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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보/역사 칼럼

차경석과 보천교의 항일운동

by 광명인 2025. 5. 25.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은 국권 회복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항일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민족 종교의 저항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줄기입니다. 특히 보천교(普天敎)와 그 중심 인물인 차경석의 활동은 당시 민중들의 정서와 열망이 어떻게 항일운동으로 승화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아래 참조 자료들은 보천교의 항일 투쟁이 조직의 체계를 갖추기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핵심에는 강증산 상제님이 예언했던 '후천 선경 사회'를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신국가 건설'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음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보천교의 역사는 차경석이라는 인물 없이는 논할 수 없습니다. 그는 본래 동학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로, 부친 차치구는 동학 농민 전쟁 당시 정읍의 접주였으며 공주 전투 참여 및 전봉준 피신에 관여한 지도자였습니다. 차치구가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한 후, 차경석은 2차 동학 농민 전쟁에서 **거괴(두목급)**로 활동했으며, 이후 손병희의 지시로 만들어진 진보회 또는 일진회전라북도 총대를 맡아 전라도 동학의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손병희가 천도교를 만들었음에도 차경석은 천도교에 합류하지 않고, 곧바로 정읍의 강증산 상제님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이종 누이인 고판례가 강증산 상제님의 수부로 책정되면서, 강증산 사후 고판례 수부님을 중심으로 모인 세력이 선도교, 태을교로 발전했고, 이 세력이 바로 보천교의 모태가 됩니다.

보천교가 1916년에 24 방주 조직을 통해 비로소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었지만, 차경석은 그 이전부터 이미 일제의 '요시찰 갑호', 즉 중대한 불령선인으로 지정되어 삼엄한 사찰 대상이었습니다. 1916년 또는 1917년 당시 요시찰 갑호 조선인은 극소수였는데, 차경석이 그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은 일제가 그의 활동을 얼마나 위험하게 여겼는지를 방증합니다.

일제가 차경석을 계속 구인하고 체포했으며, 무혐의로 풀려나더라도 탄압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탄압은 차경석이 정읍 지역을 떠나 함양 등지에서 비밀리에 도피 생활을 하며 포교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차경석에 대한 반복적인 구인의 주요 사유는 바로 "새로운 나라의 황제에 등극한다"는 풍설이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이는 차경석이 강증산 상제님이 예언했던 후천 선경 사회를 당시의 현실 사회, 즉 일제 식민지 상태에서 이루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상황에서 후천 선경 사회를 이루는 것은 곧 일제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목표는 **'후천 선경 신국가 건설'**이라는 기치로 표현됩니다. 자료에서는 당시 국내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정부를 조직하려 했던 단체는 보천교가 유일했다고 언급하며, 일제는 이를 식민지 통치에 대한 **"굉장히 걸림돌이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일제는 보천교 지도부를 지속적으로 불러들이고 체포하며 고문했던 것입니다. 국권을 잃은 상황에서 신국가 건설 운동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주도해 나갔던 인물이 바로 차경석으로 평가됩니다.

보천교 계열의 항일 투쟁은 단순히 신국가 건설이라는 목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조직 성립 이전인 1910년대 초반부터 이미 조선총독부의 식민 정책에 위협적인 활동을 전개했으며, 특히 3.1 운동 이전에 의병과 연대하여 항일 투쟁을 벌였습니다. 정읍 출신의 의병장 이범이 충남 홍성에서 의병 활동을 할 때 태을교(보천교 계열)와 연대했다는 기록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저항 방식은 당시 한국 민중들의 토속적이고 민족적인 사상에 깊이 기반하고 있었습니다. 부적을 불태우거나, 일본 침략 지도자의 초상을 그려놓고 복숭아나무 가지로 만든 화살을 쏘아 맞히는 행위, 마패를 이용해서 독립 자금을 모금하는 방식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심지어 비밀 모임에서는 죽은 메이지 천황의 혼을 불러들여 꾸짖는 무속적인 모습까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오늘날 시각에서는 다소 황당하게 보일 수 있으나, 당시 애국심, 군사력, 지식이 부족했던 대다수 민중들이 식민지 시절에 현실적으로 할 수 있었던 토속적인 저항 방식으로 해석됩니다. 일제는 이러한 토속적인 저항 행위나 일제 패망 예언, 패망 기원 고천례 등 보천교의 저항 언동까지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밀정의 고발로 50여 명이 체포되고 고문으로 6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일제 검사국 사상부 자료에는 보천교 사건사회주의 동맹이나 임시정부 사건 등과 함께 주요 사상 사건으로 다루어졌을 정도였습니다.

