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일본 큐슈에 다라한국을 건국한 협보
[일본에 세워진 고구려 분국]
이보다 먼저 협보陜父가 남한南韓으로 달아나서 마한산(지금의 평양) 속에 은거하고 있을 때, 따라와서 사는 자가 수백여 가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해 흉년이 들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길에 가득하였다. 이때 협보陜父가 장차 변란이 있을 줄 알고 무리를 꾀어 양식을 싸서 배를 타고 패수를 따라 내려왔다. 해포(대통강 어귀의 진남포鎭南浦를 말한다.)를 거쳐 몰래 항해하여 곧장 구야한국狗邱韓國에 이르니, 곧 가라해加羅海의 북쪽 해안이었다. 몇 달 지내다가 아소산阿蘇山으로 옮겨 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다파라국多婆羅國의 시조이다. 후에 임나와 병합하여 연합정권[聯政]을 세워 다스렸다. 이때 세 나라는 바다에 있고, 일곱 나라는 육지에 있었다.
*협보陜父는 오이鳥伊, 마리摩離와 함께 주몽성제의 고구려 건국을 도운 창업 공신이다. 2세 유리명 열제가 사냥을 나가 5개월 동안 회궁하지 않자 대보大輔인 협보가 직간하였다. 열제가 듣지 않자 협보는 남한 南韓(대동강 부근 지역)으로 달아났다가(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얼마 후 일본으로 건너가 큐슈 중부에 다파라국多婆羅國을 세웠다.
*가라해加羅海는 일본 큐슈의 남서쪽 바다, 사가현 서북 해안에 있는 가라쓰시는 대륙 교통의 요지이다.
[고대 일본 속에 건설한 한국]
처음에 변진弁辰 구야국狗揶國 사람이 먼저 들어와서 모여 살았는데 이것을 구야한국狗揶韓國*이라 하였다. 다파라多婆羅를 일명 다라한국多羅韓國이라 불렀다. 이곳 사람들은 홀본忽本(졸본)에서 이주해 와서 일찍이 고구려와 친교를 맺었으므로 늘 고구려 열제의 통제를 받았다. 다라국은 안라국安羅國과 서로 이웃하고 성씨도 같았다. 옛날에는 이곳에 웅습熊襲(구마소)성城이 있었는데, 지금의 큐슈 쿠마모토熊本 성이 바로 그곳이다.
*구야한국狗揶韓國은 지금의 일본 북큐슈 후쿠오카현에 위치, 변진 구야국인이 먼저 들어와 살던 곳으로 구야 본국인이 다스렸다. 당시 큐슈에 있던 100여 나라 중에서 가장 컸다(대진국본기), 구야국은 변진弁辰(변한) 12국 중의 하나로, 지금의 김해 지방에 있었다.
[당시 왜의 위치와 상황]
왜는 회계군會稽郡 동쪽에 있는 동야현東冶縣(복건성 민후현의 동북에 있다, 중문대사전)의 동쪽에 있었다. 뱃길로 바다 건너 9천 리를 가면 나패那覇(나하)에 이르고, 또 일천 리를 가면 근도根島(네시마)에 이른다. 근도(네시마)를 저도祗島(도시마)라고도 부른다. 당시에 구노狗奴 사람이 여왕과 서로 다퉈 찾아가는 길을 매우 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구야한국으로 가려는 사람은 대개 진도津島(쓰시마, 지금의 대마도 북쪽 섬), 가라산加羅山(대마도와 큐슈의 중간에 위치한 지금의 이키노시마에 있는 가량 가미산이 있는데 이산을 가라산이라 한다, 이유립총서), 지가도志加島(후쿠오카의 지가도)를 거쳐야 비로소 말로호자末盧戶資(말로국, 지금의 큐슈 사가현 북쪽 가르쓰이다. 본래 읍루인이 모여 살던 곳이다) 땅에 이를 수 있었다. 그 동쪽 경계가 구야한국 땅이다.
1) 구노: 정인보는 구노국 왕 비미궁호소卑彌弓呼素는 마한馬韓의 수도 비미국卑彌國(지금의 충남 직산) 사람이었다고 하였다(정인보, 『조선사연구』). 이유립은 마한 비미국 사람으로서 백제의 신흥 세력을 피하여 바다를 건너 일본 남구주南九州에 가서 구노국을 세운 사람이 비미궁호소 즉, 『삼국유사』에서 말한 연오랑延鳥郞이라 주장하였다(이유립총서, 『천天』, 583쪽).
2) 여왕국: 2~3세기경 북구주 지방에 29개 소부족 국가의 연방체로 구성되어 있었던 야마다이국邪馬臺國을 말한다. 이 나라의 왕은 히미코卑彌呼라는 여왕으로,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공神功왕후이다. 따라서 왜의 여왕 히미코가 다스린 야마다이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그동안 야마토大和설과 큐슈九州설로 팽팽히 대립되어 왔으나, 큐슈 지방 위치설이 옳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