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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우주론

유교의 우주론, 세계관과 수행론

by 광명인 2024. 3. 13.

[유교의 종교성]

유교의 종교적 측면은 경천사상에서 볼 수 있다. 은주시대에 걸쳐 숭앙의 대상이었던 ‘상제’와 ‘천’은 『시경』 · 『서경』을 비롯한 오경 속에 많이 나타나 있다. 경천사상은 우주와 인간을 주재하는 초인간적 · 초자연적 절대신에 대한 숭경(崇敬)의 자취를 담고 있다. 상제는 인간을 감찰하고 화복을 내려주는 무한한 권위를 지닌 절대 타자(絶對他者)로서 인식되었다. 상고에는 ‘상제’와 ‘’에 대한 신앙이 비슷했지만, 주대로 내려오면서 천의 의미가 변화하였다. ‘천(天)’이라는 글자 속에 이미 ‘대(大)’라는 사람의 뜻이 내포되어 있듯이 초월적 권위가 인간에게 내재함으로써 인간과의 관련성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초월적 주재자의 외적 권위를 직접적으로 일컫기보다는 인간의 책무와 도리를 중시해 덕(德)의 개념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제’나 ‘천’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 전환은 공자에 이르러서였다. 공자는 ‘천’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신성성을 인간에게 내재화했다. ‘천‘은 외경적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인간의 성숙(仁)과 주체적 각성(德)에 의해서 ‘천’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는 천인관계(天人關係)에서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파악하였다. 공자는 초월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도, 특정한 예배의 형식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상제’에 대한 관념은 ‘천’ 속에 수렴되고, 그것은 다시 인격 속에 내재되어 인간의 실질적 태도와 삶 자체가 중요시되었다. ‘하늘’의 문제를 인간의 삶의 행태 속에 수렴시킴으로써 인간 행위를 떠난 상념의 세계를 건설하지 않았다.

유교에서는 제사를 중요시한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행하는 제의는 기복행사(祈福行事)이지만, 유교의 제의는 윤리성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유교의 제의는 대가나 보상을 요구하는 구복(求福)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유교의 제의는 주술적 요구를 배격하고 세속 세계를 도덕화하려고 한다. 전통적인 습속, 오사(五祀)나 절사(節祀)와 같은 국가행사나 민간신앙과 습합(習合)한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교의 제의는 윤리성을 기반으로 인간의 외형적 · 절차적 관계를 설정할 뿐만 아니라, ‘고무진신(鼓舞盡神)’하고 ‘신이명지(神而明之)’하는 신명성(神明性)을 다함으로써 인간의 주체적 체험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유교는 인간의 삶을 충실하게 하는 데 힘쓰기를 강조하며, 내세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한다. 공자는 초인간적 존재나 내세의 삶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표(言表)하지 않았다. 공자는 자신이 처한 곳에서 도리를 다하려고 했을 뿐, 내세의 영원한 삶을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의 문제는 삶 속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실존적 깊이를 가지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느냐가 보다 중요한 관심사였다. 공자는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도(道)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할 정도로 인간의 인간다움, 즉 도와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유교의 현실관]

공자는 “제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히 한다(修己而安百姓).”고 하였다. 이와 같이 유교는 자기도야(修身)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을 평안하게 한다(平天下)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이상으로 삼고 있다. 유교의 도는 수도적(修道的) 측면과 행도적(行道的) 측면을 병행하기 때문에, 개인의 수양은 사회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유교의 도는 이 세상을 버리고 은둔하는 은자(隱者)의 출세간과 세상에 영합해 사리(私利)를 도모하는 속물주의를 거부한다. 유교는 이 세상 속에서 인간성을 수양하는 목표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유교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밝은 덕을 세상에 밝히는 것(明明德於天下)’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있다.

