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스미스는 우리가 빵이나 옷을 얻을 수 있는 이유가 빵집 주인이나 재단사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개인의 이기심이 조화를 이루며 경제가 움직이는 원리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표현했지만, 동시에 개인의 이기심을 통제하고 도덕적 행동을 유지하게 하는 내면의 공감(sympathy) 능력도 강조했습니다. 스미스 이전의 중상주의자들은 국부(國富)를 국가가 보유한 금과 은의 양으로 정의했지만, 그는 『국부론』에서 국가의 진정한 부는 국민이 매년 소비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이라고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스미스는 이 부를 창출하는 근본적인 원천이 바로 노동이며, 모든 재화의 가치는 그 노동량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 역시 이러한 노동가치론을 인정했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근본적인 모순과 노동자 착취의 구조적 문제를 더욱 깊이 분석했습니다. 그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로부터 '절대적 잉여가치(absolute surplus-value)'뿐 아니라 기술 진보와 노동 강도 증가를 통해 '상대적 잉여가치(relative surplus-value)'를 끊임없이 추출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계화를 가속화할수록 실업이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하락하며 빈곤이 심화되어 결국 구매력 감소로 공황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는 문제를 예리하게 짚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예상한 것과 달리, 케인스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수정자본주의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위기를 일정 부분 해소하며 새로운 균형을 찾아왔습니다.
결국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공통된 고민은 인간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에서 출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자본주의의 위기도 결국 물질적 가치만을 우선시하며 인간성을 소외시킨 데 근본적 원인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 회복과 도덕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협력, 공동체의 선(善)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경제 시스템을 재구성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의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의식 개벽이 먼저 선행이 되어야 합니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제4부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
[나는 자본주의 세상의 승리자였다. 갑자기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고 한순간에 패배자가 되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2008년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 그때는 금방 진정될 줄 알았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지난 250여년 동안 끊임없이 위기의 파도를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때마다 경제학의 새러운 아이디어는 위기의 파도를 헤쳐나갈 나침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과연 나올까요?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세상을 구한 위대한 경제학자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아시아의 한 작은 나라에 사는 우리가 유럽과 미국의 경제학자들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묘사된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경제 제도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아담스미스(Adam Smith, 1723.06.05~1790.01.12)가 '부자들의 편'이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지지했어요. 그가 시장개방을 신봉하는 이유는 '빈곤층' 때문이에요."
에이먼 버틀러 (Eamon Butler)
영국 아담스미스 연구소 소장
"마르크스(Karl Marx, 1818.05.05~1883.03.14)가 최고의 사상가인 것은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모두 동의할 겁니다."
벤 파인 (Ben Fine)
영국 런던대 경제학 교수
저서: 마르크스 자본론, 소비의 세계: 물질과 문명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도 시장을 믿었어요. 케인스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열망을 위한 최고의 시스템'이라고 믿었어요."
로버트 스키델스키 (Robert Skidelsky)
영국 상원의원, 워릭대 명예교수/ 케인스관련 세계 최고의 권위자
저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 평전
"사실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우리가 자유주의 시장 질서에 살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거에요."
스티브 데이비드 (Steve David)
영국 경제연구소 교육담당이사
자 그렇다면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구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케인스는 두 가지 문제(실업문제, 소득과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면 자본주의는 생존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로버트 스키델스키
"어떤 저항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영감을 필요로 합니다. 그를 때 마르크스를 찾죠."
조나단 울프 (Jonathan Wolff)
영국 런던대 철학 교수/ 마르크스 전문가
저서: 정치철학 입문, 로버트 노직: 소유와 정의, 그리고 최소 국가
"경제위기가 닥칠 때 급진적 사상가가 다시 주목받는다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죠."
벤 파인/ 영국 런던대 경제학 교수
아담 스미스는 경전 같은 존재에요.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어요. 모두에게 해답을 주죠.
-에이먼 버틀러
그럼 먼저 경제학의 창시자, 자본주의의 아버지라하는 아담 스미스부터 만나러 가볼까요. 1759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대학,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자유롭고 진취적인 분위기의 이 대학에 한 유명한 도덕 철학 교수가 있었습니다.
아담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
글래스고대학 철학교수, 경제학의 아버지, '도덕감정론', '국부론' 저자
이상한 걸음걸이와 말투로도 유명했지만 그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었죠.
