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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수행법/마음공부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핵심내용

by 광명인 2024. 6. 15.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는 당나라(8세기) 때의 여동빈 대선사의 가르침이 오랜 세월에 걸쳐 구전되어 오다가 글로 엮어진 것이다. 초기 목판본의 간행은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920년경 『혜명경慧命經』과 함께 북경에서 1천부가 출간되었다. 

'태을太乙'은 생명의 근원, 뿌리 자리를 가리킨다. '금화金華'는 곧 금단金丹이요, 선천 태을의 진기眞氣이다. 태을은 본체가 되고 금화는 작용이 되는 것이다. 수행을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삼라만상이 고요해지고 마음은 극히 고요한 정적 속에 빠져들며, 광명이 충만하여 밝은 달이 중천에 떠있는 듯 하고 대지가 모두 광명의 경계가 되는 듯 느껴지니, 이는 심체心體(본성)가 밝게 열리고 금화金華가 빛을 뿌리는 현상이다. 기氣가 환히 빛나 어둠이 전혀 없는 굽이치는 대광명의 모습, 이것이 바로 참 성품眞性 본래 모습이다. [금화金華백광의 빛꽃이다. 이것이 곧 금단金丹이요, 태을의 진기眞氣이며 정수精水이다.]

'太乙金華'를 성취하는 방법은 '회광回光'에 있다. 육근(六根, 여섯 감각기관 : 안이비설신의)을 통해 누설되는 생명을 환원시켜 수렴통일하는 수행법이다. 회광은 곧 '기氣를 되돌리는 것'이다. 밖에서부터 안으로 되돌려야 하고, 식신(識神, 지각·의식작용)에서 원신(元神, 순수본성작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몸 안에서 천지가 생겨나기 이전의 본체를 구하는 것이니, 곧 역법逆法인 것이다. 

본서에서는 그 관건을  두고 있다. 은 인체의 모든 양기陽氣가 집중되어 있는 까닭에, 『陰符經』에는 '기機가 눈에 있다'하였고, '눈은 신神이 노니는 현빈玄牝의 문'이라고도 하였다. 눈은 밖으로 향하게 되면 오적五賊의 선봉이 된다고 하며, 하단전의 명문命門과 함께 또다른 인체의 명문命門으로 부르기도 했다. 

때문에 이 책에서는 눈을 억제하여 참 성품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는 여러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는 수행의 대경대법을 설명하면서 일상생활속에서도 언제든지 수행에 임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마음의 산란혼침을 방지하는 것이다. 마음이 산란함은 스스로 알 수 있기 때문에 고칠 수 있지만, 수행시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잠에 빠지는 혼침은 음陰으로 빠져드는 것이라 하여 크게 경계하고 있다. 또한 새벽에 2~3시간씩 수행할 것을 권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수행의 긴요한 방법과 원리를 전하고 있다. 

성性과 명命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본체가 고요함을 이루어야 한다. 고요함이 극에 이르렀다는 것은 모든 것이 통일된 상태를 말함이다. 여기서부터 태을금화가 생하게 된다. 총괄하면, 수행이란 마음이 고요하고, 기氣가 안정되는 것을 기틀로 하고 있는 바, 마음을 정정定靜에 이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는 『혜명경慧命經』과 더불어 수행의 요체를 전하고 있으니, 이 책을 숙독하면 수행의 대경대법을 해오解悟하게 될 것이다. 


1. 천심(天心)

呂祖曰 自然曰道 無名相 一性而已 一元神而已.
여조왈 자연왈도 도무명상  일성이이 일원신이이
性命不可見 寄之天光 天光不可見 寄之兩目
성명불가견 기지천광  천광불가견 기지양목

여동빈 조사께서 말씀하시길, '스스로 그러함을 도道라고 하는바, 道는 이름 하거나 형상할 수 없으며 하나의 성性이요 하나의 원신元神일 뿐이다. 성性과 명命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빛[天光]에 의지하여 있는데, 하늘의 빛도 보이지 아니하나니 두 눈[兩目]에 의지하여 있는 것이다. 

太乙者 無上之謂  丹訣總仮有爲而臻無爲 非一超直入之旨. 
태을자 무상지위  단결총가유위이진무위  비일초직입지지  
所傳宗旨 直提性功 不落第二法門 所以爲妙.
소전종지 직제성공 불락제이법문 소이위묘

태을太乙이란 무상無上을 말함이다. 단서에서는 사람들을 언제나 유위의 방식을 빌어서 무위의 경지에 이르게끔 하는데 결코 단번에 유위를 뛰어넘어 무위의 경지에 직접 도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단서에서 전하는 중심사상[宗旨]은 직접 성性을 닦는 공법을 들어서 옆길로 빠져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른바 묘함이다.

