, BCE 1994)년에 임금께서 붕어하셨다. 우서한이 즉위하셨다.
[[[8세 단군 우서한(일명 오사함) 재위 8년]]]
우서한 단군의 재위 원년은 무신(환기 5205, 신시개천 1905, 단기 341, BCE 1993)년이다. 임금께서 ‘20분의 1 세법[정이십세일지법 定二十稅一之法]’을 정하시고, 물자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을 서로 통하게 하여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셨다.
재위 2년 기유(단기 342, BCE 1992)년에 풍년이 들어 줄기 하나에 이삭이 여덟 개씩 패었다.
재위 4년 신해(단기 344, BCE 1990)년에 임금께서 미복을 입고 몰래 국경을 벗어나 하나라의 실정을 살피시고 돌아와 관제를 크게 개혁하셨다.
재위 7년 갑인(단기 347, BCE 1987)년에 삼족오가 동산에 날아들었는데 그 날개 길이가 석 자나 되었다.
재위 8년 을묘(환기 5212, 신시개천 1912, 단기 348, BCE 1986)년에 우서한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아술께서 즉위하셨다.
[[[9세 단군 아술 재위 35년]]]
아술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진(환기 5213, 신시개천 1913, 단기 349, BCE 1995)년이다. 임금께서 어진 덕이 있어 백성 중에 금법禁法을 범한 자가 있으면 반드시 “분지(오물 구덩이)가 비록 더러우나 비와 이슬이 가리지 않고 내리느니라.”하시고, 죄를 논하지 않으셨다. 금법을 범한 자가 그 덕에 감화되어 순박하고 후덕한 교화가 널리 행해졌다. 이 날 해가 둘이 나타나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담처럼 늘어서서 큰 행렬을 이루었다.
재위 2년 정사(단기 350, BCE 1984)년에 청해 욕살 우착이 군사를 일으켜 대궐을 침범하였다. 임금께서 상춘으로 피난하여 구월산 남쪽 기슭에 새 궁궐을 세우시고, 우지와 우속 등을 보내 우착을 토벌하여 죽이셨다. 이후 3년 만에 다시 환도하셨다.
재위 35년 경인(환기 5247, 신시개천 1947, 단기 383, BCE 1951)년에 아술단군께서 붕어하셨다. 우가 출신 노을이 즉위하셨다.
[[[10세 단군 노을 재위 59년]]]
노을단군의 재위 원년인 신묘(환기 5248, 신시개천 1948, 단기 384, BCE 1950)년에 큰 동산을 만들어 처음으로 야생 동물을 기르셨다.
재위 2년 임진(단기 385, BCE 1949)년에 임금께서 친히 읍락에 행차하여 민정을 살피며 백성을 위로하시고 어가를 멈추고 야외에 머무르실 때 현자가 많이 따랐다.
재위 5년 을미(단기 388, BCE 1946)년, 궁문 밖에 신원목伸寃木을 세워 백성의 하소연을 들으시니 모든 백성이 크게 기뻐하였다.
재위 16년 병오(단기 399, BCE 1935)년, 동문 밖 십리 떨어진 땅 위에 연꽃이 피었고, 불함산에 누웠던 돌이 저절로 일어났으며, 천하天河에서 신령스런 거북이 그림을 지고 나타났는데 그 모양이 윷판과 같았다. 또 발해 연안에서 금괴가 나왔는데 수량이 13석石이었다.
재위 35년 을축(단기 418, BCE 1916)년에 처음으로 별을 관측하는 감성監星을 설치하셨다.
재위 59년 기축(환기 5306, 신시개천 2006, 단기 442, BCE 1892)년에 노을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도해께서 즉위하셨다.
[[[11세 단군 도해 재위 57년]]]
재위 원년인 경인(환기 5307, 신시개천 2007, 단기 443, BCE 1891)년에 도해단군께서 오가에게 명하여 12명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을 택해 국선소도國仙蘇塗를 설치하게 하셨다. 그 둘레에 박달나무를 많이 심고, 가장 큰 나무를 택하여 환웅상桓雄像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셨다. 그 이름을 웅상雄常이라 하셨다.
국자랑을 가르치는 사부 유위자有爲子가 헌책하여 아뢰었다. “오직 우리 배달이 실로 환웅천황의 신시 개천 이래 백성을 모아 ‘전佺의 도’로써 계율을 세워 교화하였습니다. 천부경과 삼일신고는 역대 성조들이 조명詔命으로 기록하였고,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다니는 풍속은 아래로 백성이 즐거이 본받았습니다. 이에 백성은 법을 범하지 않고 한결같이 잘 다스려졌으며, 들에는 도적이 없어 저절로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병이 없어 저절로 장수를 누리고 흉년이 없어 저절로 넉넉하여, 산에 올라 노래 부르고 달맞이 하면서 춤을 추며, 아무리 먼 곳이라도 그 덕화가 미치지 않은 데가 없고 어떤 곳이든 흥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덕과 가르침이 만백성에게 미치고 칭송하는 소리가 사해에 넘쳤다 하옵니다.” 그러고는 그렇게 다스려 주시기를 청하였다.
그 해 겨울 10월, 임금께서 대시전을 건축하도록 명하셨다. 대시전大始殿이 완성되니 그 모습이 지극히 웅장하고 화려하였다. 천제 환웅의 유상을 받들어 모시니 머리 위에 광채가 찬란하여 마치 태양이 온 우주를 환하게 비추는 것 같았다.
신단수 아래 무궁화 꽃[환화桓花] 위에 앉아 계시니 마치 진신 한 분이 원융무애한 마음으로 손에 천부인을 쥐고 계시는 것 같았다. 누전에 대원일大圓一을 그린 기旗를 걸어 놓고 명호를 거발환이라 하셨다. 사흘 동안 재계하고 이레 동안 강론하시니, 그 덕화의 바람이 사해를 움직였다.
그 염표문念標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은 아득하고 고요함으로 광대하니,
하늘의 도는 두루 미치어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참됨으로 만물을 하나 되게 함이니라.
땅은 하늘의 기운을 모아서 성대하니,
땅의 도는 하늘의 도를 본받아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쉼 없이 길러 만물을 하나 되게 함이니라.
