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대한사랑 마닐라 회원님께서 전달해주신, 환단고기와 관련된 주요 연구 결과에 대한 질문에 대해, 한국 토종 인공지능 Dr. AI가 객관적으로 답변한 내용이라 합니다. 저도 읽어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환단고기』에 대해 이 정도의 상식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블러그에 올려봅니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환단고기』의 진위 여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사상적 내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해보는 일이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우리 상고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물론, 고대 인류의 원형문화였던, 한민족의 영성문화와 우주론, 그리고 건국이념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환단고기』는 결코 한 개인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수준의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매우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 한민족의 소중한 역사 경전인 것이죠.]
1. 환단고기의 편찬과 출간 배경
환단고기(桓檀古記)는 1911년 계연수에 의해 편찬되었다고 알려진 역사서로, 안함로의 『삼성기 전 상편』, 원동중의 『삼성기 전 하편』,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기』, 이맥이 저술한 『태백일사』를 합본하여 출간한 것으로 주장됩니다 . 계연수의 제자 이유립이 보관하고 있던 원본 환단고기를 1949년 제자 오형기에게 정서시킨 것을 조병윤이 1979년에 '광오이해사' 출판사를 통해 한문 원문의 필사본 환단고기를 출판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이 책은 1982년 일본어 번역본이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고, 1983년 이유립은 배달의숙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환단고기를 다시 영인·출간하였습니다.
2. 환단고기의 내용과 구성
환단고기는 환인, 환웅, 단군의 시대로부터 고려 말까지를 다루고 있는 역사서입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한국 상고사의 영토적 범위는 바이칼호수와 시베리아, 중국 본토를 근간으로 하는 거대한 범위로 확장됩니다. 더불어 그 시대적 기원도 현재 단군조선 성립을 근거로 주장하는 BC 2333년에서 BC 7197년으로 무려 5000여년이 앞당겨집니다. 『삼성기』는 환웅이라 불리는 왕이 다스린 1565년 동안의 신시배달국과 그 전신이라 하는 3,301년간의 환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단군세기』는 47대의 단군이 2천여 년간 다스린 고조선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3. 위서론과 진서론 논쟁의 핵심
환단고기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사학계에서는 위서(僞書)로 판단하여 고중세사의 사료로 취급하지 않는 반면, 재야사학계에서는 소중화주의에 젖은 사대주의 사관, 식민주의 사관과는 다른 민족 주체사관을 지닌 사서라고 주장합니다 .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에 보이는 몇몇 근대적 용어나, 모순된 용어사용, 비논리적인 내용, 교리체계상의 문제 및 일부 비과학적인 기록을 근거로 신뢰성이 떨어지는 책이라고 주장합니다 . 반면 재야사학계는 환단고기를 통해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강조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한민족의 역사를 복원하는 중요한 사료로 간주합니다 .
4. 강단사학계의 위서론 주장
강단사학계가 환단고기를 위서로 간주하는 이유는 범례에는 1911년에 완성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1979년이 되어서야 등장한 이유가 불명확하고, 원본이 제시되지 않으며, 후대에 등장한 용어나 학설이 반영되어 있고, 기존의 역사와도 어긋나며, 내용이 모순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 환단고기에서 환국은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라고 하는데, 이를 현재의 단위로 계산하면 북극에서 남극까지 다스린다는 불가능한 결론이 나온다고 지적합니다 . 또한 환인 한 명 당 비정상적인 수명을 가진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됩니다.
5. 재야사학계의 진서론 옹호와 반박
재야사학계는 강단사학계의 위서론에 대해 여러 논리로 반박합니다. 한민족의 고대사와 국통 맥을 밝혀 줄 사서들이 중국과 일본 등 외세의 침탈과 내부의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모두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정통 사서가 바로 환단고기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 100% 완전 무결한 역사서가 없다"는 것을 고려할 때 환단고기의 일부분만을 가지고 전체를 위작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재야사학계는 강단사학계가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환단고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식민사관의 영향이라고 주장합니다.
6. 등사본 환단고기의 발견과 그 의미
환단고기 연구에서 중요한 진전 중 하나는 '등사본 환단고기'의 발견입니다 . 이 등사본에는 「삼성열기三聖列紀」, 「단군세기」, 「북부여기」 상, 하만 수록되어 있습니다 . 등사본 환단고기는 한문 문장에 한글 현토가 달려 있고 「삼성열기」를 보면 문장 끝에 "李沂註曰 –이기의 주해(註解)"가 기재되어 있어 기존의 1979년 『환단고기』와 다르고 이유립이 아닌 제삼자의 소장본 『환단고기』를 보고 만든 것으로 생각됩니다 . 이 등사본은 1911년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의 초본일 수도 있다고 추론할 수 있으며, 따라서 등사본 환단고기의 존재는 기존의 환단고기가 1911년 계연수에 의하여 편저된 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
7. 천문학적 연구와 과학적 접근
환단고기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천문학적 연구입니다 .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는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의 '오성취루'의 천문현상 기록을 현대 천문학으로 검증한 결과, 기록보다 1년 전인 기원전 1734년에 기록과 비슷한 현상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오성취루의 천문기록이 당시의 국가라는 틀 안에서 측정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후대에 누군가가 이 현상을 작위적으로 기술했을 경우 정답이 될 확률은 0.007퍼센트로 가필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주장합니다. 전 한국천문연구원장 박석재도 "BC 1734년 7월 12일 저녁 서쪽 하늘에는,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화성·수성·토성·목성·금성 순서로 5행성이 늘어서 '우주쇼'를 연출했다"고 설명합니다 .