金華卽光也 光是何色 取象於金華 亦秘一光字  
금화즉광야 광시하색  취상어금화 역비일광자  
在內 是先天太乙之眞氣 水鄕鉛只一味者此也.   
재내 시선천태을지진기  수향연지일미자차야

금화金華빛[光]이다. 빛은 어떤 색깔인가? 그것은 금빛[金華]에서 상(象)을 취한 것이고 그 비밀은 바로 빛[光]이라는 한 글자에 들어있다. 이는 선천태을先天太乙의 진기眞氣로서 신수腎水중의 진양眞陽이다. 


回光之功 全用逆法 注想天心 天心居日月中.
회광지공  전용역법 주상천심  천심거일월중
天心猶宅舍一般 光乃主人翁也 故一回光 周身之氣皆上朝 
개천심유택사일반  광내주인옹야 고일회광 주신지기개상조 

빛을 되돌리는 공부[回光之功]는 모두 역법逆法을 쓰는데, 생각[想]을 천심天心에 모으는 것이다. 천심일日, 월月의 가운데[印堂]에 거한다대개 천심(상단전)은 집과 같고, 은 곧 그 집의 주인과 같다. 그러므로 회광回光하기만 하면 온몸의 기氣가 곧 위로 조알한다. 

光易動而難定 回之旣久此光凝結 卽是自然法身
광이동이난정  회지기구차광응결 즉시자연법신
而凝神於九霄之上矣  宗旨行去,,, 別無求進之法 只在純想於此
이응신어구소지상의  종지행거     별무구진지법 지재순상어차

빛이라는 것은 쉽게 동(動)하니 안정되기 어려우나, 회광回光수련을 오래하면 그 빛[光]이 응결되는데, 이것이 곧 자연의 법신이며, 신을 하늘 제일 높은 곳에 응결시킨 것이다.,,, 이 종지대로 수련해 나간다면 따로 뭘 구해서 배울 법이 없으며 단지 이 곳(상단전)에 순수하게 생각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金華卽金丹 神明變化 各師於心. 此中妙訣
금화즉금단 신명변화  각사어심  차중묘결
雖不差毫末 然而甚活. 全要聰明 又須沈靜. 
수불차호말 연이심활  전요총명 우수침정 

金華는 곧 금단金丹이요, 그 모든 신명변화는 각자의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다. 그 속의 비결은 비록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지만 지극히 영활하기에 전적으로 총명해야 하며 또한 깊이 안정되어야 함을 요한다. 

2. 원신 식신 (元神 識神)

呂祖曰 天地視人如蜉蝣 大道視天地亦泡影 
여조왈 천지시인여부유 대도시천지역포영 
元神眞性 則超元會而上之.  
유원신진성 즉초원회이상지 

천지의 차원에서 보면 사람의 수명이 하루살이처럼 짧으며, 대도의 차원에서 천지를 보면 천지도 역시 덧없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오직 뭇 생명의 근원인 원신(元神)과 진성(眞性)만이 시간의 속박을 받지 않고 그 위에 존재한다. 

凡人投胎時 元神方寸 而識神則居下. 下面血肉心 形如大桃 有肺以覆翼之 肝佐之 大小腸承之. 
범인투태시  원신거방촌 이식신즉거하심 하면혈육심 형여대도 유폐이복익지 간좌지 대소장승지 
仮如一日不食 心上便大不自在 以至聞驚而跳 聞怒而悶 見死亡則悲 見美色則眩 頭上天心何微微些動也. 
가여일일불식 심상변대부자재  이지문경이도 문노이민  견사망즉비  견미색즉현 두상천심하미미사동야 

사람이 어머니의 태胎에 들어올 때에 원신元神은 이마의 한 가운데 거하고, 식신識神은 그 아래에 있는 심장에 거하게 된다. 만일 사람이 하루 동안 밥을 먹지 아니하면 심장이 뛰고, 화나는 일을 들으면 답답하며, 죽음을 보면 슬퍼지고, 미색을 보면 현혹된다. 그러나 머리 위의 천심天心은 어찌 아주 미미한 흔들림이라도 있으리오

