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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우주론

주역 계사하전(繫辭下傳)

by 광명인 2023. 12. 27.


[주역 계사하전(繫辭下傳)]


제1장(第一章)

八卦成列하니 象在其中矣요 因而重之하니 爻在其中矣요,
팔괘(八卦)가 열(列)을 이루니 상(象)이 그 가운데 있고, 인하여 거듭하니 효(爻)가 그 가운데 있고,

剛柔相推하니 變在其中矣요 繫辭焉而命之하니 動在其中矣라.
강(剛)과 유(柔)가 서로 미루니 변(變)이 그 가운데 있고, 말을 달아 고(告)하니 동(動)함이 그 가운데에 있다.

吉凶悔吝者는 生乎動者也요,
길(吉)·흉(凶)과 회(悔)·인(吝)은 동(動)함에서 생기는 것이요,

剛柔者는 立本者也요 變通者는 趣時者也라.
강(剛)·유(柔)는 근본을 세우는 것이요, 변(變)·통(通)은 때에 따르는 것이다.

吉凶者는 貞勝者也니, 
길(吉)·흉(凶)은 항상 이기는 것이니,

天地之道는 貞觀者也요 日月之道는 貞明者也요 天下之動은 貞夫一者也라.
천지(天地)의 도(道)는 항상 보여주는 것이요, 일월(日月)의 도(道)는 항상 밝은 것이요, 천하(天下)의 동(動)은 일(一)에 항상한 것이다.

夫乾은 確然하니 示人易矣요 夫坤은 隤然하니 示人簡矣니,
건(乾)은 굳세니 사람에게 쉬움으로 보여주고, 곤(坤)은 순하니 사람에게 간략함으로 보여주니,

爻也者는 效此者也요 象也者는 像此者也라.
효(爻)는 이것을 본받음이요, 상(象)은 이것을 형상한 것이다.

爻象은 動乎內하고 吉凶은 見乎外하고 功業은 見乎變하고 聖人之情은 見乎辭하니라.
효(爻)와 상(象)은 안에서 동(動)하고, 길(吉)과 흉(凶)은 밖에 나타나고, 공업(功業)은 변(變)에 나타나고, 성인(聖人)의 정(情)은 말에 나타난다.

天地之大德曰生이요 聖人之大寶曰位니 何以守位오 曰仁(人)이요 何以聚人고 曰財니 理財하며 正辭하며 禁民爲非曰義라.
천지(天地)의 큰 덕(德)을 생(生)이라 하고 성인(聖人)의 큰 보배를 위(位)라 하니, 무엇으로써 지위를 지키는가? 사람이며, 무엇으로써 사람을 모으는가? 재물이다. 재물을 다스리고 말을 바르게 하며 백성들의 비행(非行)을 금함을 의(義)라 한다.

 
계사하전 제2장(第二章)

古者包犧氏之王天下也에 仰則觀象於天하고 俯則觀法於地하며 觀鳥獸之文과 與[天]地之宜하며 近取諸身하고 遠取諸物하여 於是에 始作八卦하여 以通神明之德하며 以類萬物之情하니라.

옛날 포희씨(包犧氏)가 천하(天下)에 왕노릇할 때에 우러러 하늘의 상(象)을 관찰하고 굽어 땅의 법(法)을 관찰하며, 새와 짐승의 문(文)과 천지(天地)의 마땅함을 관찰하며, 가까이는 자신에게서 취하고 멀리는 물건에게서 취하여, 이에 비로소 팔괘(八卦)를 만들어 신명(神明)의 덕(德)을 통(通)하고 만물(萬物)의 정(情)을 분류하였다.
 