"비교적 수줍은 사람이었어요. 독신으로 평생 어머니와 함께 살았죠. 글래스고 대학에서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어요."
-에이먼 버틀러
그 시기에 스미스는 사람들의 본성과 행동을 꾸준히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모아서 '도덕 감정론'이라는 책을 냈죠. 그의 책은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어떻게 이기심을 누르고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도덕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거죠."
-에이먼 버틀러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은 마음속에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공명정대한 관찰자(the real and impartial spectator)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관찰자가 이기심을 잘 조절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해준다는 거죠. 이러한 주장은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유명인이 됐고, 그 유명세 덕분에 아주 특별한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찰스 타운젠드(Charles Townshend) 공작이 그의 양아들 헨리 스커트의 대륙 여행에 동행하며 가정 교사를 맡아 달라고 한 것입니다. 당시 귀족 가문에서 유행하던 자녀 교육 방법 중 하나였죠. 스미스는 수락했습니다. 여행은 3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그는 파리, 뚜루즈, 제네바 등을 다니면서 당시에 쟁쟁한 사상가들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미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대륙여행이 큰 영향을 끼쳤어요. 공작 아들과 유럽을 여행하면서 견문록을 쓰는데 그게 국부론의 시작인 셈이죠."
-에이먼 버틀러
18세기는 변화의 시대였습니다.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고 근대 자본주의가 막 시작되는 시기였죠. 또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시작되서 생산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물건을 팔 수 있는 더 넓은 시장이 필요해졌고 자유무역이 활발해졌습니다. 그 시기에는 국가의 부를 금과 은의 축적으로 보는 중상주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죠.
"아담 스미스를 가장 화나게 했던 건 중상주의였어요. 당시 한 나라의 부란 국가의 금고에 얼마나 많은 금. 은이 쌓여 있는지가 결정했어요. 그게 그 나라의 부의 기준이었어요."
-에이먼 버틀러
그러던 중 스미스는 프랑스에서 만난 케네(Francois Quesnay, 1694~1774)로부터 아주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얻게됩니다. 케네는 원래 루이 15세의 주치의였습니다. 또 경제표를 만들어낸 경제학자로도 유명했죠. 의사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를 하나의 육체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대해 연구했죠. 그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식량을 먹어야 살 수 있듯이 사회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인간이 노동을 해서 식량과 원료를 얻고 상품을 유통시켜야 사회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는 세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고, 화폐는 그 세 계급 사이를 돌면서 생산물을 공급한다는 것이죠. 마치 혈액처럼 또한 그는 토지만이 부의 원천이라는 중농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케네의 사상은 스미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국부 즉 국가의 부는 중상주의에서 주장하듯 금과 은의 축적이 아니라는 것이죠. 스미스는 국부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국부를 증진시키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3년간에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촌 자넷과 그의 어머니는 그가 평생을 의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미스는 그들 덕분에 연구와 집필에만 열중할 수 있었죠. 집에 돌아온 스미스는 여행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국부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전에 글래스고 대학에 있을 때 직접 본 것들도 소중한 자료가 되었죠.
"글래스고가 경제적으로 아주 풍요해지기 시작할 때였어요. 담배 수출입의 중심지였어요. 항구가 있는 글래스고는 경기가 좋았죠. 경제적인 부흥이 시작되는 시기였어요."
크리스토퍼 베리 (Christopher Barry)
글래스고 대학 정치학 교수
크고 작은 공장에서 부가 매일 생되는 것을 보면서 자유시장의 위력을 느낄수 있었던 것이죠.
[시장경제는 사고, 파는 사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으며 사회의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할 수 있다.]
그는 국부론 집필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아주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어떤 학자와 철학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가 빵과 버터를 찻주전자에 넣은 일도 있어요. 국부론 원고에 대해 고민하며 걷다가 교회 종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려보니 16Km나 지나쳐 걷기도 했었죠."
-에이먼 버틀러
또한 그는 데이비드 흄과도 자주 만났습니다. 데이비드 흄 (David Hume, 1711~1776)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인성론'의 저자
"우리의 마음은 한창인데, 죽을 때가 다가오는 거 같아. 나 아직 괜찮아 보이지않아?"