識心 如强藩悍將 欺天君闇弱 便遙執紀綱 久之太阿倒置矣. 
하식심  여강번한장 기천군암약  변요집기강 구지태아도치의
今凝守元宮 如英明之主在上 二目回光 如左右大臣  盡心輔弼 內政旣肅 自然一切奸雄 無不倒戈乞命矣.
금응수원궁 여영명지주재상  이목회광 여좌우대신   진심보필 내정기숙 자연일체간웅 무부도과걸명의

식신識神은 마치 변방에 있는 강포한 장군과 같아서, 천자의 유약함을 업신여겨 아래에서 조정의 기강을 잡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상황이 오래되면 곧 군신의 지위가 전도되고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이제 원궁元宮을 응결하여 지키노라면 마치 영명한 군주가 위에 있는 것과 같고, 두 눈을 통하여 나가던 빛을 되돌리면 마치 좌우의 대신들이 마음을 다 바쳐 보필하는 것과 같아진다. (*수도의 비결은 두 눈에 있는 듯하다.)

丹道 以精水神火意土 三者 爲無上之訣  精水云何乃先天眞一之氣.  
단도 이정수신화의토 삼자 위무상지결  정수운하내선천진일지기  
神火卽光也 意土卽中宮天心也  以神火爲用 意土爲體 精水爲基.
신화즉광야  의토즉중궁천심야 이신화위용  의토위체 정수위기

내단 수련의 도에서는 정수精水 신화神火 의토意土, 이 세 가지가 위없는 최상의 비결이다. 정수精水란 무엇을 말함인가? 그것은 곧 선천진일지기先天眞一之氣이며, 신화神火는 곧 빛[光]이요, 의토意土는 곧 중궁의 천심[中宮天心]이다. 신화神火는 用이 되고, 의토意土는 體가 되며, 정수精水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附識而用 而生 魄陰也 識之體也 識不斷則生生世世 
백부식이용  식의백이생 백음야 식지체야 식부단즉생생세세  
魄之變形易質無已也.
백지변형역질무이야

넋[魄]은 의식에 붙어 작용하며 의식[識]은 넋에 의지해서 생겨난다. 넋[魄]은 음이요, 의식의 바탕이 된다. 의식[識]은 끊임이 없으니, 생겨나고 또 생겨나서 세세토록 이어지며, 넋[魄]의 모습이 바뀌어 지거나, 바탕이 바뀌어지는 것은 그치지 않는다. 

惟有 之所藏也.  
유유혼 신지소장야
晝寓於 夜舍於 寓而視 舍而夢 神遊也 
혼주우어목 야사어간 우목이시  사간이몽 몽자신유야  

혼[魂]이라는 것이 있어서, 신[神]이 머무는 곳이다. 혼[魂]이 되면 두 눈[目]에 깃들어 있다가, 이 되면 간[肝]에 가서 머문다. 두 눈에 머물면 눈이 볼 수가 있고, 간에 가서 머물면 이 이루어진다. 이라는 것은 신神이 돌아다니는 것이다. 

回光所以鍊魂 卽所以保神 卽所以制魄 則所以斷識 回光者 消陰制魄之訣也.
고회광소이연혼 즉소이보신 즉소이제백  즉소이단식 회광자  소음제백지결야
光卽乾也 回之卽返之也. 只守此法 自然精水充足 神火發生 意土凝定   
광즉건야 회지즉반지야  지수차법  자연정수충족  신화발생 의토응정

회광回光을 통해 혼[魂]을 단련할 수 있고 신[神]을 보호할 수 있으며, 넋[魄]을 제압하니 식신[識神]을 끊어 버릴 수 있다. 회광回光은 음陰을 제거하고 넋[魄]을 제어하는 비결이다. 광光은 곧 건乾이요, 그것을 되돌려 비춘다는 것(回之)은 바로 되돌아오게 한다(復歸)는 것이다. 오직 이 방법을 견지해나가기만 하면, 정수精水가 자연히 가득 차게 되고 신화神火가 발생하고 의토意土가 응결된다. ***

一切好色動氣 皆魄之所爲 卽識也. 死後享血食 活則大苦 
일절호색동기  개백지소위 즉식야  사후향혈식  활즉대고 
學人鍊盡陰魄 卽爲純陽也. 
학인연진음백 즉위순양야

일체의 물욕에 마음이 움직인 것은 모두 넋[魄]의 소행이며 곧 식신識神의 작용이다. 사람이 죽은 후 식신識神이 제사음식을 흠향하며, 살아있을 때에는 식신識神이 사람을 크게 괴롭게 하는 것이다. 
도 닦는 자들이 몸속의 음백陰魄을 전부 깨끗이 단련해내면 곧 순수 양陽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3. 회광수중 (回光守中)

