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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우주론

자연수(自然數)-1. 수(數)의 개념

by 광명인 2023. 12. 27.


1. 수(數)의 개념

數라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면 사물의 질량을 계산하며 측정하는 수단과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철학적으로 고찰해 보면 ‘는 사물의 기미(機微)이며 또한 有와 無의 변화하는 象이며 단(單)과 다(多)의 운동현상’ 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주간에서 변화하는 사물의 象을 살펴보면 그의 변화원리가 미묘막측(微妙莫測)하여서 그의 유서(由網)를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상세하게 고찰하면 여기에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기미가 반드시 잠복하고 있는 것인즉 이것이 바로 數의 本源, 즉 數의 창조점이며, 또한 만물의 창조점인 것이다. 그러므로 數를 事物의 기미라고 하는 것이다. 진실로 우주변화의 주체인 有와 無(陰陽)의 分合이나 單과 多의 투쟁은 모두 數의 본원인 기미에서 일어나는 조화다.

그러므로 우주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변화하는 그 象을 살펴보면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形(有)과 象(無)의 분합이 아닌 것이 없고 單과 多의 투쟁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한변 형화(形化)하여서 현상계에 현실적인 존재로서 등장하게 되면 無는 벌써 한 개 관념의 미신적 혹은 공상적 대상으로 몰리게 되고 有만이 실존하는 철학의 대상인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사물의 기미가 有와 無, 單과 多의 운동하는 모습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字典」에서 數자의 의미를 살펴보면 자에는 ‘기미(幾微)’라는 의미와 ‘계산(計算)’이라는 의미와 또는 ‘세밀(細密)’ 이라는 뜻이 있는 즉 이것은 모두 징조(徵兆)의 계수(計數)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징조(徵兆)라는 것은 있는 것 같기는 하나 알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인즉 이것이 바로 기미이며 또한 세밀인 것이다. 즉, 그 기미를 알 수 없는 것은 사물의 내용을 너무 세분하였기 때문이므로 너무 세분된 곳, 즉 기미에서는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 다음으로 ‘計’ 자의 의미를 살펴보면 ‘計’라는 것은 발전과 통일의 종합점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言’자의 뜻은 생장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고  자의 뜻은 통일의 시초, 즉 未土의 象인즉 ‘計’ 라는 것은 발전에서 통일로 진입하는 단계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계수인 것이다. 

그 다음으로 세밀이란 의미를 생각해 보면 一點水가 세분화될 때에 나중에는 그의 形마저 상실하게 되어서 유형이 무형으로 비약되는 그 象이 바로 세밀의 종점이다. 우리가 無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 곧 통일을 시작하는 점이며 또한 數가 나타나는 본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상에 논한 바와 같이 사물의 기미이며 또한 유무와 단다가 작용하는 象인 것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수는 이와 같은 기미에서부터 시작하여서 象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수가 어떻게 하여 象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이 되는가 하면 象은 無이므로 알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수는 자연의 변화 자체이므로 그 법칙이 명확하고 정직하여서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수가 이와 같이 철학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사물은 그의 창조점인 시공간의 일점(一點) 기미인 無에서부터 발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공간이란 의미는 “時의 조절과 空의 수장작용이 間이라는 ‘十’ 자의 교차점의 작용에 의하여 비약할 수도 있으며 또는 변화할 수도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물의 象과 數는 동일점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數의 정직성과 명확성은 사물의 象을 발굴하며 또한 증명하는 데 충분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數의 본원인 기미에서 출발한 역상수(歷象數)와 물상수(物象數)는 변화의 현상과 또는 미래까지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은 실로 數가 자연법칙과 함께 운행하고있기 때문이다.

원문출처: [한동석선생의 우주변화원리 p191~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