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제석(三神帝釋)을 숭배하는 풍조가 자못 성하여, 집집마다 잠자리의 바로 윗 벽에 박달나무로 만든 못을 박고, 종이 주머니에 깨끗한 흰 쌀을 가득 담아 걸어 두며 이름하여 ‘삼신낭(三神囊)’ 혹은 ‘제석낭(帝釋囊)’이라 한다. 매년 10월 새로운 곡식이 날 때면 주부는 반드시 손을 정결히 하고 새로 마련한 시루에 떡을 쪄서 그 신에게 정성을 올리며 큰 복을 바란다.
신축년은 부루 임금의 원년이다. 부왕의 뜻을 이어 천하를 다스리니, 무릇 삼년만에 나라안으로 순행을 나가서 예를 갖추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다시 제후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냄을 예전처럼 하게 하였다. 농사와 누에치기를 일으키고 목축을 권장하였으며, 학문을 계도하여 널리 가르치니, 백성의 생활은 더욱 윤택하여지고 이를 기리는 소리는 천하에 자자하였다.]
噫! 神市立極, 檀帝垂訓, 聖化神澤, 皇皇亮亮, 足爲萬代之天範. 而後孫不肖, 乃致聖謨鴻猷, 潛消黙失於冥冥之中, 使堂堂皇謨, 盡付於空山臥睡之人, 所傳者, 只遺怪亂之說, 不亦悲乎.
오호라! 신시씨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고 단제가 그 교훈을 후세에 전하니, 성스러운 교화와 신인의 은택은 환히 빛나서 족히 만대에 걸쳐 하늘 모범이 되었다. 그러나 후손이 불초하여 성스럽고도 원대한 대계(大計)는 어둑어둑한 가운데로 잠겨서 사라지듯 소리 없이 잃어버리고, 당당하던 임금의 천하 경영의 뜻은 빈 산에 누워 잠든 이들에게로 모두 미뤄 버리니, 전해지는 것이라곤 단지 괴상하고 어지러운 말만 남았을 뿐이라, 이 역시 슬프지 않겠는가.
今, 崇三神帝釋之風頗盛, 每人家正寢壁上, 以檀木爲釘, 紙囊盛純白米而掛之, 名曰三神囊或帝釋囊. 每十月, 新穀肇成, 則主婦必凈手, 換新甑, 蒸爲餠, 以賽其神而祝景福. 此, 旣出於檀朝之遺制, 而俗民競以巫覡相尙, 或至禍福壽夭, 專托巫祝而云爲之, 此乃古俗末流之弊也. 能向燕.齊之士, 而嗤其迂怪也哉! 悲夫!
이제 삼신제석(三神帝釋)을 숭배하는 풍조가 자못 성하여, 집집마다 잠자리의 바로 윗 벽에 박달나무로 만든 못을 박고, 종이 주머니에 깨끗한 흰 쌀을 가득 담아 걸어 두며 이름하여 ‘삼신낭(三神囊)’ 혹은 ‘제석낭(帝釋囊)’이라 한다. 매년 10월 새로운 곡식이 날 때면 주부는 반드시 손을 정결히 하고 새로 마련한 시루에 떡을 쪄서 그 신에게 정성을 올리며 큰 복을 바란다. 이것은 단조(檀朝)때 생겨나 지금까지 남겨진 풍속인데, 속된 백성들은 다투어 무당과 박수를 받들면서 혹은 길흉화복과 장수하고 단명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무당과 박수에게 의탁하며 말과 행동을 그것에 따르니, 이는 곧 옛 풍속의 끄트머리로 흐르는 폐단이다. 그러니 어찌 연나라와 제나라 선비를 향하여 그들이 괴상하다고 비웃을 수 있겠는가. 슬프도다!
先是, 夫婁旣平水土, 而夏禹適治唐堯九(年)[秊]之水. 宇內諸國, 悉會於塗山.明.鳳陽府. 夫婁亦奉命往會, 又使神誌(氏)齋寶玉‧弓矢以從焉. 自蚩尤.軒轅大戰以後, 兩國始以玉‧帛相見, 可稱東方會盟之始矣.
