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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북부여기

북부여기 상(北夫餘紀 上)-1. 시조단군 해모수 재위 45년

by 광명인 2023. 10. 17.

[고조선의 국통 계승자, 해모수단군 즉위]


해모수단군
의 재위 원년은 임술(환기 6959, 신시개천 3659, 단기 2095, BCE 239)년이다. 
임금께서는 본래 타고난 기품이 영웅의 기상으로 씩씩하시고, 신령한 자태는 사람을 압도하여 바라보면 마치 천왕랑天王郞 같았다. 23세에 천명을 좇아 내려오시니, 이때는 47세 고열가단군 재위 57년(단기 2095)으로 임술년 4월 8일이었다.
임금께서 웅심산熊心山에서 기병하여 난빈蘭濱에 제실策室을 지으셨다. 머리에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 용광검龍光劍을 찼으며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다니시니, 따르는 사람이 5백여 명이었다. 아침이 되면 정사를 돌보시고, 날이 저물면 하늘의 뜻에 따르셨다. 이 해에 이르러 즉위하셨다.

재위 2년 계해(단기 2096, BCE 238)년 3월 16일 대영절大迎節에 임금께서 하늘에 제祭를 올리시고, 연호법烟戶法을 만들어 백성을 살피셨다. 오가五加의 군대를 나누어 배치하고 둔전屯田으로 자급하게 하여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셨다.

[오가의 공화정 종결]

재위 8년 기사(단기 2102, BCE 232)년에 임금께서 무리를 거느리고 옛 수도에 가서 오가를 설득하시니, 오가가 드디어 공화정共和政을 철폐하였다. 이때 나라 사람들이 단군으로 추대하여 받드니, 이분이 바로 북부여의 시조이다. 겨울 10월에 태아를 가진 임신부를 보호하는 법[공야태모지법 公養胎母之法]을 만들고 사람들을 가르칠 때 반드시 태교부터 시작하게 하셨다. 

재위 11년 임신(단기 2105, BCE 229)년에 북막北漠추장 산지객륭山只喀隆이 영주寧州를 습격하여 순사巡使 목원등穆遠登을 죽이고 크게 약탈한 뒤 돌아갔다.

[기준이 번조선의 마지막 (75세) 왕위에 오름]

재위 19년 경진(단기 2113, BCE 221)년에 기비箕丕가 홍서하자 아들 준準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번조선 왕으로 책봉되었다. 임금께서 관리를 파견해 군대를 감독하게 하여 연나라의 침입에 대비하는 데 더욱 힘쓰게 하셨다. 이보다 앞서 연燕나라가 장수 진개秦開를 보내 번조선 서쪽 변방을 침범하여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러 그곳을 국경으로 삼았다.

재위 20년 신사(단기 2114, BCE 220)년에 임금께서 백악산 아사달에서 천제를 지내도록 명하셨다. 7월에 궁궐 366칸을 새로 짓고 이름을 천안궁天安宮이라 하였다.

재위 22년 계미(단기 2116, BCE 218)년에 창해역사 여홍성黎洪星이 한韓나라 사람 장량張良과 함께 박랑사博浪沙에서 진왕秦王 정政을 저격하였으나 수행하던 수레[副車]를 맞혔다.

재위 31년 임진(단기 2125, BCE 209)년에 진승陳勝이 병사를 일으키자 진秦나라 사람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이에 연燕, 제齊, 조趙 나라 백성 가운데 번조선으로 망명해 온 자가 수만 명이었다준왕이 곧 상,하 운장雲障에 나누어 수용하고 장수를 파견하여 감독하게 하였다. 

재위 38년 기해(단기 2132, BCE 202)년에 연나라노관盧綰이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를 동쪽 경계로 삼았다. 패수浿水는 지금의 조하潮河(지금의 조백하)이다.

재위 45년 병오(단기 2139, BCE 195)년에 연燕나라 노관盧綰이 한漢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달아나자 그 일당인 위만衛滿이 우리나라[번조선]에 망명을 구하였다. 임금(해모수단군)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으나, 병이 들어 능히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셨다. 번조선 왕 기준箕準이 (물리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놓치고 마침내 위만을 박사博士로 삼고 상하운장을 떼어 주어 지키게 하였다

이해(환기 7003, 신시개천 3703, 단기 2139, BCE 195) 겨울에 해모수단군께서 붕어하시니 웅심산熊心山 동쪽 기슭에 장사지냈다. 태자 모수리慕潄離께서 즉위하셨다.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시조 단군: 고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북부여 시대에도 역대 임금이 고조선의 제도를 계승하여 스스로 단군이라 칭했다.

*웅심산熊心山: 지금의 길림성 서란舒蘭

*연호법烟戶法: 연호는 밥짓는 연기를 인가人家의 상징으로 한 데서 온 말이라 하며, 호戶. 가家와 같은 의미라고도 한다.

* 북막: '북쪽의 사막'이란 뜻으로 보통 고비 사막을 지칭한다. 따라서 여기서도 고비 사막을 비롯한 내몽 골 지역으로 볼 수 있다.

* 영주寧州: 이유립은 요遼나라 때 설치한 영강주寧江州인 현재의 길림성 부여현夫餘縣을 영주로 비정하였다.

*훙서薨逝: 제후나 왕공, 귀인의 죽음을 이르는 말.

*번조선 왕: 삼조선 체제는 단군조선이 망한 뒤에도 상당 기간(BCE 238~ BCE 194) 존속하다가 위만의 번조선 찬탈로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연나라의 침입: 연나라는 BCE 222년 진秦나라에게 망했다. 이 기사는 번조선 71세 왕 기욱箕煜 때인 BCE 300년경에 발생한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서비西鄙: '서쪽 궁벽한 변방'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현 북경 부근을 흐르는 백하白河 일대를 말한다. 바로 이곳에 훗날 위만이 망명하여 살던 상·하 운장上下雲障이 있었다.

*한韓나라: 전국 시대 때 칠웅(秦楚燕齊韓魏趙)의 하나.

*진왕秦王: 자칭 '시황제始皇帝'일 뿐, 한민족사 입장에서는 '진왕'이다.

*진승陳勝(?~BCE208): 하남성 등봉현의 빈농 출신으로 오광吳廣과 함께 진秦나라에서 농민 반란을 일으켰으나 6개월 만에 실패하였다. 이 사건에 자극 받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 났고, 유방·항우 등이 군사를 일으켜 저 유명한 초한전楚漢戰시대를 맞이한다. 

*노관盧綰패현沛縣 출신으로 한고조 유방과 동향인이자 동년 동월 동일에 태어난 친구 사이였다. 한나라 건국에 공헌하여 연燕나라 왕에 봉해졌다. BCE 195년에 한고조가 죽은 후 여태후呂太后가 유劉씨계와 공신들의 숙청을 강행하자 화를 피해 흉노로 망명하고, 그 일당인 위만은 번조선으로 망명하였다.

*요동의 옛 요새: 지금의 하북성 옥전현玉田縣의 서쪽에 있는 계현薊縣이다.

*조하潮河: 지금의 북경 동쪽과 천진 북쪽을 흐르는 조백하다.

패수浿水는 지금의 조하潮河, 조백하潮白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