사람은 지혜와 능력이 있어 위대하니,
사람의 도는 천지의 도를 선택하여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서로 협력하여 태일의 세계[대동세계, 지상천국, 불국토, 지상선경 등 인간이 염원해온 이상세계]를 만드는 데 있느니라.
그러므로 삼신께서 참마음을 내려주셔서[일신강충一神降衷],
사람의 성품은 삼신의 대광명에 통해 있으니[성통광명性通光明],
삼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재세이화在世理化],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홍익인간弘益人間].”하고, 이 글을 그대로 돌에 새기셨다.
재위 28년 정사(단기 470, BCE 1864)년에 장소를 마련하여 각지의 특산물을 모아 진기한 물건을 진열하게 하니, 천하의 백성이 다투어 바쳐 쌓은 것이 산과 같았다.
재위 38년 정묘(단기 480, BCE 1854)년에 장정을 징집하여 병사로 만드셨다. 선비 20명을 뽑아 하나라 수도로 보내 처음으로 국훈을 전하여 위엄 있는 명성을 보여주셨다.
재위 46년 을해(단기 488, BCE 1846)년에 송화강변에 청사廳舍를 세워 배와 노, 기물을 생산하여 세상에 크게 쓰이게 하셨다.
3월에 산 남쪽에서 삼신께 제사 지낼 때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제문을 지어 초제를 지내시고, 이날 밤에 특별히 술을 하사하시어 백성과 함께 돌려가며 드셨다.
모든 유희가 끝난 뒤에 누대의 전각에 오르시어 ‘천부경’을 논하고 ‘삼일신고’를 강론하시고, 오가를 돌아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살생을 금하고 잡은 것은 놓아주며, 옥문을 열고, 거지에게 밥을 주고, 사형을 없애라.” 나라 안팎에서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재위 57년 병술(환기 5363, 신시개천 2063, 단기 499, BCE 1835)년에 도해단군께서 붕어하시자 만백성이 통곡하기를 아비 어미의 상喪과 같이 하였다. 3년 동안 슬퍼하고 사해에 음악 소리가 그쳤다. 우가 출신 아한이 즉위하셨다.
[[[12세 단군 아한 재위 52년]]]
아한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해(환기 5364, 신시개천 2064, 단기 500, BCE 1834)년이다.
재위 2년 무자(단기 501, BCE 1833)년 여름 4월에 외뿔 달린 짐승이 송화강 북변에 나타났다. 가을 8월에 임금께서 나라를 순행하시다가 요하遼河의 왼쪽에 이르러 순수관경비를 세우고, 역대 제왕의 명호를 새겨 전하셨다. 이것이 금석문金石文으로 가장 오랜 것이다. 후에 창해 역사 여홍성이 이곳을 지나다가 시한 수를 지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다.
이곳 들판 예로부터 변한이라 불렀는데 유난히 특이한 돌 하나 서 있구나.
토대는 무너져 철쭉꽃이 붉게 피었고 글자는 이지러져 이끼만 푸르네.
저 아득한 태고 시절에 만들어져 흥망의 역사 간직한 채 홀로 서 있구나.
문헌으로 고증할 길 없지만 이것이 단군왕검의 자취가 아니겠는가!
재위 29년 을묘(단기 528, BCE 1806)년에 조칙을 내려 청아 욕살 비신과 서옥저 욕살 고사침과 맥성 욕살 돌개를 열한으로 봉하셨다.
재위 52년 무인(환기 5364, 신시개천 2064, 단기 500, BCE 1834)년에 아한단군께서 붕어하셨다. 우가 출신 흘달이 즉위하셨다.
[[[13세 단군 흘달 재위 61년]]]
흘달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묘(환기 5416, 신시개천 2116, 단기 552, BCE 1782)년이다.
재위 16년 갑오(BCE 1767)년에 임금께서 주현州縣을 정하고 관직을 분립하는 제도를 두셨다. 관官은 권한을 겸하지 못하게 하고 정치는 법도를 넘지 않게 하시므로, 백성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 하는 일을 편안하게 여기어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소리가 나라에 넘쳐흘렀다.
이 해 겨울, 은殷나라 사람이 하夏나라를 치자 하나라 걸傑왕이 구원을 청하였다. 임금께서 읍차 말량에게 구환의 병사를 이끌고 전투를 돕게 하셨다. 이에 탕湯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군사를 되돌리라 명하셨다. 이때 걸傑이 약속을 어기고 군사를 보내어 길을 막고 맹약을 깨뜨리려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께서 마침내 은나라 사람과 함께 걸을 치는 한편, 은밀히 신지 우량을 보내어 견군畎軍을 이끌고 낙랑樂浪 군사와 합세하여 관중의 빈, 기 땅을 점령하여 주둔시키고 관제를 설치하였다.
재위 20년 무술(단기 571, BCE 1763)년에 소도蘇途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으셨다. 미혼 소년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부르셨다. 국자랑이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꽃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불렀다.
재위 50년 무진(단기 601, BCE 1733)년에 오성五星이 누성樓星에 모이고[戊辰五十年五星聚婁], 황학黃鶴이 날아와 금원禁苑의 소나무에 깃들었다.
재위 61년 기묘(환기 5476, 신시개천 2176, 단기 612, BCE 1722)년에 흘달단군께서 붕어하시자 만백성이 음식을 끊었고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명을 내려 죄수와 포로를 석방하고, 살생을 금하고 방생하였다. 해를 넘겨서 장례를 치렀다. 우가 출신 고불이 즉위하셨다.
[[[14세 단군 고불 재위 60년]]]
고불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진(환기 5477, 신시개천 2177, 단기 613, BCE 1721)년이다.
재위 6년 을유(단기 618, BCE 1716)년, 이 해에 큰 가뭄이 들어 임금께서 친히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셨다. 하늘에 바친 ‘서고문誓告文’은 이러하다.
하늘이 비록 크다 하여도 백성이 없으면 어찌 베풀 것이며
비가 비록 대지를 기름지게 하지만 곡식이 없으면 어찌 귀하겠사옵니까!
백성이 하늘처럼 섬기는 것은 곡식이요 하늘이 마음으로 삼는 바는 사람이옵니다.
하늘과 사람이 한 몸일진대 하늘이 어찌 백성을 버리시나이까!