이 보다 앞서 부루가 물과 땅을 모두 안정시키고 나니, 하우씨(夏禹氏)가 마침 당요(唐堯) 9년의 홍수를 다스리기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모두 도산(塗山)(명明의 봉양부鳳陽府)에 모였다. 부루 역시 명을 받들고 가서 함께 모이며 신지씨로 하여금 보옥 및 활과 화살을 지니고 따르게 하니, 치우와 헌원이 크게 싸운 이후 두 나라가 처음으로 옥과 비단을 가지고 서로 만난 것으로서, 가히 동방회맹(東方會盟)의 시초라고 할 만하다.
在位九十餘載, 天下皥皥然, 忘其樂焉. 乃命夫婁攝位曰: 「天道昭昭, 降在爾心, 惟秉爾心, 以親萬民, 其惟純誠乎!」 乃南至唐莊, 入居阿斯達, 以孟冬月, 化神朝天. 在世凡二百十年, 在君位九十三年. 於是夫婁率諸加及諸侯, 獻祭於朝天處, 以辛丑歲卽位于平壤, 是二世檀君也. 後有文朴氏, 居阿斯達, 韶顔方瞳, 頗得檀儉之道. 其後, 如向彌山之永郞及馬韓之神女寶德諸人, 只得其一斑, 淸凈無爲, 適遙塵外, 又非檀祖用化萬民之大義也.
재위 90여 년 동안 천하는 공허롭게 넓기에 즐거움을 잊고 지냈다. 이에 부루에게 명하여 재위를 잇게 하며 이르기를 「하늘의 도는 밝디 밝게 네 마음에 내려와 있으니, 오로지 네 마음을 잡고 그로서 만백성을 사랑하면 그 뜻은 순수하고 정성스러울 것이니라」 하고는, 남쪽으로 당장(唐莊)에 이르러 아사달에 들어가 기거하다가 10월에 신이 되어 하늘에 오르니, 세상에 있은 지 무릇 210년이요 임금의 자리에 있은 지 93년이다. 이리하여 부루가 뭇 가와 제후를 거느리고 하늘에 오른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는 신축년에 평양에서 즉위하니, 바로 두번째 단군이다. 뒤에 문박씨(文朴氏)가 아사달에 살고 있었는데, 환하게 젊어 보이는 얼굴에 모가 난 눈동자를 하고서 자못 단검(檀儉)의 도를 얻은 듯하였다. 그 후에 향미산(向彌山)의 영랑(永郞)과 마한(馬韓)의 신녀보덕(神女寶德) 등 뭇 사람들은 단지 그 한 부분만을 체득하여 정결하게 무위(無爲)로서 속세를 벗어나 소요할 뿐이었으니, 이 또한 단조(檀朝)가 만백성을 교화시키는 그러한 큰 뜻은 아니다.
[단군세기 2세 단군 부루에 관한 기사보기 클릭]
辛丑歲, (王)[壬]儉夫婁元年. 夫婁旣卽位, 繼父志而治天下, 凡三年, 出巡國中, 祭天如禮, 復使諸侯, 致祭如古. 居數年, 有盎肅者無道, 使仙羅往撫之. 其後, 盎肅再叛, 乃使仙羅會僂侲‧蓋馬之兵, 討平之, 逐其徒於窮北. 益修德政, 廣采賢能, 乃擧息達爲龍加, 今勿爲馬加, 增置主財之職曰鳳加, 使阿密主之. 於是浚渠洫, 開道路, 興農桑, 勸牧畜, 啓學而廣敎, 民生益殷, 聲聞大彰. 令天下, 以孟冬西成之後, 居民相聚, 薦穀而祭天, 幷祀檀儉在天之神, 民人咸悅, 推戴欽慕, 無異存日.
