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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보/역사 칼럼

환단고기 '위서 프레임'의 진실

by 광명인 2025. 12. 31.

인류의 원형정신을 밝히는 책은 왜 불태워져야 했는가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이상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RISS)에 등록된 환단고기 관련 학술 논문 123편 중 약 90%에 해당하는 110편이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를 인정합니다. 그런데 대학의 한국사학과 교수들은 거의 모두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단정합니다. 언론과 학회, 그리고 일부 유튜브에서는 환단고기를 "무협지 같은 황당한 위서"라고 조롱합니다.

학술 논문의 90% vs 강단사학계의 합창, 이 괴리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출처: 한문화 타임즈

재야사학 vs 강단사학: 누가 참된 논문을 쓰는가

먼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RISS에 등록된 논문 123편 중 110편이 진서론이라고 해서, 대학의 한국사 교수 90%가 환단고기를 인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진서론 논문 110편의 실제 저자들:

  • 재야사학자들
  • 한국사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 학자들
  • 철학, 종교학, 문학 등 인접 분야 연구자들
  • 일반 대중 중 심도 있는 연구자들

위서론을 주장하는 이들:

  • 대학의 한국사학과 교수들
  • 소위 "강단사학계"라 불리는 제도권 역사학자들
  • 그들의 제자들과 후배 연구자들

문제는 이것입니다. 한국사를 전공한 강단사학자들은 환단고기를 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환단고기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왜일까요? 그들이 무지해서? 아닙니다.

그 직에서 밥벌어 먹고 살려면 강단사학의 프레임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학 교수직을 얻고, 논문을 심사받고, 연구비를 받고, 학회에서 발표하고, 제자들을 지도하려면, 기존 강단사학계의 패러다임 안에 있어야 합니다. 환단고기를 긍정하는 순간, 그는 학계에서 "유사역사학자"로 낙인찍히고 학술적으로 매장됩니다.

이것은 학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존의 문제입니다.

출처: 유튜브

90%의 논문이 말하는 것: 제도 밖의 자유

그렇다면 110편의 진서론 논문을 쓴 이들은 누구입니까?

제도권 밖의 사람들입니다. 대학 교수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학회의 눈치를 볼 필요 없는 사람들, 연구비 심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재야사학자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환단고기 연구는 밥벌이가 아니라 소명입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일부 문제의식을 가진 소수의 강단사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극소수이고, 학계에서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통계가 말하는 진짜 의미는 이것입니다: "제도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환단고기를 진서로 본다." "제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환단고기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이것은 진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의 문제입니다.

출처: 상생방송

1911년 합본, 그리고 68년의 기다림

1911년, 계연수는 독립운동가 홍범도오동진 장군으로부터 출판 자금을 지원받아 『환단고기』 초간본 30권을 간행했습니다. 해학海鶴 이기李沂 선생의 주석과 감수를 받은, 5종의 고문헌을 합본한 저작이었습니다.

1911년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직후였고, 일제가 사서 수거령을 내린 해였습니다. 조선의 역사책들이 조직적으로 수거되어 불태워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계연수는 끔찍한 방식으로 살해당했습니다. 사지를 절단당한 채 압록강에 던져졌습니다.

출간된 환단고기 30부가 모두 불타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계연수의 제자 이유립李裕岦(1907~1986)이 1권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49년, 그의 제자 오형기吳炯基가 이 원본을 옮겨 적은 필사본을 만들었습니다. 이유립이 소장하고 있던 환단고기를 베껴 쓴 것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계연수 선생은 죽기 전 "다음 경신년(1980년)에 공개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유립이 단학회 5대 회장인 이용담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왜 60년을 기다리라고 했을까요?

출처: 상생방송

시간의 의미: 진실에도 때가 있다

만약 이 책이 1920~30년대에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일제가 사서를 수거하고 불태우던 시기에 나왔다면? 아마도 철저히 탄압받고 완전히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1950~60년대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기였다면? 언론과 출판이 철저히 통제되고 친일파들에 의해 대부분의 권력이 장악되었던 시대에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뒤집는" 이 책은 불온서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진실에도 때가 있습니다.