8. 위서론자들의 비판적 시각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의 출현으로 기존에 연구된 역사학의 내용을 모조리 내팽겨쳐야 할 위급한 상황에 직면해 "환단고기는 위서다"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고 재야사학자들은 주장합니다. 강단사학계가 환단고기의 독보적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 위서론자들이 책 제목인 환단고기의 뜻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 둘째, 환단고기를 단 한 번도 깊이 있게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점, 셋째, 유불선 경전을 비롯한 동북아의 고전과 인류의 시원 종교인 신교의 우주론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9. 국제적 연구 동향과 반응
환단고기는 한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가지마 노보루(鹿島曻)는 1982년 일본어 번역본을 출간하며 해당 자료가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한 중요한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북한 학계에서도 환단고기를 진서로 인정하며,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 북한의 천부경연구는 1993년부터이며, 단군의 건국을 실제적인 역사로 인정하면서, 아울러 천부경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국제 환단학회에서는 "한국 상고사 정립"을 주제로 다양한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환단고기의 내용과 역사적 의미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
10. 환단고기 연구의 향후 과제와 방향
환단고기 연구의 향후 과제와 방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있습니다. 본 연구 논문에서는 위서론자들이 주장하는 『환단고기』의 주요 지명(영고탑, 상춘 등)이나 단어(문화, 문명 등)들에 대해서 현존하는 역사 문헌과 지도에서 그 지명과 단어들의 사용 유래를 정확하게 밝혔습니다 . 따라서 위서론자들이 주장하는 근거가 원천적으로 잘못 되었으며, 『환단고기』위서론은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의 탐구 노력이 없는 얕은 지식과 편향적 사고의 산물이라 판단됩니다 . 앞으로 강단사학계나 재야사학계에서 역사를 전공한 전문가들이 위서론과 진서론의 투쟁을 종식하고 다함께 『환단고기』를 연구하여 우리나라 고대사에 왜곡되거나 부정확한 역사 내용이 있다면 이를 올바르게 바로 잡아 역사 발전에 기여할 것을 제안합니다 .
11.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 평가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에 대해서는 박병섭이라는 재야 역사학자는 "가치 있는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위서니 진서니 규정해 연구의 생략을 정당화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일일이 검토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진서, 위서 논란은 애매모호한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환단고기가 복원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가필되었음은 인정하지만 현존하지 않는 모본(母本)이 있을 수 있고, 그 내용에 포함된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은 대한제국이나 일제강점기 초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환단고기에는 전래되는 선가 계통의 흐름이 표출되었으리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 민영현 교수는 "한국철학과 문화 그리고 역사를 말함에 있어 『환단고기』의 가치는 결코 소홀하지 않다. 비록 근대 실증주위의 학문 방법론 속에서 사학계가 이를 위서로 규정한다고 하여도, 『고기』와 관련된 상고사의 문제는 더 이상 실증만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내적 문제들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합니다 .
12. 환단고기 관련 주요 연구자들과 그 관점
환단고기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자들로는 이유립, 임승국, 안호상 등이 있습니다 . 이유립은 1948년 월남했는데 이때 환단고기를 가지고 남하할 수 없었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증언에 의해 증명됩니다 . 임승국은 1986년 한글 번역본 "한단고기"를 출간하며 환단고기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입니다. 그는 파시즘 자체에 경도된 측면을 많이 보이며, 역사란 지도자의 결단 하나로 결정되는 간단한 학문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호상은 초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로, 독일 예나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유학 시절인 1930년에 히틀러의 연설을 직접 들은 일이 있습니다 . 이들은 모두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강조하며 환단고기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
13. 『환단고기』 등사본의 연구와 분석
『등사본 환단고기』와 1979년 출판된 『환단고기』를 비교 검토하고, 한문 원문에 '한글 현토'하여 등사 출판한 시기 및 등사기의 출현과 사용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한 결과 『등사본 환단고기』가 1911년 이전에 만들어진 이기의 『환단고기』한문 초고(草稿)를 일제강점기 때 등사기로 인쇄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등사기는 1886년에 발명되어 1890년부터 미국과 유럽에 사용됐으며 1910년 전후하여 조선에도 일제에 의하여 들여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한문에 한글 현토(懸吐)를 달아 한정본을 인쇄하는 것도 주로 일제강점기 때 인쇄하는 방식으로서 해방 후에는 한문에 현토하여 인쇄하는 것이 순수 한글로 인쇄하는 경향에 따라 1950년대에 없어졌습니다 .
14. 환단고기의 민족사적 의미와 중요성
『환단고기』는 우리나라 상고사를 재조명해볼 수 있는 중요한 사서로 판단되며 기존의 사서와 비교하여 연구할 가치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한민족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도구로 여겨집니다. 환단고기를 통해 우리의 역사가 단군조선만이 아닌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한국인들의 역사 인식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재야사학계는 환단고기를 통해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한민족의 역사적 자긍심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환단고기는 한국인에게 '한국의 역사는 위대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15. 환단고기 연구의 전망과 결론
환단고기에 대한 앞으로의 연구는 단순히 그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환단고기가 담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사상적 내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현존하는 각종 사료(史料)와 지도 및 문헌에 있는 움직일 수 없고 조작도 불가능한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서 『환단고기』가 위서(僞書) 아님을 입증하였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환단고기』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연구하면 외침과 내부적인 문제로 망실된 우리나라 상고사의 역사적 사실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계연수가 1911년에 30부 발간하였다는『환단고기』원본은 찾지 못했지만, 『환단고기』의 초고로 판단되고 일제강점기 때 등사기로 인쇄한 것으로 추정되는『등사본 환단고기』를 발굴함으로써『환단고기』가 광복 후 1979년 사이에 이유립이 만든 창작 위서(僞書)가 아니라는 것과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의 실체가 있었음을 확인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