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세기 서문은 진정으로 역사와 인간, 국가와 정치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는 만고의 명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서문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면, 역사학의 목적, 국가의 존재 이유, 정치의 본질, 그리고 인간 삶의 근본 목적에 대한 깊은 답변을 얻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역사학의 목적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며, 이는 삼신의 도를 통해 국민들이 신성을 회복하고, 천지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영위하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하는 길에는 선비의 기개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사학을 밝히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사학이 분명하지 않으면 선비의 기개를 진작시킬 수 없고,
선비의 기개가 진작되지 못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정치의 법도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爲國之道가 莫先於士氣하고 莫急於史學은 何也오.
위국지도 막선어사기 막급어사학 하야
史學이 不明則士氣가 不振하고 士氣가 不振則國本이 搖矣오 政法이 歧矣니라.
사학 불명즉사기 부진 사기 부진즉국본 요의 정법 기의
이 내용은 단군세기 서문에 나오는 첫 번째 구절로 역사학과 선비의 기개와의 연관성, 그리고 선비의 기개와 국가의 안녕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글입니다. 즉 선비의 기개는 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그것이 흔들리면 국가의 근본과 정치 질서가 무너진다는 내용이죠. 그리고 선비의 기개, 즉 국가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의 의로운 정신을 진작시키는 것은 역사학을 명확히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내용입니다.
역사학이 선비(국가를 이끌어가는 핵심 엘리트)의 기개(의로운 행동과 도덕적 용기)를 진작시키는 이유는, 사학이 과거 인물들의 덕성과 행동을 평가함으로써 선비들이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의로운 인물들의 기개를 본받도록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도덕적 지침과 사회적 교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의 의로운 행동과 도덕적 용기는 역사적 교훈을 통해 더욱 강화됩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며 귀감이 되었고, 이는 선비들이 유사한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결국, 역사적 지식은 과거의 이상을 현재에 실현하려는 기개를 북돋우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국가의 안녕과 선비의 기개의 관계를 살펴보면, 선비의 기개(의로운 행동과 도덕적 용기)가 국가 안녕의 기초를 이루는 이유는 선비는 어떠한 위기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지키며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비의 기개가 흔들리면 국가의 근본 질서와 법도가 약화되고, 이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가 혼란에 빠질 때마다 도덕적 지침을 잃은 엘리트들(예를 들면, 구한말의 밀정들과 매국노, 친일 세력들)이 망국의 주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차원에서 최근 뉴라이트 계열의 '건국절 논란'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정치적 성향을 떠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반일종족주의를 주장하는 이영훈과 같은 뉴라이트 계열의 친일 인사들이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최소한 올바른 역사를 공부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을 해야지, 나와 정치적 성향이 같다고 단순히 상대방의 주장에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죠.
대개 역사학의 정법이 폄하할 것은 폄하하고 기릴 것은 칭찬해서
인물을 저울질하여 평가하고 시대상을 논하여 진단하는 것이니 만세의 표준이 아닌 것이 없다.
우리 백성의 삶은 참으로 유구하다. 새 세상을 열고 질서와 법도를 세운 내용 또한 분명히 밝혀져 있어서,
나라는 역사와 함께 존재하고 사람은 정치와 함께 거론되니
나라와 역사와 사람과 정치[國史人政] 이 네 가지는 모두 우리 자신이 우선시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바로다.
蓋史學之法이 可貶者貶하고 可褒者褒하야 衡量人物하고 論診時像하니 莫非標準萬世者也라.
개사학지법 가폄자폄 가포자포 형량인물 논진시상 막비표준만세자야
斯民之生이 厥惟久矣오 創世條序가 亦加訂證하야
사민지생 궐유구의 창세조서 역가정증
國與史가 竝存하고 人與政이 俱擧하니 皆自我所先所重者也라
국여사 병존 인여정 구거 개자아소선소중자야
이 내용은 역사학의 목적과 역할을 강조하며, 역사를 통해 우리는 과거 인물들의 공과(공로와 과실)를 평가하고 시대정신을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올바른 역사학이란, 역사적 인물들의 본받을 점을 기리고, 잘못된 점을 폄하함으로써 후세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역사는 만세에 걸쳐 인간 사회의 표준을 제시하는 학문이 됩니다.
또한,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는 새로운 질서와 법도를 세운 역사적 과정이 (단군세기의 47대 단군들의 역사 속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드러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라는 역사를 통해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람은 정치를 통해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므로, 역사와 정치적 과정 속에서 인류는 도덕적 기준을 세워왔습니다.