유교의 현실 지향적 성격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현실을 개혁하려는 데 특징이 있다. 인간에 내재된 참된 가치를 현실 속에서 보존 · 함양함으로써 현실에서 현실을 개혁하는 적극적 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에 대해 『중용』에서는 “높고 밝은 진리를 극진히 하면서 일상일용을 말미암는다(極高明而道中庸).”고 했고, 풍우란(馮友蘭)은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을 벗어남(卽世間而出世間)”이라고 하였다.

전 시대의 문화 전통을 집대성했던 공자는 요(堯) · 순(舜) · 우(禹) · 탕(湯) · 문(文) · 무(武) · 주공(周公) 등의 인물들을 고성왕(古聖王)으로 칭송하였다. 나중에 도학파(道學派)는 이 인물들을 도통으로 숭상하였다. 유교에서 “요순을 근본으로 삼고 문무를 본받는다(祖述堯舜 憲章文武).”고 하는 정신은 단순한 복고주의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부정의 표시이며, 현실을 개변시켜 이상적 목표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하대는 ‘충(忠)’을, 은대는 ‘질(質)’을, 주대는 ‘문(文)’을 숭상했는데, 공자는 내용과 현실이 균제한 문질빈빈(文質彬彬)한 상태를 가장 바람직하게 보았다. 이러한 개혁과 발전의 논리에 근거하여 공자는 시대에 따라 없앨 것과 새로 보충할 것을 올바로 처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공자의 정신을 ‘시중지도(時中之道)’라고 부른다.

[참고로 저는 개인적으로 유가에서 마음 수행법의 목적과 핵심은 서전서문에 가장 잘 나와있다고 보구요. 그리고 그 핵심은 정일집중에 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해설은 주자의 중용장구서에 다소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우경장에는 수신修身의 도에 대한 핵심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남명 조식선생의 신명사도(神明舍圖)

[유교의 수행법]

"유교에도 명상법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정좌(靜坐) 수련이라는 마음 공부법입니다. 남명(조식), 퇴계(이황), 율곡(이이) 선생 등 조선 시대 선비들은 거의 정좌 수련을 했습니다. 

정좌 수련은 중국 송대 성리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송 시대 선불교의 수행법을 유교적 입장에서 수용해 활용한 면도 있을 겁니다. 주자(朱子)도 불교 이론에 능통한 분이 아니었습니까. 성리학을 받아들인 조선의 선비들은 우리가 알 만한 분은 거의 정좌 수련을 했습니다. 마음을 모으고 의식을 각성시켜 집중력과 의지력을 키우려는 것이었지요. 그 힘으로 경전을 공부하여 도리와 의리를 탐구하고 이러한 지식을 현실에서 실천했지요. 이것을 가리켜 경(敬)이라고 하는데, 그 출발이 정좌였습니다.

구한말 대유학자인 면우(俛宇) 곽종석(1846~1919) 선생은 ‘경(敬)은 정좌에서 시작된다(敬自靜坐始)’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퇴계 선생은 제자들에게 수시로 ‘정좌해라’ ‘정좌해라’ 하고 권합니다. 정좌수련을 하면 ‘도리(道理)가 깃들 장소가 생긴다(道理方有湊泊處)’는 이유였습니다. 다시 말해 도리가 깃들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정좌 수련을 권한 것이지요.

‘칼 찬 선비’로 잘 알려진 남명 조식선생은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허리띠에 달고 다닐 정도로 항상 마음 챙김에 힘썼습니다. 이 그림은 그가 그린 ‘신명사도(神明舍圖)’입니다. ‘마음(神明)의 집(舍)’을 표현한 그림이란 뜻이지요. 그림은 성(城) 모양이지요. 내 마음 지키기를, 죽음을 각오한 임금이 외적에게서 도성(都城) 지키듯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을 둘러싸고 이(耳)·목(目)·구(口) 세 관문이 그려져 있지요. 유혹의 통로가 귀, 눈, 입이기 때문입니다. 남명 선생은 강렬한 위기의식을 갖고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한 기초로서 정좌 수련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특히 ‘심식상고(心息相顧)’라 하여 정좌 수련 중에서도 수식관 곧 호흡 명상을 중요시했지요. 

