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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북부여기

북부여의 역사

by 광명인 2025. 3. 3.

[북부여는 약 180년 정도의 짧은 역사이지만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한민족 역사의 중요한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군조선의 마지막 47세 고열가 단군은 스스로 재위에서 물러나게 되는데요, 이때 웅심산에서 북부여를 세우신 분이 1세 해모수 단군입니다. 4세 고우루 단군한 무제가 우거 정권을 무너뜨리고 북부여까지 침공하려 할때, 동명왕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 병사들을 물리치고 북부여의 5세 단군이 되죠. 고우루 단군은 동북쪽으로 이동해 동부여를 세우게 됩니다. 이후 동부여 출신인 고주몽이 북부여로 넘어와 6세 고무서 단군의 딸 소서노와 결혼해 7세 단군이 되고,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게 되는 것이죠. 

북부여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기원이 되는데요. 고주몽이 동부여에서 혼인해 예씨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유리가 아버지를 찾아오면서 고구려의 2대 태왕으로 즉위를 하게 됩니다. 따라서 북부여의 6세 고무서 단군의 딸, 소서노와 사이에서 탄생한 비류, 온조는 고구려를 떠나 백제를 건국하게 되죠. 그리고 북부여의 5세 고두막한의 딸이 바로 파소인데요. 파소는 결혼 전에 임신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홀로 지금의 경주 땅으로 들어와, 신라의 건국자인 박혁거세를 낳게 됩니다. 이렇게 북부여는 단군조선과 삼국 시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인데, 환단고기가 아니면 전혀 알 수 없는 역사입니다.]

북부여는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아서 생소할 겁니다. 부여는 들어봤을 거예요. 바로 부여가 있었던 그 시기, 고조선 이후 여러 나라가 등장하던 그때입니다. 부여, 옥저, 동예, 낙랑 등 여러 나라가 있었다고 해서 그때를 열국 시대라고 합니다. 수많은 나라들을 모두 우리의 역사로 배우는데요. 그중에서 부여 계열만 하더라도 사실은 북부여, 동부여, 졸본 부여 등 다양한 부여가 있었고, 열국 시대의 전체 중심적인 역할을 한 나라가 바로 북부여인데요. 

교과서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부여를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마치 부여라는 나라만 있었던 것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열국의 중심 역할을 한 북부여는 환국, 배달, 조선의 삼성조 뿌리 시대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 시대를 연결하는 잃어버린 고리다 라고 할 수 있어요. 오늘 한국사의 잃어버린 고리 북부여를 큰 틀에서 살펴보도록 할게요.

북부여는 약 18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이어가는데,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중요한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부여를 복원하면서 많은 역사의 수수께끼들이 풀리게 되는데요. 해모수고주몽의 관계라든지 동명왕의 실체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대체 어디서 기원하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푸는 실마리가 됩니다. 그럼 먼저 북부여 어떻게 건국되는지 알려줄게요. 고조선 말기 상황을 살펴봐야 하는데요.

그때는 마지막 단군인 47대 고열가 단군 재위 58년 되는 해입니다. 고열가 단군은 국운이 다하여 더 이상 나라를 지속할 수 없음을 내다보시고는 오가를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덕이 부족하여 더 이상 나라를 다스리기 어려우니 너희는 현인을 택하여 단군으로 천거하라. 이런 말씀을 남기시고 스스로 재위에서 물러나세요. 이후 오가가 공동으로 국사를 집행하는 공화정 시대를 6년 동안 이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고열가 단군이 퇴위하시기 1년 전에 이미 웅심산에서 기두를 해서 북부여를 세우신 분이 계셨는데요. 그분이 바로 불세출의 영웅 해모수입니다. 해모수가 북부여를 세우시고 이후 오가를 찾아가서 내가 통치를 하겠으니 너희 오가는 공화정을 철폐하라 라는 말씀을 전하시면서 고조선의 역사의 맥을 이어 북부여가 자리 잡게 됩니다. 북부여도 고조선과 마찬가지로 단군을 통치자를 상징하는 말로 썼고요. 

그렇게 해서 많은 이들의 추대를 받으면서 해모수는 북부여의 1대 단군으로 즉위를 하십니다. 고조선의 역사의 맥을 이어 북부여가 들어선 것이죠. 해모수의 북부여는 180 년 정도 짧은 역사이지만 전기 북부여후기 북부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기 북부여는 해모수 단군으로부터 모수리 단군, 고해사 단군, 고우루 단군까지 153년 동안 지속된 역사이고요. 후기 북부여는 고두막 단군 고무서 단군까지 28년에 달하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전기와 후기를 나눌 정도로 5세 고두막한 단군이 즉위하실 때는 북부의 역사의 큰 전환기다 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때의 사건 살펴보겠습니다. 

4세 고우루 단군 때인데요. 한나라 무제는 번조선 영역에 있었던 위만의 손자 우거 정권을 무너뜨리고 동쪽의 북부여까지 침공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런데 고우루 단군은 한무제의 침략에 맞서서 대처가 능숙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난세의 영웅이 난다 라는 말이 있듯이 이때 북부의 역사에서 가장 감춰지고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등장을 하는데요. 바로 고두막한입니다. 이 고두막한이 의를 외치면서 병사를 일으켜 한나라의 군대를 막아서고 이르는 곳마다 한나라 병사들을 토벌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북부여를 지켜내게 되죠. 