따라서 참된 역사를 밝히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적 이념과 틀을 세우는 것은 국가의 번영과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정말로 소중한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고, 국민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정치적 틀 속에서 올바른 정치인이 나오고, 국민들의 번영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의 본질적 목적은, 과거 인물들의 공로와 과실을 신중하게 평가하여 미래 세대들이 본받을 도덕적 기준과 사회적 지침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진단하여 국가나 인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역사학의 진정한 목적이라 행촌 이암 선생은 주장하시는데, 저는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국가와 역사는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역사 없는 국가는 마치 혼빠진 사람처럼, 국가의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과 정치도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정치는 사람들의 삶을 조직하고,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람들은 정치의 주체로서 사회를 형성해 나갑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올바른 역사를 밝히는 일과 더불어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이념과 틀도 매우 소중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자유민주주의란 명목하에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의 정체성을 상실시켜 선비들(국가를 이끌어가는 인재들)의 기개를 잃게 하여, 결국은 국가의 혼을 제거해 국가를 망치게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원래 단군신화란 말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단군은 분명한 역사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건국절이란 말도 없었습니다. 원래는 개천절을 건국기원절로 삼아 기념해왔었는데, 엉뚱한 자들이 건국절이란 말을 만들어내어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조상들이 지은 죄업을 없애기 위함이라 생각됩니다. 친일파, 매국노의 후손이라는 딱지를 제거해야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위신과 입지가 올바르게 서게 되므로, 이러한 일을 벌이는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즉, 자신의 가문의 영광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여 그들만의 국가를 세우려는 것인데요. 그런데 반공교육으로 세뇌된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가치로 인해 그들의 악의적 의도를 뚫어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암튼, 단군세기 서문은 깊이 보면 볼수록 진국이 나오는 훌륭한 문장이며, 어디에 가서도 역사학에 대해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한 말씀 하실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 문장입니다.
아아! 정치는 그릇과 같고 사람은 도道와 같으니, 그릇이 도를 떠나서 어찌 존재할 수 있으며,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그 혼을 잃고서 어찌 보존될 수 있겠는가.
도와 그릇을 함께 닦는 자도 나요, 형체와 혼을 함께 키워 나가는 자도 나[我]이다.
그러므로 천하만사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아는[知我] 데 있다.
그런즉 나를 알려고 할진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嗚呼라 政猶器하고 人猶道하니 器可離道而存乎며
오호 정유기 인유도 기가리도이존호
國猶形하고 史猶魂하니 形可失魂而保乎아.
국유형 사유혼 형가실혼이보호
竝修道器者도 我也며 俱衍形魂者도 亦我也니
병수도기자 아야 구연형혼자 역아야
故로 天下萬事가 先在知我也니라. 然則其欲知我인댄 自何而始乎아.
고 천하만사 선재지아야 연즉기욕지아 자하이시호
이 구절은 정치와 사람, 나라와 역사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정치는 그릇에, 사람은 도(道), 나라는 형체, 역사는 혼에 비유됩니다. 여기서 정치란 포괄적 의미로 국가의 정치 체제와 제도, 그리고 각종 사회 질서와 규범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정치는 사람의 자유와 행복 등, 도덕적 가치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므로, 도덕적 가치를 상실한 정치나 제도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역사는 국민들이 형성한 무형의 공동체 정신인 혼을 담고 있기에, 역사를 상실한 국가는 국민의 의식을 통일할 공동체 정신을 상실해 국가의 존립이 어렵다는 논리입니다.
E. 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History i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고 했는데, "역사란 국가의 혼이다"(History is a soul of a nation)라는 말이 더 압축적이며 많은 의미를 포괄하는 정의라 생각합니다. 역사는 넓게 보면, 개인사부터 가정사, 지역사, 조직과 국가, 나아가 인류 전체의 역사를 포함하므로, 각 집단이 형성한 집단의식인 혼이 역사라는 말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의미도 포함해 간결하지만 훌륭한 정의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혼이란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지만 현재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의식체를 말하기 때문이죠.
정치는 사람들의 삶을 조직하고,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 도덕적 기준을 잃으면 정치의 목적은 퇴색되고, 국론이 분열되어 결국 정치적 혼란이 발생합니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국가의 혼으로 정치적 기준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의식을 통일하여 국가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기틀입니다. 따라서 국민들의 역사 의식이 왜곡되거나 부족하여, 혼이 약해진 국가는 쉽게 혼란에 빠질 수 있는 것이죠. 흔히 국민, 영토, 주권을 국가 구성의 3 요소로 이야기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역사가 더 본질적인 요소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정치, 사람, 나라, 역사를 다스리고 키워가는 것은 결국 개인, 즉 **'나'**입니다. 따라서 나를 아는 것이 모든 일의 근본인데요. 자아 인식이란 단순한 개인적 성찰을 넘어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함양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정치와 사람, 나라와 역사를 배우고 키워나가는 것은 올바른 자아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며, 개인의 사회적 역할로 확장되는데, 궁극적으로 홍익인간의 실현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국가와 역사, 사람과 정치는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개인의 자아실현과 국가의 번영을 위해 필수적 요소인 것이죠. 그런데 단군세기 서문은 그 모든 출발점이 자아 인식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알려고 한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라는 상당히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데요. ‘나(我)’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것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데, 이 물음에 철학적으로 충분히 만족할 만한 답을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물음이 모든 깨달음의 정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대저 삼신일체(삼신과 하나됨)의 도는 ‘무한히 크게 하나 되는 정신[大圓一]에 있으니,
조화신造化神이 내려 나의 성품[性]이 되고,
교화신敎化神이 내려 나의 목숨[命]이 되며,
치화신治化神이 내려 나의 정기[精]가 된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가 된다.
