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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우주론

수상(數象)-우주변화원리

by 광명인 2023. 12. 30.

2.  수상(數象)

는 계산을 위하여 인간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고 數 자체가 진리이며 철학인 것이다. 그러므로 數가 나타내는 모든 상象은 허상이 아니고 실상이다. 다시 말하면 만물은 그의 본질대로 象이 나타나고 象에는 반드시 그 象에 대응하는 내용인 바의 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물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며 또한 어디서 찾아낼 것인가? 물론 이것을 탐색하는 현실적인 목표는 사물 자체의 象에서 직접적으로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연구하기 위하여서 수상數象에서 찾는 방법부터 공부하여야 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하도(河圖)는 자연수가 통일하는 象을 표시한 것이고 낙서(洛書)는 자연수가 발전하는 象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그의 산합(散合)하는 象을 연구하면서 數象과의 관계를 연구해 보기로 하겠다. 

하도를 살펴보면 하부에 있는 六(水)은 一(水)을 내부에 안고 있는 象인데 一이 내부에 있고 六이 외부에 있는 것을 표시한 象은 바로 六이라는 성수(成數)가 一이라는 생수(生數)를 포위하고 있는 象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象이 北方正位에 있는 것은 (이것이 良方에 있는 것만큼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六이 결국 포위망을 이완(弛緩)하면서 一을 방출(生)할 수밖에 없는 象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도의 一(水)은 아직 그 뜻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象이다.

그러나 반면으로 낙서(하도가 발전한 象이다)를 보면 一(水)은 정북방에 놓였고 六(水)이 서북방에 있다. 낙서에 이와 같이 표시된 것은 낙서는 하도와 같은 의사표시만이 아니고 이미 행동인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좀더 풀어서 말하면 서북은 수축이 미급(未及)한 곳이요, 정북은 통일(統一)이 완성된 곳인 바 여기에서 새로운 활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자를 正名(개념을 만드는 것)할 때에 ‘六’ 자는 从八하는 두글자의 象을 합하여서 만들었던 것이다(丄’ 자는 古字의 上字다. 그러므로 우뚝 올라가려는 象이 있다 ‘八’ 자에는 포위망을 뚫고서 나가려는 象이 있다). 그렇게 만든 것은 지하에 있는 八(木)이 상향하려는 象을 六字에 표시하기 위함이다. 그런즉 이러한 ‘六’ 이 외부를 포위한 象을 하도에 표시한 것은 다만 一六이 생의(生意)만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지만 낙서에 六을 서북에 놓고 一을 정북에 놓은 것은 은 아직 완전한 통일이 아니고 정북(正北)의 에 이름으로써 완전한 통일이 되어 가지고 동북위(東北位)에서 八(生)하려는 행동과정을 표시한 것이다.

1에서 10까지 10가지 자연수에 모든 진리의 상象이 감추어져있다.

그런즉 우리는 一이 多로 변화하는 준비기본一六八의 준비과정인 북방감수(北方坎水)에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현실적인 변화(생장)의 象은 낙서에 있고 다만 그의 기본만 하도에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一은 六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六은 一의 완성을 도우면서 또한 形의 본질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一은 생명의 본질이고 六은 형체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 하도八(木)이 외부를 포위하고 三(木)이 내부에 있다. 그런즉 이것은 분열하려는 음형(陰形: 八) 인 바 그것이 전혀 생의(生意)만 가지고 있던 六에서 이만큼 발전하여서 동에 와 있고 또는 생명의 본질이었던 一이 三이 되어서 이미 동방의 내부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은 북방의 一이 이만큼 팽창(膨脹)한 象을 표시한 것인즉 이것이 바로 천도가 생화(生化)하는 象이다.