"데이비드, 나도 이제 신경통이 와서 지팡이를 사용해요. 하지만 나도 괜찮죠? 우리가 빵이나 술, 고기를 먹게 되는 것은 가게주인들의 이웃에 대한 자비심 때문이 아니에요. 각자의 이기심 때문이죠. 그 이기심이 모여서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거에요."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경제를 이끄는 것이라고 씌어 있었잖아."
"흄의 가장 큰 공헌은 그의 실증적인 철학이었어요. 머리속의 구상이 아니라 실제 사물을 보고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지요. 흄의 실증 철학이 아담 스미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둘은 평생 친구였어요."
-에이먼 버틀러
그는 많은 사람들과 사귀지는 않았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과도 지속적인 모임을 가졌습니다.
조지프 블랙 (Joseph Black, 1728~1797), 영국의 화학자, 이산화탄소 발견 잠열에 대한 연구
제임스 허턴 (James Hutton, 1726~1797), 영국의 지질학자, 동일 과정설
그들은 매주 저녁을 함께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죠.
"핀 공장에 가봤더니 혼자서 핀을 만들면 많아야 하루에 20개밖에 못 만들어요. 그러나 18단계의 제조공정으로 10명이 작업하면 하루에 (200개가 아닌) 4만 8천 개를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1776년 3월 드디어 성서 이래 가장 중요한 책이라 불리는 '국부론'이 탄생되었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밝히고자 했던 것은 바로 국부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어디서든 노동이 이루어지면 부가 생산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부를 모든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이라고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국부를 만들어낼까요?
케네의 중농주의는 오직 농업만이 부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노동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가치는 노동에 의해 생긴다는 것이죠. 그는 국부론을 통해 당시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중상주의의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또한 모든 가치가 노동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상품의 교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노동량으로 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은 무슨 뜻일까요? 스미스는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돈을 벌고 싶은 이기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가격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서 시장경제를 잘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죠. 자유로운 시장만이 개인과 국가를 부자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에서 딱 한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이 한 문장으로 그가 꿈꾸는 완전한 자유시장 체제라는 이상적인 세상을 설명했습니다. 국부론은 6개월 만에 초판 1천부가 모두 팔려 나갔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놀라운 기록이죠. 스미스는 당대 최고의 사상가라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국부론의 첫장은 우리가 현대 경제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여러 개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부론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뉴턴의 이론만큼 정말 중요한 책이죠. 근대 경제의 기본원리를 설명했어요. 분업과 국민총생산, 무역과 개방의 중요성, 보호무역의 문제점들, 지난 수십 년간 경제학 교과서가 됐지요."
-에이먼 버틀러
그러므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철 지난 고전이 아닙니다. 최초로 자유시장 체제를 형성한 기본틀입니다. 지금도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명저인 것 입니다. 하지만 국부론이 출간된 후 정부의 개입이나 규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담 스미스를 시도 때도없이 끌어다 댔습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스미스의 사상은 많은 오해를 받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아담 스미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자유무역을 신봉하고, 거대정부를 반대하고, 자유 시장 경제를 지지했지요. 그러니 아담 스미스는 '돈 많은 부자들의 편'이라고 오해했죠."
-에이먼 버틀러
자유로운 개인의 이익 추구, 스미스에 대해 가장 오해를 많이 낳는 부분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하지만 그는 개인의 경제적 이기심은 사회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을 결코 허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는 그가 이전에 쓴 도덕감정론의 주장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도덕적인 존재이고 경제도 그 도덕적인체계의 한 부분인 것이죠. 국부론은 인간 행동 규범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베리, 영국 글래스고대 정치학과 교수
"둘 중에 한권만 읽어서는 알 수 없어요. 도덕감정론의 이론이 국부론에서 다시 등장하거든요. 빈민에 대해 연민을 느끼죠."
-개빈 케네디 (Gavin Kennedy), 에든버러대 경영학 교수
"아담 스미스는 대중을 돕는 최선의 길은 자유 시장 경제라고 주장했어요."