夫三神一體之道는 在大圓一之義하니
부삼신일체지도 재대원일지의
造化之神은 降爲我性하고 敎化之神은 降爲我命하고 治化之神은 降爲我精하나니
조화지신 강위아성 교화지신 강위아명 치화지신 강위아정
故로 惟人이 爲最貴最尊於萬物者也라.
고 유인 위최귀최존어만물자야
이 글은 인간과 신의 관계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서양의 유일신 문화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설명하지만, 동방 한민족은 고대로부터 인간은 신의 신성을 그대로 내려받은 신의 자식, 신의 현현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매우 심오한 천부경 철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인데요. 신(神)을 삼신(三神)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천부경의 무시일석삼극(無始一析三極)이란 동양 우주론의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즉, 우주 만유는 최초의 무(無)에서 하나[一]가 나왔고, 하나[一]가 셋[三]으로 작용해 현상계가 벌어졌다는 논리인데, 이 삼극(三極)의 논리는 무극에서 태극, 태극에서 음양작용이 펼쳐진다는 동양 우주론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이념 또는 종교적 교리도 '인간이 위대하고 존엄한 이유'에 대해 이보다 더 심오하며 훌륭하게 표현한 말씀은 없다고 봅니다. 서양의 유일신 문화에서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보지만, 기독교 신학에서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주장합니다. 반면, 동방 한민족은 인간이 신의 현현, 즉 신성을 직접 이어받은 존재로 가르쳐 왔습니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6, 28절)
서구 제국주의자들과 상업주의자들이 위 성경 구절을 오용해 자연을 정복한다는 논리를 만들었고,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을 통해 물질문명이 발전했지만, 이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기후 위기가 초래되었습니다. 물론 그로인해 물질문명이 발전하고, 전세계가 하나의 연결망으로 이어졌으며, 인간이 먹고 살기가 풍족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배경엔 물질중심의 자본주의, 상업주의의 폐해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성이 파괴되어, 자연과 인간의 원한이 천지에 가득 쌓여 파멸적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은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의 주장과 비교가 되는데요. 그들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촉진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한국인의 고통과 죽음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했습니다. 그로 인해 쌓인 원한은 지금까지도 역사적으로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암튼, 행촌 이암선생께서는 나를 알기위해서는 '삼신일체의 도'를 알아야 하며, 삼신과 하나되는 길은 '무한히 크게 하나 되는 정신'에 있다고 주장하십니다. 삼신일체 사상에서 삼신은 우주의 창조와 교화, 질서를 유지하는 세 가지 속성으로 나타납니다. 조화신은 만물을 창조하고, 교화신은 창조된 만물을 교육하고 성장시키며, 치화신은 그 질서를 다스립니다. 이를 통해 신의 본질이 형상계에서 셋으로 분화되어 작용하며, 인간의 성품, 목숨, 정기를 구성합니다.
이 내용은 도교와 한의학에서 언급하는 정기신 원리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데요. 정기신(精氣神)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구성하는 세 가지 기본 요소를 말하며, 이는 신체의 에너지, 생명력, 정신적 본질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한민족의 전통수행법인 삼신수행법에서 상세히 언급이 됩니다. 암튼 이러한 원리로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구성이 되므로, 결국 인간은 신과 동일한 신성을 가진 존재이며, 인간 삶의 목적은 그렇게 부여 받은 신성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인데, 그 이치가 '삼신일체의 도'이며, 그것은 곧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도'와 같은 것입니다. 천부경에서는 그것이 곧 '태일의 도'라는 힌트를 남겨 두었습니다.
결국 역사학의 궁극적 목적은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을 도모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신성을 회복하고, 인류는 조화와 평화 속에서 이상세계를 건설하게 됩니다. 이는 인간이 천지 대자연의 신성과 조화롭게 살아가며, 그 결과로 사회와 국가의 질서와 번영이 함께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세계는 인간이 삼신일체의 도를 통해 삼신과 하나된 태일인간, 홍익인간이 되어 열리는 세계입니다. 이것이 선천 역사의 목적이며, 우리민족이 환국으로부터 전수받은 한민족의 건국이념이었습니다.
대저 성性이란 인간의 신神이 생겨나고 자리를 잡는 근거와 바탕이다.
신神이 성性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性이 곧 신神인 것은 아니다.
기氣가 환히 빛나 어둡지 않은 것이 곧 참된 성품[性]이다.
그러므로 신神은 기氣를 떠날 수 없고, 기氣 또한 신神을 떠날 수 없으니,
내 몸 속의 신神이 그 밝은 기氣와 결합된 후에야 내 몸 속의 본래 성품과 본래 목숨을 볼 수 있다.
