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삼라만상 모든 존재의 창조와 변화의 근원이 곧 마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음의 본질은 대우주, 즉 천지의 마음이나 나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즉 마음의 본질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동양에서는 조물주의 마음이나 인간의 마음이 근본 바탕에서는 다르지 않으며, 마음의 장에선 모두가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다. 마음을 잘 닦으면 성인도 되고 신선도 되지만 못 닦으면 비천한 존재로 요절하거나 사회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는 악인도 되니, 이 마음의 조화가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모든 종교에서는 수행을 통한 마음 공부를 강조한다. 하지만 창조의 근원으로서 이 마음이란 개념은 매우 포괄적이며 추상적이라 정확한 실체를 알기가 결코 쉽지 않다. 기독교, 불교, 유교, 도교의 마음 공부가 서로 유사하지만 또한 각기 다름은 각각의 종교에서 이 창조의 근원으로서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각 종교를 두루 공부를 해보면 결론적으로 마음이 곧 신(神)이요, 도(道)요, 태극이요 또한 이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의 핵심 원형이 환국의 천부경과 약 6천년 전 배달국 동방 신교의 삼일신고에 모두 담겨있다고 생각된다. 아래는 위 결론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삼일신고의 인물장과 전병훈 도사의 정신철학통편의 일부 내용들을 발췌한 것이다.]
“사람과 만물이 다 같이 삼진三眞(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을 부여받았으나, 오직 사람만이 지상에 살면서 미혹되어 삼망三妄(마음[心]과 기운[氣]과 몸[身])이 뿌리를 내리고, 이 삼망三妄이 삼진三眞과 서로 작용하여 삼도三途(느낌[感]과 호흡[息]과 촉감[觸])의 변화 작용을 짓게 되느니라.”
다시 말씀 하셨다.
“삼진은 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이니, 사람은 이를 온전히 다 부여받았으나 만물은 치우치게 받았느니라.
참된 성품[眞性]은 지극히 선해서 악이 전혀 없으 니, 상등 철인[上哲]은 이 본성자리를 통하고,
참 목숨[眞命]은 지극히 맑아서 조금도 흐리지 않으니, 중등 철인[中哲]은 이 타고난 목숨의 경계 자리를 깨닫고,
참 정기[眞精]는 지극히 두터워서 터럭만큼의 얇음도 없으니, 하등 철인[下哲]은 이 본연의 순수한 정기를 잘 수련하여 보존하느니라. 이 삼진의 조화경계로 돌아가면 인간이 살아 있는 신이 되느니라.
“삼망은 마음[心]과 기운[氣]과 몸[身]이니라.
마음[心]은 성품[性]에 뿌리를 두지만 선과 악이 있으니, 마음이 선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화를 받느니라.
기[氣]는 영원한 생명[命]에 뿌리를 두지만 맑음과 탁 함이 있으니, 기운이 맑으면 장수하고 혼탁하면 일찍 죽느니라.
몸[身]은 정기[精]에 뿌리를 두지만 두터움과 얇음이 있으니, 몸이 두터우면 귀하고 얇으면 천해지느니라.”
“삼도는 느낌[感]과 호흡[息]과 접촉[觸]의 작용이니라. 이것이 다시 변화하여 열여덟 가지 경계를 이루나니, 느낌[感]에는 기쁨과 두려움과 슬픔과 노여움과 탐욕과 싫음이 있고, 호흡[息]에는 향내와 썩은 내[芬爛]와 차가움과 더움과 마름과 젖음이 있고, 접촉[觸]에는 소리와 빛깔과 냄새와 맛과 음탕함과 살닿음이 있느니라.
요순(堯舜)이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人心]은 위태롭기 쉽고 도가 발현된 마음[道心]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자세히 하고 오직 깨끗이 하며, 오직 한결같이 해야 진실로 그 중심을 잡을 수 있다[인심유위(人心惟危) 도심유미(道心惟微) 유정유일(惟精惟一) 윤집궐중(允執厥中)]"라고 했다.
삼가 살펴보건대 이는 만세의 심학의 연원을 열어 준 말씀으로 마음은 하나이지만, 허령(虛靈)과 지각(知覺)의 둘로 나누어 말한 것은 두 마음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상제가 부여해준 양심이 바로 도심(道心)인데, 형기(形氣)에서 일어나는 사사로운 물욕(物慾)에 끌리게 되면 이를 인심(人心)이라고 부른다. 오직 자세하고 정미하게 살펴야만 사욕에 섞이지 않고 본래의 순수한 마음[一心]을 지킬 수 있게 되나니, 그런즉 도에 합치되어 다른 길로 벗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위태롭던 것이 안정되고 미묘하게 숨었던 것이 드러나서, 동정(動靜)간에 행동하면서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차이가 사라지며, 비로소 하늘의 마음에 부합하게 된다.