回光天地陰陽之氣無不 百日專功光纔眞 方爲神火
회광  즉천지음양지기무불응 백일전공광재진 방위신화
夫元化之中 有陽光爲主宰 有形者爲日 在人爲目 
부원화지중  유양광위주재 유형자위일  재인위목 

회광回光을 하게 되면 천지음양지기가 모두 응결된다. 백일동안 수련에 몰두하여야만, 비로소 빛(光)이 참답게 되고, 바야흐로 신화神火가 된다. 가장 근원적인 변화에는 양광陽光이 주재를 하는데, 유형적인 것으로 말하면 하늘의 태양(日)이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눈(目)이다. 

純想卽飛 純情卽墮 學人想少情多 沈淪下道. 
순상즉비 순정즉타  학인상소정다  침윤하도  
人身精華 皆上注於空竅是也. 得此一節 長生者在玆 超昇亦在玆矣. 此是貫徹三敎工夫.
인신정화 개상주어공규시야   득차일절  장생자재자 초승역재자의  차시관철삼교공부

순수한 생각을 하면 날아오르게 되고, 정욕에 방임하면 죽음에 떨어지게 된다. 도를 배우는 자들이 순수한 생각을 적게 하고 육욕에 많이 빠진다면 결국 사도에 빠져 몰락하게 된다. 
“사람 몸속의 정화精華는 모두 상단전에 모여 있다.” 이 한 구절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바로 장생의 심오한 비밀을 얻은 것이며, 범세를 초월하여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는 도리를 깨친 것이다. 이것은 유불선 삼교를 관통하는 공부이다. 

聖聖相傳 不離反照 孔云致知 釋號觀心 老云內觀 皆此法也. 
성성상전  불이반조 공운치지  석호관심 노운내관 개차법야 
反者自知覺之心 反乎形神未兆之初
반자자지각지심 반호형신미조지초

성인들이 서로 전한 것은 ‘반조返照’라는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나니, 공자가 말한 치지致知이나, 석가가 말한 관심觀心, 노자가 말한 내관內觀은 모두 이 법을 말하는 것이다. '返'이란 知覺이 있는 마음으로부터 形神이 드러나기 이전인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佛道二祖 敎人看 鼻尖者,,,  眼之所至 心亦至焉 何能一上而一下也. 大開失之外走 易於散亂.  
불도이조 교인간  비첨자,,,  안지소지 심역지언  하능일상이일하야.  대개실지외주 이어산란. 
太閉失之內馳 易於昏沈.  惟垂廉得中 恰好望見鼻端.   
태패실지내치 이어혼침.   유수렴득중 흡호망견비단 

불교나 도교의 조사들이 사람을 가르치며 “코끝을 보아라”하는데,,, 눈길이 이르는 곳에는 마음도 또한 가있는 것이니, 어찌 하나는 위에 있고 하나는 아래에 있을 수 있으랴. (눈을) 크게 뜨면 神光이 밖으로 흘러나가 心神이 쉽게 산란散亂해지고, 너무 감으면 안으로 치달아서 心神이 쉽게 혼침昏沈해진다. 오직 눈꺼풀을 적당히 내리워야만 비로소 눈이 코끝을 바라보게 된다. 

止觀二字 原離不定慧以後凡念起時 不要仍舊兀坐 當究此念在何處
지관이자 원이부득 즉정혜야  이후범념기시 불요잉구올좌 당구차념재하처 
從何起 從下滅 反覆推窮 了不可得 卽見此念起處也. 
종하기 종하멸 반복추궁 요불가득 즉견차념기처야 

지관止觀이란 두 글자는 원래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즉 정혜定慧이다. 이후에 온갖 잡념이 일어날 적에는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지 말고 마땅히 잡념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일어나 어디에서 멸하는가 하는 것을 궁구하여야 한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끝까지 추구해 나가다보면 그 어떤 생각도 찾아낼 수 없게 되는데 여기가 생각이 일어난 곳임을 알게 된다. 