作結繩而爲網罟하여 以佃以漁하니 蓋取諸離하고,
노끈을 맺어 그물을 만들어서 사냥하고 고기 잡으니, 이괘(離卦)에서 취하였고,

包犧氏沒이어늘 神農氏作하여 斲木爲耜하고 楺木爲耒하여 耒耨之利로 以敎天下하니 蓋取諸益하고.
포희씨(包犧氏)가 별세하자, 신농씨(神農氏)가 나오시어 나무를 깎아 쟁기를 만들고 나무를 휘어 쟁기자루를 만들어서 쟁기와 호미의 이로움으로 천하(天下)를 가르쳤으니, 익괘(益卦)에서 취하였고,
 
日中爲市하여 致天下之民하며 聚天下之貨하여 交易而退하여 各得其所케 하니 蓋取諸噬嗑하고,
한낮에 시장을 만들어 천하(天下)의 백성들을 오게 하고 천하(天下)의 재화(財貨)를 모아서 교역(交易)하고 물러가 각각 제 살 곳을 얻게 하였으니, 서합괘(噬嗑卦)에서 취하였고,
 
神農氏沒이어늘 黃帝堯舜氏作하여 通其變하여 使民不倦하며 神而化之하여 使民宜之하니 易이 窮則變하고 變則通하고 通則久라 是以自天祐之하여 吉无不利니 黃帝堯舜이 垂衣裳而天下治하니 蓋取諸乾坤하고,
신농씨(神農氏)가 별세하자, 황제(黃帝)와 요(堯)·순(舜)이 나오시어 그 변(變)을 통(通)하여 백성이 게으르지 않게 하며 신묘하게 화(化)하여 백성이 마땅하게 하였으니, 역(易)은 궁(窮)하면 변(變)하고 변(變)하면 통(通)하고 통(通)하면 오래간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도와서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황제(黃帝)와 요(堯)·순(舜)이 의상(衣裳)을 드리우고 있음에 천하(天下)가 잘 다스려졌으니, 건괘(乾卦)·곤괘(坤卦)에서 취하였고,
 
刳木爲舟하고 剡木爲楫하여 舟楫之利로 以濟不通하여 致遠以利天下하니 蓋取諸渙하고,
나무를 쪼개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돛대를 만들어서 배와 돛대의 이로움으로 통하지 못하는 것을 건너게 하여 멂을 이루어 천하(天下)를 이롭게 하였으니, 환괘(渙卦)에서 취하였고,

服牛乘馬하여 引重致遠하여 以利天下하니 蓋取諸隨하고,
소를 부리고 말을 타서 무거운 것을 끌어오고 먼 곳에 이르게 하여 천하(天下)를 이롭게 하였으니, 수괘(隨卦)에서 취하였고,
 
重門擊柝하여 以待暴客하니 蓋取諸豫하고,
문을 이중(二重)으로 하고 목탁을 쳐서 포악한 나그네를 대비하였으니, 예괘(豫卦)에서 취하였고,

斷木爲杵하고 掘地爲臼하여 臼杵之利로 萬民以濟하니 蓋取諸小過하고,
나무를 잘라 절굿공이를 만들고 땅을 파 절구를 만들어서 절구와 절굿공이의 이로움으로 만민(萬民)이 구제되었으니, 소과괘(小過卦)에서 취하였고,

弦木爲弧하고 剡木爲矢하여 弧矢之利로 以威天下하니 蓋取諸睽하고,
나무에 활시위를 매어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서 활과 화살의 이로움으로 천하(天下)를 두렵게 하였으니, 규괘(睽卦)에서 취하였고,

上古에 穴居而野處러니 後世聖人이 易之以宮室하여 上棟下宇하여 以待風雨하니 蓋取諸大壯하고,
상고시대(上古時代)에는 구멍에서 살고 들에서 거처하였는데, 후세에 성인(聖人)이 궁실(宮室)로 바꾸어서 위에는 들보를 얹고 아래에는 서까래를 얹어 풍우(風雨)에 대비하였으니, 대장괘(大壯卦)에서 취하였고,