[남명선생은 이 가운데에서도 구체성과 실천방법이 뚜렷이 드러나는 성성惺惺정제엄숙整齊嚴肅을 가장 실천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본 듯하다. 「신명사도」에서는 惺惺(깨어있음)을 표시하고, 「역서학용어맹일도」도 에서도 主一과 성성을 표시하고 동시에 그 구체적 실천법 내지 수양법으로 정제엄숙심식상고心息相顧를 부연하고 있다.  특히 심식상고는 參同契 등에서 나오는 수양법으로 도가에서도 수련법으로 널리 채택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실천적인 효용이 있음을 알고 과감히 포섭하고 있다.] 

불교의 좌선 수행과 유교의 정좌 수련의 공통점은 ‘지금, 여기의 삶’입니다. 내 몸이 있는 ‘지금, 여기’에 내 마음도 또랑또랑한 상태로 있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 저기, 거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인 것이죠. 차이점이라면 불교 좌선 수행이 바로 깨달음의 경지로 향하는 것이라면, 정좌 수련은 깨달음이 아니라 실천으로 향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을 집중해 공부하고 진리를 연구해 실천한다는 것이지요." -손병욱 윤리교육과 경상대 명예교수

출처: 남명·퇴계·율곡도 명상했다

[유교의 우주론]

유교의 우주론은 『역경』을 근거로 노자와 음양론의 영향을 받아 모든 사물과 인간을 포괄해 우주의 기원 · 구조 · 생성 · 변화에 관한 유교이론이다. 특히, 유학의 우주론은 ≪역경 易經≫을 근거로 노자(老子)와 음양가(陰陽家)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우주는 일반적으로 공간적인 시각에서 이해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그것은 시간적 의미까지도 포괄한다.
≪상산전집 象山全集≫ 잡설(雜說)의 “사방과 상하를 우(宇)라 하고, 예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주(宙)라 한다(四方上下曰宇 往古來今曰宙).”라는 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주세계의 총체 또는 근원을 지칭하는 상제(上帝), 천(天), 천지(天地), 도(道), 자연(自然) 등의 개념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우주론은 중국 춘추시대 이후 인문주의적인 사고의 발전으로 상당히 일찍 자연주의적인 물질적 우주관으로 전환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노자의 자연주의적 우주론과 ≪역경≫의 천인상응론(天人相應論)에 입각한 우주론이다. 여기에 전국시대에 형성된 음양론자의 우주론이 결합되어, 중국 우주론의 근간을 형성하였다. 노자의 ≪도덕경 道德經≫은 천지보다 앞선 우주의 근원을 도(道)라고 규정하고, 이 도가 생성론적으로 전개되어 우주의 만물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역경≫은 존재 세계의 변화를 중시, 그 변화가 음양의 구조적 결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그 전개 과정을 태극(太極)→음양(陰陽)→사상(四象)→팔괘(八卦)의 도식으로 설명하였다(周易 繫辭 上). 

주돈이 태극도설

[“태극도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부분은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으로부터 시작해서 만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주의 생성 과정과 그 구조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뒷부분은 인간이 생성되는 과정과 원리를 밝히고 그로부터 유래한 인간의 본질을 규정한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태극도설이 천명하는 요체는 이 우주의 생성, 구조, 원리, 질서인간의 생성, 구조, 원리, 질서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뿐만이 아니라 우주 안에서 만들어진 모든 존재자들의 생성과 원리 및 본질이 우주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태극도설은 말한다. 이렇게 인간과 우주의 본질이 일치한다는 주장이 바로 유학에서 말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다.” -주광호-]