어서 비를 내려 곡식이 잘 자라도록 하여 저희 백성을 제 때에 구제하여 주옵소서.
기도를 마치자 곧 큰 비가 수천 리에 내렸다.
재위 42년 신유(단기 654, BCE 1680)년 9월에 고목에서 싹이 돋았고, 오색찬란한 큰 닭이 성동자 마을의 한 집에서 태어났는데 보는 사람들이 봉鳳으로 잘못 알았다.
재위 56년 을해(단기 668, BCE 1666)년에 사방으로 관리를 보내 호구를 조사하니 모두 1억 8천만 명이었다. (원문: 乙亥五十六年 遣官四方 査計戶口 總一億八千萬口)
재위 60년 기묘(환기 5536, 신시개천 2236, 단기 672, BCE 1662)년에 고불단군께서 붕어하셨다. 대음이 즉위하셨다.
[[[15세 단군 대음 재위 51년]]]
대음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진(환기 5537, 신시개천 2237, 단기 673, BCE 1661)년이다. 은나라 왕 소갑小甲(7세)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이 해에 세제를 개혁하여 80분의 1 세법으로 고쳤다.
재위 2년 신사(단기 674, BCE 1660)년, 홍수가 크게 나서 민가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임금께서 심히 불쌍히 여기시어 곡식을 창해, 사수 땅으로 옮겨 백성에게 균등하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겨울 10월에 양운, 수밀이 두 나라 사람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재위 10년 기축(단기 682, BCE 1652)년에 임금께서 서쪽의 약수에 순행하여, 신지 우속에게 명하여 금과 철과 기름을 채취하게 하셨다. 가을 7월에 우루 사람 20가구가 투항해 오므로 염수 근처의 땅에 정착하게 하셨다.
재위 28년 정미(단기 700, BCE 1634)년에 임금께서 태백산에 올라 옛 성조들과 여러 제후국 왕의 공적을 새긴 비석을 세우셨다.
재위 40년 기미(단기 712, BCE 1622)년에 아우 대심을 남선비국의 대인으로 봉하셨다.
재위 51년 경오(환기 5587, 신시개천 2287, 단기 723, BCE 1611)년에 대음단군께서 붕어하셨다. 우가 출신 위나가 즉위하셨다.
[[[16세 단군 위나 재위 58년]]]
위나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미(환기 5588, 신시개천 2288, 단기 724, BCE 1610)년이다.
재위 28년 무술(단기 724, BCE 1610)년에 임금께서 구환족의 모든 왕을 영고탑寧古塔에 모이게 하여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지낼 때, 환인천제, 환웅천황, 치우천황(14세 환웅천황)과 단군왕검을 배향하셨다.
5일간 큰 연회를 베풀어 백성과 함께 불을 밝히고 밤을 새워 천부경을 노래하며 마당밟기를 하셨다. 한쪽에 횃불을 줄지어 밝히고, 다른 쪽에서 둥글게 춤을 추며[환무環舞] 애환가를 함께 불렀다. 애환가愛桓歌(환화를 사랑하는 노래)는 고신가古神歌의 한 종류이다. 옛 사람들은 환화를 가르켜 이름을 짓지 않고 그냥 꽃이라 하였다. 애환가에 전하는 가사가 있으니 이러하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지난해 만 그루 심고, 올해도 만 그루 심었어라.
봄에 찾아와 불함산 꽃이 온통 붉으니
상제님 섬기고 태평세월 즐겨 보세.
재위 58년 무진(환기 5645, 신시개천 2345, 단기 781, BCE 1553)년에 위나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여을께서 즉위하셨다.
[[[17, 18, 19, 20세 단군 여을, 동엄, 구모소, 고홀 재위]]]
17세 여을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사(환기 5646, 신시개천 2346, 단기 782, BCE 1552)년이다.
재위 52년 경신(단기 833, BCE 1501)년에 임금께서 오가와 함께 두루 나라를 순수巡狩하셨다. 개사성 부근에 이르시자, 푸른 도포를 입은 노인이 찬미의 노래를 지어 바쳤다.
오랫동안 선인의 나라에 살면서 기쁜 마음으로 선인 나라 백성이 되었네.
임금님 밝은 덕 어긋남 없고 임금님 훌륭하신 도 치우침 없으니
백성이여! 이웃이여! 근심과 괴로움을 볼 수 없어라.
책화로 믿음을 삼으시고 관경으로 은혜를 베푸셨네.
성이여! 나라여! 전쟁과 정벌 따위 볼 수 없어라.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암, 그래야지. 반드시 그렇게 해야지! 짐의 덕 닦음이 일천하여 백성이 바라는 바에 보답하지 못할까 두렵도다.”하셨다.
재위 68년 병자(환기 5713, 신시개천 2413, 단기 849, BCE 1485)년에 여을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동엄께서 즉위하셨다.
18세 동엄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축(환기 5714, 신시개천 2414, 단기 850, BCE 1484)년이다.
재위 20년 병신(단기 869, BCE 1465)년에 *지백특支伯特사람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재위 49년 을축(환기 5762, 신시개천 2462, 단기 898, BCE 1436)년에 동엄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구모소가 즉위하셨다.
19세 구모소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인(환기 5763, 신시개천 2463, 단기 899, BCE 1435)년이다.
재위 24년 기축(단기 922, BCE 1412)년에 *남상인南裳人이 입조하였다.
재위 54년 기미(단기 952, BCE 1382)년에 지리숙이 주천력周天曆과 팔괘상중론八卦相重論을 지었다.
재위 55년 경신(환기 5817, 신시개천 2517, 단기 953, BCE 1381)년에 구모소단군께서 붕어하셨다. 우가 출신 고홀이 즉위하셨다.
20세 고홀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유(환기 5818, 신시개천 2518, 단기 954, BCE 1380)년이다.
재위 11년 신미(단기 964, BCE 1370)년 가을에 태양이 무지개를 꿰뚫었다.
재위 36년 병신(단기 989, BCE 1370)년에 영고탑을 개축하시고 별궁을 지으셨다.
재위 40년 경자(단기 989, BCE 1370)년에 공공인 공흘이 구환지도를 만들어 바쳤다.