신축년은 부루 임금의 원년이다. 부루가 즉위하여 부왕의 뜻을 이어 천하를 다스리니, 무릇 삼년만에 나라안으로 순행을 나가서 예를 갖추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다시 제후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냄을 예전처럼 하게 하였다. 수년이 지난 후에 앙숙(盎肅)이라는 무도한 자가 있어서 선라(仙羅)로 하여금 가서 그를 달래게 하였는데, 그 후에 앙숙이 다시 배반하기에 선라로 하여금 속진과 개마의 병사를 모으게 하여 그를 토벌하고는 그 무리를 북쪽의 후미진 곳으로 내어쫓았다.
이에 덕스러운 정치를 더욱 닦으며 널리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를 가려 뽑았으니, 식달(息達)을 등용하여 용가로 삼고, 금물(今勿)을 마가로 삼았으며, 재정을 주관하는 직책을 증설하여 붕가(鳳加)라 이름하고 아밀(阿密)로 하여금 이를 주관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물도랑을 파고 길을 내며 농사와 누에치기를 일으키고 목축을 권장하였으며, 학문을 계도하여 널리 가르치니, 백성의 생활은 더욱 윤택하여지고 이를 기리는 소리는 천하에 자자하였다. 천하에 영을 내려 10월 추수를 마친 후에 그 땅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서로 모여 새 곡식으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아울러 하늘에 계신 신(神)인 단검께도 제사 드리게 하니,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며 추대하여 떠받들고 그 덕을 흠모하기를 살아 있을 때와 다름없이 하였다.
初, 夫婁踐位之際, 虞舜以藍國隣接之地爲營州, 凡數十年, 夫婁使諸加征其地, 盡逐其衆. 是時, 天下諸侯, 來朝者數十. 於是作於阿之樂, 以諧人神. 於阿者, 喜悅之詞也. 時有, 神獸出於靑丘, 白毛九尾, 銜書作瑞, 乃賞高矢氏, 令國中奏樂而致歡, 又作朝天之舞.
처음에 부루가 임금의 자리에 올랐을 때 우순(虞舜)이 남국(藍國)에 인접한 땅을 영주(營州)로 삼은지가 무릇 수십년이기에, 부루가 뭇 가로 하여금 그 땅을 정복하게 하고 그 무리들을 모두 내치게 하였다. 이 때 천하의 제후 가운데 들어와 알현하는 자가 수십 명에 이르니, 이에 ‘어아의 노래(於阿之樂)’를 지어 이로서 사람과 신이 어울려 화합하였다. ‘어아’라 함은 기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때 신령스러운 짐승이 청구(靑丘)에 나타났으니, 털은 희고 꼬리는 아홉에 서책을 입에 물고 상서러움을 드러내는지라, 이에 고시씨에게 상을 내리고는 나라 안에 영을 내려 음악을 연주하게 하여 매우 즐기며, 또한 ‘조천무(朝天舞)’를 지었다.
封仙羅於盎肅之地, 後數年, 又封道羅‧東武, 以表其功, 卽後之沃沮‧沸流‧卒本(朝)諸國也. 在位三十四歲, 崩, 壽一百四十六歲. 子, 嘉勒立.
선라(仙羅)를 앙숙의 땅에 봉했다가 그 몇 년 뒤에 또 도라(道羅)와 동무(東武)를 봉하여 그 공덕을 표창하니, 곧 뒤에 옥저(沃沮)․비류(沸流)․졸본(卒本) 등의 뭇 나라들이다. 임금으로 있은 지 34년만에 세상을 떠나니 수(壽)는 146세였다. 아들 가득(嘉勒)이 임금이 되었다.
乙亥歲, (王)[壬]儉嘉勒元年. 亦有聖德, 能繼父祖之道. 又擧九室氏爲龍加, 益致其隆盛焉. 時, 夏王失德, 其臣有簒逆者, 乃使息達率藍‧眞蕃之民, 以征之, 於是國威益彰. 乃行祭天禮, 遍及于諸神. 在位五十一歲, 威德流被于四表, 國人咸慕其化. 以乙丑歲崩, 壽八十四. 子, 烏斯立.