이것은 한무제에게 있어서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이기 때문에 중국 기록에도 고두막한은 남아있지 않고 우리 사서도 많이 소실된 까닭에 고두막한은 가장 숨겨진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와 관련해서 하나 더 얘기를 하자면 우리는 동명왕이라고 하면 고주몽을 떠올리지만 사실 동명왕이라는 시호를 가장 먼저 쓴 분은 고두막한입니다. 연남산의 묘지명을 보시면 동명이 나라를 열었고 주몽이 도읍을 열었다 라고 해서 동명과 주몽은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고요. 

김철령의 부를 보면 동명이 창업하고 주몽이 계승했다 라고 해서 역시나 동명과 주몽은 별개의 인물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두막한은 한나라를 막아선 이후 시간이 좀 지나서 스스로 북부여를 통치할 뜻을 밝히게 됩니다. 그때 북부여를 통치하던 해부루는 동쪽으로 옮겨가 동부여를 건국하게 되죠. 고두막한의 외압으로 인해 기존의 북부여 세력이 동쪽으로 건너와서 건국한 것이 바로 동부여입니다. 

북부여 역사를 정리해 보면 전기 북부여해모수의 혈통으로 계속 이어져 오다가 한나라의 침공으로 고두막한이라는 새로운 영웅적인 인물이 한나라를 막아내고 또 북부여를 통치함으로써 후기 북부여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죠. 고두막한은 고조선의 마지막 단군인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분도 황족이었던 거죠. 하지만 이후 또다시 해모수의 혈통이 북부여의 단군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요.

그분은 바로 북부여의 7대 단군으로 즉위를 하게 되는 고주몽입니다. 고주몽은 고구려를 건국했다는 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북부여의 7대 단군이라니 의문이 생길 것 같은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주몽은 북부여의 7대 단군으로 즉위를 하고 이후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꾼 겁니다. 고주몽이 북부여를 잇게 되는 과정 간략히 알려줄게요. 후기 북부여 시대를 졸본부여라고도 합니다. 그 이유는 고두막한이 북부여를 통치하기 전에 이미 졸본부여를 건국했었고 북부여를 함께 통치했기 때문에 후기 북부여를 졸본부여라고도 하는 거죠. 그런데 고주몽은 동부여 땅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장성해서는 졸본부여 땅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때 6세 고무서단군이 통치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고무서 단군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고주몽을 보니 비범한 인물임을 알아보고는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았는데요. 고주몽과 결혼한 분이 바로 소서노 공주입니다. 소서노 공주는 북부여의 공주였죠. 이후 고무서 단군은 돌아가시게 되고 고주몽이 북부여의 왕위를 잇게 되면서 북부여의 7대 단군이 되는겁니다. 그리고 이후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꾸는 건데요. 왜 고구려로 바꾸었을까? 그것은 고주몽의 출생의 비밀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주몽을 해무수의 아들로 알고 있죠. 해모수는 북부여를 건국했는데 아들이 곧 이어서 새로운 나라를 건국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해무수와 고주몽은 사실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라 고조부와 현손 관계입니다. 4대 차이가 나는 건데요. 그런데 왜 아버지와 아들이 되었나? 북부의 역사를 우리가 잃어버린 때문이죠.

북부여의 역사가 소실되어버려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와 그리고 북부의 7대 단군이자 고구려 1대 태왕인 고주몽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 되어버린 겁니다. 다시 돌아가서 고주몽이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바꾼 이유는 자신의 고조부이자 그리고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의 고향고구려여서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게 됩니다. 해모수의 혈통이 다시 북부여를 통치하면서 북부여 태조를 기리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죠. 이제 북부여의 역사에서 이 세 분을 꼭 기억하시면 됩니다. 북부여를 세운 해모수, 후기 북부여를 연 고두막한, 그리고 북부여를 이어 고구려로 국호를 바꾼 고주몽, 이 세 분이 북부여의 핵심 축을 담당한 인물이다 라고 생각을 하면 되고요. 그렇게 북부여의 정통을 이은 나라가 바로 고구려입니다. 그런데 고구려에서 파생된 나라는 고구려뿐만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이 모두 북부여로부터 나오게 되는데요

고주몽이 동부여에서 혼인해 예씨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유리가 아버지를 찾아오면서 고구려의 2대 태왕으로 즉위를 하고요. 북부여의 공주였던 소소노와 고주몽 사이에서 백제를 건국한 비류, 온조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5세 고두막한의 따님이 바로 파소인데요. 파소는 결혼 전에 임신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지금의 경주 땅으로 들어와, 신라의 건국자인 박혁거세를 낳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180년 정도의 짧은 역사지만 북부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가 모두 시작하게 되는 겁니다. 어떤가요? 북부여를 한국사에 잃어버린 고리라고 할 만하죠. 북부여는 고조선의 역사의 맥을 이어서 북부여뿐 아니라, 동부여, 졸본 부여, 그리고 고구려의 역사의 탄생을 잘 알려주고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도 역시 북부여에서 기원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잃어버린 고리를 복원할 때 환국, 배달, 조선의 뿌리 역사의 저력도 이어질 수 있는 건데요. 오늘 이 시간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정리를 해볼게요. 첫 번째 북부여뿌리 역사와 4국 시대를 잇는 한국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다. 두 번째 북부여의 건국자 해모수, 그리고 후기 북부여를 연 고두막한, 북부여를 이어 고구려로 국호를 바꾼 고주몽까지 이 세 분은 북부여의 핵심되는 통치자이다. 세 번째 북부여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기원이다. 다음 시간은 열국시대 이후 대한민국까지 살펴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