≪도덕경≫이나 ≪역경≫에서의 우주론은 생성론적인 성격이 강하면서도 자연· 태극 등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는 존재론적 성격도 갖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들의 관심은 주로 우주의 기원과 그 생성·변화의 근본적인 힘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해명하는 데 치중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전국시대에 나타난 추연(騶衍) 등의 음양론자들은 우주의 변화를 순환론적인 시각에서 파악, 그 변화를 오행의 상생상극(相生相克)으로 이해하였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이런 여러 사상들은 하나의 중국적인 우주론으로 체계화되어 크게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천인론의 입장에서 우주론을 전개한 동중서(董仲舒)와 노장적인 성격이 강한 회남자(淮南子)의 사상이다. 특히 동중서는 춘추공양학(春秋公羊學)의 역사철학적인 시각에서 유가의 천인론과 음양론자의 우주관을 결합, 인간을 소우주로, 세계를 대우주로 보는 독특한 우주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우주론은 송대 성리학에 오면 이(理)기(氣)의 결합에 의한 이기론적 우주관으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에는 크게 세 유형의 우주론이 상호연관을 맺으면서 전개된다.

첫째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 太極圖說≫에 나타난 우주론이다.
그는 우주의 본질을 태극으로 보고, 이 태극이 음양오행과의 결합으로 만물을 생성하며 변화를 무궁하게 이어간다고 하였다. 둘째장재(張載)의 우주론인데, 그는 태허일기(太虛一氣)의 승강부침(升降浮沈)과 이합취산(離合聚散)에 의해 우주가 생성, 변화한다고 파악하였다. 셋째는 소옹(邵雍)의 우주론이다. 그는 ≪주역≫의 선후천론(先後天論)에 근거해 우주의 개벽설을 주장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주역≫의 괘도(卦圖)와 수리(數理)로써 해명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은 주희(朱熹)에 이르러 이기론적 세계관과 우주론으로 통합되었다.

우리 나라의 성리학은 전통적으로 주희의 우주론을 수용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중국 성리학이 우주론·존재론적 문제에 그 관심이 편향된 데 비해 우리나라의 성리학은 심성론 등 인간의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우주론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독특한 우주론을 전개한 사상가들이 있었으니, 예를 들면 조선 중기의 서경덕(徐敬德)과 이이(李珥) 및 후기 기철학파(氣哲學派)와 최한기(崔漢綺) 등이 그들이다. 

서경덕의 우주론은 태허·원기 등을 논해 보통 장재에 비유된다.
하지만, 그것은 ≪주역≫을 터전으로 그의 독창적인 생기론(生氣論)에서 전개된 것이다. 곧, 그는 우주의 생성·변화의 원리를 ‘선천’과 ‘후천’으로 설명하였는데, 선천이란 본체라 할 수 있고, 후천이란 그 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본체는 기라는 것이다.

이이의 사상은 정통적인 성리학의 체계 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초기의 저작인 <천도책 天道策>·<역수책 易數策> 등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자연 이론과 본체론적 실재로서의 도의 이론을 종합, 통일적으로 파악한 체계를 보여 주고 있다.

다만, 서경덕과 이이 등 성리학의 우주론은 단순히 물질적 우주론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본체론과 분리할 수 없는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우리 나라 성리학의 흐름에서 이 우주론은 기철학적인 사상가들에 의해 계승되면서, 실학의 대두 이후 서구적인 세계관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서구의 근대적 세계관을 수용한 홍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 등은 자연과학적인 세계관과 우주관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실학적 세계관은 조선 후기 최한기에 이르러 독특한 철학 체계를 형성한다. 그는 청조(淸朝)를 통해 들어온 서구의 자연과학적 세계관과 성리학의 기철학적 세계관을 천인론의 입장에서 결합시켜 독특한 우주론을 전개한다.

곧, 그는 인간과 세계의 변화를 운화(運化)라 하고, 우주의 변화를 대기운화(大氣運化), 인간의 변화를 통민운화(統民運化)라 하여(人政 권12), 이를 모두 신기(神氣)의 운화로 파악하였다. 즉, 신기를 모든 변화의 근원적인 힘으로 보고, 천인론의 입장에서 인간과 우주의 변화를 해명한 것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