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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정보/박문호 박사

박문호 박사의 패턴, 모순 그리고 집합론적 사고

by 광명인 2023. 8. 11.

주식 시장의 패턴을 안다면 재벌이 되죠. 사람의 속마음의 패턴을 읽어낸다면, 나는 남녀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겠죠. (세상의 변화는) 다 패턴에 관한 문제입니다. 근데 왜 패턴은 예측하기 어려울까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드러내는가? 그 패턴은 수학적으로 미분한 값입니다. 미분은 뭡니까? 변화율이죠. 다시 한번 패턴이 왜 중요합니까? 패턴을 알아야 우리가 부자가 되거나 애인을 얻거나 뭐든지 할수 있는 겁니다. 결국 내가 만족도가 높아지고, 내 삶이 안정적으로 됩니다. 패턴을 알게 되면 내 삶의 안정성이 높아진다는 말은, 패턴을 읽으면서 궁극적으로 우리를 획득하는게 뭐냐하면 예측을 하게 되는 겁니다. ,, 패턴을 왜 알아야 하냐? 그건 바로 미래의 상황이라는 거예요. 예측을 하기위해서 패턴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과 미래 사이에 변화율을 알면 되죠. 

https://www.youtube.com/watch?v=kmrwCdKXV6s 

지식인사이드(17분) :관점을 바꾸면 새로움이 보인다.


1. 관계
2. 현상적, 물리적
3. 집합론적 사고
4. 모순

동의반복을 보여주는 자연의 프랙탈

미래가 어떻게 될 건가는 지금 나의 현 상태하고 내가 어떤 식으로 바뀌어가는가라는 변화율을 말하면 1년 후, 10년 후의 나를 알 수가 있잖아요. 변화율은 왜 중요하냐면 미래의 나를 맞출 수 있다는 거예요. 미래의 사회미래의 자연을 예측할 수 있다는 거죠. (예측은 불이 붙기 전에 알아차려야 한다. 특정상황에서 예측을 잘 못하면 죽음이다.)

그럼 변화율을 어떻게 구하죠? 변화율이 미분값이죠. 미분값으로 순간에 변화를 개선하면서 로켓을 쏘게 된 겁니다. 전부 다 순간적 변화율이 잖아요. 그럼 이 모든 물리 현상이 미분을 당해서 그게 물리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미분은 그 함수 자체도 어렵고, 미분하는 게 어렵다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자연 현상 중에 아예 미분 값을 본질적으로 드러내는 어떤 함수가 있다면 그 자체가 미분을 해도 그 자체가 되거나, 적분해도 그 자체가 된다면 그거는 미분 적분을 할 필요도 없죠. 그 값이 돼 버리니까. 그런데, 그 값이 있다는 거예요. 그 함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 상수가 있다는 거예요. 우주에 있는 모든 파동을 자연상수에 의한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연이 옷을 입지 않고 홀딱 벗은 패턴을 그냥 보여줘 버리는 거예요. 

자연상수는 하나의 숫자예요. 2.71828182845,,, 무한히 지속되는 거예요. 

자연상수 e
자연상수 e: 2.71828182845,,,로 무한이 수렴되는 그래프


어떤 무한히 적은 숫자를 무한히 곱한다는 말인데, 역설적 모순이 들이있다고 안 느껴져요? 하나는 0으로 수렴하는 무한소(無限小, infinitesimal)가 있고 하나는 무한대(無限大, infinity)로 가는 무한대성이 있고, 무한소로 가는 흐름하고 무한대로 가는,, 그러니까 함께 있을 수 없는 두 가지 상충되는 두 무한이 하나에 결합을 해서 얽으면, 그래서 폭발하지 않는 하나의 상수가 된, 특수성이 보편성으로 된 광속처럼, 광속도 특수성이 보편성으로 됐다고 했잖아요. 

[1] '모순'이라는 거예요무한을 인류가 못 들어갔던 이유는 뭐냐면, 모순의 장벽을 못 넘어서 못 들어갔던 겁니다. 모순은 엄청난 생산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순이 처음 드러나는게 1) 광속 C, 특수하지만 보편적이라는 거예요. 모순이죠. 그 다음에 2) 자연상수 e, 자연상수에는 어떤 특수하고 보편이 함께 들어가 있느냐? 0으로 가는 수렴과 무한으로 가는 수렴,, 이게 처음엔 수학적 감이 있는 사람이 봐도 1을 무한승해도 1이라는 건 다 아는데, 어쨌든 무한성이라는 어마어마하게 들어있기 때문에 1보다 조금만 커도 뻥튀기 돼서 무한으로 갈 거라 생각하죠?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게 모순의 생산성입니다. 하나는 0으로 가는 수렴 하나는 무한으로 가는 수렴이 결합했을 때 놀라운 것을 등장시켜요. 세번째 모순은 3) 문학에 모순이 있어요. 