1919년에는 60 방주로 조직이 확대 개편되었고, 일제 기록에 수십만에서 수백만(1925년 조선 주재 미국 총영사 밀러의 '조선보고서'와 1926년 조선총독부 '보천교 일반' 자료에 따르면, 보천교 신도 수는 약 600만명이다)에 달하는 규모로 표현되는 등, 보천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사회 운동이나 사회 현상으로까지 볼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기댈 곳 없던 많은 한국 민중들이 보천교의 '후천 선경 신국가 건설' 기치 아래 모이게 되었다는 점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천교와 차경석의 항일운동은 일제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민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후천 선경 신국가 건설'이라는 독특하고 강력한 목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의병 연대부터 토속적인 저항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보천교의 활동은 일제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어 강력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자료에서는 이러한 민중들의 토속적인 저항 행위나 신국가 건설 시도 또한 마땅히 독립운동으로 인정해야 하며, 계몽주의적 시각이 아닌 민중들의 입장에서 독립운동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보천교의 항일운동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민족 종교의 역할과 민중들의 다양한 저항 양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참조자료: 대한사랑 초대석 (안후상 이사)
[보천교는 어떤 단체인가?]
[일본이 차경석 체포에 진심이었던 이유]


아래는 [증산도 도전]에 나타난 차경석(車京石)성도 관련 내용입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로 보천교와 차경석, 그리고 당시 민족종교의 독립운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겐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1. 동학 농민 혁명 참여 (도전 1:46)

  • 갑오년(1894년, 15세), 아버지 차치구(車致九)를 따라 황토현 전투에 동학군으로 참가함.

2. 상제님과의 만남과 초기 수종 (정미년, 1907년, 28세)

  • 첫 만남 (도전 3:180, 3:181): 5월 17일, 상제님께서 김형렬의 집을 떠나 용암리 물방앗간 앞 주막에서 정읍 사람 차경석을 만남. 당시 경석은 28세. 재산 문제로 송사하러 전주로 가던 길이었음. 상제님의 비범함에 감명을 받고, 상제님의 조언(송사로 11명이 피해를 볼 것이며, 활인지기(活人之氣)를 띨 것)에 따라 송사 서류를 불사름.
  • 수종을 간청함 (도전 3:182): 상제님을 따르기를 간청하나 처음에는 거절당함. 열흘 동안 머물며 간청하자, 상제님께서 일을 정리하고 6월 초하룻날 다시 오라 명하심. 상제님께서는 "내가 일찍이 목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고생하다가 겨우 헤어나 발목물에 서 있는데 네가 다시 나를 깊은 길물로 끌어들이는구나."라고 하심.
  • 대흥리 경석의 집으로 (도전 3:183, 3:185): 상제님께서 의관을 갖추시고 경석을 데리고 정읍으로 향하심. 원평에서 "이 길은 성인(聖人) 다섯을 낳는 길이로다."라고 하심. 대흥리 경석의 집에 도착하여 서쪽 벽에 글을 쓰시니 우레가 일어남.
  • 가족의 원한 해소 (도전 3:186): 상제님께서 경석 부친이 동학 관련 일로 모해자의 밀고로 해를 입은 일을 아시고, 경석 형제들에게 복수심을 버리도록 하심. 경석 형제들이 이에 따름.
  • 경석의 집에 머무시며 공사 보심 (도전 3:187, 5:112, 6:31, 6:32, 6:44, 6:45, 6:47, 6:49, 6:87):
    • 비룡산에 네 차례 오르시어 공사 보심. 경석의 집 벽에 "千古春秋阿房宮이요 萬方日月銅雀臺라" 글귀를 써 붙이시고, 집을 크게 짓지 말라고 경계하심. "정읍이 대창(大昌)하되 잠농지운(蠶農之運)이라. 누에는 집만 지으면 죽나니 집만 끝이 나면 죽으리라."고 하심. (도전 3:187)
    • 상제님께서 경석의 생일(6월 1일)을 물으시고, 당신의 생일(3월 26일)과 비교하며 "나는 낙종(落種) 물을 맡으리니 그대는 이종(移種) 물을 맡으라. 추수(秋收)할 사람은 다시 있느니라."고 하심. (도전 5:112)
    • 경석의 평생 소원이 "돈을 물 쓰듯이 써 보는 것"이라 하자, 상제님께서 구월산 금반사치혈의 기운을 옮겨 붙여 주심. (도전 6:31)
    • 경석에게 강령(降靈)을 받아야 한다 하시며 '원황정기 내합아신'을 읽히시니 경석이 통곡함. (도전 6:32)
    • 경석에게 "너는 접주(接主)가 되라. 나는 접사(接司)가 되리라." 하시고, 자옥 도수(自獄度數)를 명하심. (도전 6:44)
    •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서전서문(書傳序文)을 만 번 읽으라 명하시고, 이 기간 동안 친히 보살피심. (도전 6:45)
    • 경석이 상제님 명으로 쌀을 사야 할 돈을 사사로이 쓰자, 이후 상제님께서 모든 일을 수부님과 직접 의논하심. (도전 6:47)
    • 상제님께서 "정읍에 천맥(阡陌) 도수를 붙인다." 하시며 "여기가 못자리니 이것이 천하파종(天下播種) 공사니라."고 하심. (도전 6:48)
    • 상제님께서 경석의 경솔함이나 야망을 경계하시는 듯한 행동(하루 종일 서 있게 하심)을 하심. (도전 6:49)
    • 대흥리 경석의 집에서 '천지 귀신 축문' 공사를 보심. (도전 6:87)