古之葬者는 厚衣之以薪하여 葬之中野하여 不封不樹하며 喪期无數러니 後世聖人이 易之以棺槨하니 蓋取諸大過하고,
옛날 장례(葬禮)하는 이들은 섶을 두껍게 입혀서 들 가운데 장례(葬禮)하여 봉분(封墳)하지 않고 나무를 심지 않으며 상기(喪期)가 일정한 수(數)가 없었는데, 후세(後世)에 성인(聖人)이 관곽(棺槨)으로 바꾸었으니, 대과괘(大過卦)에서 취하였고,

上古엔 結繩而治러니 後世聖人이 易之以書契하여 百官以治하며 萬民以察하니 蓋取諸夬하니라.
상고(上古)에는 노끈을 맺어 다스렸는데 후세(後世)에 성인(聖人)이 글과 문서로 바꾸어서 백관(百官)이 다스려지고 만민(萬民)이 살폈으니, 쾌괘(夬卦)에서 취한 것이다.
 

계사하전 제3장(第三章)

是故로 易者는 象也니 象也者는 像也요,
이러므로 역(易)은 상(象)이니 상(象)은 형상이요,
 
彖者는 材也요,
단(彖)은 재질이요,

爻也者는 效天下之動者也니,
효(爻)는 천하(天下)의 동(動)함을 본받은 것이니,
 
是故로 吉凶生而悔吝著也니라.
그러므로 길(吉)·흉(凶)이 생기고 회(悔)·인(吝)이 드러나는 것이다.
 

계사하전 제4장(第四章)

陽卦는 多陰하고 陰卦는 多陽하니,
양괘(陽卦)는 음(陰)이 많고 음괘(陰卦)는 양(陽)이 많으니,
 
其故는 何也오 陽卦는 奇요 陰卦는 耦일새라.
그 연고는 어째서인가? 양괘(陽卦)는 기(奇)이고 음괘(陰卦)는 우(耦)이기 때문이다.

其德行은 何也오 陽은 一君而二民이니 君子之道也요 陰은 二君而一民이니 小人之道也라.
덕행(德行)은 어떠한가? 양(陽)은 한 군주에 두 백성이니 군자(君子)의 도(道)이고, 음(陰)은 두 군주에 한 백성이니 소인(小人)의 도(道)이다.
 

계사하전 제5장(第五章)

易曰 憧憧往來면 朋從爾思라 하니 子曰 天下何思何慮리오 天下同歸而殊塗하며 一致而百慮니 天下何思何慮리오.
역(易)에 이르기를 “자주 왕래하면 벗이 네 생각을 따를 것이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천하(天下)는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고민하겠는가. 천하(天下)가 돌아감은 같으나 길은 다르며, 이치는 하나이나 생각은 백 가지이니, 천하(天下)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하겠는가.”
 
日往則月來하고 月往則日來하여 日月相推而明生焉하며 寒往則暑來하고 暑往則寒來하여 寒暑相推而歲成焉하니 往者는 屈也요 來者는 信(伸)也니 屈信相感而利生焉하니라.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와서 해와 달이 서로 미룸에 밝음이 생기며,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와서 추위와 더위가 서로 미룸에 해가 이루어지니, 가는 것은 굽힘이요 오는 것은 펴짐이니, 굴(屈)·신(伸)이 서로 감동함에 이로움이 생긴다.

尺蠖之屈은 以求信也요 龍蛇之蟄은 以存身也요 精義入神은 以致用也요 利用安身은 以崇德也니,
자벌레가 몸을 굽힘은 폄을 구하기 위해서요, 용과 뱀이 칩거함은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요, 의(義)를 정밀히 하여 신묘(神妙)한 경지에 들어감은 씀을 지극히 하기 위해서요, 씀을 이롭게 하여 몸을 편안히 함은 덕(德)을 높이기 위해서이니,

過此以往은 未之或知也니 窮神知化 德之盛也라.
이를 지난 이후는 혹 알 수 없으니, 신(神)을 궁구(窮究)하여 조화를 앎이 덕(德)의 성함이다.