4. 회광조식(回光調息)

自心 心一動而卽有氣 心之化
자심위식 심일동이즉유기  기본심지화야
吾人念至速 霎頃一妄念 卽一呼吸應之 一日有機萬息 卽有機萬妄念 
오인념지속  삽경일망념 즉일호흡응지  일일유기만식 즉유기만망념

호흡(息)이란 자기의 마음(自+心)이다. 자기의 마음이 호흡이 되는 것으로, 마음이 한번 동하면 기氣가 있게 되는 것이니, 기氣는 원래 마음이 화化해서 된 것이다. 우리들의 생각[念]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기에 망념이 순간적으로 생기기도 하며 호흡은 또 그에 즉각 응한다. 하루에 수만 번의 호흡이 있으면 곧 수만 번의 망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然則欲無念乎 不能無念也 欲無息乎 不能無息也.

연즉욕무념호 불능무념야 욕무식호 불능무식야
莫若即其病而爲藥 則心息相依是已. 故回光兼之以調息 此法全用耳光.
막약즉기병이위약 즉심식상의시이   고회광겸지이조식 차법전용이광

그렇다고 생각[念]을 없애려 하는가? 생각[念]을 없앨 수는 없다. 그러면 숨[息]을 없애려 하는가? 숨[息]도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그 '병'이 바로 '약'으로 될 수 있음을 알아서 그렇게 하여야 하는 것이니, 다름 아니라 마음과 숨이 서로 의지하는 일[心息相依]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회광공부回光工夫호흡조절을 겸하여야 하나니, 이 방법은 전적으로 이광耳光을 사용하는 것이다.

一是目光 一是耳光 目光者外日月交精
일시목광 일시이광 목광자외일월교정야
耳光者 內日月交精也 然光之凝定處 同出而異名也 故聰明總一靈光而已.
이광자 내일월교정야 연정즉광지응정처 동출이이명야 고총명총일령광이이

하나는 목광目光요. 다른 하나는 이광耳光이다. 이른바 목광目光외부 일월지정日月之精의 교합이며, 이광耳光내부 일월지정日月之精의 교합이다. 정精은 빛[光]의 결정체이다. 목광目光과 이광耳光은 동일한 곳에서 나와서 이름만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귀 밝음[耳聰]눈 밝음[目明]은 모두가 하나의 신령한 빛[靈光]의 작용일 뿐이다. ***

一有聲 卽粗浮而不入細 卽耐心輕輕微微些.
일유성 즉조부이불입세 즉내심경경미미사 
愈放愈微 愈微愈靜 久之 忽然微者遽斷 此則眞息現前 而心體可識矣
유방유미 유미유정 구지  홀연미자거단 차즉진신현전 이심체가식의. 

한번 숨 소리가 나게 되면, 그 숨은 거칠고 들떠 있는 것이라서 가늘어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인내하면서 호흡을 가볍고 가벼우며 정미롭게 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억지스러움을 다 내려놓고, 아주 정미롭게 해나가면 해나갈수록 더 미세해지며, 미세해 질수록 더 고요해진다. 오래되면 미세하던 호흡이 홀연히 끊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진식(胎息)이 나타난 것이니, 이로써 자기 마음의 본체(本性)을 알게 된다.  

心細息細 心一則動氣也 息細則心細 氣一則動心也.
개심세즉식세 심일즉동기야 식세즉심세 기일즉동심야
定心必先之以養氣者 亦以心無處入手 故緣爲之端倪 所謂純氣之守也.
정심필선지이양기자 역이심무처입수  고연기위지단예 소위순기지수야

대개 마음이 세밀하면 호흡도 세밀하게 되니, 마음이 하나[一]면 기氣를 움직인다. 호흡이 세밀하면 마음도 세밀해지니, 기氣가 하나[一]되면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정심定心하려면 먼저 기氣를 길러야 하는데, 역시 마음으로는 착수해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氣를 인연으로 해서 그 실마리를 삼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순기純氣를 지킨다는 것이다.
(*대개 마음이 섬세하면 호흡도 가늘고 작으며, 숨결은 마음의 변화에 따라 동한다. 숨결이 미세하면 마음도 미세하며, 숨결의 변화에 따라 마음이 동한다. 定心하려면 먼저 氣부터 길러야 하는데 마음으로는 착수해볼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호흡에서 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데 순수하게 의념을 호흡에만 매어 두는 것이다.)

