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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보/역사 칼럼

금나라와 신라, 그리고 동북공정

by 광명인 2025. 5. 9.

아래 다큐 영상은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만주족)의 기원이 신라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상은 금나라 태조 아골타의 선조가 신라 출신 김한보이며, 청나라 황실의 성인 '아이신주어러'가 '금의 부족들' 또는 '김씨 집안'을 의미한다는 주장을 소개하며 이러한 연결고리를 제시합니다. 또한, 금나라 지배층에 발해 유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며 금나라 여진족과 발해인의 연합 정권 성격을 띠었음을 시사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여겼던 금나라의 인식을 언급합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간과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한국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백마를 조공품으로 받은 건륭제(청나라 제6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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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제작한 "금나라의 초대 황제 '아골타', 사실은 신라인의 후예다 | KBS 20090905 방송" 다큐멘터리 내용을 심층 분석하여 핵심 주제, 중요 개념, 그리고 주요 사실들을 검토합니다. 이 문서는 다큐멘터리에서 제시된 주장을 중심으로 금나라와 여진족의 기원, 고려와의 관계, 발해 유민과의 연합,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과의 연관성에 대해 논의합니다.

주요 주제 및 핵심 아이디어
본 다큐멘터리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금나라 황실의 신라 기원설: 금나라를 건국한 여진족의 지도자 아골타의 8대조가 신라 출신인 김한보(혹은 함보)이며, 금나라 황실의 성씨인 '아이신주어러' (愛新覺羅)가 만주어로 '금' 또는 '김씨 집안'을 의미한다는 주장입니다.
여진족과 한반도 민족의 역사적 연관성: 여진족은 과거 부여, 고구려, 발해의 주요 구성원이었으며, 한반도 역사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고려와 금나라의 '부모의 나라' 관계: 금나라 초기 여진족은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 칭했으며, 이는 금나라 황실의 한반도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됩니다.
금나라 건국과 발해 유민의 역할: 금나라의 건국과 국가 운영에 발해 유민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금나라는 여진족과 발해 유민의 연합 정권 성격을 지녔다는 분석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 비판: 중국의 동북공정은 금나라의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이며, 이는 금나라 황실의 신라 기원설과 고려와의 관계 등을 부정하는 허황된 역사관임을 지적합니다.

주요 사실 및 논점
아골타와 누르하치: 다큐멘터리는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와 청나라의 태조 누르하치를 여진족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소개하며, 이들이 세운 금나라와 청나라(후금)의 황실 성씨가 '아이신주어러'라는 공통점을 강조합니다.
완안(完顔) 성씨의 김씨 기원: 금나라 황실의 공식 성씨인 완안(完顔)이 '김'과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합니다. 특히 감숙성 경한현에 거주하는 완안씨 후손들이 자신들을 금태조 아골타의 후손이자 김올출(완안 올출)의 후손이라 칭하며, 완안 올출을 '김올출'이라 부르는 현상을 통해 완안 성씨와 김씨의 연관성을 제시합니다.
《송막기문》과 《금사》의 기록: 남송의 홍호가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기록한 《송막기문》과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에 금나라 황실의 조상이 한반도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음을 소개합니다. 《금사》에는 금나라 시조 함보가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정만주원유고》의 기록: 청나라의 공식 역사서인 《금정만주원유고》에 금의 국호가 신라 김씨에서 유래했으며 그 외 주장은 근거 없다고 단정적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금나라 황실 스스로가 자신들의 기원을 신라 김씨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행적과 마이태자: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한 후 그의 아들 마이태자가 반대한 기록과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의 마이태자 유적들을 통해 신라 유민들의 반고려 운동 가능성을 제시하며, 김한보가 이러한 신라 광복군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을 추론합니다.
김한보와 권행의 연관성: 조선 유학자 김세렴의 《해사록》에 아골타를 경순왕의 외손이자 안동 권씨 시조인 권행의 후손이라고 기록한 점을 언급하며, 비록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권행이 본래 경주 김씨였고 태사 직위를 받은 후 100년 넘게 고려 조정에 나가지 않은 점 등을 통해 김한보가 김씨 출신의 신라 광복군이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김한보의 여진족 지도력: 김한보가 여진족 사회로 들어가 우마원상법을 제정하고 부족 간의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며, 그의 후손들이 완안 여진을 넘어 전체 여진족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음을 설명합니다.
윤관의 동북 9성 개척과 여진족의 '부모의 나라' 발언: 1114년 윤관 장군이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개척했을 때, 여진족 지도자 오아속(아골타의 형)이 고려에게 "우리 선조가 대방(고려)으로부터 나왔으니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라고 서신을 보냈다는 기록을 제시합니다. 아골타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 칭했습니다.
발해 유민의 금나라 사회 내 위상: 금나라의 수도였던 요양에서 발견된 비석을 통해 발해인이 금나라에서 승려로서 높은 명성을 얻었음을 보여주며, 금나라의 건국과 운영에 발해 유민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발해 유민 출신의 장호가 북경 건설의 총책임자였고, 많은 발해인들이 고위 관료층을 형성했음을 설명합니다.
금 황실 내 발해인 여성의 위상: 아골타의 셋째 아들 허왕의 부인이 발해인이었고, 그녀의 아들이 금의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 황제가 되었음을 언급하며, 많은 발해 여인들이 금 황실로 시집가면서 발해인들이 금나라의 왕비족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줍니다.
청나라 황실의 '아이신주어러'와 김씨: 청나라 황실의 성씨 '아이신주어러'가 만주어로 '금'을 뜻하며, 이는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와도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합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청나라 건륭제의 7대손이 자신의 성이 김씨라고 밝히는 인터뷰를 통해 '아이신주어러'와 김씨의 연관성을 재확인합니다.
악비와 중국의 역사 왜곡: 중국의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던 악비가 동북공정 이후 '반통일 인물'로 격하된 사례를 제시하며, 이는 금나라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역사 왜곡 시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합니다.

