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만들어진 프레임
"환단고기는 1979년 이유립이 창작한 위서(僞書)다."
이 한 문장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역사학계의 정설처럼 여겨져 왔다. 1988년 조인성 교수의 논문 이후, 환단고기는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위서로 낙인찍혔고, 이를 연구하거나 인용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어 왔다. 그러나 정작 그 근거를 살펴보면 놀랍게도 확정적 증거는 없다. 조인성 교수 본인조차 "추측된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다.
역사는 증거로 말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 재조명되고 있는 심당전서(心堂全書)는 환단고기 위서론의 핵심 논리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1. 위서론의 허술한 논리적 기반
환단고기 위서론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1911년 출간되었다고 하지만, 1979년 이전에는 이유립 외에 아무도 이 책을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유립이 창작했을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증거 부재의 오류'다. 한 사람만 증언했다고 해서 그 증언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러한 논리는 역사학의 기본 원칙마저 무시한다. 사료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며, 새로운 문헌의 발굴은 역사학의 본질이다.
그런데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에서 학계는 이상하리만치 경직되어 있었다. 새로운 증거를 찾기보다는 기존의 프레임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고, 언론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대중에게 전파했다. 그 결과 "환단고기=위서"라는 등식은 검증되지 않은 채 기정사실화되었다.
2. 심당전서, 침묵을 깨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심당전서가 등장한다.
심당(心堂) 이고선(李固善, 1905~1982)은 평생을 우리 고대사 연구에 바친 재야 사학자였다. 그가 남긴 방대한 저작은 1982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차남에 의해 심당전서로 묶여 1981년 세상에 나왔다. 총 1집과 2집으로 구성된 이 문집 중 1집에는 역사 관련 문헌이, 2집에는 개인 시문과 가록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965년 완성된 『단서대강(檀書大綱)』이다. 이 책은 환국(桓國)부터 조선 왕조 순종까지 만 년이 넘는 한민족의 역사를 정리한 역작으로, 이고선이 9세(1914년)부터 63세(1965년)까지 51년간 연구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단서대강에는 환단고기가 명확히 인용되어 있다. 본문 중에 "환단고기"라는 표현이 직접 등장하며, "삼가 살피건대(謹按)"와 같은 표현으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권말의 「인용문헌 및 참고서목록」에는 환단고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삼성기 등이 422종의 참고문헌들 중에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위서론자들의 논리에 모순이 발생한다. 1979년에 창작되었다는 책이 어떻게 1965년 완성된 문헌에 인용될 수 있는가? 위서론자들은 이 참고문헌 목록이 1970년대 후반에 추가되었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문헌 구조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억측이다. 심당전서의 인용문헌 목록은 성휘사운(1966년 발간)뒤에 완전히 별도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문 중에도 환단고기를 직접 언급하는 대목이 여러 곳 등장한다.

3. 구체적 증거들: 일치하는 역사의 퍼즐
심당전서와 환단고기의 관계는 단순한 언급 수준을 넘어선다. 두 문헌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인 일치점을 보인다.
첫째, 환국의 7세 환인 계보
1924년 완성된 이고선의 『환단세감』에는 환국 7세 환인의 이름이 환단고기와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1세 거발한(居發桓) 환인부터 7세까지의 명칭이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1세를 '안파견(安巴堅) 환인, 혹은 거발한'으로 표기하는데, 이고선은 안파견을 보통명사로 보고 거발한만을 1세 환인의 이름으로 채택했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는 오히려 이고선이 환단고기를 자신의 해석으로 재구성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환단고기가 1979년에 창작되었다면, 55년 전인 1924년에 완성된 환단세감에 어떻게 같은 내용이 존재할 수 있는가?
둘째, 단군 재위 연대의 완벽한 일치
단군세기에 기록된 47세 단군의 재위 연도와 단서대강의 기록이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고선은 환단고기의 47세 단군 이전에 2세를 더 추가하여 총 49세로 정리했지만, 그 이후의 재위 기간은 연도 하나 틀림없이 동일하다. 이는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하다. 수십 명의 왕조 재위 기간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은 같은 원전을 참조했음을 의미한다.