易曰 困于石하며 據于蒺藜라 入于其宮이라도 不見其妻니 凶이라 하니 子曰 非所困而困焉하니 名必辱하고 非所據而據焉하니 身必危하리니 旣辱且危하여 死期將至어니 妻其可得見邪아.
역(易)에 이르기를 “돌에 곤(困)하며 질려(蒺藜)에 앉아 있다.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만나보지 못하니 흉(凶)하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곤(困)할 바가 아닌데 곤(困)하니 이름이 반드시 욕될 것이요, 앉을 곳이 아닌데 앉으니 몸이 반드시 위태로울 것이다. 이미 욕되고 또 위태로워 죽을 시기가 장차 이르니, 아내를 볼 수 있겠는가.”

易曰 公用射隼于高墉之上하여 獲之니 无不利라 하니 子曰隼者는 禽也요 弓矢者는 器也요 射之者는 人也니 君子藏器於身하여 待時而動이면 何不利之有리오 動而不括이라 是以出而有獲하나니 語成器而動者也라.
역(易)에 이르기를 “공(公)이 새를 높은 담 위에서 쏘아 잡았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준(隼)은 새이고 궁시(弓矢)는 기물이며 쏘는 것은 사람이니, 군자가 기물을 몸에 보관하여 때를 기다려 동하면 어찌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동함에 막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가면 얻음이 있는 것이니, 기물을 이루고 동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子曰 小人은 不恥不仁하며 不畏不義라 不見利면 不勸하며 不威면 不懲하나니 小懲而大誡가 此小人之福也라 易曰 屨校하여 滅趾니 无咎라 하니 此之謂也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소인(小人)은 불인(不仁)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불의(不義)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익을 보지 않으면 권면되지 않고 위엄으로 두렵게 하지 않으면 징계되지 않으니, 조금 징계하여 크게 경계시킴이 소인(小人)의 복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차꼬를 신에 달아 발을 멸함이니, 허물이 없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善不積이면 不足以成名이요 惡不積이면 不足以滅身이니 小人은 以小善爲无益而弗爲也하며 以小惡爲无傷而弗去也라 故로 惡積而不可掩이며 罪大而不可解니 易曰 何校하여 滅耳니 凶이라 하니라.
선(善)이 쌓이지 않으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악(惡)이 쌓이지 않으면 몸을 멸할 수 없으니, 소인(小人)은 작은 선(善)을 무익(無益)하다 하여 행하지 않고 작은 악(惡)을 무방(無妨)하다 하여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惡)이 쌓여서 가리울 수 없고 죄(罪)가 커져 풀 수 없으니, 역(易)에 이르기를 ‘차꼬를 메서 귀를 멸하니 흉(凶)하다’ 하였다.”

子曰 危者는 安其位者也요 亡者는 保其存者也요 亂者는 有其治者也라 是故로 君子安而不忘危하며 存而不忘亡하며 治而不忘亂이라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니 易曰 其亡其亡이라야 繫于包桑이라 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위태로울까 함은 그 지위를 편안히 하는 것이요, 망할까 함은 그 생존을 보존하는 것이요, 어지러울까 함은 그 다스림을 두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편안해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보존되어도 망함을 잊지 않고 다스려져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몸이 편안하여 국가(國家)가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니, 역(易)에 이르기를 ‘망할까 망할까 하고 두려워하여야 총생(叢生)하는 뽕나무에 매어놓듯 튼튼하다’ 하였다.”