너무 일찍 나온 진실은 숨은 세력들에 의해 위해를 받습니다. 갈릴레오가 1633년 재판받았듯이, 계연수의 사지가 절단되었듯이, 혁명적 진실은 피를 대가로 치릅니다.

그러나 1980년대가 되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출판이 자유로워지면서 민족 사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계연수 선생은 이것을 알았던 것일까요?

출처: 대한사랑

1979년과 1983년: 두 번의 출판

1976년, 이유립은 환단고기 초간본 원본을 분실했습니다. 하지만 오형기 필사본은 남아 있었습니다.

1979년, 이유립의 젊은 문하생 조병윤이 이유립의 승락을 받지 않고 서울의 광오이해사光吾理解社에서 오형기 필사본을 영인하여 100부를 출판했습니다. 

그러나 이 광오이해사본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형기가 필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탈자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유립은 분노했습니다. 제대로 교정도 하지 않은 채 무단으로 출판한 것에 대해 조병윤을 파문시켰습니다.

그리고 1983년, 이유립은 오형기 필사본의 오탈자를 바로잡아 배달의숙본을 정식으로 출판했습니다. 스승 계연수가 지시한 "경신년(1980년)" 공개를 거의 정확히 지킨 셈입니다.

이 과정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이유립이 1970년대에 창작했다는 주장의 허구성입니다.

이유립이 환단고기 원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949년 필사본이 만들어질 수 있었고, 그 후 1979년 영인본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시간의 순서가 명확합니다. 위서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유립이 1976년 월간지 『자유』에 기고한 글을 모아 환단고기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환단고기가 먼저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고문을 쓴 것입니다.

2010년, 한 고서 수집가의 발견

2010년, 최현호씨는 고서 수집상으로부터 40페이지 분량의 오래된 등사본을 입수했습니다. 1909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환단고기』 등사본이었습니다. 이 등사본은 1911년 초간본 원본을 편찬하기 위한 초고 자료였습니다.

이 등사본에는 『삼성기 하』와 『태백일사太白逸史』(환단고기 전체의 약 80%를 차지하는 방대한 분량)가 빠져 있고, 『삼성열기』, 『단군세기 서』, 『단군세기』, 『북부여기 상·하』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등사본에 "이기주왈李沂註曰", "해학이기주왈海鶴李沂注曰"이라는 표현이 있어, 계연수의 스승인 이기 선생이 주석하고 감수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등사본의 내용이 1979년 광오이해사본 및 1983년 배달의숙본과 80~90% 이상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이유립이 1970년대에 창작했다"는 주장은 거짓입니다.

이유립 선생은 1907년생입니다. 1909년 등사본이 작성될 때 그는 두 살이었습니다. 타임머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학술 스캔들: 강단사학자가 증거를 숨기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운룡도서관 이명우 이사장은 이 등사본의 존재를 알고 최현호씨에게 복사본을 얻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복사본을 가져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경희대학교 조인성 교수였습니다.

대표적인 환단고기 위서론자로 알려진 강단사학자인 그는 최현호씨로부터 등사본을 입수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환단고기 논문을 쓸 테니 다른 사람에게 절대 이 등사본을 주지 말라."

2019년 세계환단학회 학술대회에서 환단고기 등사본에 대해 설명하는 이명우 도서관장, 22분부터

이명우 이사장이 여러 차례 부탁했지만, 최현호씨는 조인성 교수와의 약속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인성 교수는 환단고기가 진서라는  결정적 증거인 1909년 등사본을 손에 쥔 채로 환단고기 위서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나중에야 최현호씨는 조인성 교수가 대표적인 환단고기 위서론자이자 강단사학자이기 때문에, 그가 등사본을 가지고 있어도 환단고기가 진서眞書임을 밝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밝힐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이것은 단순한 학술 논쟁이 아닙니다. 학술 윤리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입니다. 진실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를 자기 손에 쥐고 그것을 숨긴 채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조인성 교수가 개인적으로 부정직해서? 아마도 그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강단사학계에서 살아남으려면 환단고기를 위서로 취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조인성 교수가 등사본을 공개하고 "환단고기는 진서다"라고 발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학계에서 매장되었을 것입니다. 동료들로부터 고립되고, 논문 심사에서 탈락하고, 학회에서 배척당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강단사학계의 카르텔 구조입니다.