夫性者는 神之根也라 神本於性이나 而性未是神也오
부성자 신지근야 신본어성 이성미시신야
氣之炯炯不昧者가 乃眞性也라.
기지형형불매자 내진성야
是以로 神不離氣하고 氣不離神하나니
시이 신불리기 기불리신
吾身之神이 與氣로 合而後에 吾身之性與命을 可見矣오.
오신지신 여기 합이후 오신지성여명 가견의
이 구절은 **인간의 신(神)**과 **기(氣)**의 관계를 매우 심오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 즉 **신(神)**은 **삼신(三神)**의 마음인 **성(性)**에서 비롯되었고, 이 성性은 밝고 순수한 기氣으로, 우주의 원천적 에너지인 원기(元氣) 혹은 우주의 순수한 밝은 빛을 의미합니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본심본태양앙명(本心本太陽昻明), 즉 태양처럼 밝고 밝은 대광명이 바로 이 **삼신의 마음인 성(性)**이며, 이 우주 원신의 밝은 마음이 곧 모든 신과 신성, 그리고 만유의 출원지라는 것입니다.
**신(神)**과 **기(氣)**는 우주의 본원적 차원에서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신이 곧 기이고 기가 곧 신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유형의 몸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순수 의식체로 머무를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문명이 진화하면서 인류의 의식은 점차 분열되고, 그로 인해 문명의 기운도 점점 혼탁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상업주의와 물질주의의 발달로 인해 인간 정신을 해치는 폭력물이나 포르노와 같은 저열한 문화상품들이 범람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인류의 의식은 신성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분열의 극점에서는 반드시 개벽을 통해 생명의 뿌리로 되돌아가야만 순환의 시스템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마치 하지에서 음의 기운이 양의 기운을 꺾고 밤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간은 원래 순수한 영적 존재로 태어나지만, 음식을 먹으면서 신성이 퇴화됩니다. 음식을 통해 육체적 에너지를 얻어 생을 이어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음식물의 불완전 연소로 인해 몸에 노폐물이 쌓이고, **기(氣)**가 탁해지면서, 신성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점차 병들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죽음은 육신을 벗고 영혼이 다른 차원으로 이행하는 일종의 개벽인 것이죠. 하루의 사이클로 보면, 수면을 통해 신체가 휴식을 취하는 것과 유사한 이치입니다 .
따라서 육신을 가지고 불로장생의 길을 갔던 동방의 옛 천자들과 선인들은 신교의 삼일신고를 통해 한민족의 전통 신선 수행법을 전했습니다. 이 수행법은 삼일신고에서 제시한 것처럼,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과 **수승화강(水升火降)**을 통해 **정(精)**과 **신(神)**을 통일시키고 **기(氣)**를 맑게 하여 몸과 마음의 밝음과 본성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글은 나의 신神을 삼신의 밝은 기운과 합일시켜야만 나의 밝은 본성을 볼 수 있다고 전합니다. 그리하여 내 몸의 기氣를 내 뜻대로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겠죠.
행촌 이암 선생의 이 글은 인간이 본성을 회복하고, 신성과 밝음을 되찾아 하나님의 마음과 합일하는 실천적 방법을 간결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개벽은 단순한 리셋이 아니라, 인류가 진화를 위해 달려온 선천 상극 질서의 정점, 분열의 정점에서 다시 근원과의 합일을 위해 새로운 상생의 순환의 질서로 들어가는 자연의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개벽은 각자가 스스로 수행을 통해 본성을 회복하고 밝은 신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개인이 책임져야 할 과제인 것이죠.
성품[性]은 저마다 타고난 목숨[命]과 분리될 수 없고, 목숨[命]도 성품[性]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몸에 깃든 성품[性]이 본래의 참된 목숨[命]과 결합된 뒤라야,
내 몸속에서 신화하기 이전의 본래 성품[性]과 내 몸에서 기화하기 이전의 본래 목숨[命]의 조화 경계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性]에 담긴 신령스러운 지각은 하늘의 신[天神]과 그 근원을 같이 하고,
인간의 본래 목숨[命]이 생명으로 발현됨은 자연의 산천[山川]과 그 기氣를 같이 하고,
인간의 정기[情]가 자손에게 이어져 영원히 지속함은 창생[蒼生]과 천지의 이상세계를 이루어 가는 과업을 함께 함이다.
性不離命하고 命不離性하나니 吾身之性이 與命으로 合而後라야,
성불리명 명불리성 오신지성 여명 합이후
吾身의 未始神之性과 未始氣之命을 可見矣.
오신 미시신지성 미시기지명 가견의
故로 其性之靈覺也는 與天神으로 同其源하고,
고 기성지영각야 여천신 동기원
其命之現生也는 與山川으로 同其氣하고,
기명지현생야 여산천 동기기
其精之永續也는 與蒼生으로 同其業也니라.
