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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수행법/마음공부

육묘(六妙) 법문

by 광명인 2024. 3. 23.


호흡은 생명의 근원이다. 호흡이 없으면 신체는 그 때부터 하나의 죽은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 호흡에 의지해 신체와 마음은 상호 연결 되어 비로소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콧구멍으로 공기가 드나드는 것은 호흡에 의한 것이다. 비록 공기는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엄연히 형질이 있다. 형질이 있는 것은 물(物)이요, 따라서 그것은 신체의 일부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호흡이 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 앎은 마음에 의한 것으로 정신의 일부분이다. 여기서 우리는 호흡이 신체와 마음을 연결시킬 수 있으며, 또 그것이 신체와 마음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육묘(六妙) 법문은 이런 호흡의 작용에 착안한 것으로 정좌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적용되는 방법이다. 

육묘법문은 다음과 같은 여섯 술어로 구성된다.
(1) 수(數) (2) 수(隨) (3) 지(止) (4) 관(觀) (5) 환(還) (6) 정(淨)

(1) 수(數)란 어떤 것일까? 바로 수식(數息)을 의미한다. 수(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정좌 시작 후 먼저 기식(氣息)을 조화시켜 편안히 한 후 서서히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1에서 10까지, 숨을 내쉴 때마다 혹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하나하나 세어간다. 마음은 숫자세기에만 전념하여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다. 만약 10까지 세지 못하고 홀연 딴 것을 생각하게 되면 세던 것을 중단하고 다시 1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숫자를 세는 것을 수수(修數)라 한다. 수식(數息)의 수련이 오래되어 점차 숙달되면 1에서 부터 10까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으며 호흡은 극히 미미하게 된다. 이 때는 숫자를 더 이상 셀 필요가 없는데, 이것을 증수(證數)라 한다.

(2) 이 단계가 지나면 수(數)를 버리고 수(隨; 따를 수)를 수련하기 시작한다. 수(隨)에도 두 종류가 있다. 
앞에서 설명한 숫자세기를 버리고 오직 호흡의 출입에만 마음을 집중시킨다. 이렇게 하면 마음은 호흡을 따르고 호흡은 마음을 따라 마음과 호흡이 면밀하게 서로 의지하게 된다. 이것을 수수(修隨)라 한다. 마음이 점차 세밀해지면 몸의 일부분에서 땀구멍으로 호흡이 출입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때 의식은 고요히 응어리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을 증수(證隨)라 한다. 이것을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면 수식(隨息) 또한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드는데, 이 때는 수(隨)를 버리고 지(止)를 수련해야 한다.

(3) 지(止; 그칠 지)에도 두 종류가 있다.
수식(隨息)을 행하지 않고 의식이 있는 듯 없는 듯 마음을 코끝에 묶는다. 이것을 수지(修止)라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홀연 마음과 몸이 없어져버린 듯한 정(定)의 상태로 접어든다. 이것을 증지(證止)라 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여기에만 머물지 말고 마음의 빛(지혜)을 되돌려 관(觀)을 수련해야 한다.

지(止)란 정지다. 우리의 망심은 원숭이와도 같아 한시도 정지하려 들지 않으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것인가? 원숭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나무에 꽁꽁 묶어두는 수밖에 없다. 지(止) 수련의 제일보를 '계연지(繫緣止; 묶을 계)'라 한다. 망심의 활동은 반드시 정해진 대상이 있다. 대상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이다. 이런 사물을 연(緣)이라 한다. 망심은 홀연 갑(甲)을 생각하다가도 홀연 을(乙) 병(丙) 정(丁) 을 생각한다. 이것을 반연(攀緣)이라 한다. 이런 망심을 마치 원숭이를 묶어두듯 어느 한 곳에 묶어두기 때문에 계연지(繫緣止)라 한다. 지(止) 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통상 이용되는 것은 다음 두 가지다.

   1) 코끝에 마음을 묶는다
일체의 망상을 떨쳐버리고 전심으로 코끝을 주시한다. 숨결이 들어 오고 나가면서도 어디로 들어오는지 어디로 나가는지 모르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망심이 서서히 사라진다.

   2) 배꼽 아래(하단전)에 마음을 묶는다
인체의 중심은 아랫배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 마음을 묶는 것이 가장 온당한 방법이다. 이 때 코로 들이키는 숨은 코와 인후를 거쳐 아랫배로 직통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오래 지속되면 망념이 감소할 뿐 아니라 호흡의 조정에도 도움이 된다.