인용문 발췌
《금정만주원유고》의 기록: "금은 신라 김씨에서 유래했고 국호도 이를 딴 것이며 그 외 주장은 근거 없다고 단호하게 정리했다"
《금사》의 기록: "(금나라 시조) 함보는 고려에서 왔다는 것이다."
여진족 지도자 오아속의 서신 (《고려사》 인용): "우리 선조가 대방(고려)으로부터 나왔으니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금 황실 후손 김광평 씨의 인터뷰: "우리는 성이 애신각라(愛新覺羅)인데, 애신각라는 만주어이고, 한자로 번역하면 '금'입니다."
역사학자 인터뷰 (동북공정 비판): "수천 년 오던 영웅을 추락시키고 그렇게까지 하면서 금나라 역사를 자기 역사를 편입시키려는 그 궁색한 걸 보면 동북공정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명백히 알 수 있는 겁니다."

결론
위 다큐멘터리는 금나라 황실의 신라 기원설을 다양한 역사서의 기록과 유적, 그리고 후손들의 증언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또한 금나라가 여진족과 발해 유민의 연합 정권이었으며 고려와도 깊은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중국의 동북공정이 얼마나 허황된 역사관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비판하며, 만주와 한반도 역사의 밀접한 연관성을 재조명합니다. 다큐멘터리는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지키는 것이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마무리됩니다.

연표
668년: 고구려가 당나라에 의해 멸망
698년: 대조영이 옛 고구려 땅에 발해 건국
900년대 초반: 김한보를 중심으로 한 신라 세력이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동
926년: 거란족이 발해 멸망시키고 요나라 건국
1114년: 완안 여진족이 추화점에서 요나라 10만 대군 대파
1115년: 아골타가 금나라 건국하고 황제 즉위 (완안 아골타)
1125년: 금나라가 요나라 멸망
1126년: 금나라 군대가 송나라 수도 카이펑 점령, 정강의 변 발생 (휘종, 흠종 부자 여진족 포로 됨)
1129년: 남송, 금나라에 홍호 파견 (송막기문 기록)
1140년대: 김올출(완안 올출)의 아들 금황실 정쟁에 휘말려 살해되자 후손들 감숙성 경한현으로 탈출
1140년대: 금나라, 고려에 동북 9성 반환 요구 (선조가 대방(고려)에서 나왔으니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겠다고 함)
1368년: 명나라 건국 (한족의 자부심 회복)
1616년: 누르하치가 만주에서 후금 건국(후금이 청나라가 됨)
1636년 9월: 김세렴, 일본 통신사로 다녀오면서 해사록 저술 (악골타를 경순왕의 외손이자 권행의 후손이라 기록)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 멸망
1985년: 요양에서 동망 원명대사 탑명 비 발견 (발해인 스님 기록)
2002년: 중국 당국, 동북공정 시작하며 악비를 더 이상 민족 영웅으로 보지 않겠다는 발표
2003년: 중국, 동북공정 본격 추진

