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始無始一]
[일시무시일]
하나는 시작이나 시작이 없는 하나이니라.
1) 모든 창조적 변화의 근원인 一者의 본질은 무엇인가? (一神, 一氣, 一心, 또는 道, 太極 등으로 이해되는 창조의 근원, 그 창조의 본질은 무엇인가? 모든 존재의 바탕인 無란 무엇이며, 有無 관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一者가 창조의 근원이라면 이 一者속에는 창조의 목적과 원리[理], 창조의 주체[神]와 객체[氣]가 전부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를 이름붙이기 힘들어 동양에서는 道, 太極, 또는 마음이라 했고, 서양은 God으로 칭했다. 그러면 道, 太極, 마음 또는 God의 개념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창조의 핵심 요인은 무엇인가?)
5,500여 년 전 배달국때 하도와 팔괘를 그려 동방문명의 틀을 놓으신 태호복희씨, 그 분과 동문수학한 선인 발귀리는 천부경 81자를 노래로 풀어서 전했는데, 그 발귀리 송가의 내용을 보면 천부경의 일자一者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大一其極대일기극 是名良氣시명양기 (그 일자를 양기라 부르는데)
無有而混무유이혼 虛粗而妙허조이묘 (그 일자는 무유無有가 혼재되고, 허조虛粗가 묘하게 섞여 있다)
三一其軆삼일기체 一三其用일삼기용 (삼三은 일一을 본체로 삼고, 일一은 삼三을 작용으로 삼으니)
混妙一環혼묘일환 軆用無歧체용무기 (유무의 혼재됨과 허조의 섞임은 하나의 순환 고리로 이어진다)
眞命所源진명소원 萬法是生만법시생 (일자는 참된 생명과 만법이 일어나는 근원이다)
日月之子일월지자 天神之衷천신지충 (그것은 밝음의 씨앗이요, 천신의 마음이다)
모든 존재와 창조의 근원인 一者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데요. 기독교는 신(God), 도교는 도(道), 불교는 마음(心), 유교나 역학에서는 천(天)이나 태극(太極)으로 보고 있죠. 그러면 모든 창조적 변화의 본체로 알려진 이 신(God)과 도(道), 마음(心)과 태극(太極)이 실질적인 창조작용을 할 수 있게 하는 창조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보면, 창조자의 의지와 목적이 없는 창조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최초의 창조자의 의지와 목적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 의지와 목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어 현실에 드러나는 걸까요? 여기서 삼三이란 숫자의 기능이 매우 오묘합니다.
[주요 문화권과 종교에서 인용되는 일자에 관한 글]
道之大原出乎三神也도지대원 출호삼신야 (도의 큰 근원은 삼신에서 나옵니다)
道旣無對無稱도기무대무칭 (도에는 대립도 없고 이름도 없으니)
有對非道有稱亦非道也유대비도유칭역비도야 (대립이 있으면 도가 아니요, 이름이 있어도 도가 아닙니다)
[仙人 有爲子의 도의 근원, 환단고기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편]
삼신은 만물의 존재 근거로서 무궁한 조화의 경계에 계시는 무형의 신, 이 삼신이 현실계에 자기를 드러낸 것이 바로 ‘하늘과 땅과 인간’이다. (출처: 안경전 역주본 환단고기 해제, 신교사관이란 무엇인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장]
道生一도생일 (도가 하나를 낳고)
一生二일생이
二生三이생삼
三生萬物삼생만물 (셋이 만물을 낳는다)
萬物負陰而抱陽만물부음이포양 (만물은 음을 등에 업고 양을 가슴에 안았다)
[도덕경 42장]
若人欲了知약인욕료지 三世一切佛삼세일체불
應觀法界性응관법계성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만약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려고 하거든 응당 법계의 성품을 관찰하라.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화엄경 사구게]
濂溪先生曰염계선생왈
無極而太極무극이태극 (무극이 곧 태극이니)
太極動而生陽태극동이생양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낳고)
動極而靜동극이정 (그 움직임이 극에 이르면 정하나니)
靜而生陰정이생음 (정하여 음을 생하고)
靜極復動정극부동 (정이 극에 이르면 다시 동한다)
一動一靜일동일정 (한번 동함과 한번 정함이)
互爲其根호위기근 (서로 그 뿌리가 되어)
分陰分陽분음분양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니)
兩儀立焉양의입언 (음과 양이라는 두가지 질서가 이루어진다)
[근사록 도체 1장]
1)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이하 김재홍저 '천부경을 주역에 묻다'에서 주요부분 발췌)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일一과 무無의 의미와 그 상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일一의 함의含意는 먼저, 일반적인 의미로서 통일된 하나(일一)라는 의미와 역학易學의 측면에서 보면 만물 생성의 근원인 태극太極을 의미하고 있다.
「주역」에서는 "역易에는 태극太極이 있고, 태극은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고, 팔괘는 길흉吉凶을 정定하며, 길흉은 큰 업業을 낳는다." 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태극太極은 역수歷數로서의 일一을 의미한다. 즉 일一이 만물 생성의 근원인 태극太極임을 말한다. 태극太極이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낳고, 인간사의 길흉까지 정한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역」에서 "중中이란 십십十十과 일일一一의 공空이니라"라고 하였다. 중中이 십십일일十十一一의 공空이라는 것이다. 즉 일一은 만유생명이 시작하는 곳이요, 십十은 돌아가 결실을 거두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씨와 열매의 관계로 보면 씨(일一)의 완성이 열매(십十)인 것이다.