네루다의 시에는 3가지 역설이 있습니다. 1. 모호한 명확성, 2. 덧없는 풍성함, 3. 끝없는 무관심.

1. [모호한 명확성]이란 우리 인생은 터널과 같다. 두 가지 명확한 거는 입구하고 출구는 명확하다. 그리고 인생 항로는 터널이다. 캄캄한 터널이다. 무한히 많은 경로를 그릴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의 삶에서 명확한 거는 뭡니까? 딱 두 포인트밖에 없죠. 내가 태어났다는 거 그리고 내가 죽었다는 거 죽는다는 거, 이 사이를 연결하는 인생 패스웨이(passway)는 무한대에 가깝죠. 그래서 흔히 내 인생은 소설 몇 권을 쓸 수 있다. 누구나 이야기하잖아요. 모호 하죠. 근데 명확한 두 포인트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 인생은 탄생과 죽음이란 두 명확한 포인트를 기점으로 무한대에 가까운 애매함이 있다는 거예요. 그 총체적 애매함 때문에 내가 누군지 본질을 놓쳐버린다는 거예요. 

2. 두 번째 역설은 뭐냐면 [덧없는 풍성함]이라는 거예요. 덧없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은 여름에 뭉게구름, 구름이야말로 시시각각 흘러가고, 형태가 시시각각 바뀌잖아요. 덧없죠. 그러나 뭉게구름이 많을 때 얼마나 풍성합니까? 솜사탕처럼 그렇게 풍성할 수 있었던 것은 덧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에요. 그래서 네루다는 어떻게 이야기를 하느냐면요. 구름이, 덧없이 풍성한 구름에 인간이 자꾸 거기다 의미를 갖다 붙인다는 거예요. 아 저거는 내 애인 얼굴이고, 저거는 양떼처럼 느끼고, 온갖 이미지를 투사하잖아요. 인간이 던진 의미의 무게가 무거워갖고, 그걸 가볍게 하려고 비를 뿌린다는 거요. 기가 막히죠. 그래서 구름이 풍성할 수 있는 거, 자연이 풍성할 수 있는 거는 무의미하기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덧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3. 그 다음에 세 번째가 뭐냐면 [끝없는 무관심], 네루다는 바닷가에 산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왜 우리는 바닷가에 있으면 어린 소녀가 될까? 우리는 끊임없이 그 여름 바닷가를 서성일까? 왜냐하면 우리가 바다에 던진 질문을 파도가 토해낸다는 거예요. 무한 반복으로, 우리가 던진 질문은 바다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토해낸다는 거예요. 바다가 우리한테 보여주는 것은 끝없는 무관심이라는 거야. 그 끝없는 무관심이 우리를 끊임없이 바다를 서성거리게 한다는 거예요. 왜 우리가 고양이를 좋아해요. 고양이의 말로 주인에 대한 무관심으로써 승리한 종이잖아요. 무관심이 뒤집으면 관심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쩌면 우주 전체는 역설이라는 거예요. 자연과학을 하면 할수록 역설이라는 거, 모순이라는 거, 이걸 감내해야 돼요. 그래서 대체적으로 종교적 갈등, 정치적 갈등,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면역 요법이 모순을 사랑하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라는 형용사를 좋아하게 돼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이 저렇게 괴팍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 좋은 점이 있고, 저렇게 굉장히 좋은 일을 많은 거 같은데 알고 봤더니 또 안 경우도 있고, 사실은 안 좋으면 몇 곱으로 비난을 하게 되잖아요. 우리는 과연 그렇게 피난할 자격이 있는가? 누구도 그렇게 하게 돼요. 

자기가 [본질적으로 그 코아의 모순이 있다는 거, 역설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나가서 감내한다면, 우리는 좀 더 인간이 무리지어 살면서 생기는 많은 갈등 구조를 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으로 낙인찍히는 그런 멘트들이 있잖아요. 그럼 어떻게 되죠? 사회의 다양성이 어떻게 돼요? 줄어들죠. 모순이나 역설을 사랑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아웃사이더를 포용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다양성이 줄어들어요. 생물학에서 뭐라 그랬냐면 그걸 '잡종강세'라 그래요. 동종교배하면 디그리데이션이 일어나요. 