출처: 상생방송

환단고기가 밝히는 것: 인류 의식 통합의 원형정신

환단고기를 "한민족 상고사 책"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인류 문명의 원형 코드를 담고 있습니다.

천부경天符經』 81자를 보십시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석삼극析三極, 무진본無盡本..." 우주 창조의 원리, 수리數理 철학의 체계, 삼극三極의 원리가 완벽하게 압축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우주론이자 존재론이며, 인식론입니다.

삼일신고三一神誥』 366자는 더욱 놀랍습니다. 허공虛空(우주의 본질)에서 일신一神(우주의 주재자)으로, 천궁天宮(조화의 처소)에서 세계世界(인류의 무대)로, 마지막 인물人物(삼진三眞의 회복)에 이르는 5장의 구조는 완벽한 우주론이자 인간론입니다. "상제님께서 뭇 세계를 지으시고, 태양 세계를 맡은 사자에게 700 세계를 거느리게 하셨으니..." 이것은 단순한 신화가 아닙니다. 우주적 질서에 대한 철학적 진술입니다.

가림토加臨多 38자는 또 어떻습니까. 자음과 모음이 구분된, 완벽한 음운론적 체계를 갖춘 이 문자는 한글 창제의 원형입니다. 세종대왕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고대의 원형 문자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출처: 상생방송

이것이 의미하는 바: 분열된 인류를 통합할 원리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환단고기가 진정으로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모든 종교, 모든 철학, 모든 문명의 원형 틀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핵심 개념들, 도교의 우주론, 유교의 윤리 체계, 심지어 기독교의 창조 신학까지—이 모든 것의 뿌리가 신시神市 시대의 신교神敎에서 나왔다는 것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현재 극도로 분열된 인류 의식을 통합하고 인류를 조화로운 상생의 문명으로 이끌 수 있는 가치와 철학의 원형이 이 책에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유불선 기독교가 서로 대립하고, 동양과 서양이 갈등하고, 문명들이 충돌하는 이 시대에,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임을 보여주는 것—이것이야말로 인류가 상생의 질서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철학입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양자컴퓨터가 아무리 빨라져도, 그것만으로는 인류의 분열된 의식을 통합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가치와 철학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원형정신이고, 환단고기는 그 원형정신을 밝히는 경전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학술적 주장이 아닙니다. 인류 문명 전환의 핵심입니다.

출처: 상생방송

이씨 조선도 두려워했다: 위조된 띄어쓰기

환단고기 논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비교 사례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조 3년(1457년) 5월 26일, 실록에는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안함로원동중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 등의 문서를 개인이 사적으로 보관하지 말고 나라에 바치라는 명령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강단사학계는 이것을 "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 安含 老元 董仲 三聖記"로 표기합니다. 마치 안함, 노원, 동중의 삼성기라는 식의 혼돈을 주기위한 인위적 띄어쓰기입니다. 올바르게 읽으면 "안함로安含老"와 "원동중元董仲"입니다. 두 사람이 『삼성기 상』과 『삼성기 하』를 각각 집필한 것입니다. 이것은 환단고기의 구성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강단사학계는 왜 이렇게 조작을 할까요? 환단고기와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입니다.