재위 43년 계묘(환기 5860, 신시개천 2560, 단기 996, BCE 1338)년, 사해가 평안하지 못할 때 고흘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소태께서 즉위하셨다.
[[[21세 단군 소태 재위 52년]]]
소태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진(환기 5818, 신시개천 2518, 단기 954, BCE 1380)년이다. 은나라 왕 소을(小乙 21세)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재위 47년 경인(단기 1043, BCE 1291)년에 은나라 왕 무정(武丁 22세)이 전쟁을 일으켜 이미 귀방을 물리치고 나서 다시 대군을 이끌고 삭도, 영지 등의 나라를 침공하다가 우리 군사에게 대패하여 화친을 청하고 조공을 바쳤다.
재위 49년 임진(단기 1045, BCE 1289)년에 개사원 욕살 고등이 몰래 군사를 이끌고 *귀방을 공격하여 멸망시키자, 일군, 양군 두 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이때 고등이 대군을 장악하고 서북 지방을 경략하니 세력이 더욱 강성해졌다. 고등이 임금께 사람을 보내어 우현왕이 되기를 주청하였다. 임금께서 꺼리시며 윤허하지 않으시다가 거듭 청하므로 윤허하시고, *두막루라 불렀다.
재위 52년 을미(단기 1048, BCE 1286)년에 우현왕 고등이 홍서하고, 손자 색불루가 우현왕을 계승하였다. 임금께서 나라를 순수하시다가 남쪽 해성에 이르러 부로들을 크게 모아 하늘에 제사 지내고 노래와 춤을 즐기셨다. 이때 오가를 모아 놓고 옥좌를 양위할 일을 함께 논의할 때 “내가 이제 늙어 일하기가 고달프다”라고 말씀하시고, “서우여에게 정사를 맡기겠노라”하셨다. 이에 살수 주위의 땅 백 리를 분봉하여 섭주로 삼고 기수라 하셨다.
우현황이 소식을 듣고 임금께 사람을 보내어 멈추시기를 청하였으나, 임금께서 끝내 듣지 않으시고 우현왕이 좌우의 사람들과 사냥꾼 수천 명을 이끌고 *부여신궁에서 단군으로 즉위 하였다. 이에 임금께서 부득이 옥책과 국보를 우현왕에게 전하고, 서우여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드셨다. 임금께서 아사달에 은거하여 그곳에서 최후를 마치셨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왕자로서 왕위를 사양하고 달아나 동해 쪽 물가에 살면서 스스로 밭을 일구어 먹고 살았다.
[[[22세 단군 색불루 재위 48년]]]
색불루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신(환기 5913, 신시개천 2613, 단기 1049, BCE 1285)년이다. 임금께서 녹산鹿山(백악산 아사달)*의 성을 개축하게 하고 관제를 개혁*하셨다. 가을 9월에 장당경에 행차하여 종묘를 세우고 (조부) 고등왕高登王에게 제사를 재내셨다[立廟祀高登王*]. 11월에 친히 구환의 군사를 이끌고 여러 차례 전투를 벌여 은나라 수도를 함락하고 잠시 강화하였으나, 또 다시 싸워 크게 격파하셨다.
이듬해 2월에 황하 상류까지 추격하여 대첩의 하례를 받으시고, 회수와 태산 지역에 변한(번한)백성을 이주시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게 하시어 국위를 크게 떨쳤다.
재위 6년 신축(단기 1054, BCE 1280)년에 신지 육우가 주청하기를, “아사달은 천 년 제업의 땅이나 대운이 이미 다 했고 영고탑은 왕기가 농후하여 백악산보다 나으니, 청하옵건대 그곳에 성을 쌓고 천도하시옵소서”하니, 임금께서 윤허하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새 수도에 이미 자리를 잡았거늘 어찌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기리오”하셨다.
재위 20년 을묘(단기 1068, BCE 1266)년에 이르러 남국이 자못 강성하여 고죽국왕과 더불어 모든 도적을 쪽아 버렸다. 남쪽으로 옮겨 엄독홀에 이르러 머무르니 그 곳은 은나라 국경과 가까운 곳이었다.
임금께서 여파달로 하여금 병력을 나누어 빈, 기 땅으로 진격하게 하시고, 그곳 유민과 서로 단합하여 나라를 세워, 그 이름을 *여黎라 하셨다. 이들은 서쪽 융족과 더불어 은나라의 제후국들 안에 뒤섞여 살게 하셨다. 남씨의 위세가 매우 강성해지고, 임금의 덕화가 멀리 항산 이남의 땅까지 미쳤다.
재위 36년 신미(단기 1084, BCE 1250)년에 변방 장수 신독이 난을 일으켜 임금께서 잠시 영고탑으로 피난하시니 많은 백성이 뒤를 따랐다.
재위 48년 계미(환기 5960, 신시개천 2660, 단기 1096, BCE 1238)년에 색불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아홀께서 즉위하셨다.
[[[23세 단군 아홀 재위 76년]]]
아홀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신(환기 5961, 신시개천 2661, 단기 1097, BCE 1237)년이다. 아우 고불가에게 명하여 *낙랑홀樂浪忽을 다스리게 하시고, 웅갈손을 보내어 남국藍國 왕과 함께 남방을 정벌하는 군대를 살피게 하셨다.
은나라 땅에 여섯 읍을 설치할 때, 은나라 사람과 서로 다투어 결판이 나지 않으므로 병력을 진군시켜 이를 격파하셨다.
가을 7월에 임금께서 신독을 베고 환도하여 죄수와 포로를 석방하라고 명하셨다.
재위 2년 을유(단기 1098, BCE 1236)년 남국 왕 금달이 청구국 왕, 구려국 왕과 더불어 주개에서 만나 몽고리의 군대와 합세하여 이르는 곳마다 은나라 성책을 부수고 오지로 깊숙이 들어갔다.아홀단군께서 회대淮垈(회수와 태산)땅을 평정하고 포고씨를 엄淹에, 영고씨를 서徐에, 방고씨를 회淮에 봉하시니 은나라 사람이 이것을 보고 겁내어 감히 근접하지 못하였다.
재위 5년 무자(단기 1101, BCE 1233)년에 임금께서 이한二韓(번한, 마한)과 오가五加를 불러 영고탑으로 도읍을 옮기는 일에 대한 의논을 중지시키셨다.