셋째, 사상적 일관성과 독자적 해석
단군세기 서문의 핵심 문장이 단서대강 서문에 변형되어 인용되어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역사를 앞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혼을 잃고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철학적 일관성은 두 문헌이 같은 역사관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왜곡된 담론 구조: 한쪽만 들린 이야기
환단고기 논쟁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균형 잡힌 학술적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학술 논문 분석 결과에 따르면, 환단고기 관련 등재 논문의 90%가 진서론을 지지하는 연구였으며, 위서론을 주장하는 논문은 고작 10%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정반대였다. "학계가 만장일치로 위서로 규정했다"는 프레임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학문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등재된 논문들이 진서의 가능성을 논증하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소수의 위서론만을 절대적 진리처럼 포장하는 것은 학문적 정직성에 반한다.
한 연구는 "일부의 내용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환단고기 전체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며, "문제가 될만한 내용은 분명하게 가려내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5. 1914년, 소년의 결심
이고선은 왜 환단고기를 연구했을까?
그는 단서대강 서문에서 자신이 9세(1914년)부터 역사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1914년은 환단고기가 출간된 지 3년 후다. 어린 나이에 그가 접한 환단고기는 평생의 연구 주제가 되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만 년의 한민족사를 재구성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51년에 걸친 연구 끝에 단서대강을 완성했다.
1924년에는 환단세감을 통해 환국 7세 환인의 계보를 정리했다. 1952년에는 천부경 연구서인 홍익대전을 완성했고, 이 책은 대중적 반향을 일으켜 1954년, 1968년, 1981년 세 차례에 걸쳐 인쇄 출판되었다. 1965년 단서대강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연구는 환단고기라는 원천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가 1982년 세상을 떠난 후, 차남이 1981년 아버지의 평생 저작을 심당전서로 묶어 출판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증거다. 1979년에 창작되었다는 책이 1924년부터 인용되고, 1965년 완성된 책에 명시되어 있다는 역설, 이 역설이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6. 학문의 본질로 돌아가자
역사학의 사명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진실보다 이념이, 증거보다 선입견이 앞섰다.
심당전서는 환단고기가 1979년 이전에 이미 존재했음을 명확히 증명한다. 1924년부터 1965년까지, 이고선의 평생에 걸친 연구는 환단고기가 실재했고, 민간에 유통되었으며, 연구되었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는 여전히 침묵하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25년 세계환단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중원대학교 전재우 선생이 발표한 심당전서 연구는 이러한 학계의 침묵에 균열을 내고 있다. 토론자로 나선 정우진 박사(상명대 한중문화정보연구소)는 심당전서를 "환단고기 전승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결정적 보충·보증 사료"라고 평가하며, "단순히 고기(古記)를 보전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내용을 충분히 숙지한 뒤 자신의 문체로 재구성한 해석사서"라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특히 일반 판본에는 없지만 등사본 환단고기에 수록된 내용이 단서대강에 그대로 반영된 점을 지적하며, 이고선이 1911년 초간본을 참조했음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고선의 역사관을 '천정(天正)의 질서 속에서 파악되는 국통사관'으로 정의하며, 중국·일본·서력과 같은 타자의 시간 체계를 거부하고 우리 고유의 시간관으로 역사를 서술하려 한 주체적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이제 소모적인 진위 논쟁을 넘어서야 할 때다. 환단고기를 무조건 신봉하거나 무조건 거부하는 양극단을 벗어나, 냉철한 학문적 검증과 열린 자세로 우리 역사의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에필로그: 역사는 살아있다
1970년대, 한 강단 사학자는 환단고기를 "추측"으로 위서라 불렀다. 그 추측은 40년 넘게 정설이 되어 한 세대를 지배했다. 그러나 역사는 살아있다. 새로운 증거는 끊임없이 발굴되고,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심당전서는 그 진실의 결정적 조각이다. 1914년부터 1965년까지 51년에 걸친 한 학자의 평생 연구가, 1979년 창작설이라는 허구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할 용기. 편견 없이 증거를 바라볼 용기. 그리고 틀렸다면 인정하고 수정할 용기. 역사의 진실은 언제나 용기 있는 자들의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 용기를 가질 차례다.
참고문헌
- 심당전서(心堂全書), 이고선, 1981
- 단서대강(檀書大綱), 이고선, 1965
- 환단세감, 이고선, 1924
- 홍익대전, 이고선, 1952
- 「심당전서에 나타난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 전재우, 2025
- 「심당전서 토론문」, 정우진, 2025
- 「환단고기 위서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우대석,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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