더 강력한 사례는 예종 1년(1469년)입니다. 『표훈천사(表訓天詞)』, 『삼성밀기(三聖密記)』 ,,, 및 천문·지리·음양 관련 서적을 수집하면서, 기한 내에 제출하면 상을 주되 숨기면 참형斬刑, 즉 목을 베는 형벌에 처한다고 공표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이씨조선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습니다. 고려에서 역성혁명으로 왕조를 열었기에 역사적 정통성이 약했던 것입니다. 이에 명나라에 굴욕적 사대주의를 택했습니다. 본래 천자국이었던 조선이 중국을 황제국으로 떠받들고, 공자를 신처럼 섬기며, 굴욕적 사대의 예를 취했습니다.

만약 환국-배달-고조선의 찬란한 상고사가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본래 천자국이었는데 왜 중국에 사대하는가?" 학자들과 백성들이 왕실에 반발할 것이 명약관화했습니다. 그래서 고대 역사서를 수거하고 불태운 것입니다. 상고사는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왕조의 정통성과 직결된 위험한 지식이었습니다.

"삼성기三聖記"라는 이름이 세조 실록에 나온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환단고기의 핵심 구성 문헌인 『삼성기』가 조선시대에 실존했고, 왕실이 직접 수거 명령을 내릴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질서를 개혁할 혁명적인 책은 언제나 권력으로부터 금서 취급을 받아왔다.

진짜 위험한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의 차이

역사를 보십시오. 논리가 엉성하고 대수롭지 않은 주장들은 그냥 방치됩니다. 조롱거리가 될 뿐, 누구도 진지하게 탄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논리가 정밀하고, 전후좌우 모든 내용이 일관되며, 심오하면서도 실제 진실에 거의 부합하는 서적은 다릅니다. 그런 책은 진짜로 위험합니다. 기존 권력 구조에게 실존적 위협이 됩니다.

환단고기가 단순한 "엉터리 위서"였다면, 일제는 그냥 비웃고 무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911년 사서 수거령을 내렸습니다. 51종 20만권의 서적을 압수해 불태웠습니다. 계연수의 사지를 절단해 강물에 던졌습니다. 모든 관련자를 추적했습니다. 68년 동안 침묵시켰습니다.

그리고 2010년, 결정적 증거인 등사본을 먼저 발견한 강단사학자는 그것을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위서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왜일까요? 그 학자 개인이 악해서? 아닙니다. 강단사학계에서 생존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위서"에 대한 반응이 아닙니다. 진실에 너무 가까운 책에 대한 공포이고, 제도가 자신을 지키는 방식입니다.

박창범 교수는 단군세기에 기록된 '무진 50년 오성취루' 현상은 조작이 불가능한 천문 현상이라고 주장

타임머신이 없는 한 설명할 수 없다

환단고기의 진위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과학이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는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기록된 13세 흘달단군 시기의 천문 현상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고대 기록과 실제 천문 현상이 1년 오차로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또한 이 천문현상은 다른 어느 고대 사서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유일한 천문기록입니다.  박창범 교수는 단언합니다: "이것을 우연히 맞추는 것은 확율적으로 불가능하다." 왜 불가능할까요?

20세기 이전에는 수천 년 전의 천문 현상을 역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현대의 컴퓨터 천문 시뮬레이션 없이는 이런 정확도를 낼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1970년대에 환단고기를 창작했다면, 어떻게 수천 년 전 천문 현상을 1년 오차로 정확히 기록할 수 있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천문 기록은 실제로 관측된 것이며, 환단고기가 고대의 진서라는 과학적 증거입니다. 이것은 역사 논쟁이 아닙니다. 천문학적 사실입니다.

그래도 비판자들은 여전히 말합니다. "이유립이 1970년대에 만든 것"이라고.

그런데 이유립은 1907년 12월 18일생입니다. 2010년 발견된 등사본은 1909년에 작성된 것입니다. 이유립이 두 살 때입니다. 그리고 그 등사본의 내용은 1979년 출판본과 80~90% 일치합니다.

타임머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더 근본적으로 물어봅시다. 한 개인이, 혹은 몇 사람이 어떻게 이런 내용을 창작할 수 있습니까?