재위 76년 기해(환기 6036, 신시개천 2736, 단기 1172, BCE 1162)년 아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연나延那께서 즉위하셨다.
[[[24, 25세 단군 연나, 솔나 재위 11년, 88년]]]
24세 단군 연나 재위 11년
연나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자(환기 6037, 신시개천 2737, 단기 1173, BCE 1161)년이다. 임금께서 숙부 고불가에게 명하여 섭정을 맡기셨다.
재위 2년 신축(단기 1174, BCE 1160)년에 여러 왕[칸汗]이 조칙을 받들어 소도蘇塗를 증설하여 하늘에 제사 지내고, 국가에 대사가 있거나 재앙이 있으면 곧 기도하여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았다.
재위 11년 경술(환기 6047, 신시개천 2747, 단기 1183, BCE 1151)년에 연나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솔나께서 즉위하셨다.
25세 단군 솔나 재위 88년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세워짐)
솔나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해(환기 6048, 신시개천 2748, 단기 1184, BCE 1150)년이다.
재위 37년 정해(단기 1220, BCE 1114)년에 *기자箕子가 *서화西華에 살면서 인사를 사절하였다.
재위 47년 정유(단기 1230, BCE 1104)에 임금께서 상소도上蘇塗에서 고례古禮를 강론하시다가, 아첨하는 신하[영신佞臣]와 올곧은 신하[직신直臣]의 차이를 물으셨다. 삼랑三郞 홍운성이 나아가 아뢰었다.
"올바른 이치를 굳게 지켜 굽히지 않는 자는 직신直臣이요, 권위를 두려워하여 자기 뜻을 굽혀 복종하는 자는 영신佞臣입니다. 임금은 근원이요 신하는 지류이니 근원이 이미 탁하거늘 지류가 맑기를 바란다면 이는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군왕이 성군이라야 신하가 올곧은 신하가 되는 것이옵니다." 임금께서 “그대 말이 옳도다.” 하셨다.
재위 59년 기유(단기 1242, BCE 1092)년에 밭곡식이 잘 여물어 한 줄기에 다섯 이삭이 패었다.
재위 88년 무인(환기 6135, 신시개천 2835, 단기 1271, BCE 1063)년에 솔나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추로께서 즉위하셨다.
[[[26, 27, 28, 29세 추로, 두밀, 해모, 마휴 단군]]]
26세 단군 추로 재위 65년
추로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묘(환기 6136, 신시개천 2836, 단기 1272, BCE 062)년이다. 가을 7월에 백악산 계곡에 흰 사슴 200마리가 떼를 지어 와서 놀았다.
재위 65년 계미(환기 6200, 신시 천 2900, 단기 1336, BCE 998)년에 추로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두밀께서 즉위하셨다.
27세 단군 두밀 재위 26년
두밀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신(환기 6201, 신시개천 2901, 단기 1337, BCE 997)년이다. *천해天海의 물이 넘치고 *사아란산斯阿蘭山이 무너졌다. 이 해에 수밀이국 · 양운국 · 구다천국이 모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재위 8년 신묘(단기 1344, BCE 990)년에 심한 가뭄이 든 뒤에 큰비가 내려 백성들이 곡식을 거둬들이지 못하였다. 임금께서 곡물 창고를 열어 두루 나누어 주게 하셨다.
재위 26년 기유(환기 6226, 신시개천 2926, 단기 1362, BCE 972)년에 두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해모가 즉위하셨다.
28세 단군 해모 재위 28년
해모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술(환기 6227, 신시개천 2927, 단기 1363, BCE 971)년이다. 임금께서 병이 나자 흰옷 입은 동자[白衣童子]로 하여금 하늘에 기도하게 하니 곧 나으셨다.
재위 11년 경신(단기 1373, BCE 961)년 여름 4월에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폭우가 쏟아져 땅 위에 물고기가 어지럽게 떨어졌다.
재위 18년 정묘(단기 1380, BCE 954)년에 빙해氷海지역 여러 왕[칸汗]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재위 28년 정축(환기 6254, 신시개천 2954, 단기 1390, BCE 944)년에 해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마휴摩休가 즉위하셨다.
29세 단군 마휴 재위 34년
마휴단군의 재위 원년은 무인(환기 6255, 신시개천 2955, 단기 1391, BCE 943)년이다. 주周나라 사람이 공물을 바쳤다.
재위 8년 을유(단기 1398, BCE 936)년 여름에 지진이 있었다.
재위 9년 병술(단기 1399, BCE 935)년에 남해 조수潮水가 석자 후퇴했다. [南海潮水退三尺]
재위 34년 신해(환기 6288, 신시개천 2988, 단기 1424, BCE 910)년에 마휴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내휴奈休가 즉위하셨다.
[[[30, 31, 32세 내휴, 등올, 추밀 단군]]]
30세 단군 내휴 재위 35년
내휴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자(환기 6289, 시개천 2989, 기 1425, BCE 909) 년이다. 임금께서 남쪽으로 순수하여 청구靑邱의 정치 상황을 돌아보고 돌에 치우천황의 공덕을 새기셨다. 서쪽으로 엄독훌에 이르러 분조分朝의 여러 왕을 모아 열병하신 후 하늘에 제사 지내고[열병제천閱兵祭天], 주周나라와 수교修交하셨다.
재위 5년 병진(단기 1429, BCE 905)년, 흉노匈奴가 공물을 바쳤다.
재위 35년 병술(환기 6323, 신시개천 3023, 단기 1459, BCE 875)년에 내휴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등올께서 즉위하셨다.
31세 단군 등올 재위 25년
등올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해(환기 6324, 신시개천 3024, 단기 1460, BCE874)년이다.
재위 16년 임인(단기 1475, BCE 859)년에 봉황鳳凰이 백악산에서 울고 기린麒麟이 상원上苑에 와서 놀았다.
재위 25년 신해(환기 6348, 신시개천 3048, 단기 1484, BCE 850)년에 등올단군께서 붕어하셨다. 아들 추밀께서 즉위하셨다.
32세 단군 추밀 재위 30년
추밀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자(환기 6349, 신시개천 3049, 단기 1485, BCE 849)년이다.