을해년은 가륵 임금의 원년이다. 역시 성스러운 덕이 있어 능히 부왕과 조부의 길을 이었다. 또 구실씨(九室氏)를 등용하여 용가로 삼으니 그 융성함이 더욱 극진하였다. 이 때 하나라 왕이 덕을 잃어 그 신하 가운데 왕위를 넘보고 반역하는 자가 있으므로, 이내 식달(息達)로 하여금 남국(藍國)과 진번(眞蕃)의 백성들을 이끌고 가서 그를 정벌케 하니 나라의 위세가 더욱 빛났다. 이에 하늘에 제사의 예식을 행하며 뭇 신들에게 고루 미치게 하였다. 재위 51년 동안 위엄 있는 덕은 사방으로 퍼져서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 교화를 사모하게 되었다. 을축년에 세상을 떠나니 수는 84세였다. 아들 오사(烏斯)가 임금이 되었다.
[단군세기 3세 단군 가륵에 관한 기사보기 클릭]
丙寅歲, (王)[壬]儉烏斯元年. 北巡而得靈草. 分天下爲二十一州. 征夏王后相, 不克, 後和, 遣使相通. 在位四十九歲, 崩, 子, 丘乙立.
병인년은 오사 임금의 원년이다. 북쪽을 순행하다 신령스러운 풀을 얻었다. 천하를 21주(州)로 나누었다. 하나라 왕 후상(后相)을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이기지 못했으며, 후에 화해하여 사신을 보내고는 서로 교통하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49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구을(丘乙)이 임금이 되었다.
乙卯歲, (王)[壬]儉丘乙元年. 時, 夏民有慕化而至者, 使處於奄慮忽. 後, 少康復興夏道, 久相和好. 封太白之山, 使凡民不得恣意侵犯. 在位三十五歲, 崩. 子, 達門立.
을묘년은 구을 임금의 원년이다. 이 때 하나라 백성 가운데 임금의 교화를 사모하여 오는 자가 있으므로 엄려홀(奄慮忽)에 거처하게 하였다. 뒤에 소강(少康)이 하나라의 도를 다시 일으키므로 오랫동안 서로 화목하게 지냈다. 태백산을 봉하여 일반 백성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35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달문(達門)이 임금이 되었다.
庚寅歲, (王)[壬]儉達門元年. 生而有異, 及長, 有聖德. 又得東海人黎老爲龍加. 德聞益彰, 國人不知惡‧不知煩懊, 聲敎之漸, 可謂盛矣. 乃西撫猰犭兪, 北安盎肅, 南攘夏, 東至于蒼海, 而波息十年. 在位三十二歲, 崩. 子, 翰栗立.
경인년은 달문 임금의 원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다름이 있더니, 자라서는 성스러운 덕이 있었다. 또 동해 사람 여로(黎老)를 얻어 용가로 삼으니 그 덕의 평판은 더욱 빛났다. 나라 사람들은 악을 모르고 번민을 몰랐으니, 임금의 가르침이 번져나가 백성에게 물들어 감이 가히 융성하였다 할 것이다. 이에 서쪽으로 설유를 달래고 북쪽으로 앙숙을 진정시켰으며, 남으로 하나라를 물리치고 동쪽은 푸른 바다에 이르니, 십년동안 어려움 없이 조용하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32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한율(翰栗)이 임금이 되었다.
壬戌歲, (王)[壬]儉翰栗元年. 有阿叱者, 作亂害民, (王)[壬]儉曰: 「惟罪歸于作犯, 惟道成于謹修.」 乃益修德政, 使黎老征之, 三年而後始禽. 且當時, 夏政方殷, 使藍侯勤修戎事, 而終世以和. 在位二十五歲, 崩. 子, 于西翰立.
임술년은 한율 임금의 원년이다. 아질(阿叱)이라는 자가 있어 난을 일으켜 백성을 해치니 임금이 이르기를 「죄(罪)는 오로지 그것을 범한 자에게로 돌아가며, 도(道)는 오로지 그것을 삼가 닦은 자에게서 이루어진다」라 하고 더욱 덕스러운 정치를 닦으며 여로(黎老)에게 그를 정벌하게 하니, 삼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사로잡았다. 또한 당시 하나라의 정치가 바야흐로 융성해지므로 남후로 하여금 군사 일을 힘써 다스리게 하니, 오랫동안 이로써 평화로웠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25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우서한(于西翰)이 임금이 되었다.