기정지영속야 여창생 동기업야
이 구절은 **삼신(三神)**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성(性), 명(命), 정(精)**이라는 세 가지 신성한 속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된 **신(神)**과 **기(氣)**의 관계처럼, 여기서는 우선 **성(性)**과 **명(命)**의 관계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주의 본원에서 보면, **조물주 삼신의 마음인 성(性)**은 삼신의 무궁한 생명력인 **명(命)**과 분리될 수 없으며, 명(命) 또한 **성(性)**에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의 본원에서 멀어져 상극의 질서 속에서 파생되는 혼탁한 경험과 카르마로 인해 이 둘은 현실적으로 순수한 본질에서 멀어진 상태에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의식의 주체인 신(神)**이 우주의 밝고 순수한 **기(氣)**와 합일해 나의 **본성(性)**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회복된 나의 **순수한 본성(性)**은 다시 우주의 무궁한 생명력(명(命))과 합일함으로써 비로소 내 안에 자리한 **본래의 신령스러운 성(性)**과 **기화(氣化)**되기 이전의 본래 생명의 경계를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는 기화(氣化) 이전의 근원적 상태로 돌아가, **우주의 조화 성령인 삼신(三神)**과 합일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상태는 천부경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즉, 천지의 마음과 하나된 **태일(太一)**의 의식을 회복한 경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지에 오르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이를 수행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수련법은 고대로 부터 전승자에게 비밀리에 전수되어 왔으며, 또한 조선의 사대주의와 일제의 역사 왜곡으로 인해 고대로부터 전수된 신교 관련 역사서들은 대부분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환단고기와 같은 소중한 역사서도 위서로 치부되어 사람들이 그 가치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러니 혼자서 삼신의 원리나 천부경, 삼일신고, 그리고 동양 우주론과 같은 깊은 가르침을 스스로 깨우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따라서 구도의 과정에선 올바른 스승과 올바른 법을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삼신의 본성(性)**은 우주 만유를 밝게 비추는 지혜와 조화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삼신의 본성을 부여받은 인간은 삼신과 마찬가지로 만물을 거울처럼 환히 비추는 영적 지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각자의 에고나 경험, 카르마로 인해 이 밝은 영적인 지각은 혼탁해지거나 왜곡된 상태에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력(命)**은 삼신의 무궁한 생명력을 내려받은 것이므로, 본래는 산천의 기운처럼 장구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단명하는 이유는 삼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우주의 순수한 생명력(命)**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정기(精)**가 자손에게 유전되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단순히 종족 보존을 넘어 천지의 이상세계를 실현하는 과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精)**은 흔히 남녀의 호르몬에 비유되는데, 이는 유전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세대의 경험과 역사는 유전자에 각인되어 정(精)을 통해 후대에 유전되며,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 기나긴 역사의 시간 속에서 인류 전체 의식의 진화를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정(精)의 유전은 궁극적으론 우주의식의 진화와도 연결되어 있으므로, 인류의 역사는 **삼신의 정기(精)**를 유전함으로써 천지의 목적을 실현하고, 이상세계를 성취해 나가는 지속적 순환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하나[一氣]속에는 셋[三神]이 깃들어 있고, 셋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리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무궁한 일신의 조화에 머무는) 한마음(一心)으로 안정되어 변치않는 것을 진아(참을 실현한 나)라 하고,
신통력으로 온갖 변화를 짓는 것을 일신(一神, 하나님)이라 하니,
진아眞我는 우주의 일신一神이 거처하는 궁전이다.
이 참됨의 근원[眞原]을 알고 그 법에 의지해 닦고 행하면,
상서로운 기운이 저절로 이르고 신(三神)의 광명이 항상 비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늘과 하나 되고자 할 때,
진실로 삼신의 계율을 굳게 지킬 것을 맹세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능히 이 '하나됨의 경지'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乃執一而含三하고 會三而歸一者가 是也니라.
내집일이함삼 회삼이귀일자 시야
故로 定心不變을 謂之眞我오 神通萬變을 謂之一神이니
고 정심불변 위지진아 신통만변 위지일신
眞我는 一神攸居之宮也라.
진아 일신유거지궁야
知此眞源하고 依法修行하면 吉祥自臻하고 光明恒照하나니
지차진원 의법수행 길상자진 광명항조
此乃天人相與之際에 緣執三神戒盟 而始能歸于一者也니라.
