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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단군세기

단군세기: 13세 단군 흘달 재위 61년

by 광명인 2023. 7. 30.

[13세 흘달단군은 단군세기에 기록된 '오성취루五星聚婁' 현상으로 유명하신 분인데요. 이는 재위 50년 무진년(BC 1733)에 다섯 행성인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직열로 늘어선 천문현상을 기술한 내용입니다.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는 과학적 방법으로 이 현상을 역사적 사실로 입증했었죠. 많은 강단사학자들은 ‘단군세기’가 1911년에 출간되었고 여러 가지 신뢰하기 어려운 기록들이 섞여 있어서 ‘위서’라고 주장하지만, 박창범 교수는 이 기록과 관련해서 "만약 이 기록이 조작을 위해 임의로 책에 삽입되었다면 실제 현상이 있었던 시점과 단 1년 차이로 우연히 가까울 확률은 0.007이 된다. 조작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라는 말을 덧 붙였습니다.]

흘달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묘(환기 5416, 신시개천 2116, 단기 552, BCE 1782)년이다.

재위 16년 갑오(BCE 1767)년에 임금께서 주현州縣을 정하고 관직을 분립하는 제도를 두셨다. 관官은 권한을 겸하지 못하게 하고 정치는 법도를 넘지 않게 하시므로, 백성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 하는 일을 편안하게 여기어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소리가 나라에 넘쳐흘렀다.
이 해 겨울, 은殷나라 사람이 하夏나라를 치자 하나라 걸傑왕이 구원을 청하였다. 임금께서 읍차 말량에게 구환의 병사를 이끌고 전투를 돕게 하셨다. 이에 탕湯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군사를 되돌리라 명하셨다. 이때 걸傑이 약속을 어기고 군사를 보내어 길을 막고 맹약을 깨뜨리려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께서 마침내 은나라 사람과 함께 걸을 치는 한편, 은밀히 신지 우량을 보내어 견군畎軍을 이끌고 낙랑樂浪 군사와 합세하여 관중의 빈, 기 땅을 점령하여 주둔시키고 관제를 설치하였다.

재위 20년 무술(단기 571, BCE 1763)년에 소도蘇途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으셨다. 미혼 소년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부르셨다. 국자랑이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꽃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불렀다.

재위 50년 무진(단기 601, BCE 1733)년에 오성五星이 누성樓星에 모이고[戊辰五十年五星聚婁], 황학黃鶴이 날아와 금원禁苑의 소나무에 깃들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박창범 박사의 저서
오성이 누성에 모였다고 한 흘달단군 50년 무진(BCE 1733)년의 기록은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에 의해서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그리고 실제 컴퓨터 천문 프로그램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 단군조선 13세 흘달단구 재위50년 BCE1734년 7월 중순 저녁 서쪽 하늘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화성, 수성, 토성, 목성, 금성 순서로 오성이 늘어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년의 오차가 발생한다고 하지만, 그건 그 시대와 지금의 역법의 계산이 약간 차이가 났기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재위 61년 기묘(환기 5476, 신시개천 2176, 단기 612, BCE 1722)년에 흘달단군께서 붕어하시자 만백성이 음식을 끊었고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명을 내려 죄수와 포로를 석방하고, 살생을 금하고 방생하였다. 해를 넘겨서 장례를 치렀다. 우가 출신 고불이 즉위하셨다.

출처: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은殷: 건국 초기에 하남성 박(상구商丘)을 도읍으로 삼고 상商이라 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 도읍을 옮겼는데 19세기 반경왕이 은殷(하남성 안양)으로 옮긴 뒤 은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격하시키기 위해 은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견군畎軍: 견이畎夷의 군사, 견이는 동이東夷 9족 가운데 하나이다. 후한서 서강전에 “걸왕이 세상을 어지럽히자 견이가 빈과 기의 사이에 들어왔다”라고 하였다.

관중: 지금의 섬서성 지역이다. 빈邠은 옛 나라 이름으로 주나라 조상인 공류가 세웠다 한다. 빈邠은 섬서성 순읍현의 서쪽, 기岐는 섬서성 기산현의 동북에 있다.

낙랑樂浪: 낙랑은 위만이 번조선을 찬탈해 다스렸던 왕험성王險城(번조선 말기의 수도로 지금의 하북성 창려) 지역이다. 평양 일대에 있었던 낙랑은 고조선 삼한 중 번한의 유민 최숭이 세운 ‘최씨 낙랑국’이며 낙랑군이 아니다. 현재의 평양지역을 낙랑군으로 보는 인식은 당나라 이후에 생겼으며, 그 전에는 요동에 있다는 기록이 대부분이다. 현재 우리 주류사학계에서는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을 구별하지 못하고 낙랑군이 한반도 대동강 일대에 있던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나라 정벌: 탕입금을 도와 하나라를 무너뜨린 상(은)나라의 재상 이윤은 동방의 선인 유위자에게서 신교 문화를 전수 받았다. 그러므로 이윤은 고조선 중앙 정부와 상통하였을 것이며, 13ㄹ세 흘달단군은 은나라가 하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직접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누성樓星: 황도를 따라 천구를 28등분한 별자리를 이십팔수라 한다. 천상의 별자리를 동서남북 4궁으로 나누고 각 궁을 다시 7등분하여 도합 28구로 만들었다. 누성은 서쪽 방위에 위치한 별이다. 이 이십팔수가 하늘을 대행하여 지구와 함께 천체운동을 이루는 ‘현실적인 변화의 주체 노릇’을 한다. 오성이 누성에 모였다고 한 흘달단군 50년 무진(BCE 1733)년의 기록은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에 의해서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박 교수는 오성취루 현상이 1년의 오차가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단군 원년을 정월 세수로 계산한 무진(BCE 2333)년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10월 세수로 따져보면 원년은 정묘(BCE 2334)년이 되므로 천문학과 역사 기록의 오차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박창범,라대일,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한국상고사 학보 제 14호, 95~109쪽)

금원禁苑: 궁궐안에 있는 동산이나 후원

-행촌 이암선생의 단군세기, 환단고기 역주본-