丹書云 雞能抱卵心常聽,,, 其聽也 一心注焉 心入則氣入 得暖氣而生矣. 
단서운 계능포란심상청,,,  기청야 일심주언  심입즉기입 득난기이생의 
神之所注 未常少間 卽暖氣亦畫夜無間 而神活矣.  
신지소주 미상소간 즉난기역화야무간 이신활의  

단서丹書에 이르기를, "닭이 알을 품을 수 있는 것은 마음으로 항상 듣기 때문이다." ,,, 닭이 듣는다는 것은 기실 한마음으로 정성을 쏟아 붓는다는 말이다. 마음이 알 속까지 깊이 들어가면 기氣도 들어가게 되니, 따뜻한 기운을 얻어서 생하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정신을 쏟아 부으면 온기가 밤낮없이 알 속에 스며들어 神이 살아나는 것이다

佛云置心一處 無事不辨. 心易走 卽以氣純之 氣易粗 
불운치심일처 무사불변  심이주 즉이기순지 기이조 
卽以心細之 如此而焉有不定者乎.
즉이심세지 여차이언유부정자호

마음을 한곳에 두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마음은 쉽게 달아나므로 호흡[氣]으로 순화시켜야 하며, 호흡[氣]은 쉽게 거칠어지므로 마음으로 세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어찌 정심定心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6. 회광효험(回光徵驗)

徵驗亦多 不可以小根小器承當 必思度盡衆生. 
징험역다  불가이소근소기승당 필사도진중생 
不可以輕心慢心承當 必須請事斯語.  
불가이경심만심승당  필수청사사어 

회광수련에서 나타나는 효험은 매우 많지만 근기가 약하기국이 작은 사람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니, 반드시 중생을 모두 제도하려는 넓은 흉금이 있어야 한다. 또한 경박하고 자만한 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니, 반드시 가르침대로 실천해나가야 한다. 

靜中綿綿無間 神情悅豫 如醉如浴  
정중면면무간 신정열예 여취여욕 
此爲遍體陽和 金華乍吐也. 
차위편체양화 금화사토야

고요함속에서 면면히 끊어짐이 없으면, 신정神情은 기쁘고 즐거움에 푹 젖어 마치 취한 듯 목욕하는 듯하다. 이것은 온몸이 양으로 조화되어 금화金華가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旣而遍體充實 不畏風霜 人當之興味索然者 
기이편체충실 불외풍상  인당지흥미삭연자 
我遇之精神更旺 我以眞氣呵之立生 
아우지정신갱왕  아이진기가지입생 

계속 정진을 해나가면 온몸이 충실해지고 건강해져 바람서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남들이 당하면 흥미를 싹 잃어버리는 것이라도 내가 만나게 되면 정신이 더욱 왕성해진다. 내가 스스로 진기로 보양하면 오히려 장생할 수 있는 경지에 서게 된다. 

7. 회광활법(回光活法)

日用間 能刻刻隨事返照 不著一毫人我相 
일용간 능각각수사반조  불착일호인아상
便是隨地回光 此第一妙用.  
변시수지회광  차제일묘용

일상생활 속에서 능히 시시각각 상황에 맞게 회광반조回光返照 할 수 있고, 털끝만큼도 너와 나를 분별하는 상[我相]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상황에 맞게 하는 회광이다. 이는 제일의 묘용妙用이 된다. 

8. 소요결(逍遙訣)

大道之要 不外無爲而爲四字  惟無爲 故不滯方所形象 惟無爲而爲 故不墮頑空死虛.
대도지요 불외무위이위사자  유무위  고불체방소형상  유무위이위 고불타완공사허
作用不外一中字 而樞機全在二目.  二目者斗柄也 斡旋造化轉運陰陽 其大葯則始終一水中金 卽水鄕鉛而已.
작용불외일중자  이추기전재이목   이목자두병야  알선조화전운음양 기대약즉시종일수중금  즉수향연이이.

대도의 핵심사상은 “무위이위無爲而爲”의 네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무위이위無爲而爲”로 행하여야만 어리석은 공空이나 죽은 허虛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진공묘유眞空妙有, 묘유진공妙有眞空에 들게 된다. 대도의 작용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사이의 “중中”이라는 한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관건은 바로 두 눈에 있다. 두 눈은 마치 북두칠성 국자의 손잡이[斗柄]와 같아서 그 작용은 조화가 일어나게 하고 음양을 운행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약으로 달여지는 것은 수중금水中金이다. 다시 말하면 신장속의 양기이다. ***

法子欲入靜 先調攝身心 自在安和 放下滿緣 一絲不掛.
법자욕입정 선조섭신심 자재안화 방하만연 일사불괘.
天心正位乎中 然後兩目垂簾 如奉聖旨以召大臣 孰敢不尊. 次以二目內照坎宮 光華所到 眞陽卽出以應之.
천심정위호중 연후양목수렴 여봉성지이소대신 숙감부존. 차이이목내조감궁 광화소도 진양즉출이응지.