장재(張載, 1020~1077)가 “마음이 성정(性情)을 거느린다"라고 하고, 소강절(邵康節)이 “마음이 태극이다"라고 하고, 정명도(淨明道)가 "마음이 리(理)이고 리(理)가 곧 마음이다"라고 하고, 정이천(程伊川)이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본성이다"라고 했다. 주자는 “성(性)이 마음의 리(理)이고 정(情)은 마음의 용(用)이다. 마음은 성정의 주인으로 이 리(理)를 갖추고 이 정을 행하는 것이다. 지(智) 로써 말하자면 시비의 이치를 아는 것이 바로 성이고, 옳고 그름을 알아서 시비를 가리는 것이 정이며, 이 리(理)를 갖추고서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 마음이다"라고 하고, 또 "마음의 전체가 담박하고 허명(虛明)하지만 만가지 이치를 다 갖추고서 세상에 운행해서, 동(動)·정(靜)을 다 꿰뚫고 있으니, 마음이 발동하지 않은 전체가 성(性)이고 발동해서 묘하게 작용하는 것이 정(情)이다"라고 하며, 또 “기의 정미로운 부분이 마음이 된다"라고 했다.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말했다. “마음을 기름은 과욕으로 간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욕에서 무욕에까지 이르러야 하니, 그렇게 하면 성(誠)이 확립되고 명(明)에 통하게 된다. 성이 확립되면 현인(賢人)이 되고, 명에 통하면 성인(聖人)이 된다. 성현은 본성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수양해야만 이르게 된다. 마음을 잘 닦으면 위대해지게 되나니, 이와 같이 되는 것은 그 사람에 달려있다." 또 말했다. “성인은 배워서 될 수가 있으나, 한결같이 함이 중요하다. 한결같다는 것은 욕심이 없는 것이니 욕심이 없으면 조용히 있을 때는 텅비우게 되고 일이 있어 움직일 때는 바르게 된다. 조용히 있을 때 텅비우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며, 움직일 때 바르면 공정하게 되고 공정해지면 두루 통하게 되니, 밝아서 통하고 공정해서 두루 통한다면 거의 도에 가깝게 된다.”
범준(范浚, 1131-1162)이 「심잠(心箴)」에서 말했다. “아득한 천지여! 천지를 굽어보고 우러러보아도 끝이 없도다. 사람은 그 사이에서 아득히 작은 몸이라. 이 몸은 창고 속의 좁쌀만 하지만, 삼재(三才)에 참여할 수 있는 까닭은 오직 마음에 있을 따름이다. 지난 옛날이나 앞으로나 누군들 이 마음이 없겠는가마는, 마음이 육체에 부림을 당하면 되면 금수가 될 뿐이다. 입과 눈귀와 수족이 움직이는 틈을 파고들어 마음의 병으로 된다. 미약한 마음을 갖가지 욕망이 공격하면 함께 있던 덕성들도 거의 없어지게 되지만, 군자가 정성을 간직해서 잘 생각하고 조심하면 천군(天君, 즉 마음)이 편안해지고 온 육신이 명령을 따르게 된다."
왕양명(王陽明 1472~1528) <이름은 수인(守仁)이다.> 선생이 말했다. “마음이 곧 리(理)인데, 천하에 마음 밖의 일이나 마음 밖의 이치가 있겠는가?" 또 말했다. “성인이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다만 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 (본래의 마음은) 순수한 천리 자체로서 터럭만큼이라도 인욕(人慾)이 섞인 것이 없다.” 또 말하기를 "마음의 본체를 알면 마음이 자연히 깨달아 알게 되니, 아비를 보면 자연히 효도할 줄 알고 형을 보면 자연히 공손할 줄 안다. 이것이 바로 양지(良知)이다”라고 했다. 또 말했다. “정일(精)의 정(精)은 리(理)로써 말함이요, 정신(精神)의 정(精)은 기(氣)로써 말함이다. 리(理)는 기(氣)의 조리(條理)가 되고 기(氣)는 리(理)가 운용한다." 또 말했다. “리(理)가 영묘하게 작용하는 곳을 아나니, 리(理)로서 주재하는 곳을 바로 마음이라 하고, 리(理)를 품수(稟受)받은 곳을 바로 본성이라고 한다.”