완벽한 우주론 체계인 『천부경』 81자를, 체계적 인간론인 『삼일신고』 366자를, 음운론적으로 완벽한 가림토 38자를, 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를 관통하는 원형 철학 체계를, 그리고 수천 년의 역사 기록지리 정보인물 계보를 일관된 사상 체계로 엮어낸 방대한 서사를 1900년대 초에 "지어냈다"고?

만약 정말 그랬다면, 그 사람은 천재를 넘어선 신神입니다. 천부경과 삼일신고의 철학적 깊이만으로도 동양 철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왜 자기 이름을 걸지 않고 고대 문헌인 척 위조를 했겠습니까? 논리가 맞지 않습니다.

시민역사학을 선도하는 대한사랑

제도 vs 진실: 누가 자유로운가

여기서 핵심으로 돌아옵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RISS)에 등록된 환단고기 관련 학술 논문 123편 중 약 90%에 해당하는 110편이 환단고기를 진서眞書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 논문들을 쓴 사람들은 대학의 한국사 교수들이 아닙니다. 재야사학자들, 다른 분야 학자들, 상식이 있고 진실을 추구하는 일반 연구자들입니다. 제도권 밖의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대학의 한국사학과 교수들, 즉 강단사학자들은 거의 모두 환단고기를 위서로 취급합니다. 그들 중 몇몇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직에서 밥벌어 먹고 살려면 강단사학의 프레임을 따라야 합니다. 환단고기를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학계에서 매장됩니다. 논문 심사에서 탈락하고, 연구비를 받을 수 없고, 동료들로부터 고립됩니다.

이것이 말하는 진실은 이것입니다: "제도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환단고기를 진서로 본다." "제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볼 수 없다. 아니, 볼 수 없게 만들어졌다."

이것은 진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학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의 문제입니다.

도덕 없는 무한 기술 발전의 위험성은 자명한 것이다.

왜 지금인가: 대전환기의 필연성

계연수가 "경신년(1980년)에 공개하라"고 했던 것처럼, 진실에는 때가 있습니다.

현재 인류는 분열과 갈등의 극점에서 통합과 상생의 시대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점에 있습니다. 기후위기, 전쟁, 팬데믹, 경제 붕괴—구시대의 질서가 총체적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생명공학—새로운 기술이 인류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류 의식을 통합할 새로운 철학과 가치가 필요합니다.

서양 중심의 철학으로는 동서양의 문화를 포용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만으로는 불교 도교 유교 이슬람을 통합할 수 없습니다. 각 문명이 자기 우월성을 주장하는 한, 분열은 계속됩니다.

필요한 것은 인류문화의 뿌리가 되며, 모든 것을 관통하는 원형정신입니다.

환단고기는 바로 그 원형정신을 밝힙니다. 유불선 기독교가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을, 동양과 서양이 같은 원천에서 출발했음을, 인류 문명이 공통의 원형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철학적 기반입니다. 그래서 지금이 때입니다.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이 시기에, 환단고기가 세계로 나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을 넘어 환단고기가 영어 번역이 되어 세계로 퍼져나가야 하는 시점입니다.

환단고기의 진정한 의미: 빛의 문명을 여는 열쇠

환단고기의 핵심 주제를 한자 한 글자로 압축하면 무엇일까요? 

환桓, 밝을 환입니다.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자께서는 환단고기 북콘서트에서 인류의 원형문화는 광명문화光明文化, 곧 환, 밝음의 문화였다는 것을 거듭 강조해왔습니다. 안함로의 삼성기 상의 첫구절이 "오환건국吾桓建國" 입니다.

환단고기의 핵심 주제는 밝을 환에 있다.

현대 인류의 위기: 어두워진 의식

현재 인류의 의식은 분열되고 자의식에 갇혀 어두워졌습니다.