-에이먼 버틀러
인간은 이기적입니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다고 그래서 이기적인 행동도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1790년 7월 17일, 그에게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완벽하지 않은 원고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담 스미스를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부릅니다.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인간의 도덕적 범위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 체제라는 이상을 떠올렸죠.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지금의 불평등과 위기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주 놀랄 거예요. 미국과 영국 등에 대해서는 좀 실망할 것 같아요. 부유한 사람들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많거든요. 아담 스미스의 유명한 문구가 있어요. '국민이 대부분이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데 그 나라가 부유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에이먼 버틀러
국부론의 원제는 'Wealth of Nation'이 아니라 'Wealth of Nations' 복수형입니다. 즉 특정 국가나 국민이 아니라 여러 국가와 국민이 함께 잘사는 것을 연구한 책이라는 뜻이죠. 그러므로 그가 꿈꿨던 세상은 1%의 탐욕과 부패 99%의 고통받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아덤 스미스의 자유로운 시장 체제는 19세기를 거치며 점차 자본주의의 모습을 갖추 왔습니다. 하지만 자본가에 의해 희생된 노동자들의 고통은 점점 더 커져만 가죠. 그리고 이번의 위기도 아담 스미스처럼 인간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진 한 위대한 경제학자를 탄생시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칼마르크스, 2008년 영국의 BBC에서는 지난 1천 년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뽑는 설문을 했습니다. 그 결과 1위는 바로 칼마르크스, 물론 어떤 분은 이해가 안가실 수도 있을 겁니다.
보통 마르크스를 이야기 하면 그의 혁명적인 투쟁이나 공산주의를 생각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는 최초로 왜 가난한 사람은 항상 가난할까 자본주의는 정말 이상적인 체제일까라는 새로운 의문을 던진 철학자였습니다. 그리고 산업 혁명으로 인해 기계 부품처럼 되어버린 노동자의 삶을 보고 자본주의가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밝혀내고 싶어했습니다. 사실 청년시절 마르크스는 해겔의 변증법(Dialectics)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1831), 독일의 철학자
세상의 모든 것, 인간도, 자연도, 사회도 그 어떤 것도 고정불변이 아니라 정반합의 법칙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철학이지만, 하지만 이렇게 세상을 변화 발전시키는 주체가 세계밖에 존재하는 절대정신이라는 헤겔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포에르 바하가 주장한 물질이 세계를 구성하고 지배하며 이끌어간다는 유물론(Materialism)을 받아들였죠. 그리고 마침내 헤겔의 변증법에 포에르 바하의 유물론을 더해서 '유물론적 변증법(Materialism Dialectic)'이라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과 철학을 갖게습니다. 과연 그는 자신이 던진 의문을 어떻게 풀어나갔을까요?
1843년 독일 쾰른, 1843에 마르크스는 급진적 반정부 신문인 라인신문의 편집장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대학교수가 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무신론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래서 생계를 꾸리려고 언론계로 눈을 돌렸죠. 그때가 마르크스가 정치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어요. 기자로서 진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충격을 받았죠."
-조나단 울프, 영국 런던대 철학과 교수
그러나 검열때문에 라인신문은 폐간되고, 그는 파리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만나게 되죠. 바로 하나는 공산주의, 다른 하나는 엥겔스입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Friedrich Engels, 1820~1895), 독일의 경제학자, 저널리스트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정말 훌륭한 사상가라고 생각했어요. 엥겔스는 한마디로 사회주의의 후원자, 공산주의의 후원자였어요. 그는 마르크스가 계속 글을 쓸 수 있기를 원했고,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을 마칠 때까지 계속 돈을 보냈죠."
-조나단 울프
[맨체스터 방직공장에는 심지어 이만한 어린 애들도 매일 12시간 이상을 공장에서 힘들게 일해. 학교는 꿈도 꿀 수 없지.]
두 사람은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생각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둘은 평생의 동지가 되었습니다.
"엥겔스보다 마르크스는 최고의 사상가입니다. 하지만 둘 중 한 명과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면 마르크스보다는 엥겔스가 더 좋을 것 같아요. 마르크스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생각에 갇혀 비판하는 것 외에는 다른 사람의 얘기에 흥미를 두지 않았어요. 반면 엥겔스는 문화적이고 관용적이며 즐거운 사람이었어요."
-조나단 울프
또한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비참한 노동자들의 삶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조직과 만나면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죠. 그는 점차 혁명적인 공산주의자로 바뀌게 됩니다. 그는 엥겔스와 함께 계급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혁명을 준비합니다. 결국 마르크스는 1845년 2월 부르셀로 가서 프로이센 국적을 포기했습니다. 부르셀의 비밀 동맹과 접촉한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들은 그곳에서도 혁명을 원했습니다. 1848년 드디어 두 사람은 공산주의자 동맹의 강령을 밝히는 선언문을 쓰게 됩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노동자가 잃을 것이라고는 단지 자신의 사슬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유명한 '공산당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을 발표했어요.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고 그 개선방향을 찾고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변화 가능한 것들을 연구했어요."