丁亥歲, (王)[壬]儉于西翰元年. 或曰烏斯含. 使民, 九十稅一, 廣通有無, 以補不足. 在位五十七歲, 崩. 子, 阿述立.
정해년은 우서한 임금의 원년이다. 혹은 오사함(烏斯含)이라고도 한다. 백성들에게 90분의 1을 세금으로 내게 하였으며, 물자의 유무에 따라 널리 통하게 하여 부족한 것을 보충케 하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57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아술(阿述)이 임금이 되었다.
甲申歲, (王)[壬]儉阿述元年. 有仁德. 時, 民有犯禁者, (王)[壬]儉曰: 「糞地雖汚, 乃有降露之時.」 置而不治, 犯禁者, 乃化其德. 在位二十八歲, 崩. 子, 魯乙立.
갑신년은 아술 임금의 원년이다. 임금에게 어진 덕이 있었는데, 이 때의 백성 가운데 금지한 것을 범한 자가 있기에 임금이 말하기를 「똥을 눈 땅이 비록 더럽기는 하지만 거기에도 이슬이 내릴 때가 있을 것이다」라 하며 내버려두고 죄를 다스리지 않으니, 금지한 것을 범한 자가 그 덕에 감화되었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28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노을(魯乙)이 임금이 되었다.
壬子歲, (王)[壬]儉魯乙元年. 始作囿, 養畜外之獸. 在位二十三歲, 崩. 子, 道奚立.
임자년은 노을 임금의 원년이다. 처음으로 우리를 만들어 바깥의 짐승들을 길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23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도해(道奚)가 임금이 되었다.
乙亥歲, (王)[壬]儉道奚元年. 夫餘侯有猰犭兪之難, 熊加與句麗‧眞番侯, 助平之. 在位三十六歲, 崩. 子, 阿漢立.
을해년은 도해 임금의 원년이다. 부여후가 설유 때문에 어려움을 치르자 웅가와 구려후 및 진번후 등이 도와서 이를 평정하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36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아한(阿漢)이 임금이 되었다.
[단군세기 11세 도해 단군에 관한 기사보기 클릭]
辛亥歲, (王)[壬]儉阿漢元年. 在位二十七歲, 崩. 子, 屹達立.
신해년은 아한 임금의 원년이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27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흘달(屹達)이 임금이 되었다.
戊寅歲, (王)[壬]儉屹達元年. 有武勇, 國人畏愛之. 得奚門爲龍加. 夏人來至, (王)[壬]儉優禮之. 時, 夏德旣衰, 使人往觀其政, 又送舞樂而試之. 及後, 使奚門與藍侯率諸兵, 進征奄至邠.岐之間. 後與夏王和. 在位四十三歲, 崩. 子, 古弗立.
무인년은 흘달 임금의 원년이다. 임금은 무예에 용맹이 있음에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하였다. 해문(奚門)을 얻어 용가로 삼았다. 하나라 사람이 건너오자 임금이 그를 예절로서 대우하였다. 이 때 하나라의 덕이 이미 쇠퇴하니 사람을 시켜 가서 그 정치를 살펴보게 하고는, 또 춤과 노래를 보내어 그 를 시험하게 한 후에, 해문과 남후로 하여금 모든 병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엄(奄)에서 빈(邠)․기(岐) 사이의 지역을 정벌하게 하였다. 그 후 하나라 왕과 서로 화해하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43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고불(古弗)이 임금이 되었다.
辛酉歲, (王)[壬]儉古弗元年. 繼父志而修戎事, 然而終世無事. 僂侲侯獻赤玉之瑞. 在位二十九歲, 崩. 子, 伐音立.
신유년은 고불 임금의 원년이다. 부왕의 뜻을 이어 군사 일을 잘 다스렸으나 오랫동안 그 군사를 쓸 일이 없었다. 속진후가 상스러운 붉은 옥을 바쳤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29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벌음(伐音)이 임금이 되었다.
