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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수행법/마음공부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주자

by 광명인 2023. 10. 29.

[중용의 핵심어는 윤집궐중允執厥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서전서문정일집중精一執中과도 연결되는데요. 중용에서는 이 정일집중을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으로 좀 더 상세히 풀어주고 있죠. 순임금은 오직 유정유일惟精惟一, 정미하고 하나로 집중된 마음으로만 그 중中을 잡을 수 있다고 전하는데요. 따라서 이 중中을 잡는게 유가 심법공부의 결론이라 볼 수 있죠. 그럼 그 중中이 뭐냐? 그것은 단순히 좌左도 우右도 아닌 즉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도中道 심법을 뜻하는 게 아니라, 원래는 천부경의 본심본태양앙명의 본심本心, 모든 조화와 창조의 근원인 천지의 마음, 음양을 조절하는 조절자의 마음, 토심土心, 하도의 중앙에 위치한 5와 10토, 조화옹과 상제님의 마음, 황극의 마음, 즉 텅빈 마음, 불가의 공空과 같은 마음이라고 저는 보는데요, 중도中道사상은 여기서 파생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이 창조의 근원인 공空 또는 중中은 무엇일까요? 그 느낌은 각자의 체험과 깨달음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그 방법은 정일집중에 있습니다.]

中庸은 何爲而作也오

중용    하위이작야
子思子 憂道學之失其傳而作也시니라
자사자 우도학지실기전이작야 
蓋自上古로 聖神이 繼天立極
개자상고     성신    계천입극
而道統之傳이 有自來矣라
이도통지전     유자래의
其見於經則允執厥者는 堯之所以授舜也오
기견어경즉윤집궐중자     요지소이수순야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者는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자
舜之所以授禹也니
순지소이수우야
堯之一言이 至矣盡矣어시늘
요지일언    지어진의
而舜이 復益之以三言者는 
이순    부익지이삼언자
則所以明夫堯之一言을 必如是而後可庶幾也라
즉소이명부요지일언    필요시이후가서기야

중용(中庸)은 어찌하여 지었는가?
자사자(子思子)께서 도학(道學)의 전(傳)함을 잃을까
걱정하여 지으신 것이다.

상고시대(上古時代)에 성신(聖神)이 하늘의 뜻을 이어
극(極)을 세움으로부터 도통(道統)의 전함이
유래(有來)가 있게 되었다. 

경서(經書)에 나타나는 것으로는,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라'는 것은 요堯임금이 순舜임금에게 전수해주신 것이요.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隱微)하니,
정(精)히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순舜임금이 우禹임금에게 전수해 주신 것이니,
요堯의 한 말씀이 지극하고 다하였거늘,
순舜이 다시 세 말씀을 더한 것은
요堯의 한 말씀을 반드시 이와 같이 한 뒤에야 거의 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蓋嘗論之컨대 心之虛靈知覺은 一而已矣어늘 
개상논지       심지허령지각      일이이의
而以爲有人心道心之異者는
이이위유인심도심지이자
則以其或生於形氣하고 或原於性命하여 
즉이기혹생어형기지사        혹원어성명지정
而所以爲知覺者不同이라
이소이위지각자부동

일찍이 논하건데,
심(心)의 허령지각(虛靈知覺)은 하나일 뿐인데, 

인심(人心) 도심(道心)의 다름이 있다고 한 것은,
혹은 형기(形氣)의 사(私)에서 나오고,
혹은 성명(性命)의 올바른 것에서 근원하여,
지각(知覺)을 한 것이 똑같이 않기 때문이다. 


是以로 或危殆而不安하고 或微妙而難見耳라
시이    혹위태이불안        혹미묘이난견이
然이나 人莫不有是形이라 
연       인막불유시형
故로 雖上智나 不能無人心하고 亦莫不有是性이라
고    수상지    불능무인심        역막불유시성
故로 雖下愚나 不能無道心하니
고    수하우    불능무도심
二者가 雜於方寸之間하야 而不知所以治之면
이자    잡어방촌지간        이부지소이치지
則危者愈危하고 微者愈微하여 
즉위자유위        미자유미
而天理之公이 卒無以勝夫人欲之私矣리라
이천리지공     졸무이승부인욕지사의

이러므로 혹은 위태로워 편안치 못하고,
혹은 미묘(微妙)하여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상지(上智)라도 인심(人心)이 없지 못하고,
또한 이 성(性)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하우(下愚)라도 도심(道心)이 없지 않으니,
이 두가지가 방촌(方寸, 마음)의 사이에 섞여 있어서
다스릴 바를 알지 못하면, 위태로운 것이 더욱 위태로워지고,
은미한 것은 더욱 은미해져서 천리(天理)의 공변됨이
끝내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은 則察夫二者之間而不雜也요 
정    즉찰부이자지간이부잡야
은 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니 
일    즉수기본심지정이불리야
從事於斯하여 無小間斷하여
종사어사        모소간단
必使道心常爲一身之主하고 而人心每聽命焉이면
필사도심상윙리신지주        이인심매청명언
則危者安하고 微者著하여
즉위자안        미자저
而動靜云爲 自無過不及之差矣리라
이동정운위  자무과불급지차의
(후략)

정(精)은 두 가지[도심과 인심]의 사이를 살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요,
일(一)은 본심(本心)의 올바름을 지켜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에 종사(從事)하여 조금도 간단(間斷)함이 없어,
반드시 도심(道心)으로 하여금 일신(一身)의 주장을 삼고,
인심(人心)이 매양 도심의 명령(命令)을 듣게 하면,
위태로운 것이 편안하게 되고,
은미한 것이 드러나게 되어,
동, 정(動, 靜)과 말하고 행하는 것이
저절로 과, 불급(過, 不及)의 잘못이 없게 될 것이다. 

(후략)

淳熙己酉春三月戊申에 新安 朱熹는 序하노라
순희기유춘삼월무신     신안 주희    서

순희(淳熙) 기유년(己酉年) 춘삼월(春三月) 무신일(戊申日)에
신안 주희(新安 朱熹)가 서문을 쓴다.  


[중용 1장]

天命之謂性이요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명()하신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이르고, 
도(道)를 품절해 놓음을 교(敎)라 이른다.


道也者는 不可須臾離也니 可離면 非道也라
도야자    불가수유이야    가리     비도야
是故로 君子는 戒愼乎其所不睹하며
시고    군자    계신호기소부도
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공구호기소불문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도(道)가 아니다.
이러하므로 군자(君子)는 그 보지 않는 바에도 계신(戒愼, 삼가)하며
듣지 않는 바에도 공구(恐懼, 두려워)하는 것이다.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니라.
막현호은        막현호미    고     군자    신기독야

은(隱, 숨기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微, 미세한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그 홀로 있음을 삼가는 것이다.
[신독愼獨은 군자의 삶, 바른 삶이 완전 체질화 되었을때 가능한 것인데, 가장 어려운 일이 신독인 것 같다.]

喜怒哀樂之未發을 謂之中이요
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發而皆中節을 謂之和니
발이개중절    위지화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요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니라.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나타나 모두 절도(節度)에 맞은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中)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和)라고 하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道)이다.

致中和면 天地位焉하며 萬物育焉이니라.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天地)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여기서 만물(萬物)이 잘 생육(生育, 자라나게)될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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