재위 3년 갑인(단기 1487, BCE 847)년에 선비산鮮卑山 추장 문고們古가 공물을 바쳤다.
재위 12년 계해(단기 1496, BCE 838)년에 나라 대부 이문기李文起가 입조入朝하였다.
재위 13년 갑자(단기 1497, BCE 837)년 3월에 일식이 있었다.
재위 15년 병인(단기 1499, BCE 835)년에 농작물에 심한 흉년이 들었다.
재위 30년 신사(환기 6378, 신시개천 3078, 단기 1514, BCE 820) 년에 추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감물께서 즉위하셨다.
[[[33세 단군 감물 재위 24년]]]
감물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오(환기 6379, 신시개천 3079, 단기 1515, BCE 819)년이다.
재위 2년 계미(단기 1516, BCE 818)년에 주周나라 사람이 와서 호랑이와 코끼리 가죽을 바쳤다.
재위 7년 무자(단기 1521, BCE 813)년에 영고탑 서문 밖 감물산甘勿山 아래에 삼성사三聖祠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드렸는데, 그 서고문誓告文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 분 성조(환인·환웅·당군)의 높고도 존귀하심은
삼신과 더풀어 공덕이 같으시고
삼신(상제님)의 덕은 세 분 성조로 말미암아 더욱 성대해지도다.
텅 빔(무)과 현상(유)은 한 몸이요[허조동체虛組同體]
날날[個]과 전체[全]는 하나이니[개전일여個全一如].
지혜와 삶 함께 닦아[지생쌍수智生雙修]
내 몸과 영혼 함께 뻗어나가네[형혼구연形魂俱衍].
참된 가르침이 이에 세워져
믿음이 오래면 스스로 밝아지리라.
삼신의 힘을 타면 존귀해지나니[승세이존乘勢以尊]
빛을 돌려 내 몸을 살펴보세[회광반궁回光反躬].
저 높고 가파른 백악산은 만고에 변함없이 푸르구나.
역대 성조께서 대를 이어
예악을 찬란히 부흥시키셨으니
그 규모 이토록 위대하여
신교의 도술 깊고도 광대하여라.
하나(一氣)속에 셋(삼신)이 깃들어 있고[집일함삼執一含三],
세 손길로 작용하는 삼신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나니[회삼귀일會三歸一].
하늘의 계율 널리 펴서 영세로록 법으로 삼으리.
위 24년 을사(환기 6402, 신시개천 3102, 단기 1538, BCE 796) 년에 감물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오루문께서 즉위하셨다.
[[[34, 35, 36세 오루문, 사벌, 매륵 단군]]]
34세 단군오루문 재위 23년
오루문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오(환기 6403, 신시개천 3103, 단기 1539, BCE 795)년이다. 이 해에 오곡이 풍성하게 잘 익어 만백성이 기뻐하며 '도리가兜理歌'를 지어 부르니 그 가사는 이러하다.
하늘에 아침 해 솟아 밝은 빛 비추고
나라에 성인이 계셔 후덕한 가르침 널리 미치도다.
큰 나라 우리 배달 성조聖朝여!
많고 많은 사람들 가혹한 정치 당하지 않아
즐겁고 화평하게 노래하니 늘 태평성대로세!
재위 10년 을묘(단기 1548, BCE 786)년, 두 개의 해가 함께 뜨고 누런 안개가 사방을 덮었다.
재위 23년 무진(환기 6425, 신시개천 3125, 단기 1561, BCE 773) 년에 오루문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사벌께서 즉위하셨다.
35세 단군 사벌 재위 68년
사벌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사(환기 6426, 신시개천 3126, 단기 1562, BCE 772)년이다.
재위 6년 갑술(단기 1567, BCE 767)년, 이 해에 누리가 날뛰고 홍수가 있었다.
재위 14년 임오(단기 1575, BCE 759)년에 범이 궁전에 들어왔다.
재위 24년 임진(단기 1585, BCE 749)년에 홍수가 나서 산이 무너지고 골짜기가 메워졌다.
재위 50년 무오(단기 1611, BCE 723)년에 임금께서 장수 언파불합彦波弗哈을 보내어 바다 위의 웅습熊襲(구마소)을 평정하셨다.
재위 66년 갑술(단기 1627, BCE 707)년에 임금께서 조을祖乙을 보내어 곧장 연燕나라 수도로 진격하게 하시니, 제齊나라 군대와 더불어 임치臨淄(제나라 수도) 남쪽 들판에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고 고하였다.
재위 68년 병자(환기 6493, 신시개천 3193, 단기 1629, BCE 705)년에 사벌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매륵께서 즉위하셨다.
36세 단군 매륵 재위 58년
매륵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축(환기 6494, 신시개천 3194, 단기 1630, BCE 704)년이다.
재위 28년 갑진(단기 1657, BCE 677)년에 지진과 해일이 일어났다.
재위 32년 무선(단기 1661, BCE 673)년에 서쪽 마을 민가에서 다리가 여닮 개 달린 송아지가 태어났다.
재위 35년 신해(단기 1664, BCE 670)년에 용마龍馬가 천하天河에서 나왔는데 등에 별 무늬가 있었다.
재위 38년 갑인(단기 1667, BCE 667)년 협야후陜野候 배반명裵搫命을 보내어 해상의 적을 토벌하게 하셨다. 12월에 삼도三島(일본을 구성하는 세 섬, 곧 큐슈, 혼슈, 시코쿠)를 모두 평정하였다.
재위 52년 무진(단기 1681, BCE 653)년에 임금께서 병력을 보내 수유국須臾國 군대와 더불어 연燕나라를 정벌하자 연나라 사람이 제齊나라에 위급을 고했다. 제나라 사람들이 대거 고죽孤竹으로 쳐들어오다가 아군의 복병을 만나 전세가 불리하자, 화친을 구걸하고 물러갔다.
재위 58년 갑술(환기 6551, 신시개천 3251, 단기 1687, BCE 647)년에 매륵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마물께서 즉위하셨다.
[[[37, 38, 39, 40, 41, 42세 마물, 다물, 두홀, 달음, 음차, 을우지단군]]]
37세 단군 마물 재위 56년
마물단군의 재위 원년은 을해(환기 6552, 신시개천 3252, 단기 1688, BCE 646)년이다.
