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단군조선은 우주의 최고신이신 상제님의 뜻을 받들어, 그 이치를 인간 세상에 구현한 천자의 나라였다. 홍익인간의 이념을 바탕으로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정치를 펼치며 동북아의 대제국으로 존경받았으며, 합리적인 신교문화를 중심으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 또한 갖추어 주변 제후국들을 인의仁義로 다스렸다. 단군조선은 단순한 국가를 넘어 동북아 문명의 종주국으로서 찬란한 문화와 전통을 꽃피운 중심축이었다.
이제 원시로 반본하는 시대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이 고대의 영광을 되찾아 새로운 문명의 중심국이 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정치 시스템과 교육 제도가 근본적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시대적 변화정신, 변화질서에 맞춰 각자가 인간개벽, 의식개벽을 이룰 때, 한민족은 다시금 인류 문화의 중심에선 밝은 나라, 환국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내가 이곳 해동조선에 지상천국을 만들리니 지상천국은 천상천하가 따로 없느니라.” 하시며 “장차 조선이 천하의 도주국(道主國)이 되리라.”
(증산도 道典 7:83)
1. 화폐의 기원과 초기 형태
화폐의 역사는 인류 문명과 함께 발전해 왔으며, 초기에는 물물교환을 통해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교환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점차 일정한 가치를 지닌 매개체가 등장하였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귀금속을 저울로 달아 가치를 평가하는 ‘칭량화폐’가 사용되었으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11세기 경부터 드라크마(Drachma)가 등장해 초기에는 구리, 청동, 철로 만든 괴에서 후기 은화로 발전하였다.

또한, 중국 하나라(夏) 시기(BC 2100~BC 1500)에는 카우리 조개가 화폐로 사용되었으며, 이는 하남성 정주 이리두 유적과 내몽고 하가점 유적에서 출토된 조개화폐를 통해 입증되었다. 인하대 융합고고학팀의 연구에 따르면, 카우리 조개가 이미 하나라 시대부터 화폐로 쓰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이는 기존 중국 중심의 화폐 기원설을 재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로 평가된다.

이리두 문화는 기원전 2,000년에서 기원전 1,500년 무렵까지 나타난 청동기 문화로 하夏나 상商 나라 초기로 여겨지고 있다. 이리두 유적의 조개화폐가 발견되고 얼마 되지 않아 하가점하층 문화의 대전자(大甸子) 유적에서도 조개 화폐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대전자 유적은 하가점하층 시대의 유적으로, 이리두 문화보다 약간 이른 시기의 고조선 문화로 간주된다. 실제로 1987년에 발견된 카우리 조개화폐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1996년 발견된 대전자 유적에서는 납으로 주조한 금속 조개화폐(海幣)가 발굴되었다.

2. 고조선의 화폐 사용 기록
고조선에서의 화폐 사용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단군세기>에 따르면, 4세 오사구 단군(BC 2133) 시기에 이미 둥근 구멍이 뚫린 조개 모양의 주조화폐인 원공패전(圓孔貝錢)이 주조되었다. 이는 단순한 조개화폐가 아니라 금속으로 제작된 조개 모양의 화폐였으며, 이후 철전(鐵錢)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화폐로 발전해 갔다. 또한, BC 957년에는 수유국의 흥평왕이 자모전(子母錢)을 주조하였다는 기록이 <대동역사>에 남아 있다. 이러한 기록은 고조선이 중국보다 앞서 화폐를 주조한 경제 선진국이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전에는 기자(箕子)조선의 범금 8조(犯禁八條)에 ‘도둑질한 자는 50만 전을 속전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조항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고조선에서 이미 대규모 화폐가 유통되었으며, 정교한 경제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3. 명도전과 고조선의 경제적 자립
명도전(明刀錢)은 일반적으로 중국 연나라의 화폐로 알려져 있으나, 북한의 학자 손량구는 이를 부정하며, 명도전이 연나라뿐만 아니라 고조선에서도 대량으로 주조되었음을 주장하였다. 실제로 명도전 출토량을 비교해 보면, 고조선 영역인 요동과 서북조선에서 22,265매가 발견된 반면, 연나라 지역인 요서와 하북성에서는 7,368매만이 출토되었다. 이는 고조선이 독자적으로 화폐를 대량 생산하고 유통했음을 보여준다. (손량규, '료동지방과 서북조선에서 드러난 명도전에 대하여;, 고고민속론문집)

또한, 허대동 교수는 그의 저서 '고조선 문자'에서 명도전에 새겨진 고문자가 한자로 해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것이 고조선의 문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분석은 고조선이 단순한 중국의 영향을 받은 국가가 아니라, 독자적인 경제 및 문화 체계를 유지한 강국이었음을 시사한다.
4. 고조선과 중국의 경제 교류
고조선은 단순히 내부 경제를 넘어 중국과의 교역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서> 지리지에 따르면, 고조선은 기자조선 시기에 이미 중국과 경제적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였으며, 하나라와 조공 관계를 맺고 있었다. 중국의 <오제본기>에는 고조선이 하나라에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고조선과 중국 간의 활발한 경제 교류를 증명하는 사료로 볼 수 있다.
또한, 인하대 융합고고학팀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 요서 지역의 하가점하층 문화에서 발견된 카우리 조개 화폐는 기존 중국 문헌에서 주장하던 ‘중원 중심의 화폐 기원설’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발굴된 조개화폐가 북방 유목민 계열 및 고조선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중국 본토가 아닌 발해만 및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해양 세력이 이를 유통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였다.
5. 화폐 강국 고조선
고조선의 경제적 발전과 화폐 주조 기술은 매우 선진적인 수준이었다. 단군세기에는 다양한 화폐 주조 기록이 남아 있으며, 패엽전(貝葉錢), 첨수도(尖首刀), 방공전(方孔錢) 등 다양한 형태의 화폐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요서 지역에서 발견된 납으로 만든 조개 모양 화폐는 고조선이 금속화폐를 제조하여 적극적으로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고조선이 다양한 형태의 화폐를 주조하고, 이를 국제 교역에서 적극 활용하였다는 점은 경제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증명하는 요소다. 또한, 패엽전과 같은 화폐가 주조된 기록은 훗날 중국의 엽전(葉錢) 형식의 기원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6. 결론
고조선은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체계적인 화폐 시스템을 갖추었으며, 금속 화폐를 주조하고 국제 교역을 주도한 선진 경제국이었다. 카우리 조개 화폐의 유통과 명도전의 주조 기록은 고조선이 단순한 농경 국가가 아니라, 해양과 내륙을 아우르는 상업 강국이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는 기존의 중국 중심적 화폐 기원설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 고대사의 경제적 발전상을 새롭게 조명해야 할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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