차내천인상여지제 연집삼신계맹 이시능귀우일자야
이 구절은 천부경의 일석삼극(一析三極) 원리를 바탕으로, **일신(一神)**과 **진아(眞我)**의 관계를 설명하며, 참된 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전 단락에서는 정치와 사람, 역사와 국가를 논하면서 그 모든 것이 결국 '나(我)'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나'는 단순히 현실 속에서 목적 없이 변화하는 '나'가 아니라, **삼신의 마음과 하나가 된 진아(眞我)**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진아는 삼신의 무한한 창조력의 근원으로, 조화옹이 머무는 궁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아를 간결하게 정의한 **"진아는 일신이 머무는 궁전이다"** 라는 구절은 다른 철학이나 종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명료하고도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를 강조하며,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에 고정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단군세기는 참된 나란 정심불변(定心不變), 즉 안정되어 변하지 않는 마음, 무한히 밝은 삼신의 마음을 득한 상태를 진아로 정의합니다. 진아는 유형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삼신의 도道에 벗어나지 않는 천지와 하나된 순수한 마음 상태로, 그 안에서 일신(一神)의 창조적 힘이 발현되어 신통만변(神通萬變)한 온갖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때 나의 몸이 곧 일신이 머무는 궁전이 되며, 참된 마음을 회복한 나는 진정한 창조의 주체로서 작용하게 됩니다.
삼신수행법은 단순히 순수한 의식을 유지하고 집중력을 기르는 것을 넘어서,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을 통해 삼신으로부터 받은 **성명정(性命情)**을 운용하는 수행법입니다. 이를 통해 나의 **신(神)**과 **삼신의 밝은 기(氣)**를 합일시키고, 나의 **성(性)**을 삼신의 무한한 생명력인 **명(命)**과 결합시켜서 성(性), 명(命), 정(精)이 통일되어야 기화되기 이전의 본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삼신과 합일함으로써 진아는 회복되고, 이 상태에서 일신의 창조적 힘이 나의 몸을 통해 온전히 발휘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삼신수행법을 알고, 올바른 법을 통해 꾸준히 수행을 지속하면, 상서로운 기운이 저절로 다가오며 삼신의 밝은 광명이 우리를 인도하게 됩니다. 삼신의 법칙은 우주의 자연법과 일치하며, 이를 따르는 자는 천지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삼신의 계율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신교의 가르침을 압축한 것으로, **일신강충(一神降衷), 성통광명(性通光明), 제세이화(濟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치를 따르는 삶을 뜻합니다. 이는 삼신의 참마음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해 있음을 깨닫고, 나의 밝은 성품을 회복하여 세상을 삼신의 도로 교화하고,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결론적으로, 삼신의 도를 따르고 계율을 실천함으로써 인간은 천지와 하나가 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진아의 실체를 깨닫고 우주적 창조력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품과 목숨과 정기가 혼연일체의 경계에 계신 분은 '삼신과 한 몸이신 상제님'이시다.
상제님은 천지 만물과 혼연히 한 몸이 되시며,
마음과 기운과 몸으로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으시나 영원히 존재하신다.
그리고 느낌과 호흡과 촉감이 혼연일체의 경지에 계신 분이 인류의 시조인 환인주조님이다.
환인주조님은 세계만방에 한결같이 덕화를 베풀고 즐거움을 함께 누리시며,
하늘 땅 인간 삼계와 더불어, 함이 없이 저절로 조화를 이루신다.
이러하므로 가르침을 세우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아를 확립해야 하고,
자신의 형체를 바꾸려는 자는 반드시 무형의 정신을 뜯어고쳐야 하나니,
이것이 바로 '나를 알아 자립을 구하는 유일한 방도'인 것이다.
故로 性命情之無機는 三神一體之上帝也시니,
고 성명정지무기 삼신일체지상제야
與宇宙萬物로 混然同體하시며 與心氣身으로 無跡而長存하시며,
여우주만물 혼연동체 여심기신 무적이장존
感息觸之無機는 桓因主祖也시니
감식촉지무기 환인주조야
與世界萬邦으로 一施而同樂하시며 與天地人으로 無爲而自化也시니라.
여세계만방 일시이동락 여천지인 무위이자화야
是故로 其欲立敎者는 須先立自我하고
시고 기욕립교자 수선립자아
革形者는 須先革無形이니 此乃知我求獨之一道也니라.
혁형자 수선혁무형 차내지아구독지일도야
이 구절은 삼신과 하나 된 존재로서 상제님과 인류 문명의 초석을 세우신 환인주조님의 도(道)의 경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제님은 인간의 세 가지 참된 것, 즉 **삼진(三眞)**인 성(性), 명(命), 정(情)이 완벽히 합일된 존재로, 우주의 원신인 삼신과 하나되어 천지 만물과 소통하시는 인격적 주재신입니다. 상제님은 마음, 기운, 그리고 몸에 도에 어긋난 세속적인 카르마나 자취를 남기지 않으시며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으로, 삼신의 본질을 온전히 구현하신 분이십니다.
환인주조님은 인류 문명의 시조로서, 삼진을 회복해 신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세 가지 문, 즉 **삼도(三途)**인 감정(感), 호흡(息), 촉감(觸)이 혼연일체된 상태에 있는 분입니다. 이는 삼신수행법의 핵심 내용을 상징하며,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감정, 호흡, 촉감을 조화롭게 다스림으로써 삼진(三眞)을 회복해 삼신과 하나가 되는 경지로 나아가는 실질적인 방법을 의미합니다. 환인주조님은 이러한 깨달음과 수행을 통해, 삼신의 도, 신교의 진리를 세상에 최초로 밝혀 문명을 여신 분으로, 태고에 천지인이 다함께 조화롭고 불로장생하는 이상세계를 구현하신 분입니다.