재위 56년 경오(환기 6607, 신시개천 3307, 단기 1743, BCE 591)년에 임금께서 남쪽으로 순수하시다가 기수淇水에 이르러 붕어하셨다. 태자 다물多勿께서 즉위하셨다.
38세 단군 다물 재위 45년
다물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미(환기 6608, 신시개천 3308, 단기 1744, BCE 590)년이다.
재위 45년 을묘(환기 6652, 신시개천 3352, 단기 1788, BCE 546)년에 다물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두홀豆忽께서 즉위하셨다.
39세 단군 두홀 재위 36년
두홀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진(환기 6653, 신시개천 3353, 단기 1789, BCE 545)년이다.
재위 36년 신묘(환기 6688, 신시개천 3388, 단기 1824, BCE 51 년에 두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달음達音께서 즉위하셨다.
40세 단군 달음 재위 18년
달음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진(환기 6689, 신시개천 3389, 단기 1825, BCE 509)년이다.
재위 18년 기유(환기 3706, 신시개천 3406, 단기 1842, BCE 49)년에 달음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음차音次께서 즉위하셨다.
41세 단군 음차 재위 20년
음차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술(환기 3707, 신시개천 3407, 단기 1843, BCE 49 1)년이다.
재위 20년 기사(환기 6726, 신시개천 3426, 단기 1862, BCE 472)년에 음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을우지乙于支께서 즉위하셨다.
42세단군 을우지 재위 10년
을우지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오(환기 6727, 신시개천 3427, 단기 1863, BCE 471)년이다.
재위 10년 기묘(환기 6736, 신시개천 3436, 단기 1872, BCE 462)년에 을우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물리勿理께서 즉위하셨다.
[[[43, 44세 물리, 구물 단군]]]
43세 단군 물리 재위 36년
물리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진 환기 6737, 신시개천 3437, 단기 1873, BCE 461)년이다.
재위 36년 을묘(환기 6772, 시개천 3472, 단기 1908, BCE 426)년에 융안의 사냥꾼 우화충于和冲이 스스로 장군이라 칭하고 무리 수만 명을 모아 서북 36군郡을 함락시켰다. 임금께서 군사를 보내셨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겨울에 이 역적이 도성을 포위하고 급히 공격하므로 임금께서 좌우 궁인과 더불어 종묘와 사직의 신주神主를 받들고 배를 타고 내려가다가 해두海頭에 이르렀는데 얼마 있지 않아 붕어하셨다.
이 해에 백민성白民城 욕살 구물丘勿이 천명을 받들어 병사를 일으켜 먼저 장당경藏唐京을 점령하자 아홉 지역의 군사가 추종하고 동서압록의 열여덟 성이 모두 군사를 보내 원조하였다.
44세 단군 구물 재위 29년
구물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진(환기 6773, 신시개천 3473, 단기 1909, BCE 425)년이다. 3월에 홍수로 도성이 잠기자 역적들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구물이 병사 만 명을 이꿀고 가서 토벌하자, 역적들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궤멸하였다. 마침내 우화충을 잡아 참수하였다.
[국호를 대부여로 개칭, 삼조선 분립]
이에 구물이 모든 장수의 추대를 받아 월 16일에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 지내고 장당경에서 즉위하였다. 구물단군께서 국호를 대부여大夫餘로 바꾸고, 삼한을 삼조선三朝鮮으로 바꾸셨다. 이로부터 삼조선이 비록 대단군을 받들어 한 분이 다스리는 제도는 그대로 유지하였으나 화전和戰의 권한(병권兵權)은 단군 한 분에게 있지 않았다.
7월에 해성海城을 개축하여 평양平壞이라 하고 별궁[離宮]을 지으셨다.
재위 2년 정사(단기 1910, BCE 424)년에 예관禮官이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를 올리기를 청하니 3월 16일(대영절大迎節)이었다. 임금께서 친히 납시어 경배하실 때, 초배에 세 번 조아리고, 재배에 여섯 번 조아리고, 삼배에 아홉 번 조아리는 것이 예禮이지만, 무리를 따라 특별히 열 번 조아리셨다. 이것이 삼육대례三六大禮이다.
재위 17년 임신(단기 1925, BCE 409)년에 임금께서 각 주군州郡에 감찰관을 보내어 관리와 백성을 규찰糾察하고, 효자와 청렴한 선비를 천거하게 하셨다.
재위 23년 무인(단기 1931, BCE 403)년에 연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신년 하례를 올렸다.
재위 29년 갑신(환기 6801, 신시개천 3501, 단기 1937, BCE 397)년에 구물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여루余婁께서 즉위하셨다.
[[[45, 46세 여루, 보을 단군]]]
45세 단군 여루 재위 55년
여루단군의 재위 원년은 을유(환기 6802, 시개천 3502, 단기 1938, BCE 396)년이다. 장령長嶺 · 낭산狼山에 성을 쌓았다.
재위 17년 신축(단기 1954, BCE 380)년에 연나라 사람이 변방을 침범하자 그곳을 지키던 장수 묘장춘苗長春이 이를 쳐서 물리쳤다.
[요서 지방의 모든 성을 회복함]
재위 32년 병진(단기 1969, BCE 365)년에 연나라 사람들이 이틀길을 하루에 달려 쳐들어와 요서를 함락하고 운장雲障 지방을 핍박하였다. 번조선香朝鮮 왕이 상장 우문언于文言에게 명하여 막게 하고, 진眞 · 막莫 두 조선도 역시 군대를 보내 구원하였다. 복병을 두어 협공하여 연燕 · 제齊 두 나라의 군대를 오도하五道河에서 깨뜨리고 요서지방의 성을 모두 회복하였다.
[연나라의 끊임없는 침략]
재위 33년 정사(단기 1970, BCE 364)년에 연나라 사람들이 패한 뒤에도 연운도連雲島에 주둔하면서 배를 만들어 장차 쳐들어오려 하였다. 우문언이 추격하여 대파하고 그 장수를 쏘아 죽였다.
재위 47년 신미(단기 1984, BCE 350)년에 북막北漠 추장 액니거길厄尼車吉이 내조來朝하여 말 2백 필을 바치고 함께 연燕을 치자고 청하였다. 이에 번조선 소장少將 신불사申不私로 하여금 병사 1만 명을 거느리게 하시니 연나라 상곡上谷을 함께 공격하여 함락하고 성읍城邑을 설치하였다.