생물학의 대원칙은 잡종강세예요. 다양하게 종을 늘리라는 거예요. 인간 사회의 반론 제기하고, 엉뚱한 사람, 그리고 입에 담기 힘든 사람조차도 놔두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장면은 찡그리고 참혹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불편하고 찡그리게 되고 그 다음 심지어 항의하고 갈등 일으키는 거 근본에는 도대체 용납할 수 없다는 그런 것들이 박혀 있잖아요. 그때 과연 그렇게 허용할 수 없는 정치 종교적 갈등이 있다 합시다. 그러면 당신이 궁극적으로 그거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냐는 얘기예요. 그때 저는 이 모순이나 역설의 세계를 오랫동안 그릴 수 있다는 거. 그럴 때 근본적인 여유의 공간이 생길 수 있다는 거예요.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게 뭡니까?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그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온갖 양자의 신비라는 그런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황당합니다. 신비가 아닙니다. 왜 그걸 신비로 불러요. 우리인지 시스템이 지구라는 행성 표면에서 이 특수한 조건에서 진화되었기 때문에 보편성을 일부 획득을 못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보편하고 특수한게 만났던 자연상수 e 라든지 광속이 물리학 전체를 설명한다는 걸 다시 한번 돌아다보면, 특수하고 보편적인 거, 역설적인 모순적인 상황이야말로 우주의 근본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빛 하고 파동의 역설, 모순, 이런 것들을 너무 민감하게 바라보지 말라는 거예요. 그게 특별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특별한 쪽만 본 거예요. 보편 그게 보편적이라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훈련을 해야 돼요. 

[2] '집합론적 사고'를 하면지식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일이 너무 간단해져요. 그 다음에 집합론적 사고를 하면, 궁극적으로 모든 자연과학은, 모든 학문은, 어떤 측면에서 동의 반복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자연과학은 대부분 수학으로 기술되잖아요? 그럼 수학의 본질이 뭐라 그랬어요? 동의 반복이라고 했잖아요. 만약 수학이 전적으로 동의반복으로 이루어졌다면, 틀릴 수가 없잖아요. 그게 집합론적 사고거든요. 그럼 집합론적 사고를 하면, 틀릴 수 없는데. 이 사고에서는 하나의 체계를 구성해요. 그래서 이 체계가 첫 번째 [보편성]이라는 거예요. 두 번째이 꼭지는 바로 [체계성]이라는 거예요. 시스템을 만든다는 거예요. 세 번째 꼭지는 뭐냐면 [필연성]이라는 거예요. 틀릴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필연적으로 간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건 하나의 집합적인 시스템을 이룬다는 거예요. 

집합적 사고의 동의 반복에서 파생된 3가지 특성

근데 이 세 가지(보편성, 체계성, 필연성)가 궁극적으로 뭐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동의반복해서 나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틀릴 수가 없으니까 필연적으로 맞게 된다는 거예요. 동의 반복이니까 논리적으로 동의반복을 반복하니까 새끼를 계속 만드는거죠, 정리가 계속 나온다는 거예요. 피라미드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시스템이 된다는 거예요. 통째로 하나의 체계를 갖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의 통째로 체계로 갖는 걸 뭐라고 하느냐면, 그룹이라 그래요. 그룹을 집합이라 그래요. 그래서 집합론적 사고는 그룹적 사고죠. 

그룹의 대표적인게 뭐냐하면 도형(원,방,각)이 그룹을 만들었죠. 여러분 머리속으로 삼각형, 사각형을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선분으로 되어 있죠. 삼각형 세 개의 선분, 사각형은 네 개의 선분이잖아요. 그러면 이게 선분이 열리면 도형이 아니죠. 그럼 이 속에 뭐가 있어요? 결합법칙이 있죠. 결합을 했죠. 결합을 했는데, 사각형을 보면 수직으로 세변이 만나면, 마지막 변은 다시 원점으로 와야 되죠. 원점으로 다시 돌아오면 클로즈한 도형이 되잖아요. 원점을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면 열린 사각형이 되죠. 사각형이 할 수 없죠. 열린 사각형을 부르지 않죠. 그러면 패턴이 형성되지 않죠. 사각형은 닫쳐야만이 도형이 되죠. 닫친다는 말이 뭐냐면 반드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거죠