3. 일진회 관련 활동과 상제님의 경계 (을사년, 1905년 이후)

  • 일진회 주도와 대립 (도전 3:119): 전주에서 일진회 회원과 전주 아전 간의 충돌 시, 차경석 등이 일진회 회원을 이끌고 입성을 시도함. 상제님께서 개입하여 큰 충돌을 막으심.
  • 머리 기르고 갓을 씀 (도전 3:211): 상제님께서 일진회 활동으로 단발했던 경석에게 머리를 기르고 망건과 갓을 쓰도록 명하심. (정미년 11월) 상제님께서 친히 상투를 올려 주시고 망건서와 망건시를 내려 주심. "네가 갓을 쓰면 수많은 천하 사람들이 갓을 쓸 것이니라."고 하심.
  • 동학 역신 해원 도수 (도전 5:205):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 하시고, 경석 부친이 동학 접주로 죽었고 경석도 동학 총대였음을 언급하심. "경석이 금전도 무수히 소비할 것이요, 사람을 모으는 것도 갑오년보다 훨씬 많게 될 것이니라. 경석에게 밥주걱을 맡겼나니 경석은 제왕(帝王)만큼 먹고 지내리라."고 하심.
  • 십이제국 발언과 야망 (도전 5:204): 후천 음양 도수를 보실 때, 경석이 아내를 열둘(십이제국에 한 명씩) 두기를 원한다고 하자 상제님께서 "네 말이 그럴 듯하도다."라고 하심.
  • 장군 도수 (도전 5:207): 순창 농바우 박장근의 집에서 초패왕 도수를 받음.
  • 월곡(경석의 호)의 천자 꿈 (도전 5:257): 경석이 '십오(十五)'를 소원하자(천자를 의미), 상제님께서 "도적놈이로다." 꾸짖으심.
  • 경석의 기국과 재능에 대한 상제님 평가 (도전 3:291, 6:91, 6:109):
    • 무신년 정월, 의병 혐의로 온 헌병들을 경석이 무사히 돌려보내자, "경석은 대재(大才)요 만인지장(萬人之長)이 될 만하다. 너한테 일극(一極)을 주노라."고 하심. (도전 3:291)
    • 상제님께서 "왕자포덕 도수(王者布德度數)를 정읍에 둔다." 하시더니 뒷날 경석이 교도 수백만을 둠. (도전 3:291)
    • 상제님께서 경석이 마음이 변할까 염려하시며 변치 않겠다는 다짐을 받으심. (도전 6:55)
    • 상제님께서 경석의 집에 포정소(布政所)를 정하시고 "장차 크게 흥하리라."고 하심. (도전 5:338)
    • 경석을 나무라시며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온몸에서 뚝뚝 떨어지니 백성들이 많이 상하겠구나.", "내 도(道)가 험난하겠구나." 탄식하심. (도전 6:91)
    • 상제님께서 "동학(東學)은 차정(車鄭)으로 망하느니라."고 하시고, "잠시 시운(時運)으로 경석을 쓰려 하는 것이니라."고 하심. (도전 6:49, 6:109)

4. 상제님 어천 전후 (기유년, 1909년)