이 구절은 또한 인간의 인간의 자아 확립과 정신적 변화에 대해 중요한 가르침을 제공합니다. 종교나 이념을 세워 인류를 교화하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본성을 회복해 자신의 중심과 기준을 확립해야 하며, 자신은 물론 국가 또는 세상의 제도나 외형을 개혁하려는 자는 반드시 무형의 정신을 먼저 개혁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이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내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며, 삼신의 도(道)를 깨닫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자아를 확립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우주의 주재자이신 삼신일체상제님의 위격과 더불어 삼신과의 합일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천지와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설명하는데요. 천지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곧 천지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천지의 자녀로서 신성을 회복해 자아를 확립하고 천지와 조화를 이루며, 자신의 천명(天命)을 깨달아 자립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지는 곧 인간이 삼신으로 부터 부여받은 성명정을 온전히 회복하여, 우주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자리를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 슬퍼구나! 부여에 부여의 도가 없어진 후에 한나라 사람이 부여에 쳐들어 왔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없어진 후에 몽골이 고려에 쳐들어왔다.
만약 그 당시에 미리 제정되어, 부여에 부여의 도가 있었다면 한나라 사람은 한나라로 쫓겨가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있었다면 몽골인은 몽골로 쫓겨 갔을 것이다.
아, 통탄스럽도다!
과거에 오잠吳潛과 류청신柳淸臣같은 간신배가 떠들어 댄 사악한 말이 은밀히 백귀와 더불어 야행하여
고구려의 역신인 남생과 발기의 역심과 상응하여 합세하였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도와 그릇이 함께 없어지고 형체와 혼이 다 사라지는 때에
어찌하여 자신만 편안코자 한단 말인가!
嗚呼痛矣라. 夫餘에 無夫餘之道然後에 漢人이 入夫餘也며,
오호통의 부여 무부여지도연후 한인 입부여야
高麗에 無高麗之道然後에 蒙古가 入高麗也어니와
고려 무고려지도연후 몽고 입고려야
若其時之制先하야 而夫餘에 有夫餘之道則漢人은 歸其漢也며,
약기시지제선 이부여 유부여지도즉한인 귀기한야
高麗에 有高麗之道則蒙古는 歸其蒙古也니라.
고려 유고려지도즉몽고 귀기몽고야
嗚呼痛矣라. 向年에 潛淸輩之邪論이 陰與百鬼夜行하야
오호통의 향년 잠청배지사론 음여백귀야행
以男生發岐之逆心으로 相應而合勢하니
이남생발기지역심 상응이합세
爲國者抑何自安於道器兩喪하며 形魂全滅之時乎아.
위국자억하자안어도기양상 형혼전멸지시호
이 구절은 부여와 고려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외세의 침입이 단순히 군사적 패배 때문이 아니라 그 나라가 유지하던 **정신적·도덕적 지침인 '삼신의 도(道)'**가 상실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부여의 도와 고려의 도가 사라진 후, 외세인 한나라와 몽골이 각각 부여와 고려를 침입하게 되었고, 이는 **삼신의 도(道)**라는 국가의 근간이 무너졌기 때문에 외세의 침략이 가능해졌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군사적 힘만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으며, 정신적·도덕적 기반이 국가를 지탱하는 핵심임을 강조합니다.
대한민국의 국혼은 배달국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홍익인간 사상으로, 모든 인간이 삼신의 참마음을 내려받아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고, 삼신의 도로 세상을 교화하여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혼이 국가의 중심에 있을 때, 외세는 그 나라를 쉽게 침범할 수 없으며, 내부적으로도 강한 도덕적 기반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남생은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후, 당나라에 귀화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기여한 인물입니다. 자신의 패배를 이유로 나라를 배신한 그의 행동은 역사의 기준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불의한 행위입니다. 오늘날 뉴라이트 계열에서 제기하는 건국절 논란도 이와 유사한 역사 왜곡의 시도입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1948년으로 설정함으로써, 일제 치하의 친일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역사적 도덕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교훈은 분명합니다. 나라가 외적 침략에 취약해지는 것은 단순히 군사적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삼신의 도(道)와 국가의 도덕적 기준**이 상실될 때입니다. 행촌 이암 선생은 이러한 점을 강조하며, 나라를 지키는 길은 단순한 군사적 방어나 경제적 발전이 아닌, 국가의 도덕적·정신적 기초를 지키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혼을 가르치는 올바른 역사 교육이 중요하며, 이러한 교육을 통해 국가의 중심에 정신적 기초를 세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행촌 이암 선생은 궤변으로 고려를 혼란에 빠뜨린 간신배들과 그들의 사악한 행위가 과거 고구려를 망친 배신자들의 정신과 연결되어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상황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치 지도자들이 도덕적 기준을 잃었을 때 그 국가가 어떻게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 되는지를 상기시킵니다. 외세의 침략보다도 내부의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국가 쇠퇴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혼을 지키는 방법은 천제문화를 부활시키고 올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 국가의 도덕적·정신적 기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전세계 모든 인류의 의식을 통일할 수 있는 삼신의 도와 신교의 진리를 바탕으로 내면을 정화하고 도덕적 기준을 회복할 때, 비로소 국가는 존립과 번영 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을 이 구절은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금일에 외인(몽골인)이 정사를 간섭함이 갈수록 심하여 왕위에서 물러나고 다시 오름을 저희들 멋대로 조종하되,
우리 대신들이 한갓 속수무책인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라에 역사가 없고, 형체가 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로다.