곱하기에서 원점으로 돌아오는 건 뭐죠? 곱하기 원점은 1이잖아요. 1로 돌아오는 건 영원히 존재해야 된다는 거예요. 어떤 수에 분의 1을 곱해주면, 1로 돌아오잖아요. 더하기에 기준점은 뭐냐면 0이잖아요. 그 항등원이 있어야 되잖아요. 결국은 [항등원(恒等元, identity element), 역원(逆元, inverse element)]이 존재하고 그 [연산결과에 닫혀 있고], [결합법칙]이 있는 그 3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집합을 집합군이라고 불러요.

그러면 집합군 이론은 기하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도형을 만드는 거예요. 형태를 만드는 거예요. 브래인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미지를 만드는 거예요. 시각적 이미지가 계속 패턴을 공동적으로 만들어내면 그걸 '범주화'한다 그러죠. 범주화에 언어 레벨을 붙이면 '개념'이 되죠. 결국은 우리 생각의 뿌리가 어디서 왔냐면, 형태의 집합에서 온 거죠. 형태의 집합을 범주화하고, 범주화집합을 언어적 레벨을 붙여서 단어가 됐잖아요. 개념이 됐잖아요. 궁극적으로 어디서 왔냐 하면 그룹, 집합을 이루는 3가지 속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집합이요. 

집합에서 우리 '개념'이 생긴 거예요. 우리는 집합론적 사고를 한발 벗어날 수는 없어요. 그리고 집합론적 사고는 반드시 하이라키(hierarchy)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거예요. 자 어떻게 됐죠? 정수의 집합, 그보다 큰 게 유리수의 집합, 그보다 큰 게 실수의 집합, 더 큰 게 복수수의 집합, 실수의 집합에 대한 공리 체계 그 다음에 4가지 정리체계[정수, 유리수, 실수, 복소수]가 나오면서, 14가지 공리 시스템, 4가지 정리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걸 결합해서 실수라는 수 체계가 완비성을 구현하게 됩니다. 하나의 집합이 형성된 겁니다. 결국은 집합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을 구획하고, 그 구획의 본질을  비교하는 게 가능해진 겁니다. 비교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패턴이 드러나는 겁니다. 

천부경, 하도, 낙서

[우선 박문호 박사의 박학다식함과 통찰력에 감탄을 보냅니다. 너무 압축되어 그렇지, 정말 하나씩 풀어보면 유용한 그리고 통합적인 정보들이 많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설명을 듣고, 그럼 박문호 박사가 주장하는 패턴과 집합론의 궁극의 뭐냐고 혹시 묻는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그것은 단연 수천년간 동양의 정신과 물질문화의 토대를 이루었던 역易철학과 음양론이라 생각합니다. 음양론 자체가 관계론이며, 모순적이고 집합적이며 시스템적인 상호작용의 개념입니다. 음양론의 원형은 사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삼신오제사상에 들어 있지만, 최초의 출원문서는 환국에서 전수된 천부경天符經입니다. 천부경을 바탕으로 배달국때 태호복희씨께서 하도河圖를 그려서 존재의 바탕인 시간과 공간을 범주화하셨고, 천부경과 하도를 바탕으로 단군왕검께서 낙서洛書로 상생과 상극의 변화이치를 완성하셨고,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지어 생활과 정치 문화의 범주를 정하게 되어 동양문명이 꽃을 피우게 되었던 것인데, 역사가 한참 왜곡이 되어 현재 우리는 이런 역사에 매우 어두운게 현실인 것이죠. 음양적 시간 변화의 패턴을 매우 거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증산도의 우주일년 도표입니다. 우주일년 도표는 증산도의 안운산 태상종도사님께서 동양 역철학의 정수인 하도, 낙서와 소강절의 원회운세의 거시적 시간질서를 통합하고 각 종교의 정수를 뽑아 매우 정밀하면서도 창의적으로 한 장의 도표에 재구성해서 표현한 내용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모든 변화의 이치가 이 한장의 도표에 다 들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변화의 이치가 결코 생장염장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것은 자연의 필연적인 리듬이고 패턴이기에 이 패턴은 존재하는 것은 누구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죠. 비록 삶의 과정은 수많은 변화를 보일 수 있겠지만, 탄생과 죽음은 언제나 명확히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