-벤 파인, 영국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
그들의 선언이 출판된 1848년 유럽은 혁명의 폭풍우가 휘몰아 칠 때였습니다. 마르크스는 부르쉘, 파리, 쾰런 등지로 가서 혁명에 참가했죠. 이를 계기로 마르크스는 붉은 박사라는 악명과 인류의 해방을 가져올 새로운 사상을 창조했다는 명성을 동시에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따라 추방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죠. 1849년 마르크스는 영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납니다.
마르크스의 부인 제니는 마르크스가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않는다고 자주 비난하곤 했습니다. 게다가 1855년 4월 그의 아들 에드가가 폐렴으로 세상을 뜨게 되죠. 궁핍한 생활은 이후 5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마르크스는 여섯 아이 중에 세 아이를 잃게 됩니다.
"마르크스의 문제 중 한 가지는 돈이었습니다. 정기적인 수입이 없었으니까요. 얼마간의 원고료를 받기도 했지만 항상 돈 문제에 시달렸습니다."
-조나단 울프
이후 마르크스 가족은 유산과 엥겔스 기부금 덕분에 작은 연립 주택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생활이 안정되자 드디어 자본론의 집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낮엔 대영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주말엔 소풍을 가거나 다른 독일 이민자들과 교류했어요. 사교적인 사람이었죠."
-조나단 울프
그가 자본론을 쓴 이유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수백번 읽었죠. 그리고 자본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책이 바로 국부론이었습니다. 드디어 1867년, 그가 15년 이상을 바친 필생의 역작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자본론 제 1권, 자본의 생산 과정입니다.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경제연구에 최초로 적용해서 자본주의 문제점을 분석한 책입니다. 자 그럼 자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자본으로서 제일 먼저 다룬 것은 상품입니다. 상품은 인간이 생산하고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말하죠. 쓸모가 있는지를 따지는 사용 가치, 교환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교환 가치, 둘 다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고, 그리고 이러한 상품은 노동을 통해 생산해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평균 노동 시간으로 결정된다고 정의했습니다. 즉 6시간 동안 6 켤레 신발을 만든다면 신발의 가치는 1 노동 시간이라는 것이죠. 또 화폐를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수단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돈이면 뭐든지 다할 수 있다고 믿는 화폐의 물신성(commodity fetishism)이 생겨날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아담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을 이어받아서 노동이 최고의 가치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아담스미스의 분업은 오히려 노동자를 기계 부품처럼 만들어버린다고 했죠. 그러나 그가 자본을 쓴 주요 목적은 바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왜 항상 가난할까? 반대로 놀고먹는 자본가들은 왜 점점 더 부자가 될까?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그 해답을 이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냄으로써 찾을 수 있었죠.
"자본론 1권은 어떻게 자본이 이윤을 남기는가에 대한 것이에요.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이나 노동 일수를 늘이는 '절대적 잉여가치(Absolute Surplus-Value)'의 원리에 대해 설명합니다."
-벤 파인
여기는 빵 공장입니다. 이제 빵 한개를 만드는데 얼마만큼의 노동 시간이 드는지 계산해 보겠습니다. 먼저 밀가루 1kg을 1 노동시간이라 하겠습니다. 기계는 빵 만개를 만들면 수명이 다합니다. 그럼 1개를 만드는데는 1 노동시간이 들죠. 그리고 노동력도 1 노동 시간이 든다고 치면, 빵 한개를 만드는 데는 모두 3 노동 시간이 듭니다. 만약 1 노동 시간을 화폐로 환산해서 1,000원이라고 하면, 빵 한개는 3,000원이 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하루에 평균 8시간을 일하면, 모두 24 노동 시간이 나오고, 그동안 만든 빵 여덟개의 가치는 2만 4천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기계나 원료는 그 가치가 그대로 인정되는데, 노동자는 8 시간을 일하는데도, 자본가는 일당으로 3천원밖에 안 줍니다. 그럼 나머지 5 노동 시간, 즉 5천원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바로 자본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갑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남은 가치를 '잉여 가치'라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노동자는 왜 싫다고 못할까요? 자본가가 그만둬라 하면 그만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아는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를 얻기 위해 노동자에게 더 오래 일하게 합니다. 물론 일당은 절대 더 주지 않죠. 결국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자본가는 더 많은 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노동시간의 연장으로 만들어진 잉여가치를 절대적 잉여 가치(absolute surplus-value)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자본가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하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 노동자가 직접 손으로 빵을 만들 때 필요 노동 시간은 3 시간, 하지만 기계를 들여와 빵을 만들면 같은 개수에 빵을 만드는데 1 시간이면 되죠. 이는 결국 필요 노동 시간은 줄어들고 잉여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것, 노동자의 임금은 날로 싸지고, 자본가는 그만큼 이윤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생긴 이윤을 특별 잉여가치 또는 상대적 잉여가치(relative surplus-value)라고 했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최초로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해했어요. 착취 현상이 일어날 거로 생각했어요."