재위 54년 무인(단기 1991, BCE 343)년 상곡 싸움 이후로 연나라가 해마다 쳐들어오다가 이때에 사신을 보내 강화를 청하자, 이를 윤허하시고 다시 조양造陽의 서쪽으로 경계를 삼으셨다.
재위 55년 기묘(환기 6856, 신시개천 3556, 단기 1992, BCE 342)년 여름에 큰 가뭄이 들자 임금께서 원통하게 옥살이하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대사면을 내리고, 친히 납시어 기우제를 지내셨다. 9월에 여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보을普乙께서 즉위하셨다.
46세 단군보을 재위 46년
[번조선 왕 시해사건과 고조선 중앙정부의 내분 심화]
보을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진(환기 6857, 신시개천 3557, 단기 1993, BCE 341)년이다.
12월에 번조선 왕 해인解仁이 연나라에서 보낸 자객에게 시해弑害를 당하였다. 오가五加가 서로 권력을 다투었다.
[기후가 번조선 왕이되다]
재위 19년 무술(단기 2011, BCE 323)년 정월에 읍차邑借 기후箕詡가 병사를 이끌고 번조선 궁에 진입하여 스스로 70세 번조선 왕이 되고, 사람을 보내어 윤허를 청하였다. 임금께서 윤허하시고 연나라에 대한 방비를 강화하게 하셨다.
재위 38년 정사(단기 2030, BCE 304)년에 도성(장당경)에 큰 불이 일어나 모두 타 버리자 임금께서 해성悔城의 별궁으로 피하셨다.
재위 44년 계해(단기 2036, BCE 298)년에 북막 추장 이사尼舍가 음악을 지어 바치니 임금께서 이를 받으시고 후히 상을 내리셨다.
[한개의 반란을 진압한 고열가, 쇠락하는 고조선]
재위 46년 을축(환기 6902, 신시개천 3602, 단기 2038, BCE 296)년에 한개韓介가 수유須臾의 병사를 이끌고 궁궐을 침범하여 스스로 임금 자리에 올랐다. 이에 상장 고열가高列加가 의병을 일으켜 한개를 격파하였다. 임금께서 환도하고 대사면을 내리셨다. 이로부터 나라의 힘이 심히 미약해지고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하더니 얼마 있지 않아 보을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후사는 없었다.
고열가가 43세 물리勿理단군의 현손으로 백성의 사랑과 공경을 받고 또한 공로가 많으므로 드디어 추대를 받아 즉위하셨다.
[[[47세 고열가 단군 재위 58년]]]
고열가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인(환기 6903, 신시개천 3603, 단기 2039, BCE 295)년이다.
재위 14년 기묘(단기 2052, BCE 282)년에 임금께서 백악산에 단군왕검의 사당을 세워 유사有司로 하여금 계절마다 제사 지내게 하시고, 임금께서는 일 년에 한 번씩 친히 제사를 드리셨다.
재위 44년 기유(단기 2082, BCE 252)년에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신년 하례를 올렸다.
재위 48년 계축(단기 2086, BCE 248)년 10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이 해 겨울에 북막 추장 아리당부阿里當夫가 연나라를 정벌하는데 출병해 주기를 청하였다. 임금께서 응하지 않으시자, 원망하여 이후로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해모수가 웅심산에서 일어남]
재위 57년 임술(환기 6959, 신시개천 3659, 단기 2095, BCE 239)년 4월 8일에 해모수가 웅심산熊心山으로 내려와 군사를 일으켰다. 해모수의 선조는 고리국 사람이다.
재위 58년 계해(환기 6960, 신시개천 3660, 단기 2096, BCE 238)년, 임금께서 어질고 인자하시나 우유부단하여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여러 장수가 자신의 용맹을 믿고 화란을 자주 일으켰다. 나라 살림은 쪼들리고 백성의 기운도 더욱 쇠약해졌다.
[단군조선의 몰락과 북부여 시대의 개창]
3월 제천祭天을 행한 날 저녁에 임금께서 오가五加와 더불어 의논하여 말씀하셨다.
"옛날 우리 성조들께서 처음으로 법도를 만들고 국통國統을 세워 후세에 전하셨노라. 덕을 심으심이 넓고도 멀리 미쳐 만세의 법이 되어 왔노라. 그러나 이제 왕도가 쇠미하여 모든 왕[汗]이 세력을 다투고 있도다. 짐이 덕이 부족하고 나약하여 능히 다스릴 수 없고, 이들을 불러 무마시킬 방도도 없으므로 백성이 서로 헤어져 흩어지고 있느니라. 너희 오가는 현인을 택하여 단군으로 천거하라." 옥문을 크게 열어 사형수 이하 모든 포로를 석방하셨다.
[오가의 과도기 공화정 시대]
이튿날 임금께서 마침내 제위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여 선인仙人이 되셨다. 이에 오가五加가 6년(단기 2096, BCE 238~단기2102, BCE 232)동안 국사를 공동으로 집행하였다.
이보다 먼저, 종실宗室인 대해모수께서 은밀히 수유국須臾國과 약속을 하고, 옛 도읍지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거한 뒤에 스스로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하셨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두 해모수의 명을 따랐다.
[북부여가 발흥한 배경과 고구려 호칭의 기원]
이때에 해모수께서 모든 장수를 봉하면서 수유후須臾候 기비箕丕를 올려 번조선 왕으로 삼아(단기 2102, BCE 232), 가서 상·하 운장을 지키게 하셨다. 대개 북부여가 발흥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리고 고구려는 해모수께서 태어난 고향이므로 북부여를 또한 고구려라고도 불렀다.
단군기원檀君紀元 원년 무진(환기 4865, 신시개천 1565, BCE 2333)년부터 지금의 주상(고려 공민왕)께서 보위에 오르신 이후 12년째 되는 계묘(환기 8560, 신시개천 5260, 단기 3696, 서기 363)년까지가 무릇 3,696년이라. 이 해 10월 3일에 흥행촌수紅杏村수가 강화도의 해운당海雲堂에서 이 글을 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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