주자가 말했다. “마음이 움직이면 정(情)이 되는데, 의(意)는 정(情)에 말미암아서 작용한다. 마음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성(性)이라 하고, 마음으로 감응이 되어 외물과 통한 것을 정(情)이라고 하며, 마음이 외물에 감응한 바를 하나하나 풀어내서 헤아리는 것을 의(意)라고 한다."
황제(黃帝)가 물었다. “만가지 변화가 몸에서 생긴다고 말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요?" 천황진인(天皇眞人, 즉 광성자)이 대답했다. “만가지 변화란 신(神)을 말하는데, (신은 정기에 의존해있으므로) 정기(精氣)가 흩어지지 않으면 신(神)도 떠나지 않는다. 신실(神室)은 만가지 신(神)이 모이는 곳으로 곤륜(崑崙)의 가운데 있는데, 오기(五氣)를 내면으로 모으면 사람이 정기(精氣)를 가지고 신태(神胎)를 맺어서 정(鼎, 즉 머리) 위에서 조회하게 된다."
광성자가 말했다. “정기(精氣)가 뇌에 가득차게 되면 불로써 단련해서 단(丹)을 맺는다." 광성자가 말했다. “땅속을 살펴보면 뇌로 통하는 두개의 경로(經路)가 있다. 뇌 가운데 창고가 있는데, 영양(靈陽)이란 이름의 창고에는 두 혈(穴)이 있으니, 왼쪽은 '태극 혈'이라 하고, 오른쪽은 '충령(沖靈) 혈'이라 하며, 위로 천기(天)에 통하고 아래로는 해원(海源)에 이른다. 그러므로 내쉬고 들이마시는 호흡을 통해 천기가 하강하고 지기가 상승하도록 해서 두 기운이 서로 만나 진정(眞精)을 기른다. 오래 단련하면 단(丹)이 맺히는데, 이에 양신(陽神)이 몸밖으로 벗어나게 된다." 또 말했다. “하늘에는 두가지 도가 없고 성인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없다."
관윤자가 말했다. “화가 토를 생성하므로 신(神)이 의(意)를 낳고, 토가 금을 생성하므로 의(意)가 백(魄)을 낳는다. 신이 움직이면 신(神)이라 하지 않고 의(意)라 부르고, 의가 움직이면 의(意)라고 하지 않고 백(魄)이라 부른다. 성인을 만나든 만물을 만나든 나는 모두 성(性)으로써 대하고 심(心)으로 대하지 않나니, 심(心)이 아직 움트지 않은 단계가 성(性)이다." 관윤자가 말했다. “정(情)은 심(心)에서 생겨나고, 심(心)은 성(性)에서 생겨난다. 정(精)이 파도라면 심(心)은 흐름이며 성(性)은 물이다. 내가 사물들을 접하는 순간은 불똥이 튀는 순간과 같으니, 성으로 이를 받아들인다면 심이 생기지 않고 사물들은 (밖에서) 떠돌게 된다.”
백옥섬(白玉蟾)이 말했다. "마음이 곧 도(道)이고 도(道)가 곧 마음이다. 하늘의 도(道)에 두 가지 이치가 없으니, 성인의 마음 이 어찌 두 가지로 작용하겠는가? 형체는 신(神)을 임금으로 삼으니 신이 형체에게 명(命)하고, 신(神)은 성(性)을 극치로 삼으니 성(性)이 신(神)에게 명한다. 형체 속에 신이 들어가고 신 속에 성이 들어가니 이를 일러 '근본으로 돌아가서 명(命)을 회복한다'고 한다.” 또 말했다. “마음은 신(神)의 집으로, 마음이 편안하면 신(神)이 영험해지고 마음이 황폐해지면 신(神)이 미치광이처럼 된다. 마음을 비우면 바른 기운이 엉기고, 그 마음을 담담하게 가지면 온화한 양기가 모인다."
양진옹(養眞翁)이 말했다. "사람이 선(善)을 행하면 신(神)이 모여 영험해지지만, 악(惡)을 행하면 신(神)이 흩어져 떠나간다. 대개 신(神)이 몸으로 들어오면 살고, 몸을 떠나면 죽는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어찌해서 이를 생각하지 않는가?"
출처: 완역 정신철학통편(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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