그런데 낙서는 관찰하면 동북위에 八이 있으니 이것은 北方六一이 발하려는 뜻이다. 그런즉 三이 동방정위에 있는 것은 三이 동방에서 주동 역할을 한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三의 개념은 一이 자기의 기본인 陰을 쓰고 發한 象을 표시하는 것이다(一을 基本陽이라고 하고 二를 基本陰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자전(字典)은 ‘三’ 을 정명(正名)하기를 ‘일가어이(一加於二)’라고 하였으니 실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동북정위(東北正位)에 이와 같은 三이 있어서 동북위(東北位)의 八의 도움을 받으면서 八하려는 뜻을 실현한다. 그런즉 천도에 있어서 一의 통일三의 분열로 인하여 파괴되면서 多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一이 三으로 발전하고 六이 八로 발전하는 수상(數象)이다.   그러나 一은 사실상 火를 포위하면서 一을 만들었던 것인즉 三의 분열이란 것은 곧 火[불]의 발전이므로 그 다음은 火의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火의 位를 하도에서 보면 七(火)은 외부에서 發하고 二(火)는 내부에서 그의 발산작용을 견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六一水 · 八三木 하던 水木작용에서는 六이나 八의 陰은 形을 만들고 또는 陽을 보호하기 위하여 표면에 있으면서 확장되는 존재였는데 二七火와 四九金의 과정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陰이 내부에 있으면서 오히려 陽의 발산을 견제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불[火]이 만일 분열하게 되면 반드시 形을 잃게 될 것인즉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할 것이므로 하도의 象이 이와같이 표시된 것이다 하도는 다만 이와 같은 의미의 표시에 불과했지만 낙서에 있어서는 동남방에 四(金)가 있고 정남에 九(金)가 놓여서 九金이 불을 포위하는 주동역할을 하고 四金이 九金의 작용을 방조하고 있는 象이다. 이것을 하도에 비하면 불의 포위작용으로서는 아주 구체적이다. 이와 같이 金이 들어와서 불을 포위하는 것이 바로 우주변화의 진상(眞相)이다. 그렇다면 四字와 九字의 象에 그러한 뜻, 즉 金의 의미가 과연 있는가 하는 것을 연구하여야 한다. 

四字는 从口从八자이다. 口字는 위자(圍字)의 古字다. 그런즉 四字속에는 八이라는 쪼개지는 성질을 가진 것이 들어가서 포위당하고 있는 象이 있는즉 이것은 분명히 金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다음 九字는 从乙从丿인즉 乙자의 뜻은 굴(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丿자의 뜻은 陽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즉 九字의 뜻에는 丿이라는 陽이 발전하려고 하지만 乙의 屈하는 성질 때문에 발전이 정지되고 있는 象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전(字典)에 九자의 뜻을 ‘합야(合也)’ ‘취야(聚也)’ 라고 한 것은 실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계고(稽考)해본 바와 같이 四九의 象 속에도 역시 위와 같은 수상(數象)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즉 낙서에서 이와 같은 象이 표시된 것은 우주 발전의 변화를 수상에서 나타내고 있는 것인 바 이것을 금화교역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金의 位인데 하도에서는 四(金)가 내부에 있고 九(金)가 외부에 있어서 九金의 종합작용을 內部의 四金이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九가 지니고 있는 양금(陽金)의 성질이 四의 견제와 합세(合勢)함으로써 陽을 포위하는 데 성공하는 象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낙서(洛書)에서는 서방에 火가 와 있다. 다시 말하면 二火는 서남방에 있고 七(火)은 正西에 있는데 이것은 二火로서 七火를 속에 포장하려는 의미인 것이다. 물론 火를 포장하는 것은 남방에 있는 四九金이 하는 것이지만 火 자체로 보더라도 二火로서는 수렴하려고 하고 七火는 항상 발산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음양조직(陰陽組織)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火의 수상(數象)을 살펴보면 ‘二’ 字는 두 개의 ‘一’ 字가 합하여서 ‘二’ 字로 된 것이다. 그런즉 ‘二’ 라는 것은 ‘一’ 이 팽창하여서 늘어난 象이므로 ‘二’ 가 수축(收縮)되면 다시 ‘一’ 이 되려고 하는 象이 있고 ‘七 ‘字는 ‘十’ 字가 아직 미완성된 象이다. 즉 ‘十’ 자의 종획(縮劃)이 곧게 내려가야만 할 것인데 곧게 못 가고 구부러진 象인즉 이것은 十土 이전의 상태다. 二七火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수상(數象)에서 개념을 취한 것이다. 그런즉 이것도 역시 자기 자체의 수상을 가지고 火의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五와 十의 수상을 연구해 보기로 하겠다. 하도에는 五(土)는 중앙에 있으니 이것은 진실로 중앙의 中央이다. 十土는 중앙에 있기는 하지만 五의 上下에 각각 五개씩 있으니 이것은 중앙의 표면이라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十土가 五土를 포위하고 있는 것은 五는 十에 비하여서 半分밖에 늘어나지 못한 것이므로 이것은 아직 속에 있는 象이 있고 十은 數의 최대확장이므로 표면에 놓이는 象이 있다. 그러므로 五土는 확장하려는 土十土는 종합하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土라고 한다. 그런데 낙서는 중앙에 다만 五(土)數밖에 없다. 그런즉 여기에는 생장하는 象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도처럼 15數가 있어야만 수장(收藏)하는 象이 있을 터인데 五數밖에 없은즉 이것은 수장의 象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낙서를 선천상(先天象)이라고 한다. 