입정入靜하는 방법은 먼저 심신心身을 조절하여 스스로 여유롭고 평온한 상태가 되어, 모든 인연을 떨쳐버리고 조금의 잡념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천심天心이 중앙 정위正位에 자리 잡게 한 뒤에, 두 눈을 아래로 내린다. 마치 성지聖旨를 받들어 대신大臣을 소환하는 것과 같으니 누가 감히 따르지 않으랴. 그런 다음에 두 눈은 안으로 감궁坎宮[하단전]을 비춘다. 빛[光華]이 이르는 곳에 신장속의 진양眞陽이 나와 응하게 된다.

欲在有物也 此爲出位之思 動而有動矣.
욕재유물야  차위출위지사 동이유동의
一念不起 則正念乃生 此爲眞意. 寂然大定中 而天機忽動 非無意之動乎 無爲而爲 卽此意也.
일념불기  즉정념내생 차위진의   적연대정중  이천기홀동  비무의지동호 무위이위 즉차의야.

욕심외부의 사물에 의해서 생긴다. 이 욕심은 분수 넘는 생각(出位之思)이며 외부 사물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인다. 어떠한 잡념도 일어나지 아니하면 곧 바른 생각(正念)이 생겨나니, 이것이 진의眞意이다. 고요한 상태로 한곳에 크게 머물러 있노라면 하늘의 기틀[天機]이 홀연히 동하는데, 이것이 무의지동無意之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의이위無爲而爲란 바로 이러한 뜻이다.

聖學以知止始 以止至善終 始乎無極 歸乎無極 佛以無住而生心 爲一大藏教旨. 吾道以致虛二字 完性命全功.
성학이지지시 이지지선종  시호무극 귀호무극 불이무주이생심  위일대장교지.  오도이치허이자  완성명전공
總之三敎不過一句 爲出死護生之神丹. 神丹爲何 曰一切處無心而已. 
총지삼교불과일구 위출사호생지신단  신단위하 왈일체처무심이이  

성인聖人의 가르침[유학儒學]은 먼저 그칠 곳을 아는 것[지지知止]으로부터 비롯하여서 지극한 선[지선至善]에 그쳐 머무르는 것에서 끝나는데, 결국 무극無極에서 시작하여 무극無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불가佛家의 가르침에서는, "머무르지 않고[무주無住], 그 마음을 낸다[생기심生其心]”는 것으로써 하나의 큰 가르침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따르는 도교에서는 "虛에 이른다[지허致虛]"는 말로써 性과 命을 닦는 모든 공부를 완성하고 있다.
삼교三敎를 한마디로 묶어서 말하면 한마디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에서 벗어나 생을 영위(出死護生)하는 신단神丹’인 것이다. 그러면 神丹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無心에 머묾을 말할 뿐이다. 

10. 성광식광(性光識光)

今心爲念 念者現在心也. 此心卽光卽葯.  
금심위념 염자현재심야 차심즉광즉약  
凡人視物 任眼一照去 不及分別 此爲性光 光有識尙何光哉.
범인시물 임안일조거  불급분별 차위성광 광유식상하광재

지금의 마음(今+心)이 생각이고, 생각(念)이란 현재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 곧 빛[光]이요, 약[葯]이다. 보통사람이 사물을 볼 때 눈으로 비추어 보게 되는데, 분별해 보지 않는다면 이때의 마음은 성광性光(元神)의 작용인 것이다. 빛에 의식意識이 생기고 나면 이제는 빛이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子輩初則性光 轉念則識 識起而光杳不可覓 非無光也 光已爲識矣. 
자배초즉성광 전념즉식 식기이광묘불가멱 비무광야  광이위식의  

그대들의 경우, 처음에는 본성의 빛[性光, 元神]이었지만 그것이 생각[念]으로 바뀌게 되면 의식[識神의 작용]이 된다. 식신識神이 일어나면 성광性光은 어두워져 찾을 수 없게 되는데, 찾지 못한다 해서 성광性光이 없는 것은 아니고 성광性光이 식신識神으로 변한 것이다. 