대신 한 사람의 능력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온 나라 사람이 나라 구하기를 스스로 기약하고 나라를 구하는데 무엇이 유익한 것인지 찾아낸 연후에
비로소 구국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나라를 구한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앞에서 말한 바, '나라에 역사가 있고, 형체에 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시에 나라를 연 이후로 국통이 있어,
나라는 이 국통으로 인하여 세워지고, 백성은 이 국통으로 인해 흥하였나니,
역사를 배움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오?
이 글을 써서 기쁜 마음으로 <단군세기>의 서문으로 삼는다.
공민왕12년(서기1363)계묘 10월 3일에, 홍행촌수가 강화도의 해운당에서 쓰노라.
今에 外人干涉之政이 去益滋甚하야 讓位重祚를 任渠弄擅호대
금 외인간섭지정 거익자심 양위중조 임거농천
如我大臣者가 徒束手而無策은 何也오, 國無史而形失魂之故也니라.
여아대신자 도속수이무책 하야 국무사이형실혼지고야
一大臣之能이 姑無可求之爲言이나 而乃擧國之人이 皆救國自期오
일대신지능 고무가구지위언 이내거국지인 개구국자기
而求其所以爲有益於救國然後에 方可得以言救國也니라.
이구기소이위유익어구국연후 방가득이언구국야
然則救國이 何在哉아. 向所謂國有史而形有魂也니라.
연즉구국 하재재 향소위국유사이형유혼야
神市開天이 自有其統하야 國因統而立하고 民因統而興하나니
신시개천 자유기통 국인통이립 민인통이흥
史學이 豈不重歟아 書此하야 樂爲檀君世紀序하노라.
사학 기부중여 서차 낙위단군세기서
上之十二年癸卯十月三日에 紅杏村叟는 書于江都之海雲堂하노라.
상지십이년계묘시월삼일 홍행촌수 서우강도지해운당
이 구절은 고려 말 몽고의 침입으로 인해 외세의 간섭이 심화되고, 국가의 주권과 왕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대신들의 무기력함과 국가적 혼란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암 선생은 이러한 위기의 근본 원인을 단순한 군사적 약세나 정치적 무능으로 보지 않고, 국가의 정신적 뿌리인 역사와 국혼의 상실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국혼의 상실은 한 나라의 도덕적·정신적 지침이 무너진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올바른 역사 의식과 국혼 회복이 없다면, 국가의 존립은 외세의 침입에 의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암 선생은 이러한 맥락에서 한민족의 역사가 환국-배달-조선-북부여-고구려-대진국(발해)-고려-조선-대한민국으로 이어진 9천 년의 국통맥을 강조하며, 이 국통맥을 기반으로 한 역사 교육이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국혼이란 단순한 애국심 이상의 개념입니다. 이는 삼신의 도를 바탕으로 정립된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국민이 삼신의 참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밝은 본성을 회복해서 세상을 교화하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국혼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국혼은 국가의 도덕적·정신적 기둥이며,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암 선생은 나라를 구하는 길은 역사를 바르게 정립하고 국혼을 회복하는 것이라 강조합니다. 역사를 잃은 나라, 혼을 잃은 나라는 외세에 의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이를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국통맥을 되살리고 그 맥을 따라 살아온 선조들의 정신을 가르치는 역사 교육입니다. 한민족의 9천 년 국통맥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국가와 백성을 세우고 흥하게 하는 정신적 기반이자 정체성의 원천입니다. 이를 가르치는 올바른 역사 교육이 이루어질 때, 국론이 통일되고 국가의 번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국혼 회복은 시대적 과제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건국절 논란을 통해 역사적 진실과 가치를 왜곡하려는 시도는 국가의 도덕적 기준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한민족의 국통맥을 흔드는 일입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환단고기와 같은 참된 역사서를 통해 9천 년의 국통맥을 바르게 교육하고, 천제문화의 부활과 삼신의 도를 실천하게 함으로써 국가의 도덕적·정신적 기준을 재확립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국가를 구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은 올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 국혼을 회복하고, 삼신의 도를 바탕으로 한 정신적 기반을 다시 세우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국가의 존립과 번영을 이루고,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국가 정체성을 물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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