-로버트 스키델스키
마르크스는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 하는 자본가의 이기심 때문에 기계가 계속 노동을 대신하면 실업자가 증가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일하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임금은 더 낮아지고, 이렇게 되면 상품은 쏟아져 나오지만 팔리질 않으니 기업도 자본가도 망하게 될거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결국 자본주의 위기인 공황이 시작되고,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르크스의 경고는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역사의 한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봉건제 이후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할 것이라고 주장했죠.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자본주의가 사라지고 공산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구조를 설명해 냈습니다."
-조나단 울프
[나의 벗 엥겔스, 우리가 파리에서 꿈꾸었던 세계는 결국 오지 못할 것 같네. 삶의 마지막까지 통찰을 멈추지 않고 있네만 세상이 더는 날 원하지 않더군. 독불장군 같은 나를 변함없이 지지해줘서 고맙네. 이제 나에게 남은 열정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싶네.]
1883년 3월 14일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이 가장 아끼던 의자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딸 제니와의 고백게임]
아빠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싸우는 것
그럼 아빠가 생각하는 불행은 뭐에요? 굴복하는 것이지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책장에 파묻히기
그의 사후 엥겔스는 마르크의 유고를 모아서 1885년 자본론 제 2권 '자본의 유통과정'을 1894년 제 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을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자본론은 사회주의의 성서로 불리우며 성서보다 더 많이 팔린 책이라는 명예를 얻게 됩니다. 또한 한 세계가 흐른 뒤에 마르크스의 사상은 레닌을 비롯한 혁명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그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요?
칼 마르크스, 그는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도와서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고자 했던 혁명가였습니다.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세상을 해석한 철학자이자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경제학자였습니다. 또한 공산주의 국가의 탄생에 영향을 끼친 사상가였습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더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르크스가 철학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북한과 여전히 대립중인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를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입밖에 내서는 안될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마르크스가 붕괴할 것이라고 했던 자본주의 국가들은 비록 위기를 겪으며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아직도 잘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들은 독재와 빈곤의 허덕이다 20세기말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죠. 경쟁에서 승리하자 자본주의 국가들은 마르크스와 그의 책들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본론이 세상에 나온지 140년이 지났습니다.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오히려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사태가 벌어졌죠. 그렇다면 아직도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본론은 가치가 없는 걸까요? 사실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며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마르크스가 남긴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가 우리에게 절박한 메세지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물론 자본론의 가치를 마르크스의 예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는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연민과 열정으로 자본론을 쓴 것입니다. 올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것이 바로 제일 먼저 주목해야할 자본론의 가치인 것입니다.
"자본주의 경기가 좋지 않으면 신문 사설에 종종 '결국은 마르크스가 옳았다'는 말이 실립니다."
-조나단 울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주장합니다. 생산이 쉬워진 신용화폐로 미래에 투자합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에요. 동시에 빚을 양산하고 디폴트를 일으키고 위기를 가져옵니다."
-제프리 잉햄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서 꿈꾸고,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서 펼쳤던 이상적인 사회는 결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의 사상의 시작점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잘 살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수식이 난무한 현대 경제학과는 사고의 시작부터가 다르지 않습니까? 자본주의는 아담 스미스를 오해했습니다. 공산주의도 칼 마르크스를 오해했습니다. 그들에겐 오직 사람을 사람답게 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을뿐입니다. 그들이 그렸던 세상은 끝없는 자본주의의 탐욕이나 소수 지배의 독재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에도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있다고 믿었듯이 위기의 순간 이제 우리 안에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세상을 구해주길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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