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화랑의 원형, 배달 시대의 천왕랑
원화源花는 여량女郞을 말하고, 남자는 화랑花郞이라 하는데 천왕랑天王郞이라고도 하였다. 임금으로부터 오우관鳥羽冠을 하사 받아 썼는데 관冠을 쓸 때 예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큰 나무를 봉하여 환웅신상桓雄神像으로 삼아 여기에 배례를 올렸다. 이러한 신수神樹를 세속에서 웅상雄常이라 불렀는데, 상常이란 항상 임하여 계신다[常在]’는 뜻이다.
20. 花郎의 原形, 培達 時代의 天王郎
源花는 稱女郎이오 男은 曰花郎이니 又云天王郎이라. 自上으로 命賜鳥羽冠하야 加冠에 有儀注라.
時에 封大樹하야 爲桓雄神像而拜之라 神樹를 俗謂之雄常이니 常은 謂常在也라.
웅상雄常: 단군세기 11세 도해단군 조에는 "재위 원년인 경인(환기 5307, 신시개천 2007, 단기 443, BCE 891)년에 임금께서 오가에게 명하여 12 명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을 택해 국선소도國仙蘇途를 설치하게 하셨다. 그 둘레에 박달나무를 많이 심고, 가장 큰 나무를 택하여 환웅상桓雄像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셨다. 그 이름을 웅상雄常이라 하셨다."라고 하였다.
17) 화랑花郞
진흥왕 37 (576) 에 조직된 청소년 수양 단체이다. 본래 배달 신시 시대의 천왕랑(또는 국자랑) 에서 비롯하였다. 고조선 시대에도 삼랑 郞이 있었으며 북부여 시조 해모수단군도 천왕랑이었다. 신라의 화랑은 진흥왕 때 그 명맥을 이어 국가적으로 다시 편제 빠한 데 불과하다. 그리고 화랑의 지도이념이라 할 수 있는 세속오계世俗五戒도 이미 널리 얄려져 있던 소도의 계율인 오상五常(忠孝信勇仁)과 같은 내용이다. 화랑도는 대한해협 너머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환웅천황의 화상이 모셔져 있던 후쿠오카의 히코산에는 도사들이 마늘을 먹으며 도를 닦았다는 동굴 49(7*7)개가 있다. 그 도사들이 닦던 도를 수험도修驗道라 했는데 그 계율은 화랑도와 같았다고 한다(김향수, 일본은 한국이더라). 화랑도를 일명 국선도國仙道, 풍월도風月道, 풍류도風流道라고도 하였다. 이런 전통은 다시 고려 시대의 선인仙人 또는 재가화상在家和尙, 윤관이 9성을 정벌할 때 있었던 항마군降魔軍 그리고 대몽항쟁 때의 삼별초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 뒤로 명맥이 쇠잔하였으나 그 정신만은 한민족의 의식 속에 깊이 잠재되어 민족의 위기 때마다 유감없이 표출되었다. 지금까지도 신교神敎를 종주로 하는 한민족의 유구한 자주독립의 상무尙武 정신의 맥이 증산도甑山道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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