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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기원과 힘

문자의 기원과 동이족

by 광명인 2023. 10. 9.

[인간은 언어적 존재(Homo loquens)이며, 인간이 다른 종들보다 우월한 원인은 언어와 문자라는 탁월한 도구를 활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은 문자로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의 족적들을 남기고, 동시에 미래를 계획하고 실현해가는 존재들인 것이죠. 따라서 문명의 시작문자의 발명과 맞물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동북아 문명권에서 문자는 누구에 의해서 최초로 발명되고 사용되었을까?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문자의 발명은 당연히 중국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환단고기문자를 발명동북아 문명의 기초를 다진 민족이 동이족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1)한자漢字를 창조한 동방 동이족


고대 문명의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문자사용이다. 문자는 문화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포함한 우리나라 고대 사회에는 일찍부터 문자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환웅천황이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을 창제한 이래로, 5세 태우의 환웅천황의 막내아들 태호복희씨와 복희국 13세 임금인 주양朱襄씨가 중원 땅에서 육서六書 원리를 제정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한자漢字의 뿌리[上古金文]가 되었다.

배달국에서는 산목算木숫자로 통용되었고 14세 자오지 환웅천황 때는 화서花書가 사용되었다. 자오지천황의 동방 통일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이전부터 개량해 오던 배달국의 신지 문자가 중원에도 전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창힐 문자이다. 창힐은 헌원의 신하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자오지환웅의 제후로서 배달국 문자[조적서鳥跳書]를 서방에 전하여 동서 문화 통합을 시도한 봉조鳳鳥 토템의 동이족이다. 창힐 문자는 복희씨 이래의 옛 문자와 더불어 은나라 갑골문의 뿌리가 되었다. 

갑골甲骨 문화도 본래 동방 동이족이 창조하고 계승·발전시킨 문화이다. 최초의 갑골(BCE 3500년경)은 동이족의 활동 지역인 발해연안 북부에서 출토되었다(은나라는 요령성 지역에서 출발해 중원으로 진출했다). 중국 고대 왕조 중에서도 전형적인 동이 계열인 상商나라에서 사용된 초기 갑골에는 상제님(하나님)을 위시하여 조상신과 산천, 일월성신 등 자연신을 숭상하면서 점복을 행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이형구 『한국 고대문화의 기원』,107~113쪽) 

하남성 안양현 출토 갑골문

상나라 갑골문 이전의 문자들도 중국 곳곳에서 발굴되는데, 이것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중국인 학자 뤄빈지駱貧基(1917~1994)는 『금문신고金文新攷』에서,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주체는 한족漢族이 아니라 동방 한민족이라  단언하였다. (김대성 엮음『금문의 비밀』 참고) 

