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보고에서 터져나온 한 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환빠 논쟁 아세요?"라고 물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습니다.
대통령이 왜 환단고기 같은 민감한 주제를 꺼냈을까요?
대통령이 정말로 묻고 싶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너희, 역사 연구 똑바로 하고 있어?"
환단고기를 믿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가 과연 맞느냐는 질문입니다.
(아래는 경제 유튜버 박시동 작가의 이재명 대통령의 환빠 논쟁에 관한 유튜버 영상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초등학생도 아는 서희 장군, 그런데...
국립외교원 입구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서희, 말 한마디로 강동6주를 되찾다."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고려의 명신 서희가 거란의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6주를 되찾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초등학생도 압니다. 중학생도 압니다. 수능에도 매번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번이라도 의문을 가져보셨나요?
강동6주가 대체 어디인지.

이상한 이름, 강동6주
"강동(江東)"이라는 말을 곱씹어 봅시다. 강의 동쪽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강은 어디 있고, 그 동쪽은 어디일까요? 교과서는 말합니다. 강동6주는 신의주 언저리라고. 압록강 남쪽이라고. 잠깐, 뭔가 이상합니다.
강이 남북으로 흐를 때만 "강동"이라는 표현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북한의 압록강은 동서로 흐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강동이 아니라 강남(江南)이어야 맞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이 소박한 의문. 하지만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두 개의 압록강 - 서압록과 동압록
답은 간단합니다. 고려시대의 압록강은 지금 북한에 있는 압록강이 아니었습니다. 고려사를 비롯한 여러 정사(正史)에 나오는 압록강은 요동 지역에 있던 다른 강입니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압록강이 두 개입니다:
서압록(西鴨淥): 물수변(氵) 압록강 鴨淥江
- 요동 지역에 있던 옛 압록강
- 남북으로 흐름 → 동쪽을 "강동"이라 부를 수 있음
- 고려사 등 정사에 나오는 압록강
동압록(東鴨綠): 실사변(糸) 압록강 鴨綠江
- 현재 북한 국경의 압록강
- 조선 후기부터 압록강으로 불림
- 한자도 다르고, 시기도 다름
고려시대의 압록강인 서압록은 남북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그 동쪽을 "강동"이라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 요동 지역에는 강동6주의 지명이 모두 존재합니다. 이곳이 서희 장군이 되찾은 강동6주는 요동 지역이었습니다. 이것이 논리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문헌적으로도 맞습니다.
고려의 진짜 국경선 - 정사의 기록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고려의 국경선 자체가 잘못 그려져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이렇게 명확히 적혀 있습니다:
"고려의 서북쪽은 압록강을 경계로 하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고 있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의 경계에는 조금 못 미쳤지만, 동쪽은 고구려의 경계를 넘어섰다." [원문참조]
우리 스스로 기록한 정사입니다. 고려의 동북쪽 경계가 고구려보다도 더 넓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명사(明史)는 더 구체적입니다. 명나라는 조선과의 국경 분쟁을 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철령(鐵嶺) 이북은 원래 원나라에 속했던 것이니, 요동에 귀속시키겠다. 그 나머지 개원(開元)·심양(瀋陽)·신주(信州) 등지의 군민은 원래의 생업에 복귀시키도록 하라." [원문참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철령의 위치입니다. 명사가 말하는 철령은 강원도 철령이 아닙니다. 요동의 철령입니다. 일제시대 쓰다(津田)도, 이마니시(今西)도 요동의 철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940년대 조선사편수회의 스에마츠(末松保和)가 "강원도 철령"이라고 주장한 것을 지금까지 그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더욱 명확합니다. 고려 예종 시기 윤관이 세운 **공험진(公險鎭)**의 위치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동북 지방은 공험령으로 경계를 삼았다는 말이 전하여 온지 오래이다... 함길도의 남쪽 끝인 철령에서 백두산까지 거리가 1,000리이고 북쪽 끝인 공험진까지 거리는 1,700여 리이다." [원문참조] [기타 참고자료]
경원도호부에서 북쪽으로 700리, 즉 두만강에서 700리 북쪽에 공험진이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세종대왕조차 공험진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신하들을 독려했습니다:
"공험진의 비문을 사람을 시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 비가 지금은 어떠한지... 윤관이 9성을 설치하였는데 그 성이 지금 어느 성이며, 공험진의 어느 쪽에 있는가?" [원문참조]
이 기록들을 종합하면, 고려의 국경은 최소한 현재 북한 영토보다 한참 위, 송화강 유역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일본인이 그린 지도를 아직도 배운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일제시대 일본인 쓰다(津田)가 그린 축소된 지도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평안도 정도까지만 그려놓은, 정사 기록과 전혀 맞지 않는 지도입니다.