  • 상제님의 마지막 길 예고와 경석의 다짐 (도전 10:5): 상제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것을 암시하시자, 경석이 명을 따르겠다고 맹세함.
  • 상제님 어천 당시 (도전 10:44 ~ 10:47, 10:63, 10:67, 10:70, 10:72, 10:80, 10:82, 10:83):
    • 경석이 상제님 부친의 장례비를 마련하고 성모님을 안심시켜 드림. (도전 10:63)
    • 옥중 공사(무신납월 공사) 때 상제님께서 경석의 성심 부족을 경계하심. (도전 10:26)
    • 상제님께서 경석의 집에 어진(御眞) 봉안 공사를 보심. (도전 6:102)
    • 상제님께서 경석의 집에서 마지막 대공사를 보심(무신납월 대공사). (도전 5:332 ~ 5:344)
    • 경석이 어천하신 상제님을 그리워하며 비룡산에서 상제님을 다시 뵙는 체험을 함. (도전 10:86)
    • 다른 성도들과 함께 금산사 미륵전에 치성을 드림. (도전 10:84)

5. 태모님 수종과 보천교 창립 (신해년, 1911년 이후)

  • 수부 추천 및 책봉 (도전 11:4, 11:5): 상제님의 명으로 경석이 이종누님인 고수부님을 수부로 천거하고, 경석의 집에서 수부 책봉 예식이 거행됨. (정미년, 1907년)
  • 태모님 시봉과 갈등 (도전 11:10, 11:21, 11:23 ~ 11:27, 11:37, 11:39):
    • 상제님 어천 후, 경석이 태모님께 상제님의 행방에 대해 거짓을 고함. (도전 11:10)
    • 수부 책봉 예식에서 경석이 증인이 됨. (도전 6:37)
    • 태모님께서 경석에게 "네가 금구(金溝)로 가면 네 몸이 부서질 것이요, 이곳에 있으면 네 몸이 크리니 이곳에 있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심. (도전 11:8)
    • 태모님께서 약방 기물을 구릿골에서 대흥리로 옮겨오실 때 경석이 앞장섬. (도전 11:23 ~ 11:27)
    • 경석이 교권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드러내자 다른 성도들과 불화가 생기고, 태모님을 고립시킴. (도전 11:37, 11:39)
  • 보천교 창립과 활동 (도전 11:141, 11:142, 11:221, 11:315, 11:319, 11:320):
    • 차경석이 주도하여 보천교(普天敎)를 창립하고 교세를 크게 확장함.
    • 상제님 성골 도굴 사건 후 보천교에서 성골을 인도받아 모심. (도전 11:141)
    • 무진년(1928) 정월, 이씨 부인의 허령 체험에 현혹되어 신로(信路)를 변경하고 스스로 '차천자(車天子)'라 칭하며 상제님 성골을 없애려 함. (도전 11:142)
    • 태모님께서 보천교의 난법 기운을 거두시는 공사를 보심. (도전 11:221)
    • 태모님께서 경석의 집에 머무르실 때 "속히 돌아가서 왕심리 일을 정리하고 동지절에 아주 이사하여 오리니 그 동안 준비하라."고 하심. (도전 11:318)
    • 병자년(1936) 윤3월, 많은 신도들 앞에서 "내가 신도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고 회한하며 자결함. (도전 11:319, 11:320)

차경석에 대한 상제님 및 태모님의 평가/예언 요약:

  • 상제님: "경석은 대재(大才)요 만인지장(萬人之長)이 될 만하다." (도전 3:291), "정읍이 대창(大昌)하되 잠농지운(蠶農之運)이라. 누에는 집만 지으면 죽나니 집만 끝이 나면 죽으리라." (도전 3:187), "경석은 만고대적(萬古大賊)이라. 자칫하면 내 일이 낭패 되리니 극히 조심하라." (도전 11:8), "동학(東學)은 차정(車鄭)으로 망하느니라." (도전 6:49), "잠시 시운(時運)으로 경석을 쓰려 하는 것이니라." (도전 6:109), 경석의 운명을 예시하는 시(詩)를 내려주심 (도전 3:209)
  • 태모님: 경석을 "만고대적"이라 칭하시고, 경석이 야심을 품자 "네가 천자라 하나 헛천자(虛天子)니라."고 꾸짖으심. (도전 11:21, 11:222)

이 정리는 도전 본문에 나타난 차경석의 행적과 그에 대한 상제님, 태모님의 평가 및 관련 공사를 시간 순서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의 역할은 상제님 초기 도운에서 매우 중요했으나, 점차 개인적인 야망으로 인해 변질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