2)한글의 원형 문자 가림토 

『단군세기』 3세 가륵嘉勒단군조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가륵 2년 (BCE 2181)에 삼랑 을보륵이 정음 38자를 창제했다는 기록과  함께 글자의 형태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가림토加臨土’ 또는 '가림다加臨多’라 불리는 이 글자의 모습은 세종 때 창제한 한글의 형태와 매우 흡사하다. 또 일본 쓰시마섬對馬島과 큐슈九州의 신궁神宮에서 자주 발견되는 아히루 문자阿比留神字와도 유사한 점이 대단히 많다. 이것을 근거로 아히루 문자가 조선으로 건너가서 한글의 원형이 되었다는 망언을 일삼는 일본 학자가 많다. 몇 해 전 세계 언어학자들은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하면서도 한글 창제 연도가 몽골 파스파 문자와 일본 아히루 문자보다 후대이기 때문에 여러 나라 문자를 모방한 것이 아니냐는 공격을 하였다. 국내 학자들은 이 주장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하지 못한 씁쓸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한글이 참고한 문자에 대한 명백한 해답이 기록에 남아 있다. 『세종실록』 25년 12월 조에 “이 달에 임금께서 언문 28자를 지으시니 그  글지는 옛 전문을 모방하였다(其字偏古篆)"라고 하였고, 최만리도 상소문에서 “글자의 모습은 옛 전문을 모방했지만 음을 쓰는 것과 글자를 배합한 것은 다 옛것과 반대이다(字形倣古之菉文, 用音合字, 盡反於古.)"라고 하여 예전의 전서를 모방했음을 밝혔다. 우리의 옛 기록을 보면 민족 고유의 문자가 있었다는 것이 여러 곳에 나타난다 「소도경전본훈」에 남해현 낭하리 암벽신시 고각神市古刻이 있다고 하였고 최치원은 신지 혁덕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한 『천부경天符經』을 발견하고 이를 한문으로 번역하여 후세에 전했다고 한다. 또 『평양지』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선조 16(계미癸未)년에 평양 법수교 밑에서 발굴된 세 조각의 석비石碑 속에서 문자가 나왔다는 기록이 있고, 실학자 신경준申景濬도 『언서운해諺書韻解』에서 우리 동방에서 예로부터 세속에서 쓰던 문자가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남해 상주 석각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단군조선 시대에 우리 영토였던 일본의 아히루 문자나 한글은 모두 원시 한글인 가림토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구자라트Gujarat 주州에서 쓰는 문자도 한글과 유사하다. 자음은 상당수가 같고 모음은 10자가 똑같다. 구자라트 주의 간판을 보면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글과 비슷하여 한글 식으로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 언어의 하나인 타밀어 Tamil  language에도 한국어와 일치하는 말이 많이 있다고 한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보건대, 3세 가륵단군 때 만든 가림토 문자 한글의 모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몽골 인도 문자의 원류가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 단군조선은 그 문화권이 인도와 일본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는 외국 신명도 조선 신명과 통(通)해야 일이 되고 조선 신명을 잘 대접해야 하느니라.”(도전11:252)
●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시속에 중국을 대국(大國)이라 이르나 조선이 오랫동안 중국을 섬긴 것이 은혜가 되어, 소중화(小中華)가 장차 대중화(大中華)로 바뀌어 대국의 칭호가 조선으로 옮겨 오게 되리니 그런 언습(言習)을 버릴지어다.” (도전5:118)

원문출처: 이것이 개벽이다


트랜스유라시아어족(알타이어족)의 기원:
한국어 몽골어 일본어 등의 ‘뿌리 언어’로 여겨지는 ‘트랜스유라시아어족(알타이어족)’의 기원이 약 9000년 전 중국 동북부 요하(遼河·랴오허) 일대 농업 지역이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약 4000년 전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이주하면서 언어가 퍼져나갔다는 기존의 ‘유목민 가설’을 뒤집은 것이다. 국제공동연구팀은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기원과 전파 양상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 언어학, 고고학, 유전생물학 등 세 분야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고대의 농업·축산 관련 어휘를 분석하고, 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지에 대한 고고학 연구결과, 고대 농경민의 유전자 분석결과와 비교했다. (출처: 동아사이언스)

갑골문의 수수께끼:

중국인들이 한자(漢字)의 원형이 거북이나 소뼈 등에 새긴 갑골문(甲骨文)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불과 10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은 역사의 수수께끼다. 그 전까지 갑골은 용골(龍骨)로 불리며 만병통치 약재로 쓰였다. 19세기 말 북경의 국자감제주(國子監祭酒) 왕의영(王懿榮·1845~1900)은 학질에 걸리자 용골을 구입했다가 글씨를 발견하고 이것이 갑골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소수의 약재상들만 알던 용골의 출처는 하남성(河南省) 북부 안양현(安陽縣) 서북쪽 소둔(小屯)촌이었는데, 이곳이 은 왕조의 수도 은허(殷墟)였다. 갑골문동이족 문자라는 사실이 불편한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갑골문에 알타이어의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갑골문은 점치는 복사(卜師)가 신에게 묻는 복문사(卜問辭)로서 그림으로 나타낸 상형문이다. 상형문은 고립어 구조이기 때문에 알타이어의 요소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말까지 자신들이 쓰는 한자의 원형이 갑골이란 사실을 중국인들은 왜 몰랐을까? (출처: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발해연안에서 발생한 갑골문화:
우리는 흔히 갑골문자가 중국의 은나라에서 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갑골하면 으레 은나라의 것으로 연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민족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발해연안에서 발생하여 서남쪽으로 내려가 황하 이북의 은허에서 문자가 있는 갑골문화로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청동기시대에 만주 지방과 한반도에서 갑골문화가 유행하고, 이어서 일본으로 전 파되어 야요이시대에 유행하였다. 이 갈래에서는 비록 문자를 대동하고 있지 않지만 갑골의 점복재료나 방법, 점복 행위 및 목적은 은나라의 갑골문화와 일치한다. (출처: 블러그 홍산문화에서 기원한 갑골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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