庚寅歲, (王)[壬]儉伐音元年. 種薰華於階下, 以爲亭. 使末良爲龍加. 曰: 「孩提, 亦歸于寵者. 保民之道, 不可暫弛.」 遂, 廣施德政, 於是兆民久懷. 時, 夏王遣使請援, 乃[使]末良興兵進救. 後, 夏王復請兵, (王)[壬]儉以其無道, 却而不許. 及湯王.商大修仁政, (王)[壬]儉曰: 「有德之君也, 不可相侵.」 乃戢其兵, 後和. 使民, 八十稅一. 在位三十三歲, 崩. 子, 尉那立.
경인년은 벌음 임금의 원년이다. 훈화(薰華)를 섬돌 아래 심어서 이를 길렀다. 말량(末良)을 용가로 삼았다. 이르기를 「어린아이도 그를 귀여워해 주는 사람에게 끌려 돌아가기 마련이니, 백성을 보살피는 도리는 잠시라도 소흘히 할 수 없다」 하며 마침내 널리 덕스러운 정치를 펼치니, 이로서 모든 백성이 그 덕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다. 이 때 하나라 왕이 사신을 보내 와서 구원을 청하므로 말량에게 군사를 일으켜 나아가 구원하게 하였다. 뒤에 하나라 왕이 또다시 병사를 요청하였으나 임금이 그의 무도함을 들어 청을 물리치고 허락하지 않았다. 탕(湯)왕이 상(商)나라를 일으키고 크게 어진 정치를 닦으니 임금이 이르기를 「덕이 있는 군주로다. 서로 침범할 수 없도다」 하고는 군사를 거두어들인 뒤 화해하였다. 백성들로 하여금 80분의 1의 세금을 내게 하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33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위나(尉那)가 임금이 되었다.
癸亥歲, (王)[壬]儉尉那元年. 國內靜謐. 在位十八歲, 崩. 子, 余乙立.
계해년은 위나 임금의 원년이다. 나라 안은 고요하고 평온하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18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여을(余乙)이 임금이 되었다.
辛巳歲, (王)[壬]儉余乙元年. 有異獸出于太白之陽, 九尾白毛, 似狼而不害物. 是年, 大[諸會侯](會諸侯), 賞眞番侯. 在位六十三歲, 崩. 子, 冬奄立.
신사년은 여을 임금의 원년이다. 태백산의 남쪽에 이상한 짐승이 나타났는데, 꼬리는 아홉에 흰 털을 지니고서 흡사 늑대 같았으나 사물을 해치지는 않았다. 이 해에 제후들을 크게 모으고 진번후에게 상을 주었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63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동엄(冬奄)이 임금이 되었다.
甲申歲, (王)[壬]儉冬奄元年. 僂侲侯獻巨獸, 其大如屋. 時, 諸侯有相攻者, 牛首州復有盎骨者, 與其弟長骨作亂, 西鄙之民, 皆被其虐. 夫餘侯不能安戢, 乃使熊加充達率師西征, 濊侯及僂侲侯, 亦以兵來助, 盎骨悖惡無倫, 戕害庶民, 凡五年而始定. 充達曰: 「豈有飮全海之水, 而始覺其醎者耶? 皇祖肇基, 今垂七百歲, 而盎骨之衆, 恣意橫暴, 貽毒于黎民, 此聖道之攸衰也. 君其修德乎!」 冬奄, 乃大修先君之德, 使充達往撫西鄙之民, 居數年, 民有, 擢髮捆屨以報其德者. 在位二十歲, 崩. 子, 緱牟蘇立.