子曰 德薄而位尊하며 知(智)小而謀大하며 力小而任重하면 鮮不及矣나니 易曰 鼎折足하여 覆公餗하니 其形渥이라 凶이라 하니 言不勝其任也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덕(德)이 적으면서 지위가 높고, 지혜가 작으면서 꾀함이 크고, 힘이 작으면서 짐이 무거우면 화가 미치지 않는 이가 드물다. 역(易)에 이르기를 ‘솥이 발이 부러져 공상(公上)에게 바칠 음식을 엎었으니, 형벌이 무거워 흉(凶)하다’ 하였으니,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子曰 知幾其神乎인저 君子上交不諂하며 下交不瀆하나니 其知幾乎인저 幾者는 動之微니 吉[凶]之先見(현)者也니 君子見幾而作하여 不俟終日이니 易曰 介于石이라 不終日이니 貞하고 吉이라 하니 介如石焉이어니 寧用終日이리오 斷可識矣로다 君子知微知彰知柔知剛하나니 萬夫之望이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기미를 앎이 그 신묘(神妙)할 것이다. 군자는 위로 사귀되 아첨하지 않고 아래로 사귀되 모독하지 않으니, 기미를 아는 것이다. 기(幾)는 동함의 은미함으로 길(吉)·흉(凶)이 먼저 나타난 것이니,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서[떠나가서] 하루가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역(易)에 이르기를 ‘돌처럼 절개가 굳은지라 하루를 마치지 않으니, 정(貞)하고 길(吉)하다’ 하였으니, 절개가 돌과 같으니, 어찌 하루를 마치겠는가. 결단함을 알 수 있다. 군자는 은미함을 알고 드러남을 알며, 유(柔)를 알고 강(剛)을 아니, 만부(萬夫)가 우러른다.”

子曰 顔氏之子 其殆庶幾乎인저 有不善이면 未嘗不知하며 知之면 未嘗復(부)行也하나니 易曰 不遠復(복)이라 无祗悔니 元吉이라 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안씨(顔氏)의 아들은 거의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불선(不善)이 있으면 일찍이 모른 적이 없고, 알면 일찍이 다시 행하지 않았다. 역(易)에 이르기를 ‘멀리 가지 않고 회복하여[돌아와] 뉘우침에 이르지 않으니, 크게 선(善)하고 길(吉)하다’ 하였다.

天地絪縕에 萬物化醇하고 男女構精에 萬物化生하나니 易曰 三人行엔 則損一人하고 一人行엔 則得其友라 하니 言致一也라.
천지(天地)의 기운이 얽히고 설킴에 만물(萬物)이 화(化)하여 엉기고, 남녀(男女)가 정(精)을 맺음에 만물(萬物)이 화생(化生)한다. 역(易)에 이르기를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 하였으니, 하나에 지극히 함을 말한 것이다.”

子曰 君子安其身而後動하며 易(이)其心而後語하며 定其交而後求하나니 君子修此三者라 故로 全也하나니 危以動하면 則民不與也요 懼以語하면 則民不應也요 无交而求하면 則民不與也하나니 莫之與하면 則傷之者至矣나니 易曰 莫益之라 或擊之리니 立心勿恒이니 凶이라 하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군자는 몸을 편안히 한 뒤에 동하며, 마음을 화평히 한 뒤에 말하며, 사귐을 정한 뒤에 구하니, 군자는 이 세 가지를 닦으므로 온전한 것이다. 위태로움으로써 동하면 백성들이 더불지 않고, 두려워하면서 말하면 백성들이 응하지 않고, 사귐이 없으면서 구하면 백성들이 친하지 않으니, 친하지 않으면 해롭게 하는 이가 이를 것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유익하게 해주는 이가 없다. 혹은 공격할 것이니, 마음을 세움에 항상하지 말아야 하니, 흉(凶)하다’ 하였다.”
 

계사하전 제6장(第六章)

子曰 乾坤은 其易之門邪인저 乾은 陽物也요 坤은 陰物也니 陰陽合德하여 而剛柔有體라 以體天地之撰하며 以通神明之德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건(乾)·곤(坤)은 역(易)의 문(門)일 것이다. 건(乾)은 양물(陽物)이고 곤(坤)은 음물(陰物)이니, 음(陰)·양(陽)이 덕(德)을 합하여 강(剛)·유(柔)가 체(體)가 있게 되었다. 이로써 천지(天地)의 일을 체행(體行)하며 신명(神明)의 덕(德)을 통하니,

其稱名也 雜而不越하나 於稽其類엔 其衰世之意耶인저.
이름을 칭함이 잡란(雜亂)하면서도 어그러지지 않으나 그 유(類)를 상고함에는 쇠한 세상의 뜻일 것이다.