무시일無始一은 태극太極인 하나는 무無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무無는 태극의 근원이요, 태극의 본체인 무극無極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의 무無를 태극의 근원인 무극無極으로 보는 데는 다음과 같은 경전의 내용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도가道家의 입장에서 무극無極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무극無極에 대해서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노자老子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흰 것을 알고 검은 것을 지키면 세상의 법도가 된다. 세상의 법도가 되면 항상 덕에 어긋나지 않게 되어 무극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의 무극無極은 선악의 분별을 떠난 도 의 본원本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도덕경」 제40 장에서 "세상의 만물은 유有에서 나오고, 유有는 무無에서 나온다."라고 언급한 내용은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의 의미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노자의 무극無極은 주렴계의 '무극이 태극(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는 의미와는 달리 '무극이 태극을 생한다(무극생태극無極生太極)'의 의미로 보인다. 노자 도덕경 제1장에서도 "이름이 없음은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의 것이라 그렇고,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을 낳은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무無는 천지의 시작이요, 유有를 만물의 어미를 이름함이라고 하여 무無를 천지天地가 시작된 근원이라는 의미로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장자의 '재유편'에서 무無에 대하여 "다함이 없는 문으로 들어가 다함이 없는 들판에서 노닐다"라고 하였다. 이는 무의 의미를 다함이 없는 의미로 설명한 것으 로 보인다.
둘째, 유가儒家의 입장에서 무극無極의 의미를 살펴보자.
먼저, 주렴계는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니, 태극이 움직여서 양陽을 생성하고, 움직이는 것이 지 극해서 고요하며, 고요해서 음陰을 낳고, 고요함이 지극하면 다시 움직이나니,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이 서로 그 뿌리가 되며, 음陰으로 나뉘고 양陽으로 나뉘어 두 가지 모양이 세워지도다. 양陽이 변하면서 음陰을 합하여,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의 오행五行이 생성되며, 다섯 가지의 기운이 골고루 펼쳐져 춘하추동 사시四時의 계절이 운행 되도다. 오행五行은 하나의 음양陰陽이요, 음양陰陽은 바로 하나의 태극太極이니, 태극은 본래 무극無極이다"라고 하여,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임을 주장하고 있다. 즉 태극에 의해 만물萬物이 생성生成되고, 생성된 만물은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물의 생성변화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그 근원을 살펴보면 태극에서 나오고, 무극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극이 태극이 된다는 것은 무극이 곧 태극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주희는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에 대하여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에서 "무극이면서 태극이다. 태극太極 외에 다시 무극無極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무극無極은 없다는 의미로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며 방향과 장소도 없고 형체와 모양도 없다는 의미이다. 태극太極이란 조화의 실제적인 핵심으로 온갖 사물의 근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태극太極은 본래 무극이다(태극본무극야太極本無極也)라고 하여 무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열자列子의 탕문湯問편에서는 하혁의 말을 빌려 "사물의 끝과 시작은 애초에 다함이 없다."라고 하였다. 열자列子에서도 무無는 다함이 없음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 정역正易에서는 무극無極에 대하여 "(손을)들어 펴면 (신伸) 무극無極이니 십十이요, 십十하고 (모지母指를 굴屈하면) 태극太極이니 일一이다. 하나(일一)가 열(십十)이 없으면 체體가 없고, 열(십十)이 하나가(일一) 없으면 용用이 없으니, 합合하면 토土라. 가운데 있는 것이 오五니 황극皇極이요 합덕세계合德世界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수지상수手指象數를 근거로 살펴보면, 엄지손가락을 굴屈하면 일一이요, 태극太極이며, 펴면(신伸) 십十이요, 가운데 오五가 황극皇極이라는 것이다. 『정역」에서 십무극十無極은 하늘을 상징하고, 일태극一太極은 공간에서 만물을 생성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을 채용體用의 논리로 보면 「천부경」 첫 구절의 일一은 무無의 용用이요. 무無는 일一의 체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인 일一인태극太極은 무無의 무극無極을 체로 하여 시작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역」에서는 하도의 도상에 있어서 본체도수인 십十과 오五가 중앙에 합덕合德되어 있는 것은 오황극五皇極이 십무극十無極에 내포되어 있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십十과 오五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천도天道를 인간이 주체적인 자각 원리를 통해서 드러낸 천인합덕天人合德의 경지를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네 번째, 불가佛家의 논리로 보면 무無는 공空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불가의 공空사상에서 공空은 텅빈 것이지만 가득 차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공空의 관점에서 보면 무無이지만, 연기의 관점에서 보면 유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유有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제행무상의 무이다. 그러므로 온 우주가 공空(마음)을 근원으로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 전병훈은 단丹의 입장에서 무극無極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의 '정신철학통편'에서 "무시無始는 곧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니, 태극太極이 동動하면 양陽을 생하고, 정靜하면 음陰을 생한다. 하늘과 땅이 비로소 세워지니 자축지회子丑之會이다. 이런 까닭에 일一은 무시無始에서 비롯된다. 일一이라는 것은 태극太極의 일一이다. 원신元神이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상의 논거를 참고하여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의 의미를 살펴 볼 때 하나(일一)는 태극太極으로 만물생성의 근원이요, 무無는 무극無極으로 태극太極의 근원으로서 다함이 없음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즉 무無와 일一은 우주 만물생성의 본체인 무극無極과 만물생성의 근원인 태극太極을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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