그런데 五와 十數에는 다른 데 없는 특별한 象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五와 十은 중수(中數)라고 하는 사실이다. 수數는 본래 사물의 작용 가치를 규정하는 것이므로(四象에 있어서도 그렇다) 모든 象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지만 그 자체가 중수라는 특수한 성질을 지닌 것은 土數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상세는 4장 ‘수의 변화와 中’을참조). 그러므로 만물의 象이 土의 조화에 의하여서 이루어지듯이 모든 수상(數象)도 여기에서 조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중요한 土의 수상은 과연 어떠한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十’ 자에는 ㅡ이라는 陰(一은 數의 본질로서 보면 陰陽의 기본을 이루는 통일체지만 그 형상으로 보면 橫的으로 陰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과 ㅣ이라는 陽이 중심점에서 교차하는 象을 이루고 있다. 그런즉 十이란 것은 陰과 陽이 절대동일치로서 교회(交會)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것은 陰과 陽의 중화(中和)된 성질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것을 中이라고 한다. 그런데 十이 비록 이와 같은 中이라고 할지라도 만일 子午의 정중선 서쪽에 조금만이라고 치우치게 되면(통일작용의 주체가 되기는 하지만) 절대중으로서의 임무를 다하지는 못한다(지금은 기울어진 十이 통일의 주체가 되고 있다 그이유는 5장 ‘토화작용’과 ‘ 인신상화론’ 참조). 그러나 十은 본성이 절대중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라고 할지라도 중작용의 최대역할(비록 절대작용은 못한다 할지라도)을 한다. 각설하고 十字가 이와 같이 취상되었다고 하는 것을 말한 것은 十의 성질이 中이란 것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숫자 5의 고문자, 전자

五자는 전자(篆字)로서 ‘X’ 로 쓴다. 왜 그와 같이 취상하였는가하면 五는 그 작용가치가 十에 비하면 반밖에 못 되기 때문이다. 五字의 복판에 있는 ‘×’字는 十字로서 볼 때 그것이 正中을 유지하지 못하고 유위(維位)로 경도(傾倒)되고 있는 象에 불과한즉 이것만으로도 벌써 十字에 비하면 가치타락이다. 그 위에 아직 ‘’의 속에서 활동하고 있으므로 五字의 象을 이와 같이 취한 것인즉 五의 작용가치는 十의 절반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辰成丑未의 四土 가운데서 未土(十)를 제해 놓은 辰成의 활동양상을 생각해 보면 五의 數象을 이와 같이 취한 先聖 造字의 의도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여기에서 이상 소론을 생각해 보면 모든 數는 우주가 발전하는 象의 활동하는 모습대로 표시된 청사진인즉 이것은 계수상(計數上)의 기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즉 자연수 자체가 바로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로 여기에 그 근거가있는것이다. 이상에서 數象을 약론하였거니와 수상의 연구는 반드시 ‘수(數)의 변화와 中’ (제4장 2절)을 참조하면서 연구하여야 한다는 것을 부언하는 바이다. 

원문출처: [한동석선생의 우주변화원리 p175~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