갑신년은 동엄 임금의 원년이다. 속진후가 커다란 짐승을 바쳤는데 그 크기가 집채만하였다. 이 때 제후들 가운데 서로 공격하는 자가 있었다. 우수주(牛首州)에 또 다시 앙골(盎骨)이라는 자가 있어 그의 동생 장골(長骨)과 함께 난을 일으키니 서쪽 지방의 백성들이 모두 그에게 괴롭힘을 당하였다. 부여후가 쉽사리 평정할 수 없어서 웅가인 충달(充達)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케 하니 예후와 속진후 역시 병사를 거느리고 와서 도왔는데, 앙골이 패악무도하게도 많은 백성을 해치기를 무릇 다섯 해 만에야 비로소 평정되었다. 충달이 아뢰기를 「어찌 바다의 모든 물을 다 마시고서야 그 짠 맛을 깨닫겠습니까! 임금님의 조상께서 나라의 터전을 닦은지 이제 7백년에 이르렀는데, 앙골의 무리가 제 멋대로 횡포를 부려 그 독이 백성들에게 미치니 이는 성인의 도가 시든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덕을 닦으소서」 하였다. 동엄은 이에 선대 임금의 덕을 크게 닦고는 충달로 하여금 서쪽 지방에 가서 백성들을 보살피게 하니, 그 지방에 머물기를 몇 년만에 백성 가운데 머리카락을 뽑아 그것으로 신을 삼아 덕에 보답하는 자가 있었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20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구모소(緱牟蘇)가 임금이 되었다.
甲辰歲, (王)[壬]儉緱牟蘇元年. 南巡至樂浪忽, 修城郭. 孟冬月, 靑丘民羣聚舞天, 散而爲獵, 有人至山陂, 爲大蛇所卷, 靑丘侯使緱强搜捕曰: 「蛇大如何?」 緱强曰: 「穴中藏蛇, 安知其修短耶? 今, 孟冬而蛇出卷人, 爲灾非常, 只可搜斬, 以除民害.」 乃使猛士, 毁陂而求之, 蛇大如樑, 以巨斧破其頭殺之, 蛇害遂絶, 重賞緱强. 在位二十五歲, 崩. 子, 固忽立.
갑진년은 구모소 임금의 원년이다. 남쪽으로 순행하다 낙랑홀에 이르러 성곽을 수리하였다. 10월에 청구의 백성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서 축제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는 흩어져 사냥을 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산비탈에 이르러 큰 뱀에게 감겨 버렸다. 청구후가 구강(緱强)을 시켜 그 뱀을 잡게 하고는 묻기를 「뱀의 크기가 얼마 만 한가?」 하니 구강이 말하기를 「구멍 속에 숨어 있는 뱀인데 그 길고 짧음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마는, 지금이 벌써 10월인데도 뱀이 나와서 사람을 감는다는 것은 그 재난이 범상하지 않으니 오로지 뱀을 찾아내어 베어 버려서 이로서 백성의 해로움을 없앰이 옳은가 합니다」라 하고는 곧 날랜 장사들을 시켜 비탈을 허물고 찾아내니 뱀의 크기가 대들보만 하였다. 큰 도끼로 뱀의 머리를 깨서 죽이니 마침내 뱀의 해악이 없어졌다. 구강에게 큰 상을 내렸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25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고홀(固忽)이 임금이 되었다.
己巳歲, (王)[壬]儉固忽元年. 僂侲侯獻貂裘, 使藏之而待有功者. 在位十一歲[而]崩. 子, 蘇台立.
기사년은 고홀 임금의 원년이다. 속진후가 담비 가죽으로 만든 옷을 바치니 이를 잘 보관하여 두게 하고는 공덕이 있는 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11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소태(蘇台)가 임금이 되었다.
庚辰歲, (王)[壬]儉蘇台元年. 西巡諸地, 觀藍侯之政, 尋陳兵于商地. 在位三十三歲, 崩. 子, 索弗婁立.
경진년은 소태 임금의 원년이다. 서쪽의 여러 지역을 순행하고 남후의 정치를 살펴 본 뒤 얼마 후에 상나라 땅에 군대를 들여놓았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33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색불루(索弗婁)가 임금이 되었다.
[단군세기 21세 소태 단군에 관한 기사보기 클릭]
'규원사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규원사화 만설-1 (0) | 2024.12.16 |
---|---|
규원사화 단군기-5 (2) | 2024.12.14 |
규원사화 단군기-3 (1) | 2024.12.12 |
규원사화 단군기-2 (2) | 2024.12.11 |
규원사화 단군기-1 (4) | 2024.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