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섭원 부여기
시조 해부루 재위 39년
[동부여 수도 가섭원은 차릉]
시조 해부루왕의 재위 원년은 을미(환기 7112, 신시개천 3812, 단기 2248, BCE 86) 년이다. 왕이 북부여의 제재를 받아 가섭원迎葉原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가섭원을 차릉岔陵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토지가 기름져서 오곡이 자라기에 적합하였는데, 특히 보리가 많이 났다. 또 호랑이, 표범, 곰, 이리가 많아 사냥하기에 좋았다.
재위 3년 정유(단기 2250, BCE 84)년에 국상 아란불阿蘭弗에게 명하여 구흘을 베풀고 원근의 유민을 불러 위로하며, 굶주리거나 추위에 떨지 않게 하였다. 또 밭을 나누어 주어 농사를 짓게 하니, 몇 해 지나지 않아 나라가 부유해지고 백성이 번성하였다. 때를 맞추어 비가 내려 차릉을 축축이 적시므로 백성이 「왕정춘王正春」이라는 노래를 불러 임금을 찬양하였다.
[고주몽의 혈통과 주몽이란 말의 어원]
재위 8년 임인(단기 2255, BCE 79)년, 이보다 앞서 하백의 딸[河伯女] 유화柳花가 밖에 나가 놀다가 부여의 황손 고모수高慕漸의 꾐에 빠졌다. 고모수는 강제로 유화를 압록강 변에 있는 궁실로 데려가 은밀히 정을 통하고 하늘로 올라가서 돌아오지 않았다[升天不歸]. 유화의 부모는 중매도 없이 고모수를 따라간 것을 꾸짖고 먼 곳으로 쫓아 보냈다.
고모수의 본명은 불리지弗離支인데 혹자는 고진高辰(북부여 2세 모수리단군의 아우)의 손자라 한다. 해부루왕이 유화를 이상하게 여겨 수레에 태워 환궁하여 궁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 해 5월 5일, 유화 부인이 알 하나를 낳았는데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이 아이가 바로 고주몽高朱豪이니 골격이 뚜렷하고 늠름하며 위엄이 있었다. 나이 겨우 7세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 번을 쏘면 백 번을 다 맞추었다. 부여 말[夫餘語]에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므로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
[왕자 금와의 탄생]
재위 10년 갑진(단기 2257, BCE 77)년이었다. 해부루왕이 늙도록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하루는 산천에 후사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곤연鯤淵이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왕이 탄 말이 큰 돌을 보더니 그 앞에 마주서서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려 보게 하였더니, 거기에 한 아이가 있었는데 금색의 개구리 모양이었다. 왕이 기뻐하며 "이것은 하늘이 과인에게 대를 이을 아들을 내려 주신 것이로다"하고,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였는데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고주몽의 고구려 건국]
재위 28년 임술(단기 2275, BCE 59)년에 사람들이 고주몽을 나라에 이롭지 않다고 여겨 죽이려 하였다. 이에 고주몽이 어머니 유화 부인의 명을 받들어 동남쪽으로 달아나 엄리대수를 건너 졸본천卒本川에 도착했다. 이듬해 새 나라를 여시니, 이분이 곧 고구려의 시조이시다.
재위 39년 계유(환기 7150, 신시개천 3850, 단기 2286, BCE 48)년에 해부루왕이 훙서薨逝하였다. 태자 금와金蛙가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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