문제는 명백한 기록 하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윤관의 동북 구성(東北九城). 윤관 장군이 여진족을 몰아내고 세운 9개의 성. 이것은 너무나 유명해서, 조선왕조실록에도 명확히 나와 있어서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담배 연기처럼 구불구불한 국경선
그들은 기형적인 지도를 만들어냈습니다. 밑동은 평안도까지만 잘라놓고, 동북 구성이 있는 북쪽 끝까지 담배 연기가 올라가듯 가늘게 연결했습니다. 마치 베트남처럼 해안선만 따라 영토가 형성된 것처럼 그려놓았습니다.
질문을 던져봅시다. 고려는 왜 해안선만 따라 북쪽으로 진출했어야 합니까? 내륙은 왜 비워두고 해안선만 따라 올라갔을까요?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기형적인 지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수능 시험에도 계속 나옵니다.

사라진 천리장성
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고려는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쌓았습니다. 중국의 침입을 막기 위한 거대한 방어시설입니다. 역사서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교과서가 말하는 대로 강동6주가 평안도라면, 천리장성도 평안도 이북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10m짜리 산성 흔적도 없습니다.
천리장성의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왜일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천리장성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훨씬 더 북쪽, 요동 지역에 있었습니다. 만약 교과서대로라면, 중국이 평안도까지 쳐들어왔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 영토를 스스로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도 문제와 같다
생각해봅시다.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말하는 것과 고려의 영토를 축소시켜 가르치는 것, 이 둘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우리 땅을 남의 땅이라고 말하는 것. 우리 역사를 축소시키는 것. 그런데 전자는 매국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후자는 "정설"이라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가?
여기서 핵심 질문이 나옵니다. 왜 이렇게 명백한 오류가 80년 가까이 지속되는가? 답은 식민사학의 카르텔입니다. 일제가 만든 축소 지도를 출발점으로, 수십 년간 학문적 업적을 쌓아왔습니다. 논문을 쓰고, 교수가 되고, 제자를 길렀습니다.
이제 와서 "그것이 틀렸다"고 인정하면 어떻게 될까요?
평생의 연구가 무(無)가 됩니다. 학문적 업적이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그래서 계속 우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오는 증거들을 무시하고, 다른 해석을 "환빠"로 매도하고, 논의 자체를 차단합니다.
역사는 그런 학문입니다. 새로운 유물이 하나 나오면, 기존의 가정들이 무너집니다. "여기는 문명이 없었다"고 쓴 수많은 논문들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는 것이 역사학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시다. 대통령이 왜 "환빠 논쟁"이라는 강력한 단어를 꺼냈을까요?
"너희 역사 연구 똑바로 하고 있어?"
"식민사학 아직도 못 벗어났어?"
"일본이 그린 지도를 2025년에도 가르치고 있어?"
환단고기가 진짜냐 가짜냐는 본질이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강단사학이 가르치는 한국 고대사, 그것은 진짜 맞냐?"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입니다. 우리 세금으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독도를 빼먹은 지도를 만들어 오고, 일제가 그린 축소된 국경선을 그대로 가르칩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물리쳐야 할 재단이, 일본이 만든 역사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AI 시대, 역사 카르텔은 무너진다
희망은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다. "중국 무슨 사서에 이렇게 나와 있어. 네가 한문을 아냐?" 일반인은 반박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AI가 모든 역사서를 현대어로 번역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미 완역되었습니다. 고려사도, 명사도, 세종실록지리지도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몇 페이지에 이렇게 나와 있다"고 권위를 내세워도, 이제는 1초 만에 검증 가능합니다.
과거에 교황만 성경을 해석할 수 있었던 시대가 끝났듯이, 이제 역사학자만 역사를 해석하는 시대도 끝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환빠 논쟁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환단고기를 믿느냐"가 아니라 "강단사학이 가르치는 축소된 한국사를 믿느냐"입니다. 우리는 다음을 요구해야 합니다:
- 정사(正史)에 근거한 정확한 국경선 표시
- 고려사, 명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을 종합
- 일본인이 그린 지도 폐기
- 서압록(鴨淥江)과 동압록(鴨綠江)의 구분 명확히
- 천리장성 흔적 재조사
- 평안도에 없다면 어디에 있는가?
- 고고학적 발굴 필요
- 공험진 위치 확정
- 세종실록지리지: "경원도호부 북쪽 700리"
- 두만강에서 700리 북쪽은 어디인가?
- 송화강 유역까지 조사 필요
- 교과서 즉시 수정
- 기형적인 "담배 연기" 국경선 삭제
- 동북 구성을 포함하는 논리적 국경선 표시
- 요동 철령과 강원도 철령 구분
이것은 "국뽕"이 아닙니다. 사실(fact)의 문제입니다. 작은 나라의 작은 역사라도 그대로 알고 싶습니다. 오히려 축소하고 은폐하는 역사를 가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치며
강동6주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교과서를 덮고, 정사를 펼쳐봅시다. 고려사를 읽어봅시다. 명사를 확인해봅시다. 세종실록지리지를 검색해봅시다.
우리 스스로 판단할 때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쏘아 올린 공을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환단고기 논쟁이 아니라, 한국사 바로 세우기 논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식민사학의 카르텔, 이제는 무너뜨려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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