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존재하는 이 광활한 우주는 과연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고대 동방의 현자들은 그 답을 ‘한줄기 빛’, 즉 대광명에서 찾았다. 신라의 고승 표훈(表訓)이 기록한 「표훈천사(表訓天詞)」에 따르면, 태초(大始)에 이 세상은 암흑 없이 오직 한 줄기 광명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빛 가운데 ‘문득(却)’ 삼신(三神)이 계셨으니, 이분이 곧 우주를 통치하시는 일신, 즉 한분 상제님(一上帝)이시라고 하였다. [삼신오제본기 보기 클릭]
하나의 빛, 세 가지 손길 – 삼신(三神)의 신비
삼신은 한 분이시되, 그 작용은 셋으로 나뉜다. 이는 마치 태양이 하나이되 햇살, 따스함, 생명력이라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과 같다. 삼신은 이 세 가지 손길, 즉 조화(造化)로 만물을 빚어내고, 교화(敎化)로 지혜를 일깨우며, 치화(治化)로 세상을 다스린다. 「표훈천사」는 삼신이 “항상 크게 광명을 내뿜으시며(大放光明), 크게 신묘함을 드러내시며(大發神妙), 크게 상서로운 기운을 내리신다(大降吉祥)”고 묘사한다. 숨결(氣)로 만물을 감싸고, 열기(熱)로 생명의 씨앗을 키우며, 보이지 않는 신(神)들을 통해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이 ‘대광명(大光明)’ 사상은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의 “본심본태양앙명(本心本太陽昻明)” 구절과 깊이 연결된다. 모든 창조의 근본인 ‘마음(本心)’이 실은 태양과 같은 지극한 밝음, 즉 이 태초의 빛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우주의 본성도, 신의 본성도, 그리고 인간 마음의 본성도 ‘빛’이라는 놀라운 통찰이다.
빛에서 만물까지 – 천부경 삼극론과 이신사(理神事) 법칙
그렇다면 이 태초의 빛(또는 마음)은 어떻게 만물을 창조했을까? 천부경은 그 비밀을 ‘삼극(三極)’이라는 우주론적 원리로 풀어낸다. “일시무시일 석삼극(一始無始一 析三極)”이라, 즉 무(無)에서 비롯된 ‘하나(一)’의 시작이 반드시 ‘세 가지 궁극(三極)’의 작용을 통해 현실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하나(一)’는 태초의 빛에서 응축된 최초의 창조 에너지, 즉 1태극(太極)이며, 삼신의 다른 표현인 일신(一神)이다.
이 삼극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 무극(無極): 태초의 빛, 0과 완성수 10의 상태. 모든 가능성이 잠재된 순수의식의 장(場). 이(理)의 근원.
- 태극(太極): 무극에서 최초로 발현된 1의 에너지. 음양이 분화되기 전의 통일체. 수렴의 중심.
- 황극(皇極): 태극의 에너지를 받아 만물을 생성하는 5의 동력. 음양을 조율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발산과 중재의 중심.
이 삼극의 원리가 구체적으로 우주 만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이신사(理神事)’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 이(理): 우주의 근본 원리이자 법칙. 태초의 빛, 0무극과 10무극 그리고 1태극과 5황극에 내재된 창조와 조율의 의지.
- 신(神): 이(理)에서 비롯된 정신적 창조 에너지. 황극적 작용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빛의 파동, 생각)으로 발산되는 단계. (양적)
- 사(事): 신(神)의 정신적 에너지가 구체적인 물질과 현상(빛의 입자화, 물질적 실체)으로 수렴되고 현현되는 단계. (음적)
마치 건축가가 건축 공학(이理)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신神)를 디자인하고, 이 디자인을 따라 실제 건축물(사事)을 짓는 과정과 같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의지(意志)’는 ‘의토(意土)’라는 형태로 작용하여 생각(신)을 행동(사)으로, 경험(사)을 새로운 생각(신)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한다.
우주는 거대한 학습 시스템 – 반복과 진화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창조의 과정이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천부경의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구절처럼, 하나의 사이클이 마무리되면(一終) 그것은 완전한 끝이 아니라(無終) 새로운 시작(一)을 예비한다는 것이다. 즉, 우주는 이신사의 사이클을 무한히 반복하며, 매번의 ‘개벽(開闢)’을 통해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정교하게 진화해 나가는 거대한 학습 시스템과 같다.
결론: 내 안의 빛을 깨워 우주와 공명하라
태초의 빛에서 시작된 삼신의 창조, 그리고 삼극의 원리와 이신사 법칙으로 이어지는 우주의 이야기는 장엄하다. 이는 단순한 고대의 신화가 아니라, 우주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꿰뚫는 깊은 지혜를 담고 있다. 내 안에도 태초의 그 빛이 잠재되어 있음을 깨닫고, 이신사의 원리에 따라 맑고 순수한 의지를 발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주의 거대한 흐름과 공명하며 조화로운 삶을 창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적 진리의 공유야말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이해를 넓혀 인류의 오랜 종교적, 이념적 갈등을 넘어 상생의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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