현대인은 이성理性만을 발달시켰습니다. 머리는 좋아졌지만 마음은 메말랐습니다. 기술은 폭발적으로 발전했지만 도덕은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인공지능은 만들었지만 인간 본연의 지능, 원형지능原形知能은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신도神道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면의 신성神性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영성靈性은 미신으로 치부되고, 수행修行은 비과학으로 무시됩니다.

인류는 외면만 밝고 내면은 어두운, 불균형한 문명을 만들어왔습니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길: 광명인간

환단고기는 단순한 역사책이 아닙니다. 인류 원형정신의 회복을 전하는 경전입니다. 광명인간光明人間으로 거듭나는 길을 보여주는 수행서입니다.

천부경의 핵심 구절을 보십시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하나에서 시작하되 시작이 없는 하나. 이것은 단순한 우주론이 아닙니다. 수행을 통해 우주의 근원과 하나 되는 경지를 말합니다.

삼일신고는 더욱 명확합니다. "성통광명性通光明", 본래의 성품이 통하면 광명에 이른다. 수행을 통해 내면의 신성이 밝아지면, 우주의 광명과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배달국의 건국정신

광명인간이 되는 길

환단고기가 말하는 성숙한 인간의 길은 무엇입니까?

  • 이성理性을 넘어 영성靈性을 밝혀라: 머리의 지식을 넘어 가슴의 깨달음으로
  • 외면만이 아니라 내면을 환하게 하라: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의식의 성장을
  • 인공지능을 넘어 원형지능을 회복하라: 기계의 연산을 넘어 인간 본연의 직관과 통찰을
  • 기술과 도덕의 조화를 이루라: 힘만 있고 지혜 없는 문명은 자멸한다
  • 분열된 의식을 통합하라: 이분법을 넘어 삼극三極의 조화로
  • 자의식을 넘어 신성神性을 회복하라: 좁은 자아를 넘어 우주와 하나 되는 경지로

이것을 이루는 방법이 수행修行입니다. 명상冥想, 주문呪文, 호흡呼吸, 심법心法을 통해 내면의 신성을 깨우는 것. 이것이 환단고기가 전하는 실천의 길입니다.

21세기의 과제: 빛의 문명

인공지능 시대,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이 시대에 인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더 빠른 컴퓨터가 아닙니다. 더 똑똑한 AI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도덕과 기술의 조화입니다. 광명문화, 곧 빛의 문명입니다.

외면의 기술만 발달하고 내면의 영성이 어두운 문명은 결국 자멸합니다. 핵무기, 생화학무기, AI 병기—기술은 발달했지만 그것을 올바로 쓸 도덕은 없습니다. 권력은 있지만 지혜는 없습니다. 힘은 있지만 자비는 없습니다. 이것이 현대 문명의 근본적 모순입니다.

환단고기가 말하는 광명문화는 이 모순을 해결하는 길입니다:

  • 내면과 외면이 함께 밝은 문명 기술도 발달하고 의식도 성장하는
  • 도덕과 기술이 조화로운 문명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의 균형
  • 이성과 영성이 통합된 문명 과학과 신성이 대립하지 않는
  • 인간의 신성이 회복된 문명 기계에 지배당하지 않고 인간이 주인 되는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환단고기는 인류의 나침반

그러므로 환단고기는:

  •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영성의 경전
  • 단순한 철학서가 아니라 수행의 안내서
  •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미래의 나침반

분열에서 통합으로, 어둠에서 광명으로, 이성에서 영성으로, 인공지능에서 원형지능으로, 기술문명에서 빛의 문명으로 환단고기는 인류를 이끄는 등불입니다.

역사는 반복한다: 조롱 → 저항 → 상식

"모든 진실은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첫째, 조롱당한다. 둘째, 심한 반대에 부딪친다. 셋째,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지금 환단고기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 사이에 있습니다. 조롱은 여전하지만, 점점 더 격렬한 저항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2010년 등사본 발견 이후 그 저항은 더욱 노골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신호입니다. 무시에서 저항으로의 전환은 그 대상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지동설을 생각해보십시오. 갈릴레오는 1633년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1992년, 교황청은 그에 대한 유죄 판결이 잘못되었음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359년이 걸렸습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드러납니다.