夫易은 彰往而察來하며 (而微顯)[微顯而]闡幽하며 開而當名하며 辨物하며 正言하며 斷辭하니 則備矣라.
역(易)은 지나간 것을 드러내고 미래를 살피며, 드러남을 은미하게 하고 그윽함을 밝히며, 명칭에 마땅하게 하고 사물을 분별하며, 말을 바르게 하고 말을 결단하니, 구비하다.

其稱名也小하나 其取類也大하며 其旨遠하며 其辭文하며 其言曲而中하며 其事肆而隱하니 因貳하여 以濟民行하여 以明失得之報니라.
이름을 칭함은 작으나 유(類)를 취함은 크며, 뜻이 원대하고 말이 문채(文采)나며, 말이 곡진(曲盡)하면서도 맞으며, 일이 진열되어 있으면서도 은미하니, 의심나는 것으로 인하여 백성의 행함을 구제하여 실득(失得)의 응보(應報)를 밝힌 것이다.
 

계사하전 제7장(第七章)

易之興也 其於中古乎인저 作易者 其有憂患乎인저.
역(易)이 일어남은 중고(中古)일 것이다. 역(易)을 지은 이는 우환(憂患)이 있었을 것이다.

是故로 履는 德之基也요 謙은 德之柄也요 復은 德之本也요 恒은 德之固也요 損은 德之修也요 益은 德之裕也요 困은 德之辨也요 井은 德之地也요 巽은 德之制也라.
그러므로 이(履)는 덕(德)의 기초요 겸(謙)은 덕(德)의 자루요 복(復)은 덕(德)의 근본이요 항(恒)은 덕(德)의 확고함이요 손(損)은 덕(德)의 닦음이요 익(益)은 덕(德)의 넉넉함이요 곤(困)은 덕(德)의 분별이요 정(井)은 덕(德)의 땅[자리]이요, 손(巽)은 덕(德)의 재제(裁制)이다.

履는 和而至하고 謙은 尊而光하고 復은 小而辨於物하고 恒은 雜而不厭하고 損은 先難而後易하고 益은 長裕而不設하고 困은 窮而通하고 井은 居其所而遷하고 巽은 稱而隱하니라.
이(履)는 화하면서도 지극하고 겸(謙)은 높으면서도 빛나고, 복(復)은 작으면서도 사물을 분변하고, 항(恒)은 섞여 있으면서도 싫지 않고, 손(損)은 어려움을 먼저함에 뒤에는 쉽고, 익(益)은 크고 넉넉하면서도 베풀지 않고, 곤(困)은 궁하면서도 통(通)하고, 정(井)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옮겨가고, 손(巽)은 일에 걸맞으면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履以和行하고 謙以制禮하고 復以自知하고 恒以一德하고 損以遠害하고 益以興利하고 困以寡怨하고 井以辨義하고 巽以行權하나니라.
이(履)로써 행함을 화하게 하고, 겸(謙)으로써 예(禮)를 따르고, 복(復)으로써 스스로 알고, 항(恒)으로써 덕(德)을 한결같이 하고, 손(損)으로써 해로움을 멀리하고, 익(益)으로써 이로움을 일으키고, 곤(困)으로써 원망을 적게 하고, 정(井)으로써 의(義)를 분변하고, 손(巽)으로써 권도(權道)를 행한다.