子輩回光 正回其最初不還之光 故一毫識念用不著.
자배회광 정회기최초불환지광  고일호식념용부착
使汝流轉者 惟此六根 使汝成菩提者 亦惟此六根 而塵與識皆不用 非用根也 用其根中之性耳
사여류전자 유차육근 사여성보리자 역유차육근 이진여식개불용 비용근야 용기근중지성이


그대들이 빛을 돌린다[回光]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최초의 돌아갈 곳 없는 빛(성광性光, 선천적 불환지광不還之光)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털끝만한 의식(識)과 생각(念)도 필요 없는 것이다. 너[汝]로 하여금 온갖 세계를 유전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육근六根[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이요, 너로 하여금 깨달음[菩提]을 이루게 하는 것도 역시 이 육근六根이다. 티끌과 의식은 어느 것도 쓰이지 아니한다. 감각기관[根]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감각기관의 본성[根中之性]을 쓰는 것이다.

今不墮識回光 則用根中之元性 落識而回光 則用根中之識性 毫厘之辨在此也. 
금불타식회광 즉용근중지원성  낙식이회광 즉용근중지식성 호리지변재차야
用心卽爲識光 放下乃爲性光. 毫厘千里 不可不辨.
용심즉위식광 방하내위성광 호리천리  불가불변

이제 식신識神에 빠지지 않고 회광回光을 하면, 감각기관의 근본된 본성[本性]을 쓰게 되는 것이고, 식신에 빠져 회광을 한다면 감각기관 가운데에 있는 식성[識性]을 쓰게 되는 것이다. 털끝만한 차이라도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니 반드시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마음을 쓰면(用心) 의식의 빛(識光)이 되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곧 본성의 빛(性光)이 된다. 털끝만한 차이가 천리차이를 가져오니 분명히 가리지 않을 수 없다. 

識不斷則神不生 心不空則丹不結. 心淨則丹 心空卽藥. 
식부단즉신불생 심불공즉단불결  심정즉단  심공즉약 
不著一物 是名心淨 不留一物 是名心空  空見爲空 空猶未空 空忘其空 斯名眞空.
불착일물 시명심정  불유일물 시명심공 공견위공 공유미공 공망기공 사명진공

의식을 끊어 버리지 못하면 신神이 살아나지 못하고, 마음이 비어 있지(空) 못하면 단(丹)이 맺히지 않는다. 마음이 깨끗하면 단丹이 형성되고 마음을 비우면 그것이 곧 약藥(精.氣.神)이 된다. 사물에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의식 속에 털끝만 잡념도 남아있지 않으면 마음이 비어있는 것이다. 마음이 비었음을 안다면 그것은 비어있음이 아니고 비어있음을 잊고 있어야 진실로 비어있는 것(眞空)이다. 

12. 주천(周天)

周天非以氣作主 以心到爲妙訣.  
주천비이기작주 이심도위묘결  
若畢竟如何周天 是助長也 無心而守 無意而行.
약필경여하주천 시조장야  무심이수 무의이행

주천周天은 ‘氣’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요, 마음으로 도달하는 것이 묘결妙訣인 것이다. 만약 끝까지 따져 보아서 “어떻게 하면 주천을 할 것인가?”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치 어린 모(모)를 빨리 자라라고 뽑아 올려놓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무심無心으로 지켜보고 무의無意으로 행하는 것이다

13. 권세가(勸世歌)

意識忘後見本眞 水淸珠現玄難測
의식망후현본진  수청주현현난측

의식을 잊은 후에야 본래의 선천진기가(本眞)가 드러나는 것이니, 물(腎水)이 맑으면 내단(珠)이 나타나되 그 현묘함은 헤아리기 어려우니라. 

回光在純心行去 只待眞息凝照於中宮 久之自然通靈達變也
회광재순심행거 지대진식응조어중궁  구지자연통영달변야 

빛을 돌리는 일(回光)은 순수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며, 단지 참다운 호흡(眞息)으로 나의 단전을 응시해 비춰주면 될 뿐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지켜 나가면 자연히 신령함에 통하고 변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總是心靜氣定爲基 心忘氣凝爲效 氣息心空爲丹成 心氣渾一爲溫養 明心見性爲了道. 
총시심정기정위기 심망기응위효  기식심공위단성  심기혼일위온양  명심견성위료도 

모든 것은 마음을 고요히 하고 氣를 안정시키는 것이 바탕이다. 마음을 잊고(心忘), 기氣가 엉겨 모이면 효험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호흡(氣)조차도 끊어지고 마음이 비게 되면(空) 단丹이 완성된 것이다. 마음과 기를 하나로 합하는 것을 온양溫養이라 하며, 마음이 밝아지고 性을 보게되면(明心見性) 道를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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