이 책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

환단고기가 기존 질서에 두려운 것은 이 책이 거짓이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이 책이 너무 진실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논리가 너무 정밀하기 때문입니다. 전후좌우가 너무 일관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원형정신을 너무나 명확히 밝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1909년 등사본이라는 물증까지 나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지금이 바로 인류가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선의 권력은 "숨기면 참형"이라 협박했습니다. 그래서 일제는 1911년 사서 수거령을 내리고 환단고기를 불태우고 저자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계연수는 "경신년(1980년)에 공개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강단사학자는 결정적 증거를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 교수들은 밥벌이를 위해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매도해야 합니다.

혁명적 진실은 늘 조롱과 함께, 피와 함께, 불길 속에서, 은폐 속에서, 그리고 제도적 억압 속에서 이렇게 시작됩니다. 

인류를 빛의 문명으로 인도할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결론: 인류 대전환기의 등불

1911년 합본된 30부의 환단고기는 일제에 의해 불태워졌습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계연수의 제자 이유립이 지킨 1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09년 등사본이라는 초고가 남아 있었습니다.

1949년, 오형기가 이유립의 소장본을 필사했습니다. 1976년, 이유립은 1911년 초간본을 분실했습니다. 1979년, 조병윤이 이유립의 승락 없이 오형기 필사본을 영인 출판했습니다. 1983년, 이유립은 오탈자를 바로잡아 배달의숙본을 정식 출판했습니다.

스승 계연수가 지시한 "경신년(1980년)" 공개를 거의 정확히 지켰습니다. 그리고 2010년, 1909년 등사본이 발견되어 "이유립 창작설"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도권 밖의 연구자들이 RISS에 110편의 논문을 올렸습니다. 강단사학계는 침묵했지만, 재야사학자들과 일반 대중은 환단고기의 가치와 진실을 알아차리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 책은 더 이상 불태울 수 없습니다. 디지털화되었고, 번역되었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진서임을 밝히는 다양한 물증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연구자들의 90%는 이미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무엇보다, 인류가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환단고기는 단순한 역사책이 아닙니다. 인류 의식의 뿌리를 밝히는 경전입니다. 분열된 인류를 통합할 원형정신을 담은 철학서입니다. 유불선 기독교를 관통하는 원형 철학의 보고입니다. 과학과 종교, 역사와 철학, 문명과 문화의 통합 원리를 담은 인류의 유산입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그것만으로는 작금의 극도로 분열된 인류의 의식을 통합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가치와 철학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환단고기가 밝히는 원형정신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은 기존 질서에게 위험지만, 그렇기에 이 책은 인류의 미래에 필수적입니다. 역사는 반드시 환단고기의 진실을 증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사람들은 묻게 될 것입니다.

"21세기 초, 인류가 대전환기를 맞았을 때" "통합과 상생의 철학이 절실했을 때" "왜 이 책을 외면했을까?" "왜 논문의 90%를 무시했을까?" "왜 제도권 안의 학자들은 침묵해야 했을까?" "조인성은 왜 결정적 증거를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했을까?" "밥벌이를 위해 진실을 외면해야 하는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 답은 간단합니다.

혁명적 진실은 늘 대중의 조롱과 반대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혁명적 진실은 성숙한 때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혁명적 진실은 낡은 제도를 개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류는 현재 이 혁명적 진실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분열에서 통합으로.
갈등에서 상생으로.
어둠에서 광명으로.
이성에서 영성으로.
인공지능에서 원형지능으로.
기술문명에서 빛의 문명으로.

환단고기는 인류를 광명으로 이끄는 나침반입니다.
역사의 기록이자 영성의 원전입니다.
철학의 보고이자 수행의 안내서입니다.

인류 대전환기의 등불.
빛의 문명을 여는 열쇠.

그것이 환단고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