계사하전 제8장(第八章)

易之爲書也 不可遠이요 爲道也屢遷이라 變動不居하여 周流六虛하여 上下无常하며 剛柔相易하여 不可爲典要요 唯變所適이니,
《주역(周易)》 책은 잊을 수 없고 도(道)됨은 자주 옮긴다. 변동하여 머물지 않아 여섯 빈 자리에 두루 흐른다. 그리하여 오르내림이 무상(無常)하고 강유(剛柔)가 서로 교역(交易)하여 전요(典要)로 삼을 수 없고, 오직 변화(變化)하여 나아가는 바이니,

其出入以度하여 外內에 使知懼하며,
나가고 들어옴을 법도(法度)로써 하여 밖과 안에 두려움을 알게 하며,

又明於憂患與故라 无有師保나 如臨父母하니,
또 우환(憂患)과 그 소이연(所以然)에 밝다. 사보(師保)가 없으나 부모(父母)가 임한 듯하니,

初率其辭而揆其方컨댄 旣有典常이어니와 苟非其人이면 道不虛行하나니라.
처음에 그 말을 따라 그 도리를 헤아려보면 이미 떳떳한 법이 있으나 만일 훌륭한 사람이 아니면 도(道)는 헛되이 행해지지 않는다.


계사하전 제9장(第九章)

易之爲書也 原始要終하여 以爲質也하고 六爻相雜은 唯其時物也라.
《주역(周易)》 책은 시작에 근원하고 종(終)을 맞추어 괘체(卦體)를 삼고, 육효(六爻)가 서로 섞임은 오직 그 때와 일이다.

其初는 難知요 其上은 易知니 本末也라 初辭擬之하고 卒成之終하니라.
초(初)는 알기 어렵고 상(上)은 알기 쉬우니, 본(本)과 말(末)이다. 처음 말은 모의(摸擬)하고 끝마쳐 종(終)을 이룬다.

若夫雜物과 撰德과 辨是與非는 則非其中爻면 不備하리라.
물건을 뒤섞음과 덕(德)을 잡음과 시(是)·비(非)를 분변함 같은 것은 가운데 효(爻)가 아니면 구비하지 못하리라.
 
噫라 亦要存亡吉凶인댄 則居可知矣어니와 知(智)者觀其彖辭하면 則思過半矣리라.
아! 또한 존망(存亡)과 길흉(吉凶)을 살피고자 하면 거연(居然)히 알 수 있으나 지혜로운 이가 단사(彖辭)를 보면 생각이 반을 넘으리라.

二與四 同功而異位하여 其善不同하니 二多譽하고 四多懼는 近也일새니 柔之爲道 不利遠者언마는 其要无咎는 其用柔中也일새라.
이(二)와 사(四)는 공(功)이 같으나 자리가 달라 선(善)함이 같지 않으니, 이(二)는 칭찬이 많고 사(四)는 두려움이 많음은 가깝기 때문이다. 유(柔)의 도(道)는 멀리 있는 것이 이롭지 않으나 그 요결(要結)에 허물이 없음은 모두 유(柔)로써 중(中)을 쓰기 때문이다.

三與五 同功而異位하여 三多凶하고 五多功은 貴賤之等也일새니 其柔는 危하고 其剛은 勝耶인저.
삼(三)과 오(五)는 공(功)이 같으나 자리가 달라 삼(三)은 흉(凶)함이 많고 오(五)는 공(功)이 많음은 귀천(貴賤)의 차등 때문이니, 유(柔)는 위태롭고 강(剛)은 이겨낼 것이다.
 

계사하전 제10장(第十章)

易之爲書也 廣大悉備하여 有天道焉하며 有人道焉하며 有地道焉하니 兼三才而兩之라 故六이니 六者는 非他也라 三才之道也니,
《주역(周易)》 책이 광대하여 모두 구비해서 천도(天道)가 있고 인도(人道)가 있고 지도(地道)가 있으니, 삼재(三才)를 겸하여 두 번 하였다. 그러므로 육(六)이니, 육(六)은 다름이 아니라 삼재(三才)의 도(道)이니,

道有變動이라 故曰爻요 爻有等이라 故曰物이요 物相雜이라 故曰文이요 文不當이라 故吉凶生焉하니라.
도(道)가 변동함이 있으므로 효(爻)라 말하였고, 효(爻)가 차등이 있으므로 물(物)이라 말하였고, 물(物)이 서로 섞이므로 문(文)이라 말하였고, 문(文)이 자리에 마땅하지 않으므로 길흉(吉凶)이 생겨나는 것이다.
 