등장인물
선통왕제 (푸이):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중국 혁명 후 친일 전범으로 재판받았다.
아골타 (완안 악골타): 여진족의 지도자, 금나라 초대 황제 (금태조). 완안 여진족 출신으로 1115년 금나라를 건국하고 요나라와 송나라를 정벌했다. 금나라 황실의 시조 김한보의 8대손.
누르하치 (애신각라 누르하치): 여진족의 지도자, 후금 (청나라의 전신) 건국자 (청태조). 청황실의 성씨인 아이신주아러의 뜻이 '금 부족들' 또는 '김씨 집안'임을 통해 금나라 황실과의 연관성을 시사한다.
휘종: 송나라 황제. 예술을 사랑했으나 금나라의 침략으로 수도 카이펑을 잃고 포로가 되었다.
흠종: 송나라 황제. 휘종의 아들로 함께 금나라의 포로가 되었다.
완안 올출 (김올출): 아골타의 넷째 아들. 송나라 정벌 때 금나라 군부의 핵심 인물이었다. 후손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김올출'이라 부르며 감숙성 경한현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김한보: 금나라 황실의 시조. 신라 말 고려 초 격동기에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동한 신라 세력의 지도자로 추정된다. 여진족 부족 간의 분쟁을 해결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금사에 따르면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 왕조 김씨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대조영: 고구려 유민. 698년 옛 고구려 땅에 발해를 건국했다.
박은식: 구한말 역사학자이자 민족주의자. '몽배 금태조'라는 글을 통해 금태조 아골타를 '우리 평'이라고 주장했다.
홍호: 남송의 사신. 10년 동안 금나라에 머물며 '송막기문'을 저술했으며, 여진족 시조가 신라에서 왔다고 기록했다.
함보: 금사(金史)에 기록된 금나라 시조.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김한보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경순왕: 신라의 마지막 왕. 고려의 압박에 신라를 고려에 넘기려 했다.
마이태자: 경순왕의 아들. 신라의 멸망에 반대하며 고려에 저항했던 인물로 추정된다. 강원도 인제군에 마이태자 관련 유적들이 남아있다.
김준: 고려 시대 승려. 고려사에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 금의 선조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행: 고려사에 등장하는 인물. 혹자는 김영의 아들 극수가 금의 선조라고도 한다. 안동 권씨 시조인 권행이 본래 경주 김씨였으며 김행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권행: 안동 권씨의 시조 (태사공 권행). 930년 안동 병산 전투에서 왕건을 도와 태사 지위를 받았다. 본래 경주 김씨였다.
윤관: 고려 시대 장군. 1107년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족을 정벌하여 동북 9성을 확보하고 국경비를 세웠다.
오아속개: 아골타의 형. 1114년 여진족 지도자로 고려에 동북 9성 반환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낼 때 "우리 선조가 대방(고려)으로부터 나왔으니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라고 언급했다.
장호: 발해 유민. 금나라 북경 건설의 총책임자였으며, 4대에 걸쳐 황제의 신임을 받았다.
악비: 남송의 장군. 금나라의 침입에 맞서 싸우며 한족의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았으나, 중국 당국은 동북공정 추진 과정에서 그의 위상을 격하시켰다.
진회: 남송의 대신. 악비 장군을 독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족들은 그의 동상에 침을 뱉고 때리며 악비의 한을 달랬다.
김광평 (횡애심라 횡욱): 북경농업대학 교수. 자신을 청 권용황제의 7대손이라 소개했으며 성씨를 김씨로 사용하고 있다.
김괄교수: 청황실의 후손. 자신의 성을 김씨로 사용하고 있으며, 청나라 역사서에 청황실의 성인 아이신(애신)이 만주어로 '금'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김알지: 신라 김씨의 시조.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따라갔더니 금궤가 달린 나무 밑에 흰 닭이 울고 있어 발견되었다는 탄생 설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