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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보/역사 칼럼

환단고기가 밝혀낸 한국 최초의 불상은 금동석가삼존불

by 광명인 2026. 1. 8.

건흥(建興) 5년 명문이 증명하는 환단고기의 진정성

환단고기를 둘러싼 진위 논쟁은 이제 백 년을 넘어서고 있다. 강단 사학계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책을 펼쳐보는 것조차 거부하는 극단적 태도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광인의 한 마디에도 취할 것이 있느니라"는 고언이 있지 않은가. 어떤 책이든 그 안에서 진실의 파편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법이다.

환단고기 진서론의 가장 효과적인 증명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존 학계가 풀지 못하거나 잘못 해석하고 있는 난제를 환단고기가 명쾌하게 해결하는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오늘 소개할 '건흥 5년 명문 금동석가삼존불'이 바로 그러한 결정적 증거다. [ 이 글은 대한사랑 윤창열 이사장님의 유튜브 강의, 환단고기 진서론2를 요약 정리한 내용입니다.]

환단고기 진서론 2편

1915년, 충주 땅에서 발견된 수수께끼

1915년 봄, 경술국치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시절이었다. 충청북도 중원군(현 충주시) 노은면 금학동, 사람들이 '탑골'이라 부르는 옛 절터에서 한 점의 금동불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불상이 학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광배(光背), 즉 불상 뒷면에 세겨진 명문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建興五年歲在丙辰 佛弟子淸信女 上部兒庵造釋迦文像 願生生世世"
"건흥 5년 병진년에 불제자인 청신녀(淸信女) 상부(上部) 아암(兒庵)이 석가문불상을 조성하오니, 원컨대 생생세세(生生世世) 부처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명문에는 연호와 간지가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문제는 '건흥(建興)'이라는 연호였다. 이 연호는 중국의 어떤 사서에도, 한반도의 어떤 금석문에도 등장하지 않는 미지의 기호였다.

학계의 혼란: 180년의 시간차

병진년(丙辰年)은 60년마다 돌아온다. 6세기를 전후한 시기만 해도 476년, 536년, 596년이 모두 병진년이다. '건흥'이라는 연호를 모르는 학자들은 오직 간지만으로 제작 연대를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역사학자 구로이타 가츠미(黑板勝美)596년설을 주장했다. 동국대 문명대 교수는 "536년 병진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이 불상이 신라 진평왕 시대인 596년에 만든 신라 작품일 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했다. 김원용 교수는 좀 더 신중하게 "550년 전후 또는 직전"이라는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현재 한국 학계의 정설은 596년 신라 작품설이다. 국립박물관의 설명문도 대체로 이 견해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류다.

건흥 5년 명문 금동석가삼존불

환단고기가 제시하는 명쾌한 해답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長壽弘濟好太烈帝 改元建興 仁義治國 恢拓疆宇 熊津江以北 屬我"
"장수홍제호태열제(長壽弘濟好太烈帝)는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치고, 인의로써 나라를 다스리며, 강토를 크게 개척하시니, 웅진강(熊津江) 이북이 우리에게 속하게 되었다." [본문보기 클릭]

'건흥'은 고구려 장수왕의 연호였던 것이다. 이 정보는 중국의 어떤 정사에도, 한국의 다른 어떤 사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환단고기에만 기록되어 있다. 

이제 연대 계산은 간단해진다. 광개토태왕은 412년(임자년)에 승하했고, 그 아들 장수왕이 같은 해에 즉위했다. 고구려는 '즉위년 칭원법(卽位年稱元法)'을 사용했다. 즉, 즉위한 해를 원년으로 삼는 제도다. 따라서:

  • 412년(임자) = 건흥 원년
  • 413년(계축) = 건흥 2년
  • 414년(갑인) = 건흥 3년
  • 415년(을묘) = 건흥 4년
  • 416년(병진) = 건흥 5년

장수왕의 연호와 간지가 정확히 일치한다. 건흥 5년 병진년서기 416년이며, 이 불상은 고구려에서 제작된 것이 확실하다.

한국 최초의 불상이라는 역사적 의의

이 결론이 갖는 의미는 실로 중대하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372년 소수림왕 2년이다. 백제는 384년 침류왕 원년, 신라는 훨씬 늦은 527년 법흥왕 14년에야 공식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였다. 만약 이 불상이 416년에 제작되었다면, 불교 전래 후 불과 44년 만에 고구려 사회에 불교가 깊이 뿌리내렸고, 상부(上部)라는 행정구역의 청신녀(재가 신도 여성) 아암이 금동불상을 조성할 만큼 불교 신앙과 조각 기술이 발전했다는 뜻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존하는 한국 불상 중 제작 연대가 명문으로 명확히 밝혀진 가장 오래된 불상이라는 점이다. 백제에 불교 전래(384년)되고 불과 32년 후에 제작된 이 불상은, 말 그대로 한국 최초의 기년명(紀年銘) 불상인 것이다.

그러나 학계의 잘못된 해석 때문에 이 불상은 그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이 귀중한 문화재는, 마땅히 '한국 최초의 불상'이라는 영예를 누려야 하건만, 여전히 '6세기 후반 신라 불상'으로 잘못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론: 하나의 증거가 증명하는 진실

환단고기 비판론자들은 묻는다. "왜 환단고기의 내용을 믿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환단고기가 없었다면, '건흥'이라는 연호를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환단고기가 기록한 단 한 줄의 정보 - "장수왕이 연호를 건흥으로 고쳤다" - 가 100년 넘게 학계를 혼란에 빠뜨렸던 난제를 일거에 해결했다.

이것이 바로 환단고기의 가치다. 방대한 분량 속에 담긴 수많은 정보 중 단 하나의 기록만으로도, 환단고기가 단순한 위서일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근대의 위작이라면, 어떻게 1915년에 발견될 불상의 명문을 미리 알고 1911년에 합본된 환단고기에 '건흥'이라는 연호를 창작할 수 있었겠는가?

환단고기 진서론 증명의 지름길은 이처럼 명확하다. 환단고기가 기존 학계의 난제를 하나씩 풀어나갈 때마다, 그 진정성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건흥 5년 명문 금동석가삼존불은 그 첫 번째 증거이자, 가장 강력한 증거다.

이 불상은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청주 국립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광배에 새겨진 '建興五年'이라는 네 글자가, 환단고기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