(4) 관(觀; 볼 관)에도 두 종류가 있다.
정(定)의 상태에서 미세한 호흡의 출입을 눈여겨 관찰하면 마치 공중의 바람처럼 아무 실재(實在)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수관(修觀)이라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심안(心眼)이 밝아지고 호흡이 전신의 땀구멍을 통해 출입하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것을 증관(證觀)이라 한다. 증관(證觀)이 되면 다음에는 환(還)을 수련한다.

관(觀)은 바깥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공관(空觀)이다. 우주 내의 모든 사물, 크게는 세계와 산하, 작게는 내 몸뚱이까지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모두 공(空) 이다. 이런 마음으로 공(空)을 바라보는 것을 공관(空觀)이라 한다. 오랫동안 공관을 연습한 후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 데도 반드시 대상이 있으며, 그 대상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임을 알 수 있다. 세간의 사물은 모두 내부적 인(因)외부적 연(緣)이 결합되어 성립한다. 예를 들면, 오곡의 종자가 능히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은 내부적 인(因)이며, 싹을 틔우게 할 수 있는 수분과 토양은 외부적 연(緣)이다. 만약 오곡의 종자를 창고에만 쌓아두고 밭에 뿌리지 않는다면 영원히 싹을 틔울 수 없다. 내부적 인(因)은 있으나 외부적 연(緣)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넓은 밭과 충분한 수분이 있다 하더라도 씨앗이 없으면 영원히 싹은 틀 수 없다. 외부적 연(緣) 은 있으나 내부적 인(因)이 없기 때문이다. 세간의 사물은 모두 인과 연이 합쳐져 존재한다. 인과 연이 분산되면 존재 또한 멸한다.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생각도 이처럼 모두 가상으로서 조금도 집착할 만 한 것이 못 된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가관(假觀)이라 한다. 공관(空觀)과 가관(假觀)을 비교해 보면 공관이 무(無)에 치우친 데 반해 가관은 유(有)에 치우쳐 있다. 공부는 공관(空觀)과 가관(假觀)만으로는 아직 불충분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관(空觀)시에도 공(空)에 집착하지 않고, 가관(假觀)시에도 가(假)에 집착하지 않는, 즉 양변을 떠나 마음속에 아무 것도 걸림이 없이 밝은 상태를 중관(中觀)이라 한다. 


(5) 환(還; 돌아올 환)에도 두 종류가 있다.
지금까지는 마음으로 호흡을 관조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여기에는 주체로서의 심지(心智)와 대상으로서의 호흡이 대립된다. 이것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여기서 다시 마음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수환(修還)이라 한다. 주체, 즉 스스로 관조할 수 있는 심지(心智)는 마음으로부터 생긴다. 마음으로부터 생긴 것은 마음과 함께 사라지고, 생겼다가 다시 사라지고 하니 [일생일멸(一生一滅)] 본시 허망한 것이요, 실재(實在)가 아니다. 마음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은 물 위의 파도와 같다. 파도는 물이 아니다. 파도가 가라앉으면 물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마음의 생멸(生滅)도 파도와 같아 생멸하는 마음은 본래의 마음이 아니다. 본래의 마음은 원래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존재하지 않기에 공(空)이며, 공(空)이기에 주체도 객체도 없다. 이 상태를 증환(證還)이라 한다. 오직 하나의 환상(還相)이 상존(常存)하는 것을 체득한 후에는 다시 환(還)을 버리고 정(淨)을 수련해야 한다.

(6) 정(淨; 깨끗할 정)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한 마음이 청정하여 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수정(修淨)이라 한다. 마음이 고요한 물과 같아 망상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본래의 마음이 드러나며 이것 외에 달리 본래의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파도가 완전히 가라앉은 물과도 같다. 이것을 증정(證淨)이라 한다. 

이상의 육묘법문 중 수(數)와 수(隨)는 수행의 예비단계요, 지(止)와 관(觀)은 수행의 본래단계요, 환(還)과 정(淨)은 수행의 결과다. 이 때문에 육묘법문에서는 지(止)가 중심이 된다. 관(觀)은 단지 지(止)를 도와 그것이 밝게 빛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야 환(還)과 정(淨)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출처: 인시자 정좌법, 정좌수도강의(남회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