계사하전 제11장(第十一章)

易之興也 其當殷之末世, 周之盛德耶인저 當文王與紂之事邪인저 是故로 其辭危하여 危者를 使平하고 易(이)者를 使傾하니 其道甚大하여 百物을 不廢하나 懼以終始면 其要无咎리니 此之謂易之道也라.

역(易)이 일어남은 은(殷)나라 말기와 주(周)나라의 덕(德)이 성할 때를 당했을 것이다. 문왕(文王)과 주(紂)의 일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말이 위태로워, 위태롭게 여기는 이를 평안하게 하고 쉽게 여기는 이를 기울어지게 하였으니, 그 도(道)가 매우 커서 온갖 일을 폐하지 않으나 두려워하여 마치고 시작하면 그 요결(要結)은 허물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역(易)의 도(道)라 한다.
 

계사하전 제12장(第十二章)

夫乾은 天下之至健也니 德行이 恒易(이)以知險하고 夫坤은 天下之至順也니 德行이 恒簡以知阻하나니,
건(乾)은 천하(天下)의 지극히 굳셈이니 덕행(德行)이 항상 쉬움으로써 험함을 알고, 곤(坤)은 천하(天下)의 지극히 순함이니 덕행(德行)이 항상 간략함으로써 막힘을 안다.
 
能說諸心하며 能硏諸(侯之)慮하여 定天下之吉凶하며 成天下之亹亹者니,
마음에 기쁘고 생각에 연구하여 천하(天下)의 길흉(吉凶)을 정하며, 천하(天下)의 힘써야 할 일을 이루니,

是故로 變化云爲에 吉事有祥이라 象事하여 知器하며 占事하여 知來하나니,
그러므로 변화(變化)하고 운위(云爲)함에 길한 일에 상서로움이 있다. 일을 형상하여 기물(器物)을 알며, 일을 점쳐 미래를 아니,

天地設位에 聖人이 成能하니 人謀鬼謀에 百姓이 與能하나니라.
천지(天地)가 자리를 베풂에 성인(聖人)이 능함을 이루니, 사람에게 도모하고 귀신에게 도모함에 백성이 능함에 참여한다.
 
八卦는 以象告하고 爻彖은 以情言하니 剛柔雜居而吉凶을 可見矣라.
팔괘(八卦)는 상(象)으로써 고(告)하고 효(爻)와 단(彖)은 정(情)으로써 말해주니, 강(剛)·유(柔)가 섞여 거함에 길(吉)·흉(凶)을 볼 수 있다.

變動은 以利言하고 吉凶은 以情遷이라 是故로 愛惡相攻而吉凶生하며 遠近相取而悔吝生하며 情僞相感而利害生하나니 凡易之情이 近而不相得하면 則凶或害之하며 悔且吝하나니라.
변동(變動)은 이로움으로써 말하고, 길흉(吉凶)은 정(情)으로써 옮겨간다. 이 때문에 사랑함과 미워함이 서로 공격하여 길(吉)·흉(凶)이 생기며, 멀고 가까움이 서로 취하여 회(悔)·인(吝)이 생기며, 진정(眞情)과 거짓이 서로 감동하여 이(利)·해(害)가 생기나니, 무릇 역(易)의 정(情)은 가까우면서도 서로 맞지 못하면 흉하거나 혹은 해로우며, 뉘우치고 또 부끄럽다.

將叛者는 其辭慙하고 中心疑者는 其辭枝하고 吉人之辭는 寡하고 躁人之辭는 多하고 誣善之人은 其辭游하고 失其守者는 其辭屈하니라.
장차 배반할 이는 그 말이 부끄럽고, 중심(中心)이 의심스러운 이는 그 말이 산만하고, 길(吉)한 사람의 말은 적고, 조급한 사람의 말은 많고, 선(善)을 모함하는 사람은 그 말이 왔다갔다 하고, 그 지킴을 잃은 이는 그 말이 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